[말씀 묵상] 사무엘하(11장~12장) 묵상
※ 밧세바 신드롬
성경은 다윗의 성공담뿐만 아니라
실패의 이야기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믿음의 사람일지라도 믿지 않은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타락한 육신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며
신자들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사무엘하 10장까지 읽으면서
우리는 다윗의 훌륭한 신앙과 인격에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11장 이후부터는 다윗이 저지른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심판하고 징계하시는지를 보여준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와
밧세바를 만났을 때 상황은 완전히 딴 판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는 젊고 무명의 사람이었지만,
밧세바를 만났을 때는 나이 오십이 넘은 유명한 사람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만났을 때는
목동 생활을 했고, 미래가 밝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밧세바를 만났을 때는
승승장구하는 이스라엘 왕으로 세상 중심에 서 있었다.
그가 골리앗을 만났을 때는 기도와 믿음의 사람이었고,
밧세바를 만났을 때는 기도와 믿음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린 상태였다.
다윗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은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시기였다.
그가 고난가운데 있었을 때는 영혼이 맑고 정결했다.
그러나 환경이 풍요로워졌을 때
그의 영혼은 혼탁했고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많은 정보와 자원을 가지고 성공의 정상에 있을 때
자만에 빠져 밧세바 사건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을
`밧세바 신드롬`이라 한다.
“인생에서 실패보다 오히려 성공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밧세바 신드롬의 경고다.
그래서 중국의 전국시대 때 진나라 재상을 지낸
채택이란 사람은 `성공한 곳에는 오래 머물면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成功之下不可久處).
밧세바란 직역하면 `안식일의 딸`이란 말인데
실제 의미는 `완벽한 딸`의 의미로서 이름만 봐도
그녀의 외모가 어느 정도 완벽했는지 짐작할 것이다.
최고 권력자인 왕이 한 눈에 반할 정도였으니…
그녀가 왕이 동침을 요청했을 때
남편을 언급하며 거부했다는 기사가 없다.
이 여자는 어쩌면 왕이 볼 수 있도록 목욕을 했는지도 모른다.
위에서 봐도 안 보이도록 조신하게 목욕을 했더라면
그 무서운 죄악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도 사탄은 여성들의 노출이
사회를 타락시킨다는 걸 잘 알고 패션이란 이름 하에
온 세상을 소돔고모라처럼 만들어 가고 있다.
교회에서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여성들은 무릎 위로 올라간 미니스커트나 나시 옷 같은
노출이 심한 의복을 자제하고 정숙한 옷을 입고 출입해야 한다.
다윗이 밧세바에 대해 알아보았을 때
그녀가 자신과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다.
다윗이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밧세바를 자신의 궁정으로 불렀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욕심이 잉태한다고 했다.
잉태한다는 것은 쌍방 간에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욕심이 유혹과 하나가 되어서 죄를 낳는 것이다.
유혹이 있더라도 욕심이 반응하지 않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욕심이 있다 할지라도 유혹이 없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
그러나 내면의 욕심과 외부의 유혹이 하나 되면
죄를 잉태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의 죄는 오랜 세월 동안 잉태되었다.
그 죄가 자라서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다윗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게 된다.
죄는 반드시 자라난다.
다윗이 왜 밧세바를 취했겠는가?
다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기 마음대로 여인들을 취했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왕들에게 주신 모세의 경고의 말씀을 무시했다.
“왕은 많은 아내들을 두지 말라.
그래야 그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왕은 또한 은과 금을 많이 모아 두지 말라.”(신 17:17)
그는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 세 명의 아내를 두었고
왕이 된 이후에는 다섯 명의 아내를 더 두었다.
다윗의 이런 행동은 이방 왕들의 행동으로 볼 때 문제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세상의 왕과는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행동하기보다
세상의 문화수준, 세상의 윤리기준에 부합한 상태로 살아왔다.
이러한 삶을 20여 년 동안 산 것이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반복되었던 일이다.
다윗은 밧세바 이전에도 많은 여인들을 데려오라고 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윗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을 정도로
영적 감각이 둔해져 있었다.
우리의 양심도 어느 영역은 민감하게 살아있지만
어느 영역은 둔감해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한술 더 떴다.
그는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두었다.
한 명의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천명의 아내로도 만족하지 못한다.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취하고
집에 돌려보낼 때까지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 당황한 다윗은
그때부터 사실을 은폐하기 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첫 번째 은폐시도는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야를
전쟁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불러내 만난 것이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자신이 밧세바를 취해 생긴 아이를
우리야의 아이로 위장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우리야는 충신이었다.
다윗의 호의를 거절한다.
이제 다윗의 간음죄가 살인죄로 확대되어 간다.
다윗이 전쟁터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써
우리야가 앞에서 싸우고 있을 때
남은 군사를 철수시키라는 내용이었다.
다윗의 신하 요압은 이 편지를 받자마자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챈 것 같다.
요압은 충신이 아니라 맹신이었다.
진정한 충신은 지도자가 잘못된 일을 행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말할 줄 아는 것이 충신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우리야만 죽인 것이 아니었다.
무고한 병사들도 함께 죽였다.
우리야만 죽으면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으니까
주변에 있던 군사들도 한꺼번에 죽게 만들었다.
다윗은 왜 이렇게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했을까?
율법에서 말하는 간음죄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다윗이 은폐하려고 했던 이유는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다윗은 십계명의 여섯 번째 계명부터
열 번째 계명까지 모두를 범했다.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인 것이다.
이렇게 사탄은 언제나 우리를 속인다.
회개하면 될 일을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피하면 된다고 유혹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게 만들어서 감추게 만드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는 반드시 더 크게 자란다.
더 큰 죄를 생산한다.
- 꿀송이 보약큐티 1년 1독 성경통독학교
남아공 노록수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