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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김영환 몬시뇰 회고록 '물따라 세월따라'
출처 매일신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8/0000076759?sid=102
주교좌 계산성당 주임신부, 광주가톨릭대학 학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한 김영환(베네딕토) 몬시뇰이 사제서품 금경축(50주년)과 희수(77세)를 맞아 회고록 '물따라 세월따라'(대건인쇄출판사 펴냄)을 내놓았다.
지금은 한티 순교성지로 조성된 한티 골짜기 공소집에서 태어난 이야기로 시작해 만주 선목촌의 어린 시절, 서울 유학, 해방과 선목촌 습격사건, 어머니와 여동생의 안타까운 죽음, 6·25 전쟁, 로마 유학, 사제로서의 생활, 대학 경영자로서의 경험과 소회 등을 담고 있다.
김 몬시뇰의 글을 읽다 보면 솔직 담백하고 거침없다는 느낌이 든다. 과거를 미화하려고도, 성직자로서의 고귀함을 구태여 돋보이게 하려고도 애쓰지 않았다. 그저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물 흘러가는 대로 써내려갔다고나 할까. 오히려 투병생활의 어려움과 고통을 이야기할 때는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병석에 계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뵙는 듯 더 안타깝고 가깝게 느껴진다.
분명히 회고록이지만, 김 몬시뇰은 책 제목으로 회고록이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어떻든 책 이름은 지어야겠는데, 회고록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대단한 것 같고 문득 옛날 한티 개울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던 것이 생각이 나서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그냥 '물 따라 세월 따라'를 책이름으로 붙였다."는 게 설명이다.
한 성직자의 흘러간 옛 이야기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문희 대주교의 회고록 출판 축하의 글이 새삼스럽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한 인생을 살아가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저 세상에 태어나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인생이기에 한 사람의 살아온 길이 누구에게도 전연 무관하지 않으며, 이렇게 회고록으로 전해질 때 모두가 이것을 보고 각자 나름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도 있고 슬퍼하고 괴로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각자 자기가 물 따라 세월 따라 살아온 자취를 돌이켜보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보고 자기를 알 수 있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특성인 것입니다."
339쪽, 비매품.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9월 빛역사
1994.09.15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
1996.09.08 백지로 사라진 불꽃사진
1998.09. 창원성당에서의 공개 강연회
1998.09. D 약국 김 약사님의 치유
2009.09.03~09.07 코타키나발루 빛VIIT여행
2009.09.14 <행복순환의 법칙> 발간일
2011.09.18~09.28 유럽 빛여행(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성당의 오르간 소리(2011.09.21~22)
2011.09.26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출간일
2013.09.26 박우현 교수의 빛만남
2015.09.28~10.09 라파엘 성모상
2019.09.06 국제침향협회(IAA) 사단법인 설립일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辛旿 정광호 지음
4부
세상 모든 물줄기는
바다에 이르고
김영환 몬시뇰과
아름다운 마무리
나의 스승이자, 때로는 친구였던 김영환 몬시뇰.
그가 한 달을 더 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빛VIIT 때문이었다.
한결같이 빛VIIT의 길을 걸어오기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김영환 몬시뇰, 1970년 박상태 신부님의 수석 보좌 신부로 계산성당에 부임 하시면서 신부님과 인연을 맺은 것이 그때부터였다. 빛VIIT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퍼졌지만, 신부님조차 확신이 없었던 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던 일이 생겼다.
어느 날, 김 몬시뇰과 만나는 자리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신부님, 눈에 뭔가 이상이 있습니까?”
“뭐? 내 눈이 어때서? 잘만 보이는데?”
“지금 그 상태에서 6개월이 지나면 글자가 흐트러져 보일 겁니다. 빛VIIT을 받으시면 증상을 멈출 수 있는데 지금 받으시겠습니까? 아니면 6개월 뒤에 받으시렵니까? 좋을 대로 하십시오.”
“에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럴 필요까지…. 나중에 받지, 뭐.”
김 몬시뇰은 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흘러 그가 효성여자대학교 총장 부임을 눈앞에 두고 있던 어느 날, 걱정스럽게 말했다.
“내 눈이 왜 이러지? 조간신문을 보는데 글씨가 쪼개져 보이기 시작하네. 아무래도 안과에 가봐야겠어.”
김 몬시뇰은 국내의 유명 안과는 물론, 최고의 의술을 갖춘 독일 의료진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원인을 밝히기는커녕 실명 위기에 놓였고,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했다. 기내에서 문득 6개월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지금이라도 빛VIIT을 줄 수 있겠는가? 아직 현대 의학으로는 내 눈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하네. 빛VIIT을 받으면 괜찮아지겠나?”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빛VIIT을 받으시게요? 알겠습니다.”
김 몬시뇰은 남산동 주교관 내, 사제들만 출입할 수 있는 특별 미사실에서 십자가 앞에 두 손을 벌리고 빛VIIT을 받을 자세를 취했다.
“맑아져라!”
이 한마디로 빛VIIT을 보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동시에 갑자기 창가에서 ‘타당!’하며 돌멩이가 부딪히는 마찰음이 두세 차례 강하게 들렸다. 이는 빛VIIT이 아주 강하게 올 때 가끔 일어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됐다! 보인다, 보여! 정상으로 돌아왔다.”
얼마 동안의 깊은 묵상에서 깨어난 김 몬시뇰이 성경책을 펼쳐 읽으며 말했다. 그날 빛VIIT의 현존과 기적을 몸소 체험한 김 몬시뇰은 기존의 편견을 내려놓고 비로소 빛VIIT을 긍정할 수 있었다.
“이건 기적이다! 이 성스러운 빛VIIT을 두고 오해나 혹평부터 해대는 현실이 참 안타깝구나. 어릴 때부터 너를 지켜봤고, 빛VIIT에 대한 여러 불신에 찬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이제는 아니다. 6개월 전의 에고부터 시작해 지금 내가 체험한 이 기적을 보건데, 네가 하는 일은 최첨단 과학이나 어떤 종교의식에서도 할 수 없는 초종교적이고 초 과학적인 일이다.”
이후 효성여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직무를 잘 마치고 1991년에 몬시뇰에 서임되었다. 총장과 학장, 교수로 활동하다가 정년 퇴임 이후에는 다시 중국으로 사목활동을 떠날 만큼 건강하게 일했다. 자신의 체험을 통해 빛VIIT에 대한 확신을 가졌기에 빛VIIT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많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추천해 주었다.
2002년 팔공산 빛터에서 강연 중인 김영환 몬시뇰
하지만 모든 인연에는 끝이 있었다. 일생을 동지처럼 동행해온 그와의 아쉬운 작별을 해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2014년 1월 1일 저녁, 빛VIIT과 함께 오랜 인연을 맺어온 울산 전형미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빛선생님, 여기 안 오세요? 오늘 신부님이 달고 계신 호흡기를 떼고 바로 부검한답니다. 이미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동안 어떻게 오래 버티셨는지, 의학적으로 검사해 확인한답니다. 이제 어쩌지요?”
가톨릭 병원에 입원한 김 몬시뇰이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힘들다는 이야기였는데, 지금까지 건강한 상태로 10여 년을 버틴 게 기적이라고 하던 주치의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부검한다는 말을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곧장, 신부님이 입원해 있던 병원으로 달려갔다.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빛VIIT을 주었다.
“잠시 후 의식을 되찿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가십시오.”
그리 말하고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십여 분이 흘렀을까? 누군가 달려 나왔다.
“빛선생님, 신부님이 깨어 나셨어요!”
신부님은 의식을 찾은 듯, 두 눈을 말또히 뜨고 있었다. 지인들 하나 둘 신부님과 고별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내 차레가 되었다. 몬시뇰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좀 더 머물고 싶다는 그의 간절함이 눈빛에서 전해졌다.
“신부님, 좀 더 살고 싶으십니까?”
그가 손을 까딱 움직였다.
“신부님, 그럼 한 달간 삶의 기회를 더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입니다. 정리 잘하십시오.”
나는 생명 원천의 주인이신 그분의 뜻에 따라 다시 그에게 빛VIIT을 주었다. 이후 김 몬시뇰은 한 달 동안 여러 성직자에게 빛VIIT을 전하시며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확히 한 달째 되던 2014년 2월 1일, 전형미 교수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빛선생님, 김 몬시뇰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며칠 더 지나거나 하루 이틀 앞당겨 선종하셨다면, 저희도 의료진도 선생님의 에언을 우연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한 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한 달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해주신 빛VIIT의 은총에 나는 고개 숙여 감사 드렸다.
“신부님, 그동안 참 감사했습니다.”
나는 빛VIIT 안에서 행복하게 선종하신 김 몬시뇰에게 우주 근원으로부터 오는 영혼의 빛VIIT을 드렸다. 종교인이면서도 종교 밖의 힘이라 할 수 있는 빛VIIT을 누구보다 당당하게 증명하셨고, 마지막 순간까지 빛VIIT과 함께한 몬시뇰은 누구보다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셨다.
빛명상 5주년 기념행사에서 함께한 김영환 몬시뇰(좌)과 천시권 경북대 총장(우)
김영환 몬시뇰이 잠들어 있는 대구 남산동 성직자 묘지에 사후의 빛VIIT을 띄우자, 빛줄기가 내려왔다.
출처 :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초판 1쇄 발행 2026년 6월 1일 P. 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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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몬시뇰
<나도 기적이 필요해 P. 54-57에서 발췌>
…… 48-54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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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져라!”
나는 한마디로 빛VIIT을 보냈다. 우주 근원에서 오는 생명 에너지, 빛VIIT은 어떤 행위나 이론 등이 필요하지 않았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물론 김 몬시뇰도 놀라서 서로 눈을 떠 마주 보았다.
“니 뭐하노? 이거 머리카락 타는 냄새 아이가? 라이터로 머리 찌지는 줄 알았다.”
“그러게요. 타는 냄새가 왜 나죠?”
신부님은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만져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건 머리카락이 실제로 탈만큼 어떤 인위적이니 힘이 가해진 게 아니라 우주의 빛VIIT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김 몬시뇰과 내가 각자의 머리를 매만지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창가에서 ‘타탕’ 하며 돌멩이가 유리에 부딪히는 마찰음이 두세 차례 강하게 들렸다. 유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이건 빛VIIT이 아주 강하게 올 때 가끔 함께하는 강력한 반사음이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에너지도 이런 반사작용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다만 생명에너지 빛VIIT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무한 능력의 힘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불가능한 물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 몬시뇰은 그 순간 옆에 있던 성서를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됐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글씨가 깨져 보여 성서를 읽을 수 없었던 김 몬시뇰은 두 눈을 감싸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소리쳤다.
“누가 이 빛VIIT을 두고 마귀냐 사탄이냐 하고 감히 판단할 수 있겠는가? 이 장소를 택한 게 죄송스럽고 겸손하지 못했던 것 같구나.”
김 몬시뇰은 합장을 하고 두 눈을 감고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 날 빛VIIT의 기적, 빛VIIT의 현존을 실제로 체험한 김 몬시뇰은 빛VIIT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다 버리고 긍정적인 자세로 계속해서 묵상에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기적이다! The God of Miracle!”
묵상에서 개어난 김 몬시뇰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다.
“이 성스러운 빛VIIT을 두고 우선 오해나 혹평부터 해대는 현실이 참 안타깝구나. 어릴 때부터 너를 지켜보고 빛에 대해 불신에 찬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이젠 아니다. 6개월 전의 예고부터 시작해 지금 내가 체험한 이 기적을 보건대 네가 하는 일은 최첨단 과학이나 그 어떤 종교의 의식으로도 할 수 없는 초종교적이고 초과학적인 일이다. 빛VIIT으로 내 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았잖느냐?”
빛VIIT을 두고 초과학, 초종교,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한 건 김 몬시뇰이 처음이었다.
이후 김 몬시뇰은 효성여대 총장에 취임하여 총장 직무를 잘 마치고 91년에는 몬시뇰에 서임되었다. 그리곤 대구 가톨릭대학교 총장으로, 학장, 교수로 활동하다가 정년퇴임 후에는 다시 중국 해북으로 사목(司牧) 활동을 떠날 만큼 건강하게 일했다.
김 몬시뇰은 평소 자신이 몸소 빛VIIT의 능력을 받고 빛VIIT의 힘을 믿는 까닭에 빛VIIT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사회 지도층의 사람들을 많이 추천해 주었다. 특히 빛VIIT의 힘을 널리 알리기 위해 내가 집필한 『행복을 주는 남자』의 추천사를 기꺼이 써준 일은 지금도 큰 고마움으로 남는다. 당시 고위 성직자 입장에서 종교 밖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빛VIIT의 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가장 먼저 스스럼없이 그 일을 해주었다.
“내가 본 사실을 그대로, 양심대로, 원칙대로, 소신대로 쓰는 건데 누가 뭐라 그러든?”
김 몬시뇰은 흔쾌히 나와 자신의 관계를 비롯해 빛VIIT에 대한 긍정적인 힘에 대해 긴 서문을 써주었다.
2000년 즈음, 사단법인 빛명상이 자리를 잡아갈 때였다. 종교계, 학계, 법조계 할 것 없이 빛VIIT의 힘에 대해 오랜 세월 검증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 가운데 김 몬시뇰은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 뒤에서 나와 학회를 지탱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당당히 빛VIIT의 현존을 증거 해주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 지팡이를 손에서 놓던 날 함께 이를 지켜보고 후일 이 일을 증거 하기도 했다. 특히 의 · 과학이나 종교로 불가능한 많은 외부 인사들의 사례를 가져와서 함께 하고 일본의 이찌가와 국회의원을 초청해 일본이나 미국의 의학으로도 불가능한 난치병을 빛VIIT으로 완벽하게 치유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몬시뇰은 내게 말했다.
“빛VIIT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그 일로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건 참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베푸는 일 또한 베풀었던 일을 남에게 절대 드러내지 마라. 그것이 하느님께 가장 큰 복을 받고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다. 요즘 수재의연금이나 기부금을 내고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기부를 하든 기증을 하든 본인의 선행이 어떤 방식으로 크고 작든 알려지게 되면 그것은 하늘의 복이 되지 않는다. 세간에 알려지면 말과 평판으로 그 복을 받았기 때문에 사후의 복을 받을 수 없다.”
김 몬시뇰은 행여 내가 빛VIIT으로 인해 교만이나 자만에 빠질까 염려하여 미리 경계를 하도록 일러주셨다.
“아, 신부님과의 세상적인 인연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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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중략……
출처 : 나도 기적이 필요해
2017년 4월 17일 초판발행
2017년 5월 3일 초판 3쇄 P. 54-57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환 몬시뇰 신부님 이야기,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환 몬시뇰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환 몬시뇰 주교님 빛만나심과 은초의 축복의 한 달 더 사시는 동안 성직자분 께 빛을 전하시는 크신 은혜로우신 현존하시는 빛터빛안의 감사함 끝없으신 영원무궁의 공경의 감사마음드립니다...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실명 위기에서 빛VIIT을 받으시고 정상으로 회복되시고~ 생명 연장 받으신 한 달 동안 빛VIIT을 전하시고
삶을 마무리하시고 선종하신 김영환 몬시뇰 신부님의 감격스런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귀한빛의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몬시뇰신부님이 실명의 위기에서 정상으로 돌아오고 초자연적 초과학적 초종교적인 힘이라고 처음으로 말하셨다.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댜
김영환 몬시뇰님의 회고록 '물따라 세월따라' 출간소식과 김영환 몬시뇰님과의 빛VIIT인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환 몬시뇰님의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영환 몬시뇰님과의 빛VIIT인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