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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 종교·시민사회 단체, 함께하는 평화 기원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주년을 맞아 한국의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이 8월 4일부터 7일까지 일본 히로시마에서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이번 행사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가 주관했으며, 29개 종교·시민사회단체 및 인사가 추모제 개최를 제안하고 준비에 참여했다.
준비위원회에는 예수살기, 정의기억연대, 코리아국제평화포럼, 팍스크리스티코리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민족화해위원회, 한국원폭2세환우회, 한국외대민주동문회, 실천불교승가회 등이 함께했으며, 실행위원회는 조원호(통일의길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손미희(우리학교시민모임), 이병인(통일의길), 양다은·한희수(한강YMCA) 등이 참여했다.
히로시마 현지 추모제와 같은 시기 한국에서도 8월 6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별도의 추모제가 열렸다.
8월 5일 일본 히로시마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나가레가와 교회는 1945년 원폭 투하 당시 피폭된 곳으로, 교회에는 당시 피폭된 목재로 만든 ‘피폭 십자가’가 남아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오늘날의 전쟁과 핵 위협 속에서 평화를 새기다”
이번 추모제의 중심 일정은 8월 5일 오후 1시 히로시마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였다. “여기! 조선인이 있다”는 표어 아래 열린 추모제에는 한국과 일본의 종교·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묵념과 참가자 소개를 시작으로 강우일 주교와 무카이 마레오 목사의 인사말, 한국·일본 측 활동 보고, 종이학 봉헌, 종교별 추모예식, 추도사, 추모 공연, 시민선언문 낭독과 합창이 이어졌다.
추모제가 조선인 원폭 희생자를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81년 전의 비극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준비위원회는 이번 추모제를 “오늘날의 전쟁과 핵 위협 속에서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동아시아의 공존과 화해를 위한 연대의 걸음을 내딛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약 10만 명의 조선인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노동자와 군속, 학도병, 학생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원폭으로 희생됐고,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피폭 후유증과 차별을 겪었으며 그 고통은 2세와 3세에게까지 이어졌다. 이에 추모제는 조선인 원폭 희생자를 단순한 숫자가 아닌 식민지 지배와 강제 동원, 원폭 투하, 전후의 차별이라는 역사 속에서 기억하고, 미·일에 의한 피해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반전평화와 국제 연대를 이어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강우일 주교 “한 분 한 분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하고 고귀한 생명”
8월 5일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에서 강우일 주교가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장소현 기자
추모제에서 강우일 주교는 “저희는 81년 전 이곳 히로시마에서 핵폭탄 폭발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에 휩싸여 희생되신 모든 분, 특별히 재일조선인 희생자들의 고통과 한과 분노를 되새기며 애도와 위안의 기원을 드리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은 분들을 사망자 몇만 명이라는 숫자로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한 분 한 분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하고 고귀한 생명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이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 반려자와 자녀였음을 되새겼다. 강 주교는 방사능의 영향이 2세와 3세 후손에게까지 이어졌음에도 재앙을 불러오고 가담한 이들이 충분히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오늘의 우리를 더 기막히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은 이런 비극을 연출했던 국가의 지도자들이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고 외면하고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하고 배치하고 있다는 현실”이라며 오늘날의 핵무기 확산을 비판했다.
이어 “정치지도자들이 지구상에 핵무기를 양산하고 터뜨리는 최악의 선택을 절대로 하지 않도록 압박하고 저지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쳐 나가겠다고 약속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일본 종교·시민사회의 추모와 연대
8월 5일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조선인 원폭 희생자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종이학을 봉헌하고 있다. 원폭 피해자인 사사키 사다코의 이야기를 계기로 종이학은 원폭 피해자 추모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8월 5일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한국과 일본의 천주교·불교·개신교 관계자들이 각 종교의 전통에 따라 추모 예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이어 참가자들은 종이학을 봉헌하며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종교인들이 각 종교의 전통에 따른 추모예식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불교·개신교가, 일본에서는 개신교·불교가 종교 추모의식에 참여했다. 각각의 예식은 종교적 표현과 형식은 달랐지만, 원폭 희생자를 기억하고 전쟁과 핵무기의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나로 모였다.
종교예식에 이어 한국과 일본에서는 각각 추도사가 이어졌다. 한국 측에서는 노진철 환경운동연합 이사장이 조선인 원폭 피해자들이 식민지 지배와 강제 동원의 피해자인 동시에 원폭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짚으며, 이들의 상처가 현재까지도 치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추모제가 과거에 대한 애도를 넘어 “평화와 인권, 정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측 후지모토 야스나리 원수폭금지 일본국민회의 고문도 한반도 출신 희생자들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원폭이라는 이중의 희생을 겪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원폭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일본 시민 스스로 식민주의를 극복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조원호 추모제 준비위원회 실행위원장(통일의길 공동대표)이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추모제가 “남북이 하나 되는 추모제”가 되기를 바란다며, 원폭 피해자들의 평범한 일상 회복과 미국과 일본의 사죄와 배상,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에서 원폭 희생자 문제를 알리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라며 남북의 피폭자 단체와 정부·정당·시민사회가 협력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추모공연과 시민선언으로 이어진 평화의 다짐
8월 5일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장순향 한반도춤연구소 소장·한양대학교 교수가 ‘망향’(望鄕)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추모공연에서는 장순향 한반도춤연구소 소장·한양대학교 교수의 춤 ‘망향’(望鄕)을 시작으로 노래와 한일 중창이 이어졌다. 장순향 교수는 ‘망향’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히로시마에서 생을 마감한 조선인 희생자들의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최재직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광야에서’가 불렸고, 한일 참가자들은 ‘히로시마 기억이 깃든 나라에서’(ヒロシマの有る国で)와 ‘소원’(願い)을 함께 불렀다. 특히 ‘히로시마 기억이 깃든 나라에서’는 “내 나라, 당신의 나라, 삶의 가치는 평등하고”라는 가사를 통해 국적과 경계를 넘어 모든 생명의 가치가 평등함을 노래하며, “피어오르는 전쟁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리라”는 메시지로 평화를 향한 다짐을 전했다.
8월 5일 나가레가와 교회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년 조선인 희생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선언문”을 함께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추모제의 마지막에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81년 조선인 희생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선언문”이 낭독됐다. 선언문은 “여기! 조선인이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원폭 투하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살고 있던 조선인 중 약 5만 명이 희생됐으며, 살아남은 피해자들 역시 방치와 차별 속에서 고통을 겪었고 그 후유증이 2세와 3세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과 미국에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 핵무기 사용에 대한 사죄와 진상 규명, 역사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한국 정부에도 원폭피해자 특별법 개정과 피해자·2세·3세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및 권리 보장을 요구했다.
또한 “남과 북이 함께하는 조선인 희생자 공동추모제를 추진하여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 통일의 길을 열겠습니다”라고 밝히며, 한일 평화운동가들의 전국적·국제적 연대를 확대해 역사정의와 인권, 반전평화를 위해 행동하고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억은 다시 평화를 향한 행동으로
이번 추모제는 조선인 원폭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역사와 오늘날의 핵 위협을 함께 돌아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준비위원회는 추모제의 취지로 역사정의와 반전평화, 인권을 위한 활동, 한국 종교·시민사회와 일본 동포·시민사회의 연대, 원폭 피해 2세·3세의 인권 문제 등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종교·시민사회 관계자들이 함께 추모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며 조선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평화를 기도했다.
한편 참가단은 8월 4일 히로시마에 도착해 원폭 평화기념관 앞에서 종이학 평화 행진에 참여하고 원수폭금지 세계대회에 함께했다. 8월 6일에는 원폭돔 앞에서 열린 그라운드 제로 모임과 여러 사람이 죽은 듯이 드러누워 추도하는 ‘다이인’, 반원전 행진, 주코쿠전력 본사 앞 연좌 농성에 참여했으며, 오후에는 원폭평화기념관과 평화공원을 둘러봤다. 8월 7일 귀국으로 히로시마 일정은 마무리됐지만, 준비위원회 실무팀은 이후 내년도 추도식 준비를 위해 나가사키를 방문하는 일정까지 이어갔다.
8월 4일 히로시마 원폭 평화기념관에서 참가자들이 종이학 평화 행진을 하고 있다. 행진에 사용된 현수막에는 ‘여기! 조선인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 원폭 희생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라!’, ‘미국은 조선인 원폭 희생자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라!’, ‘미국과 일본은 원폭 희생 조선인의 명예 회복에 나서라!’ 등의 문구가 일본어와 한국어로 적혀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8월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 앞에서 참가자들이 “여기! 조선인이 있다”를 외치고 있다. (사진 제공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 준비위원회)
히로시마에서 울려 퍼진 여러 종교의 기도는 서로 다른 언어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희생자를 잊지 않는 것, 과거의 책임을 직시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전쟁과 핵무기로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81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 조선인이 있다”는 외침이 이어지는 이유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s://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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