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의 유래와 ‘싼값 판매’의 경제학]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미국 전역이 일제히 쇼핑 열기로 달아오른다. 각종 온라인몰과 대형 유통업체는 평소에는 상상하기 힘든 할인을 내걸고,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서고, 서버는 마비된다. 이 거대한 소비의 축제를 우리는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이름의 시작은 놀랍게도, 지금처럼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말은 1950~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이 붙인 별명에서 출발했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이면 교외에서 몰려온 쇼핑객과, 주말에 열리는 육군–해군 풋볼 경기 관람객이 한꺼번에 도시로 들어왔다. 도로는 마비되고 소매치기·절도 사건이 급증해 경찰은 초과근무로 고통받았다. 이들은 그 날을 ‘검게 물든 금요일’, 즉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불렀다. 한때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애려 “빅 프라이데이(Big Friday)”라는 이름을 캠페인으로 밀어보기도 했지만, 결국 대중의 입에 붙지 못했다.
이후 1980년대에 접어들며 뜻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블랙 프라이데이는 폭발적인 쇼핑 시즌의 문을 여는 날로 자리 잡았지만, ‘Black’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은 여전히 부담이었다. 이에 소매업계는 ‘적자(red)였던 장부가 흑자(black)로 바뀌는 날’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실이라기보다 마케팅에 가까운 스토리텔링이었지만, 세일의 날이라는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지며 대중에게 널리 퍼졌다.
왜 하필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가
미국은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사실상 연휴처럼 보낸다. 많은 기업과 학교가 쉬고, 많은 가족이 여행을 떠나거나 귀가하지 않는다. 자연히 쇼핑 인파가 몰리는 데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관습도 이 시점에 시작된다. 그래서 블랙 프라이데이는 단순한 하루 세일이 아니라 연말 대목의 개막전이며, 소매업체들이 연중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 독특한 소비문화는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며 한국, 유럽,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블랙 프라이데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할인은 어떻게 가능한가: ‘싼값의 구조’
첫 번째 이유는 미끼 상품 전략이다. ‘도어버스터(doorbuster)’라 불리는 초특가 상품은 원가 수준, 심지어 손해를 보고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목적은 단순하다. 사람을 매장으로, 혹은 온라인몰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소비자는 한두 개의 초특가 제품을 사러 왔다가, 실제로는 마진 높은 다른 상품까지 함께 구매한다. 경제학적으로 이런 제품을 “Loss leader(손해 보는 선도상품)”라고 부르며, 블랙 프라이데이는 이 전략이 가장 극단적으로 사용되는 시기다.
두 번째 이유는 재고 정리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소매업체가 오래된 모델, 남아 있는 재고, 계절성이 떨어진 상품을 처분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창고를 차지하는 순간 비용이 발생하는 만큼,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현금화하는 편이 낫다. 이때 대량 할인을 걸어 재고를 쓸어내고, 확보된 현금은 곧바로 크리스마스·신년 시즌의 최신 상품 구매에 투입된다.
세 번째 이유는 규모의 경제다. 미국의 연말 쇼핑 시즌은 연간 매출의 10% 이상이 몰리는 초대형 시장이다. 이 정도 물량을 예상하고 제조사와 소매업체는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협상한다. 대규모 발주가 보장되면 제조사도 생산라인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단가를 낮출 수 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그 자체로 ‘규모의 힘’이 가격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쇼핑 확대로 정교한 가격 책정이 가능해졌다. 소비자의 관심상품, 검색기록, 장바구니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제로 싸지는 않았지만 싸 보이게 만드는’ 가격 설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몇 가지 핵심 상품만 대폭 할인하고, 나머지는 심리적으로 싸 보이는 가격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즉,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게 느끼게 만드는 블랙 프라이데이는 소비자에게 1년 중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시기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지금 안 사면 손해’라는 강한 심리적 압박을 만들어내는 시기이기도 하다. 기획된 희소성, 제한된 수량, 시간 제한 등은 소비자의 이성을 흔드는 장치다. 그래서 소비자단체들은 매년 “목록을 만들고, 평소 가격을 확인하며, 반품 조건을 따져보라”고 권고한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혼잡한 도시와 경찰의 고생에서 시작된 이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전 세계가 기다리는 쇼핑 축제로 변모했다. 그 이면에는 재고 관리, 손해 감수 전략, 대량 생산을 통한 단가 절감, 데이터 기반 가격전략이라는 정교한 경제적 논리가 자리한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단순한 할인 이벤트가 아니라, 현대 유통 산업 전체가 총력전을 펼치는 거대한 경제 현상인 셈이다.- 펌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