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은 영월의 청령포
내가 만약에 다시 청춘(靑春)으로 돌아 간다면 ......?
나주의 촌놈이 한양으로 무임승창하여 올라가지 않겠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 갈 수도 없지만,
나에게 너무나 혹독한 시련을 주는 곳이기도하며 ,치열한 경쟁사회가 꼭
인간사의 만사는 아닌 것 같다.
주어진 여건과,환경, 모든 나의 삶들이 과분한 한양으로 상경인 것 같다.
대학도 다닐수 없는 경제적인 상황, 잠자자리도 교통비도 마련되지 않는 서울의 생활....
단, 둘째누나가 나의 능력을 인정하시고 ,매형도 받아주시어 '주경야독'을 할 수 있는곳이
서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둘째누나가 초등학생들을 모아 주셨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대학을 다닐수 있는 방법을 터득 할 수가 있도록 가르쳐 준 것이다.
나는 나주에 있었더라면, 광주에 있는'광주교육대학교'도 다닐수가 없는 가난한
삶이다. 더 이상의 학문을 하고,더 이상의 자아성취를 할수가 없는 빈한한 농촌의 삶이었다.
나주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 있는 그 때 당시 명문고인 '광주고등학교'를 다닐수가 없는
환경에서 한양으로 유학을 간다?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다.
나는 지금도 나에게 질문을 하여 본다.
어떠한 힘을 믿고 서울에가서 대학을 다니고, 나의 꿈을 이루어 볼려고 한양으로 올라 갔을까?
하고 반문을 하여 본다.
그건 무모하고 멋모르고 젊음만 믿고 서울로 간 것이다.
내가 서울로 올라간지 부모님들은 서울로 올라 오셨다. 공부는 커녕, 노부모님을 모셔야하는
부양자로 전락을 한 것이다. 이제 서울을 막올라 간 시골의 촌놈이 어떻게 가족들을 부양하란
말인가?
둘째누나는 궁여지책으로 나를 아는분을 통하여 인쇄소 문선공으로 수습을 시켜 활자를 뽑아
출판을 할수 있는 공원(工員)으로 만들었다. 그 길이 나의 가족을 거느리게 하는 발판이었고
생계의 수단이었다.
명새기 대학을 다니겠다고 서울로 올라 간 놈이 이거 인쇄소 공원이라?
참 ,분에 찬다.
나는 지독한 마음으로 이 직장에서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면서 피나는 노력으로 '인천교대'에
초등학교 교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도전을 한다.
참 ,추운겨울에 어머니는 병환에 계시고,직장을 놓고,시험에 준비를 하는데......
죽을지경이다. 13:1를 뚤고 드디어 합격을 한 것이다. 서울의 명문고등학교를 나온사람들하고
경쟁을 하여 당당히 합격을 한 것이다. 이게 나의 사회의 첫 출발이다. 정말 즐거웠다
그 성취감이란 어이 필설로 다 하리요 .그 다음해에 어머니는 저세상으로 떠나셨다.
돈이없어 병원을 한번도 못가보시고 ,
거기까지는 좋았다.
이거 저 서해안의 섬마을이라도 좋으니, 어느초등학교라도 발령을 내 주어야지?
힘들게 딴 초등학교 교사의 자격증, 어디를 원망을 하여야 할지?
또, 나는 또 세계를 도전을 한다
행정을 하는 공무원 시험에 ......
그게 하루 아침에 붙는가?
어찌 어찌하여 몇년의 허송세월을 보내고 ,서울시 공직, 이게 아닌데...
방황을 하다가 정년까지 갔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고향의 나주에서 서서히 직장을 알아 보고 안부지족하는 나의 삶으로
안착을 할것을 ,너무 과분한 꿈 이었나 보다.
서울의 세방신세가 너무 처량을 하였고 ,가난한 빈빈가를 돌아다닐때 너무 비참 하였다.
나를 따라사는 부모님은, 아내는, 자녀들은 어떠 하였겠는가?
지금도
먼저간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자녀들에게도 ,부모님들에게도 .....
차라리 낙후된 전라도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고향을 지키고 ,내 역량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고생을 덜 할 것을, 분수에 맞지않는 과욕이 화를 불러 일으 킨 것이다.
지연(地緣)에 핍박을 받고, 학연에 밀리고, 금력에 밀리고......
영등포구청시절 어느 상사분의 승진에 관계되는 '정책형성론'의 논문을 써 주고 그때부터 나를
인정을 해주어 근무평정을 받게 되어 승진서열에 들어가 힘들게 시험에 합격을 하여 기회가
오기시작을 하였다. 이 자리를 빌려 이미 고인이 되셨겟지만 고마움을 전한다.
거기다가 적은 박봉에 두 자녀들을 사립대학에 보낼때에는 허리가 휠 것 같았다 그것도
딸아이의 미대(美大) 서양학과 .....
나는 고향에서 모든걸 잊고 머리를 식히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
정신의학과 약을 먹어야 하고 뇌영쟝제를 먹지 않고 ,산수가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접하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다.
이게 나의 고달픈 나의 운명인가?
직장퇴직을하자마자 아내는 암투병으로 저 세상으로 , 홀로 홀외비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가며, 살아 온 지도 어언 15 여년이 된 것 같다.
이러한 나의 삶을 연출하여야 하는가?
모든 나의 삶은 나의 운명으로 받아드리고 , 자연에 숨을 쉬며 하루하루 고향에서 지내고
있다.
고향을 노후에 낙향한 초로의 노객의 한탄가(恨歎歌)로 봐 주시는 아량을 부탁드림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접헌 글
따스한 도전입니다
글속에서 ... 무얼 그리 찾고 싶은지 ..
머물고 생각해 봅니다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 혼자 중얼거리면서요 ~~~~~~
적극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젊음의 도전...용기와 지혜는..
적극적인 삶의 운명에 아름다움을 주겠지요..
글 고맙쉼더
감사합니다
허접한 글에 괜히 글방에 누를 끼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의 과거 젊은 시절, 우리들의 과거 젊은 시절에 안타깝고아쉬운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부족한 용돈, 수줍음이 많은마음, 하기싫은 공부는 어쩔수 없이 해야하고
아까운 젊은 시절이 그냥 지나간거에 대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거는 지금 이나이의 대부분의 우리들의 마음일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즐겁고 알차고 신나게 살도록 노력합시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즐거운 일이 없으니, ㅎㅎ
자연에 숨 쉬며 자연의 품속에 돌아가려는
유유자적함에서 노래하는 님의 한탄가가
차라리 부럽기만 합니다.
운명이라 여겨지는 삶을 유감없이 누리시길요~^^
감사합니다
항상 정겨운 댓글에 가사를 드림니다
이제는 나이가 그렇게 되었으니, 어쩔수 없지요
편안한 일상이 되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니, 편안한 일상이 되지않군요
여기 저기 아프고 ....
오늘도 만장봉님의 글을 찬찬히, 찬찬히 읽습니다.
그렇게 하여 인천교대로 진학하신 거군요.
한국전쟁이 끝나고, 베이붐 시대에 태어나
바글바글한 인구 틈바구니에서 성장했던 사람들.
교육대도 그 많은 인구를 교육시키기 위해 정원수를 잔뜩 늘렸었지요.
인구 증가에 위기를 느낀 정부에서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가족계획>이란 미명하에 <산아 제한> 정책을 실시하게 되었구요.
자연 인구수는 줄어들고,
학급 수에 비해 넘치는 졸업생들은 발령이 적체되었던 시절.
제 선배나 동기생들 중 많은 분들이 발령을 기다리다 지쳐서
공무원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애들 아빠도 목포교대 출신으로 발령을 기다리다 지쳐
여수 럭키 화학에 공원으로 몇 년 근무를 하다가 발령을 받았기에
정작 저보다 교육경력은 짧았습니다.
공장경력은 교사 경력에 50%만 반영한다는 것도
애들 아빠 때문에 알았지요.
인천교대.
참 대단하였지요.
서울교대 출신자들은 초등교사들 사이에서
일반인들의 서울대 졸업생들만큼 위세등등하였고.....
인천교대는 서울교대에 진학하기엔
성적이 다소 불안한 아이들이 모였던 곳.
감사합니다
뭐 대단해서 이러한 글을 올리는 것은 아님니다
그만큼 마음고생과 당장 부양하여야 할 부노님이 계시는데 ....
제가 의정부에서 계약제 교사를 하는데,
두분의 서울교대 출신자들을 과 함께 근무를 하였습니다
확실이 좀 틀리데요
한분은 사법고시를 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들어오시고
또한 분은 서울경제신문기자를 하다가 뒤늦게 오시고
또한 분은 성균관대 한문학과를 졸업후 서울교대에
다들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나는 서울시 정년퇴직후 계약제 교사로 ....
즐겁게 지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학교였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장봉님.
그래서 공무원의 길을 걷다가 낙향하시어
인천교대에서 받으신 교사자격증으로
비로소......
너무나 늦었지만 비로소....
교사가 되시었군요.
그 감동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만장봉님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도 남으실 분이십니다.
아이구 관찬이시고요
그냥 그러한 평범한 시민입니다
저는 교직과 공직이 천직입니다
다들 공부를 할수 있는 직업이라는데서 ........
항상 좋은글에 심취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노객의 한탄이 식상하겠지요
그래도 이렇라도 풍내야 마음이 좀 시원합니다
이쁜한매는 커녕 미운 말매도 접근하기 힘듭니다
이제와서 그래 본들 어쩝니까 ㅎㅎ
저는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 노! 라고 손사래 칠겁니다
언제나 답은 하나 인 삶
물러설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다시 그 시절로
왜 돌아가고 싶겠습니까
지금이 좋고 살아왔던 세월도 잘 넘어왔다고
여깁니다 후회하면 뭐 합니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인걸요
만장봉님도 그렇게 여기세요
괜히 속 끓이지 마시고요 ..
감사합니다
항상 머리가 아프고 여기 저기 아프니,
재가 서울에 올라거서 고생을 이렇게 해서 그러나........
하는 생각들이 나무합니다
죄송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알겠습니다
수정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사업을 하시니 희망이 있지요
저야 여기저기 아프기만하니, 인생이 팍팍합니다
저위에 어떤분도 댓글 주셨지만 삶의이야기 라는건 현재 살면서 느끼고
여러 회원들과 교감할수 있는 얘기를 나누는 곳이어야 하는데 자기의
지난 얘기를 그것도 이곳을 애용하는 회원 이라면 아~또 그얘기 인가 ?
할정도로 여러번 올리시는건 식상할수 있다는 말씀을 어렵게 드려 봅니다.
글쎄 써놓고 보니 그러한 점이 있군요
감사합니다
요즘은
항상 후회스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에고
10년만 젊어서도...ㅎ
모든게 지나갔지만
지금에 만족하고 살아가려고
노력중입니다
좋은 날 되세요 ~^^
감사합니다
그렇지요 현재에 만족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