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저기
반구저기(反求諸己)*를 직역하면 ‘돌아보고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는다.’는 뜻을 지닌 표현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원인을 찾아 바로 잡는다.’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이를 현대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내 탓이오!”라는 철학과 상통하지 않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무슨 일이든지 그르쳤을 때 다른 사람 또는 주변의 여건이나 환경을 핑계대면서 책임을 전가(轉嫁)하려 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보편적인 정서와 판이한 차원의 일깨움인 반구저기와 만남이다.
나무랄 데 없이 고귀한 뜻을 담은 성어인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출전(出典)에서 관련된 유사한 내용이 눈에 띈다. 그 주요한 몇 가지 경우를 전문가들이 밝혀주고 있다. 첫째로 하(夏)나라를 세운 우(禹)임금의 아들인 백계(伯啓)에 관련된 고사(故事), 둘째로 ⟪맹자(孟子)⟫의 ⟨이루상편(離婁上篇)⟩을 비롯해서 ⟨공손추상편(公孫丑上篇)⟩, 셋째로 ⟪예기(禮記)⟫의 ⟨사의(射義)⟩, 넷째로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 다섯째로 ⟪명심보감(明心寶鑑)⟫등이 그들 예이다. 이들 각 출전에서 전하는 핵심 내용을 간추려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으며 이를 통해 그 진면목을 살핀다. 한편 유의어로는 반궁자문(反躬自問)과 반궁자성(反躬自省) 따위가 있다.
먼저 하(夏)나라 우(禹)임금의 아들인 백계(伯啓)에 관련된 고사의 주요 내용이다. 우임금 시절에 제후(諸侯)인 휴호씨(有扈氏)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에 강력한 응징을 위해 아들 백계에게 하명하여 맞서 싸우게 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모든 병사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다시 싸우기를 강력하게 건의했지만 백계는 시종일관 반대했다. 왜냐하면 “자기에겐 병력도 적군보다 많았을 뿐 아니라 근거지도 적지가 아니었음에도 패했던 것이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덕행이 그(유호씨)에 비해 모자랐고 부하 통솔이나 전략이 그를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신념에 따라 우선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찾아 고쳐나가겠다.”고 결기를 다지며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후 백계는 매일 반성하며 모자랐던 부분을 채우고 덕을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 성찰과 자성의 자세로 각오를 다지는 성품에 감복하여 유호씨도 더 이상 쳐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결국에는 무릎을 꿇고 백계의 휘하로 투항했다. 이를 계기로 반구저기는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경우 그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음은 ⟪맹자⟫의 ⟨이루상편⟩에 나오는 내용의 간추림이다. 여기서 맹자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을 베풀었음에도 남이 사랑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인(仁)을 실천했는지 돌아보고, 예(禮)를 갖춰 대했으나 무반응이라면 공경심(敬)을 돌아보라.”고 일갈하면서 이렇게 이어갔다.
/ ... / 행동했음에도 얻는 바가 없다면(行有不得者 : 행유부득자) / 오히려 자신에게서 모든 잘못을 구해야(찾아야) 하며(皆反求諸己 : 개반구저기) / 만일 자기가 옳다면 온 세상이 따를 것이다(其身正而天下歸之 : 기신정이천하귀지) / ... /
위 내용에서 반구저기가 비롯되었다. 한편 ⟨공손추상편⟩에서는 맹자가 공자(孔子)의 핵심적인 논제(論題)인 ‘인(仁)’을 설(說)할 때 아래와 같이 설파하고 있다.
/ ... / 인자(仁者)란 활(弓)을 쓰는 것과 같도다(仁者如射 : 인자여사) / 활을 쏠 대 몸을 바르게 한 뒤에 쏴야한다(射者正其後發 : 사자정기후발) / 활을 쏴서 과녁에 명중하지 않으면(發而不中 : 발이불중) /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할 게 아니라(不怨勝其者 : 불원승기자) / 되레 자신에게서 패한 이유를 찾아야 하느니라(反求諸己而已矣 : 반구저기이이의) / ... /
위 내용에서도 반구저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예기⟫의 ⟨사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며 여기서 구정저기(求正諸己)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 ... / 활쏘기는 인(仁)에 이르는 길이다(射者仁之道也 : 사자인지도야) / 스스로 올바름을 판단해(구해)(求正諸己 : 구정저기) / 나 자신이 바르게 된 이후에 쏜다(己正而後發 : 기정이후발) / ... /
또한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나타나는 관련 내용으로 반구저기에 가까워 맥이 상통하는 구절(句節)로서 다음과 같다.
/ ... / 군자(君子)는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고(君子求諸己 : 군자구저기) / 소인(小人)은 남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는다(小人求諸人 : 소인구저인) / ... /
끝으로 ⟪명심보감⟫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반구저기라는 내용이 등장하고 있다. 이 말의 요점은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은 것이다.’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 ... / 성리서(性理書)에서 이르기를(性理書云 : 성리서운) / 사물을 접하는 요령은(接物之要 : 접물지요) /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은(其所不欲 : 기소불욕) / 남에게도 시키지 않을 것이며(勿施於人 : 물시어인) / 그렇게 했음에도 잘 되지 않는다면(行有不得 : 행유불득) / 돌이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라(反求諸己 : 반구저기) / ... /
대부분 난관이나 실패에 직면하면 우선 다른 사람이나 제도를 비롯해 처한 여건이나 환경을 핑계대고 책임 회피 혹은 변명을 앞세우는 풍조는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면피(免避)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이나 전과(前過)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로 인한 피해나 여파는 어느 누군가는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그런 어려움에 직면하면 대인답게 실패나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슬기롭게 대처할 능력을 함양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면적인 성숙을 꾀한다면 함부로 넘보기 힘들 정도로 우뚝한 인재로 거듭 태어날 터인데. 예로부터 이르지 않던가? 극복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절대로 “하늘을 원망하거나(上不怨天 : 상불원천),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지어다(下不尤人 : 하불우인).”라고 이르던 선현들의 충고를 새삼스럽게 곱씹는다. 결국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 사 모두 내 탓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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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구저기(反求諸己) : 보통 한자(漢字) “諸”자는 ‘모두 제’자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에서”라는 뜻의 ‘어조사 저’로 사용되었다고 전문가들이 귀띔하고 있다.
《수필과비평》, 2026년 7월호(통권 297), 2026년 7월 1일
2024년 11월 8일 금요일(우리 부부가 혼인 49 주년을 맞는 날이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