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 인지도.
/양귀자, 모순
인간은 그런 종족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 같은
이상한 감정이 탑재되어 있다.
세상이 이렇게 망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이 재앙을
살인과 광기의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 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김연수,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불편하게 하지 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예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라는 이들을 본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본다
더 노골적으로, 더 공적인 방식으로
약한 이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본다
인간성의 기준점이 점점 더 내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힘을 더해야 한다
/최은영, 애쓰지 않아도
우리의 일생에서 타인의 역할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나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당도할 수 없었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아무리 어둔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베드로시안, 그런 길은 없다
나는 오래전의 당신이 그리했을 것처럼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겨우 발끝으로만 바닥에 닿을 뿐이지만.
저멀리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어디로 인도할지는 모르지만, 빛인 까닭에.
/백수린, 꽃 피는 밤이 오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역사라고 해서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용기를 갖고 맞선다면
그런 역사는 결코 다시 오지 않는다.
/대니얼 고틀립, 샘에게 보내는 편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들 지지 마시길.
비에도 지지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않는 튼튼한 몸으로 사시길.
다른 모든 일에는 영악해지더라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들 앞에서는 한 없이 순진해지시길.
지난 일 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결국 우리는 여전히 우리 라는 것.
나는 변해서 다시 내가 된다는 것.
비에도 지지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자는 말은
결국 그런 뜻이라는 것.
우리는 변하고 변해서 끝내 다시 우리가 되리라 하는 것.
12월 31일 밤,
차가운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선 겨울나무가
새해 아침 온전한 겨울 나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다들 힘내세요.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2024.12
방석 위로 모여라
내사랑 내곁에
첫댓글 너무 좋다 다시 보이는 문장도 많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