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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서울에 도착해 아이들은 서로의 행선지로 흩어졌다. 월요일에 만나기를 기약하고 은재와 성훈을 일별한 재휘와 우현은 일단 광화문에 가기위해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후아암-. 졸리다…”
도착할 때까지 우현의 어깨위에서 숙면을 취하던 재휘는 일어나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아직까지도 비몽사몽이었다. 아직 오후 네 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눈을 반쯤감고선 걸어가면서 가끔 휘청거리는 재휘는, 우현에게 신경 쓰이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하암. 근데 너 어깨는 괜찮아? 완전 오래기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리도리
“넌 좀 잤어?”
-끄덕
“그래? 오랜만에 기차 타는 거라 밖에 구경도 하고 그럴려고 했는데… 이따 내려갈 때는 밤이라서 하나도 안 보일 테구. 아쉽다”
입맛을 짭짭 다시며 아쉬워하던 재휘가 한창 지하철역에 향하던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덕분에 덩달아 우현도 멈춰 섰다. 재휘를 돌아보자 반쯤 감겨있던 재휘의 눈이 이제는 반짝반짝하게 크게 뜨여있는 것이 보인다.
“우현아. 우리 저거 먹자!”
“……?”
갑자기 먹을 것 타령하는 재휘에 의아한 우현이 고개를 돌리자 편의점 안에 놓인 호빵기가 눈에 들어온다. 날씨는 꽤 쌀쌀해졌지만 아직 10월인데 벌써 호빵이 나오다니 조금 의외였지만 냉큼 편의점으로 들어가 버리는 재휘 때문에 우현은 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재휘는 호빵기 앞에 서서 요리조리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러더니 따라 들어온 우현에게 이리오라고 손짓한다.
“어느 거 먹을까?”
우현도 안쪽을 가만히 보다가 한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단팥? 무난한 거 먹네~ 난 뭐먹지? 야채랑 피자랑 초콜릿도 있어…”
정말 고민인 듯 재휘가 울상이다. 그러자 우현이 결국 핸드폰을 꺼내든다.
[하나씩 다 사서 나눠먹으면 되잖아]
“어?! 정말? 그래도 돼? 아까 떡볶이랑 잔뜩 먹어서 네가 싫어할 줄 알고…”
우현의 말에 재휘가 눈에 띄게 기뻐한다. 하지만 정말 그게 신경 쓰였는지 쉽게 손을 뻗지 못한다. 결국 우현이 호빵기를 열어 종류별로 하나씩 꺼내 옆에 놓여있던 포장종이에 싸서 재휘에게 넘겨준다. 한번 포장지로 감싸도 뜨거운 호빵의 열기에 연신 후후- 바람을 불어대는 재휘를 두고 우현이 계산을 한다. 그리고 둘 다 양손에 호빵을 한 개씩 들고 다시 편의점 밖으로 나섰다.
“우리 전부다 반반씩 나눠먹자!”
신난 재휘가 종이로 한손에든 호빵을 꽁꽁 싸매더니 주머니에 한 개를 넣고 나머지 하나를 조심스럽게 반으로 가른다. 첫 번째 호빵은 야채호빵이었다.
“있지. 나 호빵 진짜 좋아해. 겨울 돼서 한창 호빵 1+1행사하고 그러면 집에 잔뜩 사뒀다가 끼니대신 호빵만 먹고 그런다?”
연신 입꼬리를 내리지 못하고 신나서 떠들던 재휘가 제법 기술 좋게 가른 호빵의 반을 우현에게 내민다. 하지만 우현의 양손에는 다른 호빵이 쥐어져 있어서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재휘가 반을 가른 호빵을 한손에 모아들고 우현이 들고 있는 호빵을 포장지로 꽁꽁 싸맨다. 재휘의 서슴없는 손길에 우현의 손에 재휘의 손가락이 살짝살짝 닿아온다.
포장을 완료한 재휘가 호빵을 우현의 주머니 속으로 한 개를 넣는다. 그리고 그 빈손에 자신이 나눠둔 야채호빵을 쥐어준다.
“잘 먹겠습니다~”
아까 떡볶이 먹을 때도 그저 그냥 먹을 만하네- 하며 먹던 재휘가 호빵하나에 저렇게 행복해하자 우현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피었다. 그리고 재휘가 준 호빵을 입에 물었다. 딱히 호빵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둘이 호빵 네 개를 전부 해치울 때쯤엔 광화문을 가기위해 지하철 5호선에 올라탄 뒤였다. 토요일오후라서인지 지하철은 사람들로 엄청나게 붐벼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어찌어찌 끼어서 타 자리를 잡았지만 또 금방 내려야 하기에 입구 앞에 서있다 보니 정차할 때마다 강제하차 당할 뻔하는 위기를 여러 번 겪어야만 했다. 그래도 건장한 사내놈들이라 휘청거리기만 할뿐 휩쓸려나가진 않았다.
“어우… 사람 엄청 많아”
버티기는 하지만 압사당할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지 재휘가 작게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때- 지하철의 속도가 급하게 줄어들면서, 사람들이 으어어-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균형을 잃고 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뭐하나 잡고 버틸 수도 없이 복도한가운데에 서있던 재휘는 등 뒤를 강하게 미는 힘에 균형을 잡을 새도 없이 앞에 있던 누군가의 발에 걸려 중심을 잃었다.
“아-!!!”
이대로 넘어지면 대형사고가 날 것 같은 느낌에 재휘가 무의식적으로 손에 걸리는 것을 움켜쥐었고, 동시에 누군가 재휘의 몸을 받아냈다. 눈을 꾹 감고 잡고 있는 것을 놓지 않다가 자신이 넘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챈 재휘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리고 얼굴을 들자 바로 눈앞에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 흡- 숨을 들이킨 재휘가 허둥지둥 우현의 품에서 벗어난다.
“미, 미안. 고마워. 큰일 날 뻔 했네”
-도리도리
우현에게서 떨어진 재휘가 놀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급하게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동안 지하철은 빠르게 달려, 그들이 내려야 하는 역에 도착했다. 이이상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얼굴위로 올라온 열기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았던 재휘가 후다닥 문을 나선다. 그리고 그런 재휘의 뒤를 우현이 따랐다.
지하철을 환승해 광화문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올라서자 이제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동쪽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하다.
“아…”
출구를 빠져나와 두리번거리던 재휘는 바로 뒤에 있는 세종문화예술회관을 발견하고는 입을 벌렸다. 서울이야 놀러 몇 번 와봤지만 이곳을 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광화문이 처음이었다. 커다란 세종문화예술회관을 보고 놀란 마음을 가실 새도 없이 도로 가운데 세워진 이순신장군의 동상과 세종대왕의 동상도 보인다.
“우와…! 우현아. 너 여기 와본 적 있어?”
-끄덕끄덕
“정말? 그러고 보니 원래 살던 데가 서울이었던가?”
-끄덕
“그렇구나! 우현아, 나 저기 가보면 안 돼?”
재휘가 이순신동상을 가리키며 묻는다. 어차피 공연시간이라면 한참 남았고, 아까 호빵을 잔뜩 먹은 덕에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았기 때문에 우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휘가 와아!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로 향한다.
“매번 티비나 사진에서만 보다가 직접 오니까 되게 기분 이상해. 막 촛불시위 같은 것도 많이 하잖아 여기서.”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닌 듯 재휘는 우현을 돌아보지도 않고 신나서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머리끝까지 들뜬 모습에 우현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그 뒤를 따랐다. 토요일이지만 서늘한 날씨 때문인지 중앙광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여름만 해도 시원한 분수가 나와 도심의 열기를 식혀주는 곳이지만,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별 효용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재휘는 단숨에 세종대왕상까지 달려갔다.
느긋한 걸음으로 재휘를 따라잡은 우현은 벌써 동상 밑에 꾸며진 공간까지 모두 돌아봤는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우현을 향해 손짓했다.
“우현아, 이거 봐 엄청 커!!”
크기를 재보려는지 폴짝폴짝 뛰면서 연신 머리위로 손을 뻗는다. 그래도 세종대왕님께는 닿지 않는다.
한참을 혼자 놀던 재휘가 우현이 바로 앞까지 오자 아직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한다.
“원래 이렇게 큰거야? 진짜 크다! 난 내 두 배 정도일줄 알았는데”
고개를 바짝 꺾어 올리며 세종대왕상의 머리끝을 응시하는 재휘를 보던 우현이 자기도 모르게 재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
그 촉감에 재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현을 돌아봤다. 그제서야 우현이 눈에 띄게 놀라며 손을 재빨리 내려버린다.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만 재휘가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정리하면서 ‘이번엔 이순신장군님!’ 하는 바람에 우현은 바짝 긴장하던 몸을 풀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재휘의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음악회는 경건하고 잔잔한 분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마쳐졌고, 재휘는 아무래도 피아노를 하는 우현에게 이런저런 배경지식을 물어보며 만족스러운 관람을 마쳤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잦아들고 웅성거리는 홀을 빠져나온 둘은, 예상보다 길어진 공연 때문에 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달려야만 했다. 가을 밤바람이 차갑게 볼을 때렸지만, 둘은 그것도 잊은 채로 신나게 달려 간신히 막차에 올라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간이었지만, 퍽이나 만족스러운 하루였다며 둘 모두 생각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속도만큼이나 시간은 하릴없이 지나갔다. 수능이 코앞으로 닥친 고3들 때문에 학교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었다. 관계가 없는 1,2학년들도 2학년들은 이제 자신들의 차례라는 부담감에, 그리고 그런 선배들 때문에 덩달아 경직된1학년들 때문에 학교분위기는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오죽하면 선생들이 나서서 쉬엄쉬엄하라고 할까. 덕분에 1학년들은 중간고사를 끝낸 지 1달도 되지 않았음에도 본의 아닌 기말고사공부를 일찌감치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스트레스지수는 매일 최고치를 갱신하며 하늘을 찔렀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희생양을 찾기 위해 매의 눈이 되어 주변을 살폈다.
-탕탕!
쉬는 시간 치고는 꽤나 고요한 분위기 속에 난데없이 큰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교탁. 재휘가 교탁 앞에 서서 출석부를 내리치고 있었다.
“조용히 해봐”
전과 같지 않은 재휘의 분위기에 곧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재휘가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너네 소지품검사하면 찔리는 사람 몇 명 있지?”
웅성거리진 않았지만 삽시간에 교실이 울렁였다. 개중엔 눈에 띄게 경직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거 까진 내가 터치할 생각이 없었지만, 피려면 좀 안 들키게 피던가… 화장실에서 꽁초가 발견됐어.”
“근데 왜 그게 우리 반이야?”
“우리 반이라는 게 아니고, 덕분에 우리 반도 가방을 탈탈 털어야 한다는 거지.”
“네가 하는 거야?”
“아니. 학생주임이 할 거야. 들리는 걸로는 랜덤으로 검사 할 반 고른다는데, 벌써 검사한반이 있어서 얘기를 들었어. 요즘 분위기 살벌한거 알지? 암튼. 난 얘기했다. 알아서 버리든가 해. 혹시라도 나중에 걸려서 나한테 sos쳐도 안도와주니까 알아서하고. 그리고 제발 뒤처리 잘하자”
선생들은 재휘의 전언이 있은 지 바로 한 시간 뒤 휴식시간에 1학년2반의 소지품검사를 위해 들이닥쳤다. 그럼에도 바로 처분하지 못한 몇몇이 걸려들어 학생부로 질질 끌려가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분위기는 더 최악으로 다다랐다. 선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제물을 골라가는 것만 같은 불편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담배 핀 것이 잘한 짓은 아니지만.
정규수업시간이 끝나고 특별 보충수업마저 끝나갈 때 꽤나 몰골이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돌아왔다. 평소에도 행실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딱히 반에서 행패를 부리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어울리던 애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소위 ‘노는 애들’이라는 것은 반 전체가 아는 사실이었다.
큰 상처는 없어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을 맞거나, 기합을 받았을 아이들은 꽤 지쳐보였다. 하지만 녀석들은 시달린 시간동안 반성보다는 칼을 갈았는지 눈빛이 ‘한 놈은 잡아야 겠다’라고 말하는 듯이 날이 서있었다. 본인들이 꽁초를 방치한 게 아니라서 억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오갈 데 없는 분노의 화살이 재휘에게로 돌아간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유재휘”
딱히 시험기간도 아닌 터라 보충이 끝났기 때문에 짐을 싸던 재휘가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우현도 멈칫했다.
“무슨 일이야?”
건들거리는 불량스러운 모습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여전히 책가방을 꾸리는 재휘를 보며 빈정이 상했는지 재휘의 손에서 가방을 채간다.
“뭐야?”
“너야말로 뭐냐?”
“뭐?”
시작도 끝도 뭣도 없는 말에 황당한 재휘가 되묻자 가방을 가져간 놈 외에 다른 놈이 재휘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너 일부러 우리 엿 먹일려고 그런 거냐?”
“뭔 개소리야 그건 또?”
“학주가 그러던데? 니가 우리 반 좀 해달라고 했다고”
재휘의 표정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걸 본 놈들이 옳타구나하고 달려든다.
“그렇게 위해주는 척 하면서, 위선 떨더니 우리 끌려 나가는 거 보고 통쾌 했겠다?”
“난 분명히 말했잖아. 확실히 알아서 처리하라고”
“난 그다음시간에 싹 다 피워서 없애려고 했거든. 근데 다~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들이닥치니 걸릴 수밖에 더 있나?”
“지금 그래서 니들이 억울하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재휘가 쏘아붙이자 살짝 당황하는 듯 하더니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진짜 이게 봐줬더니!”
놈의 주먹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팔을 올린 재휘는 예상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자 팔을 치우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놈의 주먹을 받아낸 우현이 보였다.
“뭐야. 이 벙어리자식은”
“말이 심해!”
“맞잖아. 말 못하면 벙어리새끼지”
자신의 반에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재휘는 저 독 같은 말을 듣고 있는 우현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 와중에도 우현은 잡은 주먹을 놓아주지 않고 있어서 놈이 각종 욕을 뱉으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야. 안 놔? 놓으라고!”
피아노를 쳐서인지, 다른 무술을 배운 건지 보기와 달리 악력이 강한 우현이 그 말에 털어내듯 손을 놓자 놈이 휘청한다. 그게 더 자존심이 상했던지 씨발- 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우현아, 괜찮아?”
재휘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우현은 놈을 쏘아보기만 했다. 그런 우현의 눈빛을 받던 놈이 제법 날카롭게 재휘와 우현을 훑어본다. 그러더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야. 너네 사귀냐?”
“?!”
안 그래도 그들의 다툼에 집중되어 있던 것 때문에 조용했던 사위에 더더욱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
“야. 그렇지 않냐? 이 새끼 둘이 한두 번 붙어 다녀? 그리고 봐. 하는 꼬라지가 지 애인 지켜주겠다고 하는 거랑 똑같잖아. 벙어리주제에”
재휘는 정말 머리끝까지 열이 받는다는 것을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것 같았다. 분노로 꽉 쥐어진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그에 반해 머릿속은 차갑고 내뱉은 말 역시도 차분했다.
“그만해”
“응? 뭘? 뭘 그만해? 너네 호모라고 그만하라고? 왜? 사실이잖아?”
“그만하라고 했어”
“와, 우리 반장님이 화나셨나보네?”
그 순간 재휘가 우현을 밀치고 튀어나가 놈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보기엔 이래도 체력을 키우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왔던 재휘이기에 꼴사나워보이지는 않았다. 비슷한 키의 놈을 멱살잡이로 들어 올린 재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지껄여봐. 그러면 네가 입만 산 양아치새끼라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도록 해주지”
“이… 이거 안 놔?!”
온화하게만 보던 반장의 모습에 당황했는지 놈이 허부적댄다.
“니가 잘못해서 처벌받은 거 가지고 엄한데서 화풀이하려고 들지 마. 니가 보기에 약해보이면 다 니 밥으로 보이냐? 애들이 다 너보다 쌈질 같은 거 못해서 조용히 있는 줄 알아? 그러고 다니면 세 보이는 줄 아냐? 아직 중학생이냐?”
재휘의 격한 행동에 다른 놈이 재휘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을 우현이 가로막았다.
“그리고 함부로 입 놀리는 거 아니다. 원한다면 너네 가정사부터 니 과거까지 이 자리에서 줄줄이 읊어줄 수도 있어. 알아?”
“…!”
“정신 차리고 공부하러 우리학교 왔으면 공부나 해. 엄한 애들 잡으면서 양아치 짓 하지 말고.”
놈의 멱살을 탁하고 밀쳐낸 재휘는 다른 놈의 손에 있던 가방을 낚아채고 한쪽어깨에 맸다. 그리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 뒤를 우현과 은재, 성훈이 따르고 곧 아이들이 하교를 했다. 그때까지도 놈들은 자리에서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야. 간만에 유재휘 본색을 봤네”
“본색은 무슨”
“너 같은 타입이 진짜 무서운 거야. 평소엔 얌전하다가 퓨즈가 나가면-”
“얼씨구. 난 그냥 그런 놈들 못 봐주는 것뿐이야. 게다가…”
재휘의 시선이 슬쩍 우현을 향했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덕분에 둘의 대화를 들으며 걷고 있던 우현과 눈이 딱 마주쳤다.
“말을 뇌에 안거치고 뱉는 애들이 제일 싫어”
“큭큭. 근데 아까 그 얘긴 뭐냐. 가정사?”
“아. 뭐. 우리 반에 대한 건 대강 다 알고 있어”
“왜?”
“학생부 내가 정리했거든”
“와. 담임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일을 학생한테 맡겨?”
“내 신뢰도가 이정도인거지”
실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들과 헤어진 재휘는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도 아까의 흥분이 가시지를 않아서 이 상태로 집에 갈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거꾸로 걸어가는데 익숙한 인영이 집근처 놀이터에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 성우현?”
놀이터 벤치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이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어둠속에서 까만 눈동자가 반짝- 빛난다. 재휘는 분명 30분도 더 전에 헤어진 친구가 왜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이곳에 있는지는 차지고, 꽤나 반가운 느낌에 웃으며 다가갔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여기 너네 집에서 멀지 않아?”
우현은 다가와 벤치옆자리에 주저앉으며 질문하는 재휘를 그저 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현의 무응답에 익숙한 재휘는 가방을 한쪽에 놓고 고개를 젖혀 별 하나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으음… 아까 일 미안해”
“…?”
한참을 가만히 있던 재휘가 꺼낸 말이 쉽사리 이해가지 않는다는 듯 우현이 돌아보자 으쌰- 하며 몸을 일으킨 재휘가 우현을 보며 말했다.
“사실 그 자식들 말이 맞거든. 꽁초발견 된 건 맞는데, 그것보다 그 자식들이 요즘 자꾸 담배냄새 풍기면서 교실에 들어오잖아. 완전히 대놓고. 지난학기에는 그래도 지들도 죄의식인지 찔리는지 암튼간 조용히 있었는데. 최근 들어 빈도수도 늘어난 거 같길래, 일부러 학주한테 찔렀거든. 그리고 애들한테 알려준 거야. 한번 그렇게 해줘야 긴장하면서 더 숨어 지내거든”
우현은 의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계략(?)이 숨어있을 줄이야.
“물론 걔네가 내가 말한 다음 바로 처분했다면 안 걸렸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검사를 했다는 거 자체로 걔네는 주눅이 들게 되니까. 이래저래 다른 친구들한텐 이익이 되거든. 근데 오자마자 화풀이할 줄은 몰랐네”
킥킥하고 웃은 재휘가 굉장히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게다가, 분명 그냥 화풀이였을 테지만 소 뒷걸음으로 쥐 잡는다고. 어떻게 범인을 딱 지목했는지. 사실 속으로 뜨끔했어”
눈 꼬리를 휘며 개구진 표정을 짓는 재휘를 보며 우현도 어쩔 수 없이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녀석은 날이 갈수록 점점더 의외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마저도 매력적이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너에게는 조금 미안해”
“…?”
“나만 욕먹었으면 상관없는데… 나 때문에 네가…”
우현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듣게 한 것이 미안했는지 재휘가 고개를 푹 숙이고 어렵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사실 우현이 여기까지 와서 헤매고 있었던 것도 그것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당장 해줄 수 있는 반응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근데, 애들 눈에도 확실히 우리가 많이 친해 보이나 봐. 그치?”
아마도 ‘둘이사귀냐’라고 했던 말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우현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 젓지도 못한 채 그저 미묘한 표정으로 재휘를 볼뿐이었다.
“하하. 아냐. 그런 얼굴 하지 마. 그렇다고 너랑 멀리 지낼 생각은 없어.”
재휘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가방을 들었다. 그리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더니 엄마가 기다리겠다며 우현에게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우현은 복잡하게 응시했다.
*제가 처음 광화문에 갔을때의 심정이 재휘의 마음과 비슷했을까요?
정말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남들이야 굉장히 유치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 초등학생때부터 10년이 더지난 지금까지 이순신장군님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십니다.
(요즘엔 기업인들이 많이 꼽히더군요. 존경하는 인물로)
그래서인지 그때의 감동은 이루말할수 없었죠.
이장군님의 매력이야말로 하나하나 알면 알수록 정말 헤어나올수가 없습니다ㅋㅋ
*슬슬 또한번의 위기가 찾아오려고하는 우현재휘커플입니다.
교묘하게 우현이를 조련중인 재휘................
*읽어주신분들, 댓글달아주신분들, 추천해주신분들 모두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첫댓글 재휘가 선수인가요?ㅋㅋㅋㅋ 그건아닌거같은데~~ 재휘 은근 멋져요!!! 우현과재휘 점점 미궁속으로 빠짐안되요~ 어케 극복할련지 궁금해요
-선수?? 바람둥이를 지칭하는 그 선수? 아니면 뭐죠? 재휘는 연애바보인데 ㅋㅋㅋㅋ 우현이랑 재휘가 언제쯤 행복해질까요 ...
이번편은 재휘 깜찍발랄한 모습들이ㅎ 우현이 남자답네요ㅎ
-깜찍발랄하면서도 제법 남자다움을 보여줬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지키겠다!! 라는 우현의 의지표현일까요? 제법 주먹질도 잘한답니다 ㅋㅋ
얌전하던 재휘가....... 그래도 멋집니다..ㅋㅋ
잘 보고 갑니다..ㅎㅎ 다음 편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속에 감춰두고있었던 강함이죠. 웬만해선 드러내지 않는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재휘도 멋지고 우현이도 멋지고 ....ㅋㅋ.
저 양아치들이 어찌 알았을까요 학생 주임이 정말 말해주지는 않았을 텐대..... ㅋㅋ 잘봤어요
-말그대로 소뒷걸음질로 쥐잡은거죠. 그냥 재휘가 맘에 안드니까 던져본건데 마침 재휘가 던진 떡밥이 맞았을뿐 ㅋㅋ 재밌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건 지적질은 아니고요 저기 지하철에서 내릴때 그리고 그런 우현이 재휘의 뒤를 따랐다 라는 부분 그리고 그런 재휘의 뒤를 우현이 따랐다고 해야 돼지 않을까요??
-와우 감사합니다. 전혀몰랐네요. 이런 지적은 환영이에요! 수정했습니다 ^^
재휘귀엽고아주멋지넼ㅋㅋ
-양파같은 매력을 가진 녀석이랍니다.... 그래서 우현이가 더 허우적대는걸지도 모르죠 ㅋㅋ
재밌군요~ㅎㅎ
-감사합니다 ^^ 다음편도 재밌게봐주세요~
재휘 이놈 아주 지능적으로 지반을 휘두르는 녀석이네요. 거기다 깡다구도 있고...
우현이가 재휘를 위해 주먹을 잡아주는 모습도 멋지고, 재휘가 우현을 위해 멱살잡이 하는 모습도 멋있고...완전 반할 판이예요.
저는 광화문에 갔을때 그 분수 옆을 지나는데 소독약 냄새(락스냄새???)때문에 어찌나 눈이 맵던지...다시 안갈려구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하고 있을게요.
-진정한 리더란 이런것이다, 이런 자기계발서를 즐기는 녀석입니다 재휘는. 뭐 그것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났을지는 모르지만 노력하는 놈이죠.
광화문에 소독약냄새라니.... 한창 소독했을때 가셨나보네요 ㅜㅜ 이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흐음...우현은 과연 어떤 일 때문에???
-글에 한줄정도나와있지만.... 아무래도 친구들의 막말이 상처가 된거겠죠? 불쌍한 우현이 ㅠㅠ
젬있게 보고가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오~점점 흥미진진해지는데요~ㅋㅋㅋㅋㅋ다음편도 얼릉주세욧~ㅎㅎㅎㅎㅎㅎㅎㅎ
-점점더 재밌어진다니 뿌듯한데요?! 곧 다음편 올라갑니다! 재밌게봐주세요^^
아..이런 양아취같은..ㅎㅎㅎ 우현이가 무너가 한방을 해줘야 할거 같은데요..저는 아직 광화문 못가봤네요//
-양아취 ㅋㅋㅋ 너 양아취니?! <- 이게 생각나네요ㅋㅋ. 재휘가 크게 한방했으니 이제 우현이 차례인건가요?? 광화문... 근처에 볼일있으시면 한번 가보세요. 크게 볼건 없지만요; 아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