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대화여고...
"야! 진짜 여자애들만 바글거린다."
"진짜 그러네."
"이게 다 김환호 그 자식 보려고 모여든 기집애들이잖아. 그러고
보면 윤다빈 정말 대단해!"
난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었다.
"역시 왔구나!"
"유진아. 초대해줘서 고마워."
"고맙긴! 너 여기 온 거 환호도 알아?"
"아니."
"그래? 그럼 재밌게 놀다 가."
"응."
유진이는 알지 못할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쟤 진짜 밥맛이야."
민아는 유진이가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노려봤다.
그때 갑자기 여자애들이 여기 저기서 소리를 질렀다.
"뭐야?"
"글쎄..."
"어? 저거 김환호 아니야?"
"어디? 진짜 환호다."
"그렇게 좋냐?"
"응."
여학생들은 환호네 패거리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했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환호와 동욱이는 앞만 보고 빨리 빨리 걸어가고 있었고,
준이는 계속 싱글거리며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줬다.
오늘따라 환호가 더 멋있어 보이네.
"야! 빨리 와. 앞자리에서 봐야지."
민아는 날 끌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앞자리로 갔다.
"야. 나 환호한테 말 안하고 왔단 말야."
"뭐 어때?"
그냥 뒤에서 살짝 보고 가려고 했는데 민아 덕에 맨 앞자리로 왔다.
잠시 후 공연이 시작되었고, 첫 곡은 작년에 수련회에서 불렀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였다.
"야! 침 좀 닦아라."
"어?"
"정신 좀 차리라고. 그렇게 좋아?"
난 대답 대신 민아를 보며 살짝 웃었다.
내가 다시 무대로 고개를 돌렸을 때 환호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난 순간 당황해서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야! 환호가 너 쳐다본다."
"알아."
"계속 너만 보고 있는데?"
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다시 환호를 쳐다봤고, 역시나
환호랑 눈이 마주쳤다.
환호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윙크를 했다.
난 잠시 멍한 표정으로 환호를 바라보다가 살짝 웃었다.
"뭐야? 저 자식! 느끼해 죽겠네."
"뭐가 느끼해? 멋있기만 한데."
"야! 윤다빈. 떠들지 말고 잘 들어라!"
그때 갑자기 마이크로 울려 퍼지는 소리!!!
환호였다.
환호의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술렁이기 시작했고, 난 고개를 푹
숙였다.
"야! 윤다빈이 누구야?"
"몰라."
"아이씨. 쟤가 젤 멋있는데 여자친구 있는 거 아니야?"
"어떻게 생겼을지 진짜 궁금하다. 무지 이쁜 애겠지?"
이쁜 애가 아니라서 미안하네요!
그나저나 환호 쟨 어쩌자고 저런 소릴 하는 거야?
"윤다빈!"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주변에 있던 애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바로 유진이였다.
"공연 끝나고 무대 뒤로 와!"
"어?"
"어차피 환호랑 같이 갈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되는데."
"뭐야? 쟤야? 열라 못생겼는데?"
"진짜! 실망이야."
"김환호 쟤 눈 무지 낮다."
"그러게? 차라리 한유진이 훨씬 예쁘다."
"다들 왜 저러는지 몰라. 니가 이해해. 지들이 못 가지니까
질투하는 거야."
"야! 할 말 다 했으면 그만 꺼져라."
"민아야."
"알았어. 그만 갈게. 그럼 끝나고 무대 뒤로 와."
"그래."
유진이의 저 무서운 표정!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다.
.
.
.
.
.
.
공연이 끝났다.
"야! 무대 뒤로 가자."
"그냥 가자."
"왜? 환호도 너 온 거 아는데 집에 갈 때 같이 가."
"됐어."
"안돼. 빨리 따라와. 그 여우같은 기집애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민아야!"
민아의 무지막지한 힘을 당해내지 못한 채 결국 무대 뒤로
질질 끌려갔다.
먼저 무대 뒤로 올라간 민아!
민아의 큰 눈이 더 커졌다.
"왜 그래? 민아야!"
민아는 내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계속 한곳만을 응시하고 있었고,
난 얼른 민아의 시선을 따라갔다.
이게 뭐야?
내가 뭘 잘못 본걸 거야.
왜 환호가 유진이랑 키스를 하고 있는 거야?
왜 하필 유진이야?
"야! 김환호.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민아의 말에 환호와 유진이는 키스를 멈추고 나와 민아를 발견했고,
환호는 얼른 일어나 나에게 왔다.
"윤다빈!"
"나 먼저 갈게."
난 얼른 무대 뒤에서 내려와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내가 여기 와 있는 걸 알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난 누군가에게 팔을 붙잡혔다.
**************************************************************
-37-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난 누군가에게 팔을 붙잡혔다.
"야! 그냥 그렇게 가면 어떡해?"
"방해해서 미안해."
"윤다빈!"
"이 손 놔줘!"
"니 맘대로 상상하지마! 오해하지 말라고."
"오해?"
"그래. 조금 전에 니가 본 건. 아이씨!!! 그러니까 그건 갑자기
걔가 덮친 거야. 말릴 틈도 없었다고."
"............"
"그러니까 별일 아니야.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라고."
"............"
"아이씨! 질질 짜지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봐."
"계속 눈물이 나오는데 어떻게 해?"
환호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날 꼭 끌어안았다.
"그만 울어. 니가 나때문에 우는 거 싫어!"
"미안해."
"니가 왜 미안해?"
환호는 잠시 날 쳐다보다가 손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화 풀렸어?"
"화 안 났어."
"뻥치지마! 조금 전까지 화냈으면서! 야! 나 무대에서 진짜
멋있었지?"
"몰라."
환호는 준이에게 전화해 뒷정리를 맡기고 날 집까지 바래다 줬다.
"윤다빈!"
"왜?"
"나 요즘 이상해!"
"응?"
"아무래도 여기가 고장난 것 같아!"
환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 아픈 거야?"
"그런가봐!"
"병원 가봤어? 큰병은 아니지?"
"또 울려고 그런다!"
".............."
갑자기 날 끌어당겨 안는 환호!!
"요즘에 너 때문에 내 머리가 제대로 말을 안 들어!"
"뭐?"
"모든게 예전 같지 않아."
"뭐야? 그런 얘기였어? 그럼 어디 아픈 거 아니지? 난 또......"
"이 바보야! 난 심각하단 말이야."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자꾸 니 생각만 나서 다른 걸 생각할 수가 없다고!"
"화... 환호야."
"이런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죽겠어! 여자애 하나 때문에, 그것도
이런 꼬맹이 때문에......"
"한심할 건 또 뭐야? 그건 당연한 거잖아."
"그게 뭐가 당연해?"
"나도 맨날 니 생각만 해. 그리고 그건 내가 널 아주 많이
좋아하니까 당연한 거고."
"난 아직 너 안 좋아한단 말이야!"
"뭐?"
"첨부터 얘기했잖아. 널 좋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아직
아니라고."
"그렇구나."
난 환호의 그 말 한마디에 나 혼자 너무 앞서가고 있었던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제발 그런 표정 좀 하지마!"
"미안해. 나도 그게... 그게 내 맘대로 안되네. 정말 바보 같아.
그치? 오늘 바래다 줘서 고마워. 늦었는데 그만 가. 나 들어갈게."
환호가 또 어떤 말을 할까 두려워 난 쉼 없이 혼자 할 말을 다하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윤다빈!
정말 바보 같아!
다 알고 있던 일인데 왜 환호한테 화를 낸 거야?
환호는 지금 날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건데......
이게 뭐야?
날 더 좋아하게 만들진 못할망정 정 떨어지게 미운 짓만 하고
있잖아!
그래.
지금 사과해야돼!
안 그럼... 안 그럼 날 떠날지도 몰라.
난 환호를 붙잡기 위해서 다시 뛰어 나갔지만 이미 환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무작정 환호네 아지트로 찾아갔다.
아지트...
난 지금 아지트 앞에서 한 시간째 서있다.
늦은 밤이라 꽤 쌀쌀했지만 오늘 꼭 환호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윤다빈? 어. 맞네!"
"동욱아."
"뭐야? 너 환호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어. 아까 헤어졌어."
"근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얼마나 있었던 거야?"
"조금 전에 왔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동욱이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들어와."
"응. 고마워."
"뭐야? 무슨 일 있었어?"
"..........."
"앉아있어. 환호한테 전화해 볼게."
"고마워."
동욱이는 짐을 내려놓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어디야? 알았어. 지금 그쪽으로 갈게. 다빈아! 나가자. 환호
지금 이 근처에 있대."
"그래."
술집...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왔냐?"
"얘들은 뭐야?"
"보면 몰라? 앉아!"
환호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이미 취해있었고, 환호의 옆엔
진한 화장에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괜히 온 것 같다. 나 먼저 갈게."
"다빈아. 여기까지 와서 가긴 어딜 가? 야! 환호 애인 왔으니까
니들 빨리 꺼져."
웬만해선 화를 잘 안내는 동욱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환호 옆에
착 달아 붙어 있던 여자들을 쫓아버렸다.
그리고 환호는 차가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야! 다빈이 왔어."
"니가 여긴 왜 왔냐?"
"화... 환호야."
"보기 싫으니까 꺼져!"
"이 자식 많이 취했네. 다빈아. 이쪽으로 앉아."
오히려 동욱이가 미안해했다.
"야! 이동욱! 쟤 이제 내꺼 아니니까 니가 가져도 돼."
***********************************************************
-38-
"야! 이동욱! 쟤 이제 내꺼 아니니까 니가 가져도 돼."
"뭐? 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술을 얼마나 쳐마신거야?"
"나 안 취했어! 맥주 3병밖에 안 마셨는데 왜 취해?"
"미안해. 동욱아. 나 먼저 갈게."
"야! 지금이 몇 신데 혼자 간다는 거야? 내가 바래다줄게."
"아니야. 그냥 혼자 갈게."
난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그 자리에서 뛰쳐나왔다.
"윤다빈! 기다려. 바래다줄게."
"환호한테 가봐."
"왜 넌 이런 상황에서도 병신같이 그 자식 걱정만 하는 거야?"
"내가 잘못했거든. 내가 환호를 화나게 했어."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동욱이 앞에서 울어버렸다.
"야! 울지마. 소리질러서 미안해."
"나 먼저 갈게. 오늘 정말 고마웠어."
끝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날 놔주지 않는 동욱이를 뒤로하고
난 집으로 향했다.
.
.
.
.
.
.
.
"어? 이게 누구야?"
"누... 누구세요?"
"야! 김환호 깔 맞지?"
"맞네! 근데 이 시간에 이런데서 뭐해?"
느끼하게 생긴 녀석이 내 손목을 거칠게 잡더니 얼굴을 들이밀었다.
"왜 이러세요?"
"야! 김환호 눈 많이 낮아졌네! 이런 말라깽이를 깔이라고 달고
다니고."
"보기엔 저래도 꽤 실속 있을지 또 아냐?"
"그런가?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느끼한 녀석이 날 끌어안더니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싫어. 이거 놔. 싫단 말야."
"그 손 당장 치워라!"
"넌 뭐야? 다치기 싫으면 가던 길이나 계속 가."
"세... 세은아."
"그 녀석 빨리 놔."
"이게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나? 야! 저 자식 빨리 쫓아버려."
"우리한테 맡겨 두고 계속 재미나 봐!"
느끼한 녀석은 씩 웃으며 날 어두운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니들 오늘 다 죽었어!"
세은이는 한 놈씩 차례로 때려눕히고, 나에게로 뛰어왔다.
"이거 놔."
"좀 조용히 해. 집중이 안되잖아!"
그 느끼한 녀석은 씩 한번 웃고는 내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하지마! 싫단 말야."
그때 세은이가 왔고, 내 위에 있던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넌 오늘 내 손에 죽었어."
세은이는 그 녀석을 기절할 때까지 패줬고, 곧 숨을 헐떡이며
내 앞으로 왔다.
난 서둘러 풀러진 단추들을 채우기 시작했지만 손이 심하게 떨려서
잘 채워지지가 않았다.
"윤다빈!"
난 얼른 손으로 셔츠를 꼭 잡았고 세은이를 볼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어."
"..........."
세은이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치우고 풀러진 단추들을 채워줬다.
"이제 괜찮아!"
"............"
"나 좀 봐!"
세은이는 내 턱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췄다.
"넌 오늘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무서운 꿈을 꾼 거야! 알겠어?"
"........."
"대답해!"
끄덕끄덕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내가 너 지켜줄 거야!"
세은이는 떨고 있는 날 보고는 얼른 겉옷을 벗어서 나에게 걸쳐줬다.
그렇게 세은이는 내가 진정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내 옆을 지켜줬다.
안정이 되고서야 세은이의 하얀 얼굴에서 흐르고 있는 붉은 피가
눈에 들어왔다.
"세은아!"
"왜 그래?"
"얼굴에 피..."
내 말에 세은이는 눈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아내더니 씩 웃었다.
"별거 아니야! 한 개도 안 아프니까 걱정하지마."
세은이의 예쁜 입술이 터져 입가에 피가 났고, 눈 윗부분도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많이 아플 텐데......
그런데도 세은이는 웃기만 했다.
"계속 피나. 병원 가자!"
"괜찮다니까! 그리고 나... 병원 싫어."
"흉터생기면 어떡해?"
"얼굴이 잘생겨서 흉터정도는 커버할 수 있어!"
"안돼! 빨리 일어나."
"진짜 병원은 가기 싫어."
"그래도......"
"병원 가면 우리 엄마 생각나! 맨날 병원에서 살다시피 한
엄마 생각이 난단 말야!"
"미안해."
"뭐가 또 미안해?"
"그럼 약국 가자."
"니가 약 발라 줄 거지?"
"아... 알았어."
놀이터...
우린 낡은 벤치로 가서 앉았다.
"덧나지 않게 상처 아물 때까지 매일 매일 소독하고 약 발라
줘야돼! 알았지?"
"몰라!"
"뭘 몰라? 지금 내가 하는 거 잘 봤다가 매일 그렇게 하면 돼."
"잘 모르겠으니까 맨날 니가 해줘!"
"바보!"
"아!"
소독약이 상처에 닿자 세은이는 인상을 썼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
"한 개도 안 아파!"
"미안해."
"야! 울지마. 진짜 안 아파"
세은아! 정말 미안해.
세은이가 나때문에 다쳤는데 그런데 난......
이런 순간에도 왜 환호생각이 나는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줄이야......
***************************************************************
-39-
세은아! 정말 미안해.
세은이가 나때문에 다쳤는데 그런데 난......
이런 순간에도 왜 환호생각이 나는 거야?
내가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줄이야......
"야!"
"어? 왜?"
"내일도, 모레도, 또 그 다음날도 니가 약 발라 줄 거지?"
"그래."
"약속했다. 너!"
"알았어."
"그럼 맨날 점심시간에 나한테 와! 알았지?"
"밥은 언제 먹고?"
"돼지! 넌 나 아픈 거보다 밥이 더 중요하냐?"
"그... 그런 말이 어딨어?"
"늦었다. 그만 가자!"
"세은아."
"왜?"
"너...... 아무 것도 아니야."
"뭐야? 싱겁긴!"
그러고 보니 세은이는 엄마가 없어서 도시락도 제대로
못 싸 갖고 다니겠구나!
"무슨 생각해?"
"어?"
"너 내일 점심시간에 꼭 와라!"
"알았다니까!"
"근데 내가 몇 반인지는 알아?"
"아니."
"바보! 1학년 교실 다 돌아다니려고 그랬냐? 나 3반이야!"
"알았어."
점심시간...
환호는 오늘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다빈아! 어디가?"
"어? 미안해. 오늘은 좀 약속이 있어서 같이 점심 못 먹어."
"환호한테 가보게?"
"아... 아니."
"신경쓰지말고 가봐. 난 지훈이랑 먹을게."
"응. 미안!"
난 도시락이랑 약을 챙겨들고 얼른 1학년 3반으로 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벌써 밥을 먹고 있었다.
세은이는 맨 뒷자리에 앉아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다가
날 보고는 씩 웃었다.
얼굴엔 반창고를 잔뜩 붙여놓고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거린다.
"윤다빈! 일루와."
쟤가 미쳤나?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면 어떻게 해?
이미 난 아이들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고 있다.
난 세은이에게 나오라고 얼른 손짓을 했다.
"왜 안 들어오고 그래?"
"내가 어떻게 들어가?"
"뭐 어때?"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당연하지!"
"짠~~~!!!"
난 새벽부터 일어나서 싼 도시락을 세은이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뭐야?"
"보면 몰라? 도시락이지."
"내꺼야?"
"응."
갑자기 우는 시늉을 하는 세은이!
"야! 왜 그래?"
"너 때문에 감동 먹었어!"
"뭐야?"
"가자!"
"어디 가는데?"
세은이는 내 손을 잡고 옥상으로 데리고 갔다.
"자! 여기 앉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깔아주는 세은이!
세은이에게 이런 면도 있었구나!
"고마워. 상처부터 소독할래?"
"아니. 배고파! 밥 줘!"
"응."
난 새벽부터 일어나 난리법석을 떨며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놨고,
세은이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도시락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왜... 왜 그래? 야! 보기엔 이래도 맛은......"
"고맙다!"
"응?"
"나한테 도시락 싸준 사람은 니가 처음이야. 엄만 내가 어릴 때부터
아프셔서 항상 병원에 계셨거든. 그래서 난 도시락 같은 거 싸가
본적이 한번도 없어!"
"그랬구나."
"아! 배고프다. 빨리 먹자!"
세은이는 촉촉히 젖은 내 눈을 보더니 얼른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니가 싼 거 맞아?"
"응. 맛있어?"
"어. 맛있어!"
"정말? 그럼 내가 매일 싸다줄까?"
"싫어!"
"왜? 맛없구나! 그치?"
"아니야. 맛있어!"
"근데 왜 그래?"
"이렇게 도시락 싸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잖아!"
"나 원래 아침 잠 없어!"
"뻥치지마!"
"......."
"그리고 도시락 두 개씩 들고 다니면 무겁잖아! 가뜩이나 작은애가
무거운 거 들고 다니면 키 더 안 큰다!"
"그래도 싸오고 싶은데..."
"너 나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는 구나?"
"아... 아니야."
"근데 왜 얼굴까지 붉히고 그래?"
"내가 언제? 빨리 밥이나 먹어!"
계속 실실거리며 날 쳐다보고 있는 세은이!
난 모른척하고 밥만 꾸역꾸역 먹었다.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먹어!"
"켈룩... 켈룩..."
"야! 괜찮아?"
세은이는 계속 키득거리며 내 등을 두드려줬다.
"너 진짜 재밌다."
"뭐?"
"너 하는 짓 보고 있으면 웃겨 죽겠어! 완전 코미디야."
정말 이상해!
권세은이라는 이 애가 환호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해준다.
하지만 환호에게 들을 때와는 다른 느낌!
"놀려서 삐졌어? 왜 아무 말도 안해?"
"어?"
"뭐야? 진짜 삐진 거야?"
"아니야. 점심 시간 다 끝나간다. 빨리 상처 소독하고 내려가자!"
"우리 그냥 1시간 땡땡이 치면 안돼?"
"응! 안돼!"
"솔직히 너도 수업 듣기 싫잖아!"
"어. 근데 땡땡이는 안돼. 나 머리 나빠서 한 시간 빠지면
못 따라가고 계속 헤매!"
"뭐야? 그럼 땡땡이 친 적 있다는 거잖아!"
"아파서 조퇴했었어."
"그럼 할 수 없지. 너 먼저 내려가."
"넌?"
"난 머리가 좋아서 혼자서도 공부 잘해! 부럽지?"
"그래. 머리 좋아서 참 좋겠다. 야! 반창고나 얼른 때봐!"
"알았어!"
"진짜 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 이러다 진짜 얼굴에 흉터 남으면
어떡해?"
"그럼 그땐 니가 나 책임지면 되잖아!"
"그러니까 병원 가자고!"
"싫어. 빨리 소독이나 해!"
어젠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햇빛아래에서 보니까 상처가 생각보다
심했다.
"정말 미안해."
"윤다빈! 이 상처는 너랑 상관없는 거야!"
"어떻게 상관이 없어? 나때문에......"
갑자기 세은이의 입술이 내 입을 막아버렸다.
***********************************************************
-40-
갑자기 세은이의 입술이 내 입을 막아버렸다.
난 너무 놀라 세은이를 밀쳐내려 했지만 세은이의 힘이 너무 강해서
떨어질 수 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세은이는 나에게 키스를 했고, 난 점점 숨이 찼다.
그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고, 그제서야 세은이는 날 놔줬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이걸로 됐어! 넌 이걸로 빚 갚은 거야! 그러니까 이젠
이 상처보고 미안해하지마!"
"세... 세은아..."
"빨리 내려가! 수업 시작하겠어."
".........."
"야! 약은 발라주고 가야지."
"아... 알았어."
난 얼른 세은이의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준 다음에 서둘러
옥상에서 내려왔다.
갑작스런 일이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자꾸 환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바보 같다!
환호는 다른 여자들이랑 키스 많이 했다는데......
바로 어제도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랑......
환호는 역시 나에게 미안하단 생각 안 들겠지?
5교시 내내 환호에 대한 생각들 때문에 결국 수업은 하나도
듣지 못했다.
한동안 헤매겠군!!!
난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자마자 동욱이네 교실로 달려갔다.
"야! 다빈! 니가 여긴 웬일이냐?"
역시 변함없이 오늘도 히죽거리는 준이!
"저기... 동욱이 오늘 학교 왔어?"
"당연히 왔지. 근데 니가 왜 동욱일 찾냐?"
"어... 그게......"
"다빈아."
"동욱아."
"환호 때문에 온 거지?"
"응. 오늘 학교 안 왔어."
"알아. 그 자식 지금 아지트에 자빠져 있어!"
"뭐?"
"걱정마! 술을 하도 많이 마셔서 그런 거니까."
"그... 그래?"
"그 자식 그러는 거 처음 봐!"
"어?"
"여자 때문에 그러는 거 처음 본다고. 그 자식이 아직 누굴 좋아해
본적이 없어서 서툴러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니가 이해해!"
"응. 고마워."
"넌 맨날 나한테 고맙단 말만 하더라!"
"내가 그랬나?"
"수업 끝나고 그 녀석한테 가봐!"
"그래."
아지트...
난 지금 6교시 수업을 땡땡이 친 채 환호네 아지트 앞에 서있다.
윤다빈!!!
점점 대범해지고 있구나!
난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동욱이가 준 열쇠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여기저기 술병이 널려 있었다.
그리고 환호는......
환호는 쇼파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환호에게 다가가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 술병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설마 이 많은 걸 혼자 다 마신 건 아니겠지?
환호가 깰까봐 조심조심 치웠더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난 청소를 다 하고 다시 환호 앞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환호야... 나 정말 바보 같지? 니가 ...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는데... 그걸 알면서도... 난... 니가 싫어지지가 않아. 아무리
니가 나쁜 말을 해도 밉지가 않아. 나... 지금 너무 무서워.
니가 깨어나면 또 어제처럼 그럴까봐! 정말 날 버릴까봐......"
그때 환호가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내 팔을 잡아 당겨 날
꼭 끌어안았다.
뭐야?
도대체 언제 깬 거야?
지금까지 내가 한 말 다 들었으면 어떡해?
"화... 환호야..."
"정말 너 바보 같다! 왜 나같이 나쁜 놈을 좋아하냐?"
벌써 다 들었군!
"나도 몰라."
"걱정마라! 너 절대 안 버려!"
"저... 정말이야?"
환호는 대답대신 날 더 꼭 안아줬다.
"야! 근데 너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는 거야?"
".........."
"너 땡땡이 친 거야?"
"응."
"너 많이 컸다!"
"그럼 어떡해? 동욱이한테 니 얘기 듣고 걱정돼서 수업을 들을 수 가
없었단 말야."
"넌 왜 그렇게 맨날 남 걱정만 하냐? 당장 내일 학교 가면 어떻게
할건데?"
"생각 안해봤어."
"이것 봐! 니 친구 걔 누구야?"
"민아?"
"그래. 걔랑 같이 나란히 화장실 청소하면 되겠네!"
"하면 되지. 뭐. 나 청소는 잘해!"
"자랑이다!"
"지금 내 걱정해주는 거야?"
"뭐 착각은 자유니까!"
"노... 농담 해본 거야."
"그래?"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야! 너 그 얘기 들었어?"
준이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고, 얼마나 뛰어 왔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어? 다빈이도 같이 있네. 야! 잠깐 밖으로 나와봐."
"뭔데 그래? 귀찮아! 그냥 여기서 해."
"빨리 나와!"
준이의 진지한 표정!
정말 적응 안된다.
준이가 진지하게 말하자 환호는 인상을 구기며 밖으로 나갔다.
.
.
.
.
.
.
.
준이에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잠시 후 환호가 흥분한 채 들어왔다.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는 거야?"
"너 그 자식한테 당했냐?"
"뭐?"
"어제 그 개새끼가 너 건드렸냐고?"
"화... 환호야."
난 환호의 말에 잠시 잊고 있었던 어제의 끔찍한 일들이 생각났고,
갑자기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왜 나한테 얘기 안했어?"
".........."
" xx 새끼! 오늘 내 손에 죽었어."
환호는 거칠게 욕을 하며 앞에 있던 의자를 걷어차고 밖으로 나갔다.
내 앞에서 환호가 이렇게 심한 욕을 한 건 처음이었다.
"환호야!"
난 얼른 환호의 팔을 붙잡았다.
이대로 뒀다간 진짜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놔!"
"아무 일도 없었어."
".........."
"정말이야. 누가 도와줘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래도 용서 못해!"
"이럴까봐 얘기 못했어. 니가 또 싸울까봐... 저번처럼 또
다칠까봐......"
난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하고 환호 앞에서 울어버렸고,
환호는 그런 날 잠시 바라보다가 날 꼭 안아줬다.
"병신같이 널 지키지 못했어!"
"............"
"어제 내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
"나 정말 괜찮아."
난 조심스럽게 환호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난 벌써 다 잊었어. 니가 다시 예전처럼 대해줘서... 너무 기뻐서
이미 다 잊었어. 그러니까 너도 잊어버려!"
환호는 그렇게 내 품에서 아무 말 없이 내 얘기만 듣고 있었다.
.
.
.
.
.
.
.
우린 한참을 그렇게 있었고, 환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런 일 절대로 없어! 내가 너 지킬거야!"
"고마워!"
난 환호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이 바보야!"
"내가 왜 바보야?"
"당연한 일에는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다.. 당연한 일???"
"그래! 나때문에 그렇게 된 거니까......"
환호는 말끝을 흐리며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문득 어제 그 더러운 새끼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잘 알아듣진 못했지만 환호 이름은 알아들었다.
"그 새끼들이 니가 내 여자친구인걸 알아버렸어!"
"........."
"미안하다! 너까지 끌어 들여서!"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자작/연재]
첫사랑은 이루어진다?! [ 36 ~ 40 ]
파르페틱^^
추천 0
조회 19
03.09.01 14:46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