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지금도 빠알리어를 한글이나 영어 등의 언어로 번역이 가능하고, 니까야 경문을 기준으로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도 가능한 상황이다. 예를 들어 '불교(붇다의 가르침)란 무엇인가? 100자 정도로 대답해줘'라고 하면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대답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현재 빠알리어로 된 단어 예를 들어 sati(sarati)라는 단어에 대해서 질문하면 현재 널리 알려져 있는 '알아차림/마음챙김/새김'이라는 의미로 대답해 주고 있다. 사전에도 '기억(하다)'라고 나오고 경문 전부에서 그 의미를 확인해 보아도 그럼에도 다른 답을 하고 있다. 너는 어떠니?
하여튼 지금 알려져 있는 사전적 정의, 문법,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경문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를 AI(sLLM /증류 등)으로 학습하고 수정하고 정립하여 불교 전반(단어 의미, 문법, 붇다의 가르침/경문)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도출하려고 한다. 그 결과의 프랫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여러 학자와 방문자 등의 참여가 가능한 프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는가? 또한 (한국에서는) 누구에게 의뢰하고,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고, 비용은 어느 정도 필요할까? 아니면 직접 실행하게 하는 이용 가능한 프랫폼은 있는가?
Goover-
8.2. 비용 내역
총 기간은 약 1년 반(18개월)이며, 개발 인건비 약 4억 원, 클라우드 컴퓨팅 및 저장비 약 1억 원, 데이터 획득 및 권리료 약 5천만 원 등 총 약 6억 원 정도가 예상됩니다. 다만, 공공·민간 협력 모델을 채택하면 일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9. 종합 결론
빠알리어 경전의 의미 재검토와 AI 기반 플랫폼 구축은 빠알리어 어학·경전학·AI 모델링·플랫폼 개발·정책 지원까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융합하는 복잡한 프로젝트입니다.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의 협력, 체계적인 작업 계획 수립,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질문에서 요구한 모든 세부 사항, 즉 방법론, 의뢰 대상, 일정, 비용, 플랫폼 가능성을 충실히 고려하여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불교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교의 지혜를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인공지능에 대해 관심을 가진지 2년이 지나고 있다.
그때 부터 계속되는 관심을 최근에 다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니...
ㅎ ㅠ
조언 부탁드립니다. _()_
인공지능은 수 많은 보통 인간들의 지식의 총체입니다. 지금 이 세상엔 너무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보통 사람들이 가르치려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라고합니다.
지식이 없어서 길을 찿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많은 지식들 중에서 진짜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찿지 못해서 헤메는 것입니다.
그 길을 수 많은 보통사람들의 지식의 총체인 인공지능에게서 찿으시렵니까?
아니면 그 길을 실제로 수행하여 선과 열반을 얻은 "수행을 성취한"분들께 여쭈어 물으시렵니까?
"누가 정말로 선과 열반을 경험하고 성취한 후 법문을 하고 있는가?"는 봄봄님 정도의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라면, 유튜브에서 " 선정을 얻는 법" 혹은 " 선정 수행" "초선성에 드는법"등으로 검색을 해서 나오는 법문들 중에 약 20명 정도의 다른 분들의 법문을 들어 보시고 비교해 보시면 쉽게 구별 하실 수 있으실겁니다.
"누가 그저 배워서 아는 것을 설하고있는지, 누가 진실로 스스로 체험하여 얻은것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지"
봄봄님의 수행이 순조롭기를 기원합니다.
[그 많은 지식들 중에서 진짜 부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찿지 못해서 헤메는 것입니다.]
그래서 4부 니까야를 AI로 학습시키보면 어떨까 제안하는 것입니다.
부기하자면 봄봄은 4부 니까야 등에서 sati에서 비롯된 단어를 모두 찾아 보았지만
기억이라는 의미 이외에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 속되게 표현하면 삽질을 무수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올린 참선(명상)으로 번역하는 jhāna라는 표현도 경문에서 찾을 수 있을 만큼 찾다가
마지막에 소개드린 논서에 나오는 표현도 이 과정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삽질을 잘하는 것이 AI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Dhammapala님은 경전에 의지하여 수행하십니까? 아니면 스스로 길을 찾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스승님이 계십니까?
[진실로 스스로 체험하여 얻은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분을 유투브에서 보신 적이 있습니까?
봄봄은 지금까지 어떤 분에게서, 논문에서도, 또한 본 카페에서도
sati와 초선의 심사, 혹은 자나에 대한 질문에 대해, 경문에 부합하는 설명이나 의견을 보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Dhammapala님은 보거나 들었거나 직접 경험하신 것이 있다면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는 참 좋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유튜브에서 손쉽게 지금 이 시대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님들의 법문을 들을 수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열거하는분들의 법문을 " 과연 이분들이 스스로 경험한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수행의 방법이 구체적인지, 그 수행을 따라한 사람들에게서 지속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는지, 그저 추측하는것을 이야기 하는지, 자신도 알지 못하는것을 가르치고 있는지. 진실한지, 계를 잘 지키는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는지 등"을 유심히 살피며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생생한 경험을 듣고 싶으시면- 전현수 박사님
2. 자애로운 법문은- 진경스님, 망갈라 위하라, 우 실라 반떼.
3. 깔끔한 법문을 원하시면- 담마다야다 반떼( 세나니)
상가락키타 반떼, 향천선원
4. 아비담마- 담마짝꾸( 김종수 법륜) 법사님
5. 영어가 되신다면- 파욱 사야도, 우 레와따 반떼 , 우 꼬위다 반떼, 우 꾸마라 비왐사
봄봄님께서 보시고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으로 확신이 드시거든, 훗날 많은 길을 찿는 선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직접 알고 보는 자를 예류자라고 한다.
그 전에 나오는 분들이 법수자라고 하는데
경문에 [“yassa kho, bhikkhave, ime dhammā evaṃ paññāya mattaso nijjhānaṃ khamanti,
ayaṃ vuccati — ‘dhammānusārī,]
이 문장에 나오는 ni-j-jhānaṃ khamanti라는 표현에서 jhāna라는 단어의 의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다.
다음과 같이 이해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법들이 아는 만큼
[(마음에) '받아들임'이 용인/] 납득들 되면 (그들을) 법을 따르는 자라 한다."
즉 '말귀을 알아 듣고 마음에 담아(품고 있는) 분들 -납득하신 분들을 법수자라고 한다.'라고 이해한 것입니다.
직접 알고 보면 정말 소망하는 바이지만
지금 처지에서는
최소한 붇다께서 설하신 말씀에 대해 말귀를 알아 듣고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제 기억하며 (사토) 그리고 분명히 아는 (삼빠자노).
여기서 '기억한다'고 해서 '사토'이고,
'분명히 안다'고 해서 '삼빠자노'이다.
사람에 의해 **기억(사띠)**과 **분명한 앎(삼빠잔냐)**이 언급되었다.
그중에서 **기억(사띠)**은 '기억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망각하지 않는' 작용을 하고, '보호'로 드러난다.
**분명한 앎(삼빠잔냐)**은 '미혹하지 않는'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판단하는' 작용을 하고, '분석'으로 드러난다.
85. Idāni sato ca sampajānoti
ettha saratīti sato. Sampajānātīti sampajāno.
Puggalena sati ca sampajaññañca vuttaṃ.
Tattha saraṇalakkhaṇā sati, asammussan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Asammohalakkhaṇaṃ sampajaññaṃ, tīraṇarasaṃ, pavicayapaccupaṭṭhānaṃ.
172.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기억하기 때문에 마음챙기는 자고, 알아차리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자다.
여기서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 사람에 속하는 것으로 설해졌다.
마음챙김은 기억하는 특징을 가진다. 잊어버리지 않는 역할을 한다. 보호함으로 나타난다.
알아차림은 미혹하지 않는 특징을 가진다. 조사하는 역할을 한다. 탐구함으로 나타난다.
(대상이) 그것(사띠)에 의해 기억되거나, 또는 (마음이) 스스로 기억하거나,
또는 이것이 그저 '기억하는 것' 그 자체라고 해서 **사띠(sati)**이다.
그(사띠)는 '흘려보내지 않는 (나열/유지)' 특징을 지니며,
'미혹하지 않는 (명료한 인식)' 작용을 한다.
'보호(지킴)'로 드러나며, 또는 '대상을 향하는 상태'로 드러난다.
**'견고한 인식'**이 (사띠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또는 '몸 등의 사념처'가 (사띠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또한, 대상에 견고하게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기둥처럼 (마음을) 지탱하고,
눈의 문 등을 보호하기 때문에 문지기처럼 (사띠를) 보아야 한다.
@봄봄
Saranti tāya, sayaṃ vā sarati, saraṇamattameva vā esā ti sati.
Sā apilāpana lakkhaṇā, asammoharasā,
ārakkhapaccupaṭṭhānā, visayabhimukhabhāva paccupaṭṭhānā vā,
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kāyādisatipaṭṭhāpadaṭṭhānā vā,
ārammaṇe daḷhapatiṭṭhitattā pana esikā viya cakkhudvārādirakkhaṇato dovāriko viya ca daṭṭhabbā.
(사람들이) 그것에 의해 기억들하고, 스스로 기억하고, 이것은 단지 기억일 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기억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거(/나열)하는 것이 특징이고, 잊지 않는 것이 역할이다.
보호함으로 드러나고, 대상을 대면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강한 인상(想)이 근접원인이고, 身등(신수심법)이 근접원인이다.
대상에 굳게 서 있는 것은 기둥과 같고,
눈의 門등(안이비설신의)을 보호하는 것이 문지기와 같이 보아야 한다.
@봄봄 공감합니다. 하지만 사띠sati의 대상이라는 법의 작용을 놓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문지기 억할의 sati는 무엇을 대상으로 기억sara할까요. 그것은 집법즉멸법(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든 반드시 그친다.초전법륜경s56:11 )의 문지기 특징을 기억합니다. 이게 사띠의 기능 (satiindriy)입니다. 설마 사전(디션너리)에서의 단어이나 망상을 기억한다는 말은 설마 아니겠지요...
부처님가르침의 사성제는 연기와 연기된 법에 대한 수행이쟎습니까?
...sati와 초선의 심사, 혹은 자나에 대한 질문에 대해, 경문에 부합하는 설명이나 의견을 보거나 듣지 못했습니다....
봄봄님이 이것에 대해 하신 질문이 어떤 것들입니까? 각각에 대해 어떤 의문을 갖고 계신지요?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yāvakīvañca, bhikkhave, bhikkhū paccattaññeva satiṃ upaṭṭhāpessanti —
‘ kinti an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āgaccheyyuṃ,
āgatā ca pesalā sabrahmacārī phāsuṃ vihareyyun ’ti;
vuddhiyeva, bhikkhave, bhikkhūnaṃ pāṭikaṅkhā, no parihāni.
idha, sāriputta, bhikkhu pacchābhattaṃ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
‘ na tāvāhaṃ imaṃ pallaṅkaṃ bhindissāmi yāva me nānupādāya āsavehi cittaṃ vimuccissatī ’ti.
@봄봄
satova abhikkamāmi, satova paṭikkamāmi,
yāva udakabindumhipi me dayā paccupaṭṭhitā hoti –
‘ māhaṃ khuddake pāṇe visamagate saṅghātaṃ āpādesi ’nti.
위 문장의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에서 sati란 어떤 의미인가?
[satova .... paccupaṭṭhitā]에서 sato란 또한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바른 삼매라고 하는 初禪의 禪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또한 초선에 나타나는 尋伺희락-심일경성에서 尋伺는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에 대한 질문이였습니다.
부기하자면
[so yadeva tattha honti tiṇāni vā paṇṇāni vā tāni ekajjhaṃ saṅgharitvā nisīdāmi
pallaṅkaṃ ābhujitvā ujuṃ kāyaṃ paṇidhāya parimukhaṃ <sati>ṃ upaṭṭhapetvā.
so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ṃ <jhāna>ṃ upasampajja viharāmi; ]에 언급되어 있는
<sati>와 <vitakka>, <vicāra> 그리고 <jhāna> 이 각각의 단어들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을 혹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질문해 본 것입니다.
봄봄님이 가지신 의문들을 다루고 있는 번역서가 가을쯤 출간될 예정입니다.
가끔씩 이 카페에서 언급했던 타니사로 비구의 법문입니다.
태국 숲속 전통인 담마윳에서 출가수행한 수행승으로, 지금까지 알던 청정도론이나 아비담마중심의 미얀마 불교와는 많이 다른 담마윳 전통의 안목을 접해볼 수 있습니다.
봄봄님의 의문은 당연한 것입니다.
니까야를 공부하면서 이런 의문을 갖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봐야겠지요.
미얀마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아비담마와 정청도론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마하시의 순수위빠사나와 파욱의 선정수행이 대표적으로 이 흐름에 속합니다.
주석서를 주석서로 보지 않고, 남방불교 부동의 준거라고 받아들이는 한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에 다가가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남방의 테라와다불교는 흔히 생각하듯 미얀마불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국 불교, 그중에서도 아잔 문 비구로 대표되는 담마윳이라는 존경받는 수행전통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르침을 세상에 전법하지 않고, 숲에서 아비담마나 주석서와는무관하게 부처님시대의 수행전통을 이어가고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공부하는 분들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