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소한 행복
유월 넷째 일요일은 한국 전쟁 발발 72주년이었다. 낮에 제주도부터 강수가 시작되어 우리 지역도 늦은 오후 상당량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올해는 예년보다 며칠 늦게 전국이 동시 장마권에 든다고 한다. 아내는 평소 다니는 절의 신자들과 사찰 기행이 있어 아침 일찍 행장을 꾸려 나섰다. 아내가 부재중 틈을 타 집에 머물러도 되겠으나 나는 나대로 일정에 따라 현관을 나왔다.
간밤 지기로부터 함안 가야 오일장 장터를 구경하고 소읍의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할 영화를 한 편 관람하자는 제의가 와 흔쾌히 동의했다. 엘리베이터를 나서 이웃 동 뜰의 꽃대감 꽃밭으로 나가보니 친구는 금관화 모종을 옮겨 심으면서 주변 잡초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아침에 심은 꽃모종은 오후에 내릴 비를 맞고 활착이 잘 되어 때가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싶다.
내가 퇴직 직전 근무지 거제로 오갈 때 카풀 운전자도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 산다. 그는 올봄 퇴직했는데 일요일이면 동호인들과 축구를 하려고 운동복 차림으로 뜰로 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와 함께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나는 버스 정류소에서 하루를 같이 보낼 지기 한 분과 팔용동으로 갔다. 거기서 승용차를 몰아온 지기와 셋이 합류해 서마산에서 교외로 빠져나갔다.
지기와 함께 보낼 일정이 없었더라면 강변으로 트레킹을 나서볼까 싶었는데 동행이 있어 다행이었다. 함안 군청 소재지 가야읍에는 0일과 5일에 가야장이 서는데 현지에서는 방목장이라 불렀다. 방목은 가축을 풀어 놓아 기르는 일을 이르는데 아마 철길을 따라 노점 행상이 펼쳐져 그렇게 불리는 듯했다. 나는 지난날 미산령을 넘어 산나물을 뜯어오면서 가야장을 구경한 적 있다.
오일장터는 점심나절은 되어야 분위기가 달아오르기에 그 이전 내가 한 군데 추천하는 곳에서 뜸 들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마산과 함안의 경계를 이룬 신당고개에서 운전대를 잡은 지기에게 고려동 근처 자양산으로 오르는 임도로 가자고 안내했다. 통신회사 중계소가 있는 정상부로 오르는 길섶에 수령이 제법 되는 산수유나무가 조경수로 자라 이른 봄에 노란 꽃을 피웠다.
산비탈을 오르는 차창 밖은 꽃이 저문 산수유나무에 자잘한 열매가 가득 달려 과육이 여물어 갔다. 나는 그간 몇 차례 오르내려 낯익은 풍광인데 동행한 두 지기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우리가 사는 생활권에 이렇게 길고 긴 산수유나무가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을 늦가을은 물론 산수유꽃이 노랗게 피어날 봄날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고 했다.
산마루 정자에는 라이딩을 나선 자전거 동호인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이 페달을 밟고 떠난 자리에서 간식과 커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다가 임도를 따라 걸었다. 원추리와 엉겅퀴가 피운 꽃과 함께 개망초꽃은 지천이었다. 산딸기를 찾아봤더니 군락지는 발견 못하고 끝물이라 몇 알 맛을 본 정도였다. 운전대를 잡은 지기와 중계탑이 세워진 정상까지 올라 들판과 마을을 굽어봤다.
자양산에서 가야읍으로 이동해 오일장 장터를 둘러봤다. 장날이 일요일과 겹쳐 그런지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하려는 손님이 아닌 구경꾼이었다. 두 지기가 먼저 들러본 적 있었다는 국숫집으로 들어 명태전을 시켜 뼈를 발라 살점을 골라 먹었다. 이어 물국수가 차려져 나와 점심을 요기했다. 식당을 나와 남은 구역 장터를 둘러 영화관에 들어섰다.
작은 영화관 관람료는 도심 상영관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범죄도시3’은 개봉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데 누적 관객이 1천만에 육박한다는 마약범 소탕의 액션 코믹 영화였다. 마동석을 비롯한 열연한 배우들의 다소 잔인한 연기 장면이나 거친 대사가 마음에 걸리긴 해도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하다 싶었다. 시골 소읍에서 영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했다. 23.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