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형식화된 기독교는 멸망의 무덤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물리치신 것처럼 유다도 물리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아울러 자신이 택한 예루살렘과 자신의 이름을 두겠다고 하신 성전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밟고 말았습니다. 즉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고 그 백성들이 앗수르로 포로되어 갔듯이, 남유다 역시 불이스라엘이 망한 지 약 120년 후에 바벨론에 의하여 망하고 그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되어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기로 하신 성전마저 버리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유다 사람들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사실 유다 사람들은 성전이 그들 가운데 있는 한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망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게 대한 제사도 충실하게 드렸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할 때조차도 하나님께 대한 제사는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대제사장도 있었고, 레위인도 있었으며,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에는,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처음부터 하나님의 성전과는 무관하게 우상 숭배의 길로만 치달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전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쉬지 않은 남유다가 망한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않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남유다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종교적 행위들은 전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하면서 동시에 우상에게도 절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한 것은 이전부터 해오던 일을 계속한 하나의 습관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딤후3:5). 그러므로 그들의 종교적 행위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경건의 능력이며, 제사가 아니라 자신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삼상15:22). 결국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성전은 유다 사람들의 무덤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신앙의 형식화, 기독교의 형식화가 초래할 위험에 대하여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기독교도 하나의 '종교'로 형식화되면, 그것은 구원을 얻게하는 통로가 아니라, 멸망의 무덤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나"(마23:33)고 말씀하시며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에게 경건의 모양이 없어서 이러한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며, 주식 외에 나물의 십일조까지 드릴 정도로 종교 생활에 철저하였습니다. 그들의 종교 생활은 형식면에서만 보면 오늘 우리가 감히 흉내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철저하였습니다. 그럼도 불구하고 그들이 주님께 저주를 들은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정으로 순종하는 마음 없이 오직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모든 일을 하였던 것 입니다. 그러므로 형식화된 유대교는 결국 그들의 멸망의 무덤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를 형식화된 종교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형식화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 신앙의 터를 멸망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교리나 예전 따위가 그리스도를 대신하게 하면, 교회는 생명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약2:26)이듯이 형식화된 기독교는 멸망의 무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은 물론, 경건의 능력도 갖추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나 사데 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만 있고 사실은 죽어 있는 교회나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