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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왕막래(莫往莫來)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다는 뜻으로, 서로 왕래가 없음을 일컫는 말이다.
莫 : 없을 막(艹/7)
往 : 갈 왕(彳/5)
莫 : 없을 막(艹/7)
來 : 올 래(人/6)
출전 : 시경(詩經) 국풍(國風) 패(邶) 종풍(終風)
(毛詩序)
終風, 衛莊姜, 傷己也. 遭州吁之暴, 見侮慢而不能正也.
종풍은 위(衛)나라 장강(莊姜)이 자신을 서글퍼한 것이다. 주우(州吁)의 포악함을 만나 모욕을 당하면서 바로잡지 못해서였다.
(詩集傳)
莊公之爲人, 狂蕩暴疾, 莊姜蓋不忍斥言之, 故但以終風且暴爲比. 言‘雖其狂暴如此, 然亦有顧我則笑之時. 但皆出於戱慢之意, 而無愛敬之誠, 則又使我不敢言而心獨傷之耳.
장공의 사람됨이 광포하고 방탕하였는데, 장강이 치마 이것을 바로 대놓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단지 '종일토록 부는 바람 사납기도 하네'라는 말로 비유하면서 말하기를, "비록 그 광포하고 방탕하지만 또한 나를 돌아보며 웃을 때도 있다. 다만 이것이 모두 장난기로서 함부로 대하는 마음이고 애경의 정성이 없으니, 또한 나로 하여금 감히 이것을 말하지 못하고 마음만 아파하게 만들 뿐이다"고 한 것이다.
蓋莊公暴慢無常, 而莊姜正靜自守, 所以忤其意而不見答也.
대개 장공이 사납고 함부로 행동하여 이랬다저랬다 하지만, 장강은 올바름과 고요함으로 스스로를 지켰으니, 이 때문에 장공의 뜻을 거스리게 되고 보답을 받지 못한 것이다.
詩經 國風 邶風 終風(종풍)
(하루 내내 바람이 불어)
1.
終風且暴(종풍차폭)
顧我則笑(고아칙소)
謔浪笑敖(학랑소오)
中心是悼(중심시도)
(1)바람 불고 소나기 퍼붓듯 하다가도 나만 보면 히죽 웃는 그이 희롱하고 방종하니 속마음 쓰리다네.
(2)종일토록 바람이 불고 또 빠르나 (위나라 장공) 나를 돌아보면 웃기도 하나니 희롱하고 방탕하고 비웃고 거만하니라. 마음속에 이 서글퍼 하노라.
比이다. 종풍(終風)은 종일(終日) 바람이 부는 것이다. 폭(暴)는 빠름이다. 학(謔)은 희언(戱言)이요, 랑(浪)은 방탕(放蕩)함이다. 도(悼)는 상(傷)함이다. ○장공(莊公)의 사람 됨됨이가 광탕(狂蕩)하고 폭질(暴疾)하니, 장강(莊姜)이 아마도 차마 지척(指斥)하여 말할 수 없으므로 다만 종일동안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으로써 비유하여 말하기를, "비록 광폭(狂暴)함이 이와 같으나 또한 나를 돌아보고는 웃는 때도 있으나 모두가 단지 희만(戱慢)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요, 애경(愛敬)하는 성의(誠意)가 없으니, 또 나로 하여금 감히 말하지 못하고 마음만을 홀로 상하게 한다"고 한 것이다. 아마도 장공이 폭만(暴慢)하며 항상됨이 없거늘 장강은 정정(正靜)하여 스스로를 지키니, 이 때문에 그 뜻에 거슬려서 보답을 받지 못한 것이다.
2.
終風且霾(종풍차매)
惠然肯來(혜연긍래)
莫往莫來(막왕막래)
悠悠我思(유유아사)
(1)바람 불고 흙비 날리듯 하니 다소곳이 찾아 오겠는가. 오지도 가지도 않으니 내 시름 그지없네.
(2)종일 내내 바람 불고 또 흙비가 오나 은혜롭게도 즐기어 오나니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느니라. 아득한 내 생각이로다.
比이다. 매(霾)는 흙비가 내려 캄캄한 것이다. 혜(惠)는 순(順)함이다. 유유(悠悠)는 생각이 장대한 것이다. ○종풍차매(終風且霾)로 장공의 광혹(狂惑)함을 비유한 것이다. 비록 광혹(狂惑)하다 하엿으나 또한 혹간 혜연(惠然)히 즐겨 오기도 하지만, 다만 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때가 있으니 나로 하여금 유유(悠悠)히 생각하게 한다. 그 군자(君子) 그리기를 깊이 하니 두터움의 지극함이다.
3.
終風且曀(종풍차에)
不日有曀(불일유에)
寤言不寐(오언불매)
願言則嚔(원언칙체)
(1)바람 불고 날씨 음산한데 하루도 갤 날이 없네. 잠들려 해도 잠 못 이루고 생각하면 가슴만 메이네.
(2)종일토록 바람 불고 또 음산하도다. 하루도 안 되어 음산하도다. 잠에서 깨어나 잠 못 이루며 생각하노라면 재채기가 나노라.
比이다. 음산하게 바람이 부는 것을 에(曀)라 한다. 유(有)는 '또'이다. 불일유에(不日有曀)는 이미 음산하거늘 하루가 못되어 또 음산함을 말한 것이니, 또한 사람의 광혹(狂惑)함이 잠시 개었다가 다시 가리워짐을 비유한 것이다. 원(願)은 생각함이다. 체(嚔)는 코가 막혀서 재채기함이니 사람의 기운이 감상(感傷)하고 폐울(閉鬱)하고, 또한 바람과 안개의 엄습한 바 되면 이 병이 있는 것이다.
4.
曀曀其陰(에에기음)
虺虺其雷(훼훼기뢰)
寤言不寐(오언불매)
願言則懷(원언칙회)
(1)어둑 어둑 음산한 날씨에 우르르 천둥 울리네. 깨고 나면 다시 잠 않오고 생각하면 마음 슬퍼지네.
(2)음산하고 음산한 그 그늘짐이여, 우릉우릉하는 그 우레 소리로다. 잠이 깨면 잠들지 못하며 생각하면 그립기만 하노라.
比이다. 에에(曀曀)는 음산한 모양이요, 훼훼(虺虺)는 우뢰가 장차 발(發)할 적에 진동하지 않은 소리이니 사람의 광혹(狂惑)함이 더욱 심하여 그치지 않음이다. 회(懷)는 그리워함이다.
종풍(終風) 4장(四章)이니, 장 4구(章 四句)이다.
맹자께서 말하시기를, "산골짜기 오솔길은 잠깐 동안이라도 왕래가 있으면 길이 생기나, 얼마 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다시 풀로 꽉 덮이고 만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塞之矣)”는 뜻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길도 오솔길과 같아서 자주 왕래하지 않으면 금방 수풀로 덮혀버리고 만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절친한 친구는 자주 만나야 우정이 쌓이고, 부모 형제지간도 왕래가 잦아야 혈연의 정분이 깊어지고, 사랑하는 연인도 자주 만나야 사랑이 솟아나는 법이다. 멀리 있어 자주 못 만나면 소원해지고 지척에 살면서도 왕래가 없으면 그 만큼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처음 길을 열기는 쉽지만 오래 그 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자주 나눠야 한다. 소원했던 분들께 이따금 안부라도 전하면서 인생길에 잡초가 우거지지 않도록 살갑게 정분을 쌓아 가는 그런 삶이라야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 막왕막래(莫往莫來)
가지도 말고 오지도 말라
인류 역사상 전염병 때문에 역사가 바뀐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기원전 427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전염병이 퍼져 국민의 4분의 1이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아테네는 패전하게 되었고 따라서 나라의 운명은 쇠락하게 되었다. 거대한 로마제국도 전염병으로 붕괴되었다.
1331년 중국 원(元)나라 때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반이 죽었다. 중국에서 확산된 이 흑사병이 15년 뒤인 1346년 유럽의 크림반도에 전파되었다. 그 이후 유럽, 북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유럽에서 500만명 정도의 사람이 죽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150만명의 3배가 넘는다. 제1차 세계대전은 스페인 독감 때문에 앞당겨 종전하게 되었다. 그때 스페인 독감이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740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사망했다. 2000만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되었으니, 그 당시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 밖에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콜레라, 천연두, 장티푸스, 이질 등등 전염병은 수도 없이 많다. 또 폐결핵, 성병 등 만성전염병도 적지 않다. 뚜렷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근래 20년 동안에 사스, 메르스, 코로나 등 이전에 없던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여 전 세계를 마비시키고 있다.
사스나 메르스 때는 그래도 부분적으로 몇몇 나라에만 전파되었고, 오래지 않아 소멸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미 전 세계에 다 퍼졌고 확진자만도 3500만명에 이르렀고, 사망자가 이미 100만명에 이르렀다. 1차대전, 2차대전 때도 각국 간의 비행기는 다녔지만, 지금은 비행기가 다니지 못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각급 학교는 정상적인 수업을 못 한 지가 이미 8개월이 되었다.
지난 5월, 8월 연휴 때 통제를 조금 느슨하게 했더니 확진자가 급증했으므로 이번 명절에는 정부 당국에서 사람 사이의 접촉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어디에 가지도 말고 오지도 말라고 연일 당부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미풍양속인 벌초, 성묘, 추석제사 등을 자제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벌초는 대행하는 곳에 맡기고, 성묘는 생략하고, 제사는 맡고 있는 종가나 맏집 사람이 거행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가 겁이 나서 고향의 부모님이나 형님에게 가지 않는 사람 가운데 집에서 조용히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광지로 몰려들었다. 방역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미풍양속은 크게 파괴되었다.
벌초, 성묘, 제사 등에 참석하기 싫어 억지로 참석하던 사람들에게 좋은 핑계거리를 제공하였다. 선현을 제사 지내는 향교나 서원 등도 정상적으로 제사를 못 지내고 활동을 못 한다. 앞으로 코로나가 진정된다 해도 우리의 미풍양속이 크게 쇠락하거나 위축될 것이다.
■ 감염병 시대의 '관계 맺기'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의 이름에서 따온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는 개념이 있다. 던바는 뇌의 크기와 영장류 집단의 규모를 연구하면서 “한 개체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에 한계가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연구를 통해 추정한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 정도다. 즉,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는 150명 정도라는 얘기다.
개인의 사회적 수용 한계 능력
흥미롭게도 '던바의 수'를 지지하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신석기 시대 수렵 채집 공동체의 인구는 150명 정도였다. 던바가 인구 기록을 구할 수 있는 20개 원주민 부족의 규모를 확인했더니, 인구가 평균 153명이었다. 공교롭게도 던바의 고향인 시골 마을의 평균 인구도 150명이었다.
'던바의 수'가 유명해지자 미국, 오스트리아 등의 과학자들이 함께 온라인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게임 참여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연구했다. 이들은 3년 6개월에 걸쳐 게임 참여자 사이에 나타나는 동맹, 제휴, 거래, 경쟁 등의 인간관계 기록을 검토했다. 흥미롭게도 동맹의 크기에 상한선이 없었는데도 가장 큰 동맹의 구성원이 136명을 넘는 경우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째 전 세계가 야단법석이다. 특히 어버이날 요양 시설의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안타까운 사정을 뉴스로 접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까지 예방 접종에 필요한 백신도, 바이러스를 제압할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뿐이어서 생긴 일이다.
관계에 대한 탐색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도 적다. 국내 유행이 잠잠해질 만하면 다시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 설사 지금의 유행이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가을과 겨울에 두 번째 유행이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코로나 유행이 끝날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걱정하면서 살아야 한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다수의 과학자는 코로나19 유행이 가까스로 잡히고 나서도 조만간 새로운 신종 바이러스가 다시 인류를 공격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만 거의 6년 주기로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난 사실을 염두에 두면 걱정 많은 과학자들의 기우라고 무시할 일도 아니다. 정말로 '코로나'가 등장할 수도 있고,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도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서글퍼진다. 유행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는 상황은 얼마나 슬픈가? 더구나 이런 일이 예외 상황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된다면 정말로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면 전염병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평소 친하게 지내온 또래 작가는 코로나19 유행 이후에 외부 활동을 최소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람 만나는 일도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 이런 우선 순위를 정했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만나야 할 때 곰곰이 생각해 봐요. 혹시 내가 이 사람을 만나서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면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람을 걱정할지."
그의 답변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에서 언급한 '던바의 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평소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일상생활뿐 만 아니라 소셜미디어의 수백 명, 수천 명이 넘는 네트워크까지 염두에 두면 이 관계는 많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다.
이렇게 넘치는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관계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관계 가운데 굳이 대면하며 교제해야 할 관계는 또 어느 정도나 될까? 우리는 새로운 관계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오히려 챙기고 아껴야 할 진정 소중한 관계를 소홀히 해 온 것은 아닐까?
이렇게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전염병 시대는 우리가 맺어온 수많은 관계를 다시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참에 시간을 내서 주소록의 수많은 연락처를 가만히 살펴보자. 그중 대면해서 혹시 전염되더라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게 될 사람은 대체 몇 명이나 될까.
■ 예상왕래(禮尙往來)와 배려를 키우는 기술
禮尙往來, 往而不來, 非禮也. 來而不往, 亦非禮也.
예는 오고 가는 호혜성을 높이 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며,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보통 사람의 관계와 다르다. 보통 사람 사이는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에 충실하다. 친구끼리 밥을 먹을 때 한번은 내가 냈으면 다음은 네가 내는 식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는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습관에 따라 유지되는 것이다. 꼭 산술적으로 '내 한 번, 네 한 번'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관계가 유지된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무조건적인 측면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는 자신의 모든 일을 제쳐놓고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헌신한다. 모성애나 부성애와 같은 가족애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면 가족애가 극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출현했지만 국가나 사회 그 누구도 신속하게 구출 작업에 나서지 않지만 가족은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는다.
가족 사랑도 관계에 따라 좀 다르다. 속담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은 쉽지만 자식이 부모를 향한 사랑은 어렵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열일을 마다하고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올인한다. 이러한 돌봄으로 자식은 성장해서 어른이 된다. 하지만 자식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노화가 되면 자식이 부모를 돌봐야 할 상황이 생긴다.
하지만 자식은 자신의 일을 하기에 바빠서 부모를 찾아뵙는 일도 어렵고 부모와 식사하는 일도 어렵다. 이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를 보면 아버지는 딸과 주기적으로 식사를 함께 하고자 하지만 다들 바쁘다는 이유로 만나기조차 어렵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자식이 성장하면서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고 점차 소원해지는 것에 아파한다. 꼭 무엇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편하게 만나기 어려운 상황 자체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가장 친한 가족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사람끼리 가족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면 예(禮)의 원칙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禮)의 원칙과 세부 예절을 기록한 '예기' 곡례(曲禮)를 보면 예(禮)는 기본적으로 호혜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예는 오고 가는 호혜성을 높이 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며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禮尙往來, 往而不來, 非禮也. 來而不往, 亦非禮也)."
여기서 '오고 가는 것'은 보통 사람들 사이처럼 물질만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방문, 전화, 일손 거들기, 청소 등의 관심을 포함한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지 않을 경우 부모가 자식에 전화를 걸면 자식도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다. 꼭 무슨 이유나 소식이 없더라도 전화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고급 식당이나 맛있는 요리가 아니어도 좋다. 우연히 길다가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발견하면 그것만을 가져다 드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늘 함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서로를 동반자로 배려하는 자세이다.
우리는 수학, 외국어, 전문 영역을 배운다. 하지만 사람 사이를 유지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 배우지 않다보니 같은 공간에서 누구랑 함께 있으면 불편하게 느낀다.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방적으로 주려고만 하고 받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려는 자세를 돌아봐야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고가는 관심 속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아울러 보통 사이는 주고받는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가족 사이는 좀 더 긴 시간에서 서로를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상왕래(禮尙往來)'를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삶의 기술을 돌아보면 좋겠다.
■ 역병과 사투를 벌인 조선시대 아버지 열전
위급한 시점은 많이 지나갔다고는 하지만, 최근 몇달 동안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생활에 가져온 변화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반가운 이를 만나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평범한 일상은 사라져버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지키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적 거리두기의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손을 씻는 습관과는 거리가 멀던 철없는 가장들도 가족의 건강을 위해 자주 손을 씻는 버릇이 들었다. 답답하다고 밀쳐버리던 마스크도 31번 확진자가 등장한 이후에는 슬그머니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의 개학이 한 주 한 주 늦추어지다가 온라인 개학으로 종결되자, 학부모들이 짊어지게 된 짐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모든 것을 부모가 책임져 주어야 하는 국면이 되어 버린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의 방역수준은 세계 최고이며, 의료체계도 원활하며, 사재기도 일어나지 않고, 온라인 쇼핑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돈을 벌어야 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학부모들에게 지워진 짐은 참으로 무겁다.
그런 점에서 수백년 전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조선시대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수고를 떠올려 보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감염병이 가족을 괴롭혔다. 많은 사람들을 빠른 속도로 감염시켜서 떼죽음에 이르게 하는 감염병은 당시 의료체계로서는 치료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병이었기에 역질, 역병, 돌림병이라고 불렸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병이었던 것이다.
치료법이 있다 해도 경제적인 이유로 약 한 첩 제대로 못 써보기도 하고, 전란으로 인해 제대로 의사 한번 만나보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했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24세였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겪어야 했겠는가. 어려운 형편에도 살려보려고 모든 수를 내어 최선을 다했건만 아무 소용없이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그 마음은 한결같은 보편적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소소한 일상사들이 빠짐없이 기록해놓은 일기류 곳곳에는 자식의 병을 고치려 애쓰는 부모들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읽다보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과 선현들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워봐야만 부모의 은혜를 안다
'계암일록'의 저자인 김령은 1604년에 큰 아이를 이질로 잃는다. 열흘 가까이 앓던 아이가 어느 순간이 되자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죽은 아이를 스스로 묻고 돌아온 김령은 비참한 심경으로 한동안 일기조차 쓰지 못한다. 그러나, 다음해에도 김령의 자식들은 차례로 홍역과 학질을 앓게 된다.
자식을 잃어본 김령은 크게 근심하고 자녀들의 병세를 자세히 일기에 기록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모두 완쾌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앓았던 홍역과 부모님의 수고와 은혜를 떠올렸으며, 그 마음을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 아이의 병 때문에 근심하고 애를 많이 썼더니 돌아가신 어버이께서 나를 키우고 기르신 수고가 생각나 감탄스런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어버이의 은혜는 그지없다. (중략) 내가 최근에 겪은 상황 때문에, ‘자식을 키워 봐야만 부모의 은혜를 안다’는 구절을 이번에 세 번이나 반복하여 되뇌었다." - 계암일록 중에서
▶ 죽은 아이를 스스로 묻는 아버지, 비통함에 잠식되다
▶ 홍역과 학질, 아이들을 괴롭히고 아버지를 근심케 하다
어떻게 아내의 얼굴을 대할 수가 있겠는가
'역중일기'의 저자 최흥원은 1741년 6월 큰 아들인 용장을 돌림병으로 잃는다. 마을에 돌림병이 돌 때, 빨리 아이를 다른 곳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결국 지체하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으니 최흥원은 스스로를 원망하는 마음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전 해에 아내가 병으로 앓다가 죽으면서 두 아들을 잘 키워달라고 신신당부하였던 것이다. 최흥원은 자신도 모르게 목 놓아 통곡을 하고 말았다.
이로부터 2년 후인 1743년 1월에 둘째 아들인 용채가 돌림병에 걸리자, 병이 깊은 어머니께서 돌림병에 걸릴까 싶어 용채를 종의 집에 내다두고 종들에게 간호하도록 하였다. 아비가 되어 아픈 아이를 종의 집에 두자니 사람의 도리가 아닌 듯 하여 자책하는 마음이 크게 일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일족 아재가 돌림병을 각오하고 용채를 간호하였는데, 열이 내리고 차도가 있었다. 최흥원은 긴장이 풀리면서 자칫 주저앉을 뻔하였다.
용채는 2년 후인 1746년 2월에도 돌림병을 앓게 되는데 이때에는 배의원이라는 사람이 보름이나 최흥원의 집에 머물며 용채와 집안 아이들의 병을 돌보았다. 배의원은 돌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극진히 살펴서 병의 고비를 넘기게 해준 것이다. 집안의 어른으로 역병을 다스리느라 정작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던 최흥원은 용채를 살려준 성석 아재와 배의원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큰 아들 용장을 잃었는데, 용채마저 잘못된다면 어찌 아내의 얼굴을 대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왕자도 피하지 못한 역병에서 딸을 구해내다
1588년 선조의 아들인 의안군이 역병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성재일기'의 저자 금난수의 딸인 종향도 같은 역병에 걸리게 된다. 금난수는 왕자도 살려내지 못한 역병을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크게 염려하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기로 결심한다.
의녀 일곱 명을 불렀는데, 의녀들은 몸의 기를 보하는 것이 역병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환약을 지어주었다. 약 덕분인지 종향은 이레 만에 집 밖 출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지만, 금난수는 마음을 놓지 않고 종향을 역병이 도는 도성에서 멀리 있는 곳으로 옮겨가도록 한다.
그해 가을, 금난수는 종향이 다시 두통을 앓게 되자 약을 구하려 말을 타고 궐 안에 들어가다가 낙마하는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막내아들 금각을 잃은 상황에 막내딸마저 잃게 되면 어쩔까 하는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앞섰던 까닭이었다.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궐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약도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금난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방편을 써서 약을 구하고야 만다. 막내딸을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그 때 그 시절 아버지의 마음으로
일기류에서 보여지는 조선시대 아버지들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이다. 때로는 인간적인 이유로 인해 그들이 굳게 믿고 있던 유교의 가르침에서 다소 벗어나는 일들도 발생한다.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은 막내딸의 병세를 알기 위하여 미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을 치고 기도를 드리며, 막내딸이 죽은 후에는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굿을 허락해주며, 무당이 막내딸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자신도 콧등이 시큰거렸다고 고백한다.
꿈에서 막내딸을 보고는 깨어나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다가 새벽닭이 몇 번이나 울 때까지 대성통곡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희문은 논어 팔일편에 나오는 '애이불상(哀而不傷; 슬퍼하되 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슬퍼하더라도 지나치게 해서 몸과 마음이 상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을 말한다)'을 논하며 성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이야기한다.
'조성당일기'의 저자 김택룡은 아들을 살려보려고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까지 하였지만, 어쩔 도리 없이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다. 아들을 장사지내고 난 김택룡은 힘이 다 빠져서 잘못을 저지른 하인을 꾸짖을 기운도 없고, 제사를 지낼 기운도 없으며, 서원 유생들이 제출한 시험지를 채점하는 것도 망각할 정도다. 부자간의 정이야 끝이 없지만, 운명을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생각은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아버지의 슬픈 마음인 것이다.
'초간일기'의 저자 권문해는 오십이 넘어 처음으로 얻은 귀한 딸을 역병으로 잃고 애끓는 마음을 부여잡고 통곡한다. 권문해는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딸이 죽은 다음에도 "역병으로 갑자기 죽었던 사람이 혹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며 딸이 다시 살아나 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가망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지 않은 상황, 없는 형편에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이 세대는 역병과 사투를 벌이며 자식들을 구하려고 애썼던 조선시대 아버지들의 DNA를 물려받았기에, 어떤 어려움에도 포기하지 않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몸과 뼈와 생각 속에 깊숙히 뿌리박혀 있는 부모님들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멈출 수 없게 한다.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움직이게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노후의 부모를 자식들이 부양해 한다는 데에 찬성하는 숫자가 33%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반드시 주었으니 받아야 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33%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을, 자식들은 부정하고 싶고, 부모는 한숨으로 긍정한다. 부모와 자식의 엇갈린 현실이 느껴진다.
코로나19가 가족 모임에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많은 아들딸들이, 부모에게 가고 싶어도, 부모가 지방이나 요양원에 있는 경우에는 코로나 19에라도 걸릴까봐서, 아들딸이 걱정돼서 '오지 말라'며 말리고 있다. 그러나 "어찌 우리가 거길 안가?"라며, 그러나 아들딸 역시 안전이 걱정돼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방역당국은 당부하고 있다. 요양시설 면회 등을 좀 참아달라고. "감염위험이 높은 요양원 등의 면회는 자제해 어르신들의 건강을 지켜 달라"며 "가족 간의 마음속 거리는 좁히면서도 생활 속 거리두기는 실천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몸이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몸과 마음의 거리 법을...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와 성어들이 담겨 있는 한시외전(韓詩外傳) 9권에 나오는 말로 부모가 살아 있을 때 효도하지 않으면 뒤에 한탄하게 된다는 뜻이다. 부모를 여읜 사람들 중 열의 아홉은 하나같이 "살아계실 때 효도해. 돌아가시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라고 말한다.
▶️ 莫(없을 막, 저물 모, 덮을 멱)은 ❶회의문자로 暮(모)와 동자(同字)이다. 삼림(森林) 혹은 초원(草原)에 해가 지는 모양을 나타내고 해질녘의 뜻이다. 나중에 음(音) 빌어 없다, 말다의 뜻(無, 毋)으로 전용(專用)되고 해질녘의 뜻으로는 暮(모)자를 만들었다. ❷회의문자로 莫자는 '없다'나 '저물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莫자는 茻(잡풀 우거질 망)자와 日(해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莫자를 보면 풀숲 사이로 해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날이 저물었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해서에서는 아래에 있던 艹(풀 초)자가 大(큰 대)자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莫자가 되었다. 그러니 莫자에 쓰인 大자는 艹자가 잘못 바뀐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莫자는 이렇게 날이 저물은 것을 표현한 글자지만 지금은 주로 '없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해가 사라졌다는 뜻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여기에 다시 日자를 더한 暮(저물 모)자가 '저물다'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莫(막, 모, 멱)은 ①없다 ②말다, ~하지 말라 ③불가하다 ④꾀하다(=謨) ⑤편안하다, 안정되다 ⑥조용하다 ⑦드넓다 ⑧아득하다 ⑨막(=膜) ⑩장막(帳幕)(=幕) 그리고 ⓐ저물다(모) ⓑ날이 어둡다(모) ⓒ나물(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 이것을 양념하여 무친 음식)(모) 그리고 ⓓ덮다(멱) ⓔ봉하다(열지 못하게 꼭 붙이거나 싸서 막다)(멱)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몹시 크거나 많음을 막대(莫大), 힘이 더 할 수 없이 셈을 막강(莫强), 매우 중요함을 막중(莫重),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또는 막약(莫若), 벗으로서 뜻이 맞아 허물없이 친함을 막역(莫逆), 매우 심함이나 더할 나위 없음을 막심(莫甚), 매우 심함을 막급(莫及), 가장 좋음을 막상(莫上), 아닌게 아니라를 막비(莫非), 깊은 밤이나 이슥한 밤을 막야(莫夜), 몹시 엄함을 막엄(莫嚴), 말을 그만둠이나 하던 일을 그만둠을 막설(莫說), 더할 수 없이 매우 강함을 막강(莫強), 황폐하여 쓸쓸함을 삭막(索莫), 고요하고 쓸쓸함을 적막(適莫),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무가내(莫無可奈),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는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을 일컫는 말을 막역지우(莫逆之友),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상막하(莫上莫下),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가내하(莫可奈何), 막역한 벗의 사이를 일컫는 말을 막역지간(莫逆之間), 동서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을 막지동서(莫知東西), 자식을 가르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음을 일컫는 말을 막여교자(莫如敎子), 어느 누구도 감히 어찌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막감수하(莫敢誰何), 모든 것이 다 운수에 달려 있음을 이르는 말을 막비명야(莫非命也), 인적이 없어 적막하도록 깊고 높은 산을 일컫는 말을 막막궁산(莫莫窮山), 두려워서 할 말을 감히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막감개구(莫敢開口), 더할 수 없이 매우 강한 나라를 일컫는 말을 막강지국(莫強之國), 감동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막불감동(莫不感動), 아주 허물없는 사귐을 일컫는 말을 막역지교(莫逆之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중요한 곳을 이르는 말을 막중지지(莫重之地),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구막추(窮寇莫追), 매우 무지하고 우악스러움을 일컫는 말을 무지막지(無知莫知), 가는 사람은 붙잡지 말라는 말을 거자막추(去者莫追), 남의 활을 당겨 쏘지 말라는 뜻으로 무익한 일은 하지 말라는 말 또는 자기가 닦은 것을 지켜 딴 데 마음 쓰지 말 것을 이르는 말을 타궁막만(他弓莫輓),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닿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이 그릇된 뒤에는 후회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한 말을 서제막급(噬臍莫及),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이나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往(갈 왕)은 ❶형성문자로 徃(왕), 泩(왕)은 통자(通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王(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풀의 싹 틈을 나타내는 철(艸; 글자중 한 개만 쓴 글자)과 음(音)을 나타내며 크게 퍼진다는 뜻을 가진 王(왕)으로 이루어졌다. 이 두 글자를 합(合)한 主(왕)은 초목(草木)이 마구 무성하다, 어디까지나 나아가는 일을,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간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往자는 '가다'나 '향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往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主(주인 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王(임금 왕)자 위로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王자는 발음역할만을 한다. 이것은 '가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가다'는 뜻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전과 해서에서는 止자와 王자가 主자로 바뀌면서 지금의 往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往(왕)은 ①가다 ②(물품을)보내다, 보내 주다 ③향하다 ④과거(過去) ⑤옛날, 이미 지나간 일 ⑥이따금 ⑦일찍 ⑧언제나 ⑨뒤, 이후(以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서(逝),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올 래(來), 물러날 퇴(退), 머무를 류(留)이다. 용례로는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갔다가 돌아옴 또는 가는 일과 돌아오는 일을 왕복(往復), 이따금이나 때때로를 이르는 말을 왕왕(往往), 이 세상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서 삶을 왕생(往生), 지나간 해나 옛날을 이르는 말을 왕년(往年), 지나간 옛날을 왕고(往古), 갔다가 돌아옴을 왕반(往返), 가서 다달음을 왕예(往詣), 이미 지나간 수레바퀴의 자국이란 뜻으로 이전 사람이 행한 일의 자취를 이르는 말을 왕철(往轍), 지난 지 썩 오래된 때를 왕대(往代), 윗사람을 가서 만나 뵘을 왕배(往拜), 이미 잊을 듯 지나간 해를 왕세(往歲), 지난날이나 지나온 과거의 날 또는 그런 날의 행적을 왕일(往日), 비행기나 배가 목적지로 감을 왕항(往航), 의사가 병원 밖의 환자가 있는 곳에 가서 진찰함을 왕진(往診), 이전이나 그 전 또는 이미나 벌써나 이왕에를 이르는 말을 기왕(旣往), 오래 전이나 그 전을 이르는 말을 이왕(已往),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홀로 감으로 남에게 의지하거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힘이나 생각으로 떳떳이 행동함을 독왕(獨往), 아직 가지 않음을 미왕(未往), 마음이 늘 어느 사람이나 고장으로 향하여 감을 향왕(向往), 마음이 늘 어느 한 사람이나 고장으로 쏠림을 향왕(響往), 가는 것은 그 자연의 이법에 맡겨 가게 해야지 부질없이 잡아 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왕자물지(往者勿止),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또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지어낸다는 말을 왕래자재(往來自在), 거리낌이 없이 아무 때나 왔다갔다 함을 이르는 말을 무상왕래(無常往來), 남의 태도나 주장에 조금도 구애됨이 없이 스스로의 주의나 주장대로 행동함을 자주독왕(自主獨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하며 종잡지 못한다는 말을 우왕좌왕(右往左往),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 한다는 말을 설왕설래(說往說來),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고 오직 장래의 일만 잘 삼가야 한다는 말을 기왕불구(旣往不咎),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간다는 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지난 일을 밝게 살피어 장래의 득을 살핀다는 말을 창왕찰래(彰往察來) 등에 쓰인다.
▶️ 來(올 래/내)는 ❶상형문자로 来(래/내)는 통자(通字), 간자(簡字), 倈(래/내)는 동자(同字)이다. 來(래)는 보리의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아주 옛날 중국 말로는 오다란 뜻의 말과 음(音)이 같았기 때문에 來(래)자를 빌어 썼다. 나중에 보리란 뜻으로는 별도로 麥(맥)자를 만들었다. 보리는 하늘로부터 전(轉)하여 온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다란 뜻으로 보리를 나타내는 글자를 쓰는 것이라고 옛날 사람은 설명하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來자는 '오다'나 '돌아오다', '앞으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來자는 人(사람 인)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사람'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來자의 갑골문을 보면 보리의 뿌리와 줄기가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來자는 본래 '보리'를 뜻하던 글자였다. 옛사람들은 곡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來자는 점차 '오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來자가 이렇게 '오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夂(뒤져서 올 치)자가 더해진 麥(보리 맥)자가 '보리'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來(래)는 ①오다 ②돌아오다 ③부르다 ④위로하다 ⑤이래 ⑥그 이후(以後)로 ⑦앞으로 ⑧미래(未來) ⑨후세(後世) ⑩보리(볏과의 두해살이풀)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거(去), 갈 왕(往), 머무를 류/유(留)이다. 용례로는 올해의 다음 해를 내년(來年), 오늘의 바로 다음날을 내일(來日),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다음에 오는 주를 내주(來週), 겪어 온 자취를 내력(來歷), 후세의 자손을 내예(來裔),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을 내한(來韓), 적이 습격해 오는 것을 내습(來襲), 오고 가고 함을 내왕(來往), 손님이 찾아옴을 내방(來訪), 와 계신 손님을 내빈(來賓), 찾아 오는 손님을 내객(來客), 와 닿음을 내도(來到), 남에게서 온 편지를 내신(來信), 다음에 다가오는 가을을 내추(來秋), 어떤 결과를 가져옴을 초래(招來),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未來), 금전을 서로 대차하거나 물건을 매매하는 일을 거래(去來), 앞으로 닥쳐올 때를 장래(將來), 가고 오고 함을 왕래(往來), 그 뒤로나 그러한 뒤로를 이래(以來), 사물의 내력을 유래(由來), 변하여 온 사물의 처음 바탕을 본래(本來), 이르러서 옴이나 닥쳐 옴을 도래(到來), 올 때는 갈 때의 일을 모른다는 뜻으로 양면을 다 알지는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내부지거(來不知去), 지나간 일은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장차 다가올 일은 조심하여 이전과 같은 과실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내자가추(來者可追), 오는 사람을 막지 말라는 뜻으로 자유 의사에 맡기라는 말을 내자물거(來者勿拒), 오가는 사람 즉 자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내인거객(來人去客), 오는 사람을 금해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내자물금(來者勿禁),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라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을 고진감래(苦盡甘來),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일컫는 말을 권토중래(捲土重來),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설왕설래(說往說來), 부근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을 근열원래(近悅遠來), 여러 말을 서로 주고 받음 또는 서로 변론하느라 말이 옥신각신함을 일컫는 말을 언거언래(言去言來), 동지를 고비로 음기가 사라지고 양기가 다시 온다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 계속되다가 간신히 행운이 옴을 이르는 말을 일양내복(一陽來復), 뜻밖에 닥쳐오는 모질고 사나운 일을 일컫는 말을 횡래지액(橫來之厄), 눈썹이 가고 눈이 온다는 뜻으로 서로 미소를 보냄을 이르는 말을 미거안래(眉去眼來),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더운 것이 오면 찬 것이 감을 일컫는 말을 한래서왕(寒來暑往),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밥이 오면 입을 벌린다는 뜻으로 심한 게으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래개구(飯來開口),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이왕찰래(以往察來), 추위가 물러가고 무더위가 온다는 뜻으로 세월이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한왕서래(寒往暑來)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