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 동무
배재경
이른 봄비가 싸르륵 싸르륵 새어드는 밤
자꾸 석기 동무 생각난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석기 동무
석기는 아랫집 5남매 중 막내이고
우리집은 누나 하나 나 하나
담장 하나로 얼굴 보며 석기야 노올자!
재복아 노올자!
나란히 토끼풀 뜯으며 놀다
논도랑에 새 고무신 한 짝씩 떠나보내고
단석산 그림자 황금으로 나리는 아래윗집에서 야단맞았지
석기가 소꼴 먹이러 가면 쫄래쫄래
내가 박시고개 솔잎 긁으로 가면 석기도 쫄래쫄래
석기 누나 우리 누나 밤낮없이 뭉쳐
나팔바지 멋 부리며 경주 시내 쏘다니고
우리집 골방에서 놀다 잠들고 놀다 잠들고
동네 누나들 중 유일하게 내 고추를 본 석기 누나
수리도랑 미꾸라지 잡다 엉망이 된 옷들을 풀어헤치고
누나들이 앞뒤로 밀어주는 때수건에 우리는 아프다 소리만 질렀지
그렇게 석기네는 키 낮은 빗금 하나가 유일한 분리선
그렇게 석기는 고향의 짝동무인데
어느 사이 얼골 안 본 지 40여 년
언제 그 어릴 적 눈망울을 마주 할거나
석기 누나 치매로 고생한다는 소문이고
석기 동무 별안간 너무 보고픈데
어깨동무 석기 동무 어디 있나
자르륵자르륵 비들은 울다 쉬고 울다 쉬고
나는 옛동무 생각으로 쉬 잠들지 못하고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배재경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1994년 《문학지평》으로 활동. 시집 『그는 그 방에서 천년을 살았다』 등이 있음. 현재 계간 『사이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