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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홀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친구들의 긍정적인 시각은 잘 알았지만 자신 스스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여자아이를 좋아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첫사랑은 중학교 때, 친구의 두 살 많은 누나였다. 아직 앳된 자신과 달리 고등학생으로서 나름의 성숙함을 풍기던 누나.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었지만 어쨌든 사랑은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마음은 뭘까. 자꾸 파헤치고 파헤치려고 할수록 진실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다. 하루하루 흘러갈 때마다 우현이를 대하는 게 어려워지고 사소한 스킨십에 민감해졌다. 우연히 손만 닿아도 움찔거리는 재휘 덕에 우현은 우현나름대로 또 상처받고 있었다. 그렇지만 재휘는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 속에서 허우적댔다.
그리고 제법 날씨가 쌀쌀해져오는 11월의 어느 날.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기어이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싸늘한 바람이 비를 몰고 교실 밖에서 서성거렸다. 덜컹덜컹 유리창도 흔들렸다. 가을비 치고는 꽤 많이 내린다.
-톡톡
종례를 마치고 가방을 싸는 재휘의 어깨를 누군가 툭툭 건든다. 재휘가 그쪽을 보자 우현이 자신 앞에 쪽지를 내밀었다.
[공부. 같이하자]
그러고 보니 모의고사가 다음 주였다. 그것도 잊고 있었다니… 요 며칠 고민에 빠져 수업내용조차도 흘려듣기 일쑤였는데…분명 선생님들이 시험에 나올만한 것을 집어 주었을 것이다. 답답하고 한심함에 재휘는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한바가지 퍼부었다. 그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공부를 해야지.
공부? 아…
자신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쪽지를 한참동안 째려보던 재휘는 다시 가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분주히 짐을 싼다.
그러자 다시 자신의 시야를 가리며 쪽지가 날아온다.
[싫어?]
멈칫.
재휘는 우현을 올려다보았다. 특별한 표정변화는 없지만… 조금은 화가 났다는 걸 이젠 안다. 우현은 화가 나면 미미하게 눈썹이 움직인다. 거기까지 생각한 재휘는 다시 자신에게 욕했다. 왜 그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냐고.
“아…으음… 미안. 나 먼저 갈게!”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고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온 재휘는 한시라도 학교를 빨리 나가기 위해 달렸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우산도 없다. 달리는 김에 집까지 뜀박질이나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와 신발을 갈아 신고 건물을 나서려는 순간 손목이 잡혔다.
“앗?!”
순간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한 재휘는 간신히 자세를 바로하고 자신을 잡은 이를 쳐다봤다. 우현이었다. 가만히 재휘를 내려다보던 우현은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앞에 들이민다.
“응?…”
우산이었다. 우현은 재휘가 우산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다급하게 잡은 걸까? 눈앞에 들린 우산을 멍하니 보고 있자 우현이 다시 한 번 우산을 눈앞에 내민다. 그리고 우산을 받아 드려는 데 우현이 잡은 자신의 손목이 눈에 띈다. 갑자기 손목이 화르륵 타버릴 것 같았다.
-탁!
재휘는 무심코 잡힌 팔을 세게 쳐내 빠져나왔다.
“괜찮아 뛰어가면 돼!”
소리치며 우현을 올려다보자 화난 얼굴의 우현이 눈에 들어왔다. 아차 싶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쳐내다니. 게다가 호의까지 무시하다니. 계속 실수투성이다.
“아… 아니, 그, 그게… 내, 내일보자!”
뭐라고 변명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 눈만 굴리던 재휘는 뒤돌아 운동장으로 뛰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에 금세 머리부터 젖어 들어간다. 가방을 머리위로 올려서 뛰어가던 재휘는 다시 한 번 멈춰서야 했다. 재휘를 따라온 우현이 재휘를 잡아 돌려세운다.
“으응? 왜 비 맞고 있어! 우산도 있으면서? 나, 나는 그냥 가도 돼. 가까우니까! 가을비 차서 안 좋아, 얼른 들어가! 내일 보… 윽”
허둥지둥 버벅 거리며 재휘가 말하자 우현이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우현의 눈이 묻고 있다. 왜 자신을 피하느냐고.
“아, 아냐, 그냥 집에 좀 일이 있어서!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
운동장 가운데에서 비를 맞으면서 우현은 재휘가 하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겠다는 듯 집중했다. 그 시선이 더욱 부담스러워진 재휘가 안절부절 하다가 또 우현의 팔에서 빠져나오려 애를 쓴다.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우현의 손에서 쉽게 나올 수가 없다.
“놔! 놔… 달라구!”
버둥대던 재휘는 집요하게 자신을 추궁하는 우현의 눈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지난 몇 일간 고민하고 있던 모든 것들이 비를 타고 줄줄 흘러서 재휘의 마음속에서 새버린다. 뻥 터져서 더 이상 내보내지 않고는 용량과다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놔! 지금 너 땜에 심란해 죽겠는데 자꾸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나한테 왜 그래! 네가… 네가 계집애 대하듯이 나한테 그러니까 내가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고!!!”
우현이 의문을 표시하지만 개의치 않은 재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다.
“당분간 너 보고 싶지 않아. 네 꼴도 보기 싫어!!!!”
충격으로 살짝 손에 힘이 풀린 우현을 뿌리치고 재휘는 달렸다. 우현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 내일보자고 했던 재휘의 말이 무색하게 우현은 결석을 했다. 그것도 3일 내리. 첫날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사정이 있겠지. 성훈과 은재가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지만 대답해줄건 없었다. 아니,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까.
우현이 연속 이틀을 결석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걸까? 그건 과민반응일거다. 분명 무슨 일이 있겠지.
속에선 불길이 이는데 티 내지 않으려 삭히느라 온통 애를 쓰다가 결국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그러자 담임은 재휘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다며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집안사정이라고만 대답했다.
기분은 더욱 가라앉았다. 그래, 이전이라면 당연하겠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째서 당연하지? 재휘와 우현은 만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은 사이일 뿐이다. 그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완전한 남남. 그런데 그 짧은 시간동안 남들이 모두 인정하는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3일째 되던 아침. 우현이 없는 아침조회가 끝나고 오전수업까지 마쳤다. 이제 모의고사는 며칠 남지 않았다. 언제나 왁자지껄하던 점심시간도 이젠 공부를 한답시고 다들 책상에 붙박힌 듯 앉아 책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휘 역시 점심을 간단히 해치우고 눈앞에 국어책을 펼쳐놓은 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요점정리를 하고 있던 성훈이가 뒤를 돌아보며 한숨을 쉰다. 그리고는 어떤 말을 하려는지 뻐금대다 결국엔 다시 자신의 노트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 모습에 은재도 조용히 한숨을 쉰다.
성훈과 은재는 우현이 결석하던 첫날, 재휘가 ‘전혀 몰랐다’라는 반응을 하기에, 그날 바로 우현을 찾아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재휘는 마치 우현이 원래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고 둘이 또 싸웠구나 했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왠지 안절부절 못하며 안정을 찾지 못하는 재휘가 눈에 거슬렸다.
겉으로는 ‘난 그 자식한테 관심 따위 요만큼도 없어’라는 오라를 풀풀 풍기지만 한 겹만 걷어보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 있나? 큰일일까? 언제부터 다시 나오는 거지?’ 라며 끊임없이 우현에 대한 생각을 하는 재휘를 발견한다.
그리고 오늘. 시험기간이 눈앞에 닥치면 다른 것은 다 내팽개치고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공부이외에 눈 돌리지 않는 재휘가 책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심각한 상태였다. 보다 못한 성훈이는 이럴 거면 찾아가보라고 훈수라도 두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지 못하게 은재가 막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아…”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는 한숨을 내쉰 재휘는 결국 국어책을 탁-덮어버렸다. 그리고 그 위에 쓰러지듯 엎드렸다. 이미 머릿속은 포화상태였다. 누구의 시가 어떻고 누구의 소설이 어떤지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잠이라도 자볼까- 하고 감은 눈앞에는 비를 맞으며 화난얼굴로 서있던 우현과, 자신이 쏘아 붙이는 말에 놀란 듯 서있는 우현이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눈을 떠도 감아도 계속해서 그 얼굴이 떠오른다.
미쳐버릴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싶어서 떨어져있고 싶었던 것 뿐 인데 본의 아니게 정말 떨어져보니 더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러다가는 정신이 날아갈 거다.
-덜컹
엎드려있던 재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의자소리에 성훈과 은재가 뒤돌아본다.
“어디가?”
“교무실”
그리곤 성큼성큼 걸어 나가 버린다.
시험 전에는 다시 학교에 나올 거라며 걱정 말고 공부하라는 담임선생님을 잡고 늘어지고 또 늘어져서 조퇴승낙을 받아냈다. 매일 하교하고 나면 헤어지던 사거리에서 자신의 집 반대방향으로 향했다. 기억속의 우현의 집 가는 길을 더듬어 가다 보니 학교근처의 주택단지였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이것저것 고민하면서 재휘는 한 양옥집 앞에 섰다. 제법 높은 담과 대문이 눈앞에 있었다. 이런 집에 혼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우현이 외롭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재휘는 망설이며 벨을 눌렀다.
-딩동
조심스럽게 한번 눌렀지만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다. 비었나-?
-딩동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눌렀다. 그래도 조용하다. 한 번 더 재휘가 벨을 누르려는 순간-
-덜컹
소리를 내며 대문이 열렸다. 대답도 없이 다짜고짜 열린 문을 황당하게 쳐다보던 재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을 닫자 아담한 정원이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신경 써서 가꾸었다는 느낌이 드는 아늑한 정원이었다. 추운 겨울의 문턱에도 제법 예쁜 꽃들이 피어있고 종류는 모르겠지만 커다란 나무하나가 서있었다. 바닥엔 낙엽이 져서 떨어진 잎사귀들로 바삭거렸다. 돌 징검다리를 따라가자 집 현관이 눈에 들어왔다. 또 벨을 눌러야 하는 걸까? 생각했지만 현관문이 살짝 열려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다른 집과 같이 신발이 놓인 현관의 모습이 보이고 미닫이 문이 눈에 띄었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한 뒤 미닫이문을 열자 커다란 거실이 눈에 들어왔고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우현은 커다란 소파에 늘어지듯 앉아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힘없이 늘어진 모습에 재휘는 자는 건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 우현이 앉은 소파의 뒤로 돌아가 우현을 깨우려던 재휘는 가까이 가자 느껴지는 열기에 화들짝 놀랐다.
근처에 가기만해도 느껴지는 열이라니!
재휘는 자신이 남의 집에, 그것도 나름 냉전중인 우현의 집이라는 것도 잊고, 가방을 내팽개치고 우현을 흔들었다. 우현은 정신이 몽롱한지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재휘는 실례인줄알지만 집의 방문을 하나씩 열어보고는 1층엔 우현의 방으로 추정되는 곳이 없자 우현을 들쳐 업고 2층으로 향했다. 자신보다 큰 키의 우현이지만 생각보다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재휘는 닿아오는 등 뒤로 느껴지는 열이 너무나 심하자 무겁다는 것도 잊고 빠르게 2층으로 올라가,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다행이도 우현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이 널려있어 안심하고 침대에 바로 눕혔다. 그리고 엄청난 열에도 식은땀 하나 흘리지 않는 우현을 보며 우현의 이마에 손들 대었다. 댈 필요도 없이 펄펄 끓는다.
오른 열만큼이나 몸이 추운지 덜덜 떨리는 우현의 몸을 위해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뒤 아까 보았던 화장실로 뛰어갔다. 대야에 찬물을 채우고 선반에서 수건을 꺼내 적셨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찾아 꺼내 얼음주머니를 만들었다.
“약을 먹여야 할 텐데…”
그치만 자취하는 우현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저 상태의 우현을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지….
대야와 수건을 들고 다시 2층에 올라가 색색거리며 달뜬 숨을 뱉는 우현의 이마에 얼음주머니를 올려주었다. 그리고 찬 수건으로 목덜미와 팔을 문지르며 조금이라도 열이 내려가도록 했다.
물을 세 번이나 다시 떠오고 얼음을 두 번쯤 갈아주었을 때쯤 우현의 숨소리가 조금은 잦아든 듯 해 재휘는 다시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손에 닿는 열기로는 정확하게는 어려웠지만 조금은 내려간 듯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약을 먹어야하는데.
“우현아, 좀만 있어… 내가 약 사올게”
깊은 잠에 들어있는 우현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재휘는 가방에서 지갑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오면서 보았던 약국에 들러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을 구매하고 슈퍼를 노려보다 결국 죽 집으로 들어섰다. 만들어줄까 했지만 자신이 없다. 소금 간을 조금 줄여달라고 말하며 죽을 주문한 재휘는 시계를 몇 번씩 보며 죽이 나오길 기다렸다. 포장된 죽이 나오자 인사도 생략하고 우현의 집으로 달렸다. 나오기 전에 살짝 열어둔 대문사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집에 들어섰다. 주방에서 쟁반을 찾아 죽을 꺼내 세팅 한 뒤 미지근한 물을 떠서 가지고 2층에 올라갔다. 우현은 아직도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이미 뜨뜻해진 수건을 다시 찬물에 적시면서 다시 이마에 손을 대자 확연히 열이 내린 것이 느껴졌다. 절대 흘리지 않을 것 같던 식은땀도 흐른다. 재휘는 고민하다가 우현을 깨우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먹고 약을 먹고 다시 자는 게 좋을 거다.
살짝살짝 흔들자 우현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살짝 눈을 떴다. 멍하게 천장을 바라보다가 인기척을 느낀 듯 시선을 옮긴다. 그리고 재휘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벌떡 일어나려던 우현이 소리 없는 신음을 흘리며 다시 풀썩 누웠다.
“그렇게 움직이지 마… 열이 높아.”
재휘는 우현을 부축해 등에 베개를 받쳐주고 앉혔다. 그리고 적당히 식은 죽 그릇을 내밀었다.
“자 먹어. 먹고 약 먹고 다시 자”
“……”
손에 들린 죽을 물끄러미 보던 우현이 다시 재휘에게 눈을 돌린다. 죽 한번 보고 재휘 한번보고, 계속 반복하던 우현은 이내 수저를 들어올렸다.
두 수저 정도 먹던 우현이 힘든 듯 수저를 내려놓았다. 가만히 보고 있던 재휘가 단호하게 말한다.
“얼마 안 되잖아. 다 먹어야 돼. 그 정도로는 감기약 먹으면 위만 상해. 빨리”
우현은 재휘를 바라보기만 할뿐 더 이상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의미 없는 둘의 눈싸움은 재휘가 한숨을 쉬며 끝났고, 우현의 손에서 그릇을 빼앗은 재휘가 그 옆에 걸터앉았다.
“자.”
재휘가 죽을 조금 떠서 우현의 앞에 가져갔다. 그러자 우현은 놀란 표정으로 재휘를 본다.
“빨리. 팔 떨어질 거 같아”
한 번 더 입에 갖다 대며 재휘가 말하자 우현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려 죽을 삼켰다. 그러자 재휘가 바로 한 수저를 떠 가져온다.
“자”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얌전히 재휘가 주는 것을 받아먹은 우현은 재휘가 더 이상 주지 않자 죽 그릇을 본다. 남김없이 자신이 다 먹어치운 깨끗한 죽 그릇을.
“약 먹어”
해열제와 종합감기약을 한 알씩 까주고 물 컵을 쥐어주었다. 알약두개를 뚫어지게 보자 재휘가 말했다.
“너 자는 사이에 사왔어. 너네 집에도 있겠지만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어서 먹어. 그리고 한숨 더 자”
우현이 약을 삼키자 물 컵을 쟁반에 내려놓고 우현을 다시 편하게 눕힌 재휘는 쟁반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우현이 재휘의 옷자락을 잡았다.
“……”
“…안가. 이거 두고 올게”
그러자 우현이 옷자락을 놓았다. 작게 한숨을 쉰 재휘는 죽 그릇과 컵의 설거지까지 마친 뒤 우현의 방에 올라갔다. 우현은 그새 잠이 들었다. 대야의 물을 한 번 더 갈고 깨끗한 수건을 우현의 이마에 올린 재휘가 조심스럽게 우현의 얼굴을 쓸었다. 감긴 눈… 오똑한 코, 열 때문에 상기된 볼… 그리고 자신의 입에 닿았던 입술…
조심스럽게 오가던 손길을 거둔 재휘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다섯시. 수업은 이미 애저녁에 마쳤을 시간이다. 학교로 돌아가긴 늦었으니 집으로 가야겠다. 아직 열이 완전히 내리지 않아 걱정이 되지만 호전되고 있으니 괜찮겠지. 실은 다 낫고 난 뒤 맨 정신이 된 우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급한 불을 끄고 보니 어서 도망가고 싶어진 재휘였다.
재휘는 나서기 위해 가방을 메고 다시 한 번 우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3일전의 그날이 생각났다.
설마…
“너 그날 비 맞은 거 때문에 병난거야…?”
죄책감이 스믈스믈 몰려왔다. 하지만 이내 우현의 방문을 나섰다. 우현이 일어나서, 학교에 오면. 그때 만나서 이야기 하면 된다.
해줄 말도 생긴 것 같았다. 확신은 없지만 고민하던 것의 답을, 이젠 알 것 같기도 했기 떄문이다.
왜냐하면…
우현이 아파하는 걸 보니 자신의 명치부근이 너무 아팠으니까.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우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 맞았다. 재휘가 우현의 간호를 한 날 이후 모의고사가 끝나고 3학년선배들의 수학능력시험이 끝날 때까지 우현은 나타나지 않았다. 재휘가 몇 번이나 우현의 집을 찾아갔지만, 집은 비어있었고 우현 역시 만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 아무런 답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이제는 겨울이 아니라고 발뺌하지 못 할 만큼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11월의 하순이 되었다.
“유재휘~! 오늘 야자 땡땡이 어때. 나는 학원 땡땡이치고”
“웬일로 은재 니가 바람을 잡냐?”
“뭐,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과묵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고 모범생 저리가라는 행실의 은재가 야자를 빼먹으라고 종용하다니, 이건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뜰 징조였다.
“뭐하려고. 공부나 해. 학원 안가냐? 우리도 얼마 안 남았다?”
“야, 아직 우리 1학년이다. 벌써부터 타이트하게 가면 정작 3학년 되서 쓰러져”
“말은 잘하지. 그래, 뭐 나쁘지 않지. 가자”
저녁을 먹고 자율학습시간에 공부할 거리를 정리하던 재휘는 책을 서랍 속에 다 넣어놓고 캐비닛을 잠근 뒤 가방을 챙겼다. 그러자 신난 성훈이와 은재도 가방을 싸들었다.
“반장~ 어디가~”
“우와 유재휘 땡땡이냐~”
“뭐? 재휘 어디 가냐?”
셋이 일어서 나가려하자 교실에 남아있던 몇몇이 재휘에게 장난을 건다. 귀찮은 듯 한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재휘가 받아친다.
“난 오늘부터 비행청소년이 되기로 했다”
뒤에서 와~ 하며 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세 명은 교실을 나왔다. 이미 짙은 어둠이 내린 운동장에는 불 켜진 코트위에서 열심히 농구를 하는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후식 겸 간식을 사와 왁자하게 떠들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교내 주차장을 거쳐 정문을 나서자 기분 나쁜 압박감이 사라진다. 왠지 모를 희열감이 몸을 감싼다.
“고등학교 와서 처음인데. 조퇴도, 심부름도, 뭣도 아니고 그냥 나오는 건”
“흐흐, 유재휘. 이 형님이 오늘밤 새로운 세계에 안내해주마”
누가 들으면 엄청난 것을 보여줄 것처럼 말하는 성훈을 웃어넘기며 재휘는 계속해서 걸었다. 안내해준다던 성훈이와 은재도 묵묵히 그 뒤를 따를 뿐 재휘를 잡지는 않았다. 마치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고 싶은 것처럼 빠르게 걷던 재휘가 드디어 멈춰 섰다.
“자. 이제 안내해주실까?”
-19-
성훈이가 재휘에게 안내한곳은 병원이었다. 그것도 이름난 대학병원. 거대한 병원의 정문 앞에서 멍하니 서있던 재휘가 입을 연다.
“뭐냐. 기대하라더니. 너 아파?”
“흠… 그래. 요즘 이 형님이 아프시다”
“뭐? 진짜아파? 병원 와야 될 정도야?!”
농담 삼아 말했던 재휘는 성훈이가 정말 아프다고 하자 깜짝 놀라서 성훈을 요리조리 살폈다. 그러자 성훈이가 재휘의 손을 잡아 자신의 머리에 갖다 댄다.
“머리가 많이 아프다”
“왜, 두통이야? 설마… 머리 쪽에…”
무슨 상상을 하는지 혼자 심각하게 어두워지는 재휘를 성훈이가 건져 올렸다.
“아니. 널 보면 내 두가 너무 아프다”
“뭐? 뭔 소리야”
“너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생각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내 골이 더 울린다고”
“……”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재휘는 미간을 찡그렸다. 성훈은 재휘의 손을 내려놓은 뒤 말했다.
“너 요 한달 동안 어땠는지 아냐?”
“……”
“엄마 잃은 개새끼 같더라”
“뭐 임마?”
“뭐 자식아. 정말 그랬어”
옆에 있던 은재가 거든다.
“너 우현이 사라지고 나서 힘들어 하는 거 다 보여. 억지로 웃는 것도 다보여. 우리가 너랑 하루 이틀 친구냐? 좀 솔직히 털어놓으면 좀 좋아.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엔 우리가 먼저 나서게 하냐.”
“……”
“710호다”
“뭐?”
“올라가봐”
“무슨 소리야.”
“가보면알아”
그 말을 남기고 은재는 성훈을 돌려세워 병원에서 멀어져갔다. 쫓아갈 새도 없이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재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710호…
설마.
[710호-성우현]
병실 앞에 쓰인 명패를 보자마자 재휘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상념들이 지나간다. 그날 감기가, 감기가 아니었던 걸까? 다른 위험한 병이었나? 자신이 약을 잘못 먹였나? 해열제랑 감기약을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건가? 아닌가. 죽이 잘못 된 건가? 아니면 자신이 가버리고 또 열이 올랐나? 한 달 동안 학교도 못 올 정도로 아팠던 건가? 나 때문인가? 비 맞은 거 때문인가? 내가 뿌리치고 두고 가서 그런 건가?
재휘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저 안에 자신이 찾던 사람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오히려 조금씩 재휘는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뒷걸음질 하던 재휘의 등이 벽에 닿았다.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병실 문이 드르륵- 하며 열렸다.
“……!”
“……!”
둘의 눈이 마주쳤다. 한손으로 문을 열고, 한손으로 링거가 걸린 걸이를 잡은 우현이 매우 놀란 듯 멈춰 섰다. 돌아서려던 재휘 역시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우현의 시선을 받아냈다.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움직인 것은 재휘였다.
“아… 어, 응. 애들이 가보라고 하길래, 왔는데, 어, 응, 너가 있는 줄 몰랐어, 그, 그러니까, 나 그럼 가볼게”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횡설수설 하던 재휘가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까지 이어지는 병원 복도가 이렇게 길었던가.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그것뿐이었나… 자신을 자책하며 걸어가던 재휘는 자신을 잡는 느낌에 흠칫 했다.
언젠가처럼 우현이 그를 쫓아와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재휘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어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가라앉은 우현의 눈빛이 그를 마주본다.
“으응? 왜… 가지… 말라고?”
-끄덕
우현의 고개가 망설임 없이 움직인다. 그리고는 재휘의 한쪽 손을 잡고 끌었다. 좋다 싫다 말할 겨를도 없이 재휘는 우현의 손에 끌려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우현이 문을 탁- 닫자 그제야 정신이 든다.
“왜, 왜? 하, 할 말이라도 있어?”
우현은 말을 더듬는 재휘를 가만히 보더니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근처에서 아무 펜이나 집어다가 굴러다니는 종이에 글을 쓴다.
[왜 피해]
재휘는 우현이 내민 종이를 보다가 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읽었다. 하지만 다시 봐도 이 말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 말이 맞았다. 그때서야 당황했던 마음이 가시고 제정신이 돌아온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라 터질 것 같다.
“피… 해?”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을 강하게 뿌리치고 싶었지만 예전의 일이 떠올라 차마 뿌리치진 못하고 우현을 올려보았다.
[지금 돌아가려고 했잖아. 나보고]
그래. 돌아가려했다. 너무 당황해서. 마주칠 줄 몰랐던 얼굴이 나와서. 아니 이름보고 알긴 알았지만 제대로 뇌에 입력이 안 된다. 명패의 이름은 봤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하지만 피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날 피한건 너잖아”
날이 선 말이 튀어나간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었는데. 우현을 만나면 할 말이 엄청 많았는데. 이런 말이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사과를 먼저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엔 화부터 내게 된다. 왜냐면…
[내가?]
자신은 그런 적 없다는 아주 멀쩡한 얼굴로 저런 말을 휘갈긴다. 재휘는 기가 찼다.
“한 달 동안 사라진 건 너잖아”
재휘의 말을 들은 우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급하게 뭔가를 적는다.
[오늘 몇 일?]
“11월 28일”
우현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한다. 그리고는 힘주어 잡고 있던 재휘의 팔목을 놓더니 침대에 주저앉았다. 이제 알 수 없는 건 재휘다. 대체 왜 날짜를 듣고 저렇게 절망하는 걸까.
“뭐, 뭐야. 불쌍한 척 하지 마. 나 정말 화났거든?”
재휘의 말에도 멍하니 있던 우현이 갑자기 캐비닛을 엄청난 속도로 뒤적이더니 한구석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낸다. 그리고 전원을 켜더니 뭐가 맘대로 안 되는지 벽에다 냅다 집어던진다.
“야, 왜 그래, 우, 우현아?”
재휘는 얼굴과 머리를 쓸어 올리는 우현을 보며 안절부절 못했다. 자신이 실수한 것일까. 날짜 같은 거 알려주면 안 되는 거였나? 그때 재휘의 눈에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우현의 목에 둘러진 붕대…
“우현아…”
이게 뭐야,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재휘의 손이 조심스럽게 우현의 목을 향했다. 가만히 허공을 노려보던 우현이 다가오는 재휘의 손을 탁- 하고 세게 쳐냈다. 그러더니 곧 놀란 듯 재휘의 손과 재휘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쳐내진 손을 반대쪽 손으로 감싸며 재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있었다. 우현에게 내쳐진 것보다 자신이 이런 냉정한 짓을 몇 번이나 우현에게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멍청히 서있는 재휘를 찡그린 얼굴로 보던 우현이 자신이 쳐낸 재휘의 손을 가져다 자신의 목에 갔다 대었다. 손을 뺏어가는 거친 손놀림과는 달리 매우 조심스럽게 얹었다.
“우현아…”
그리고는 떼지 말라는 듯 자신의 손을 겹쳐 잡은 우현은 한쪽 손으로 글을 적었다.
[목. 수술했어]
“수술?”
-끄덕
무슨 수술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재휘는 참았다. 한 달이나 학교도 나오지 않고 받은 수술이었다. 우현의 시간감각도 지금 문제가 있어보였다. 그렇다면… 결코 가벼운 수술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결론이다.
예민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에 목에 닿은 손을 빼려하자 우현이 강하게 잡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에 재휘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우현은 갑작스레 웃는 재휘 때문에 잔뜩 물음표가 달린 얼굴로 마주봐온다.
“매번 네가 내목을 만졌는데,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이상하다”
그 말을 들은 우현이 손을 올려 재휘의 목에 가져간다. 재휘는 기꺼이 다가가 내어준다.
아직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묻고 싶던 것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이대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재휘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곤 눈앞에 있는 우현을 보고 움찔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편하게 눈을 감았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모든 중고등학생들이 반기는 이른바 놀토. 어제 집에는 친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루 자고 가겠다고 말을 해두었다. 그리고 우현과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수다를 떨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1인실이라 다른 병실보다는 나았지만 다 큰 남자 둘이 한 침대에서 자려니 불편하지 않을 리 없는데도 둘은 잘만 잤다.
다시 눈을 떠 눈을 깜빡깜빡 정신을 차리던 재휘는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현은 아직도 곤하게 잠들어있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보니 오전 8시 30분. 휴일치고는 일찍 일어났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빠져나온 재휘는 커튼을 치고 창밖을 내려 보았다. 빌딩숲사이로 바삐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조침대에는 언제 갔다 뒀는지 우현의 아침식사가 놓여 있었다. 그걸 본 재휘가 살짝 얼굴을 붉힌다. 사내놈 둘이서 끌어안고 자는 꼴을 보였다니…
화장실에 들어가 대강 세수를 마친 뒤 나오자 언제 일어났는지 우현이 침대에서 앉은 채로 두리번대고 있었다. 그리곤 이내 재휘를 발견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쉰다.
“일어났어?”
-끄덕
“아침식사가 벌써 와있더라. 밥 먹어야지?”
이번엔 빠르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현은 검지손가락으로 재휘를 가리키더니 밥 먹는 시늉을 한다.
“아, 나? 난 괜찮아. 이따 집에 가서 먹으면 되는데 뭘”
-도리도리
우현이 절대 안 된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흐음… 밖에서 뭐라도 사올까? 넌? 꼭 병원식 먹어야해?”
-도리도리
“그럼 뭐먹고 싶어? 나가서 사올게”
우현은 고민하는 듯하더니 재휘를 불렀다. 재휘가 다가가자 재휘의 손을 당겨 손바닥위에 글을 쓴다.
[라면]
“뭐? 아침부터 무슨 라면이야. 다른 거”
우현이 또 고민하더니 천천히 손가락 글씨를 쓴다.
“앗 간지러워…ㅡ 음, 햄버거? 야… 장난하냐”
우현의 어깨가 웃는 듯 흔들리더니 다시 뭐라고 적는다.
“알았어. 어떤 김밥?”
[다]
“다 먹을 수 있어? 뭐… 알겠어”
재휘는 자신의 가방을 들어 지갑을 찾았다. 교복 자켓을 입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나서려 하자 우현이 자신을 다시 부른다.
“왜?”
우현은 자신의 짐을 뒤지더니 목도리를 찾아낸다. 그리고 재휘의 목에 둘둘 둘러맨다. 밀색 자켓과 아이보리색 목도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자신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는 우현을 가만히 보던 재휘가 말했다.
“벌써 목도리 안 해도 되는데”
재휘의 말에 반항이라도 하려는지 우현이 자신의 짐에서 위협적으로 장갑까지 꺼내어 흔들어댄다.
“하하, 알았어~ 하고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
병실 문을 꼭 닫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쉰 재휘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선다.
어제 밤 내내 함께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대화는 하지 못했다. 무슨 수술인지, 그때 왜 그렇게 아팠는지, 학교는 왜 못 왔는지, 자신에게 왜 연락한번 해주지 않았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왠지 그 대답을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냥… 무언가가 꽉 막혀서 그 질문들은 하지 못했다.
병원을 나서자 싸늘한 바람이 분다. 목도리를 하고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두리번거리며 근처의 김밥집을 찾았다. 마침 가까운 곳에 24시간 하는 김밥집이 있어서 잰걸음으로 향했다. 김밥 집에서 종류별로 한 줄씩 주문하니 7줄이나 된다. 뭐 한창 자라나는 고등학생이니 다 먹을 수 있겠지. 하나하나 새로 말아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재휘는 우현이가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김밥을 사서 나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컵라면2개까지 덤으로 샀다. 물론 이건 나중에 먹을 것이다.
두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엘리베이터 7층을 눌렀다. 뭔가 흥얼흥얼 노래가 나올 것만 같다. 그러고 보니 축제이후에 정신을 놓고 동아리연습도 잘 안간 것 같았다. 선배들에게 깨질 생각을 하니 꽤나 우울해졌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자신이 나갈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당장 수술실 잡아!”
“마취과 연락해. 당장 준비하라고”
다급하게 움직이는 그들 사이로 재휘는 710호 병실로 향했다. 병실문이 열려진 채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불안하다. 뭔가 이상하다. 김밥이 들어있는 봉지를 꾸욱 쥐고 재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들어오시면 안돼요!”
간호사 한명이 재휘를 막아섰다. 밀쳐져 몇 걸음 밀려나면서 사람들 사이로 병실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붉은 것이 보였다. 아주 붉은 것이 방금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시트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충격에 손에 든 것을 떨어뜨린 재휘는 그저 밀쳐지는 대로 물러섰다. 어지러운 광경속을 헤매이던 재휘의 시선이 어딘가로 고정됐다. 그 때 누군가 이동침대에 뉘어져 빠르게 병실을 빠져나간다. 목에 감긴 붕대와 환자복이 전부 붉게 물든… 우현이었다.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남은 것은.충격에 주저앉은 재휘와 바닥에 버려진 짓밟힌 김밥뿐이었다.
*어제...하루 건넜죠? 몸이 좀 안좋아서 일찍 쉬는바람에 휴재했습니다.
공지도 없었던거라, 사죄의 의미도 겸해서 두편올립니다.
*너의목소리도 이제 중반부를 훌쩍 넘어서갑니다. 빨리 완결까지 써야할텐데 걱정이네요.
*자세히는 나오지 않을테지만 본 소설에 포함된 의학적내용들은 전문적 지식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나름 실증적으로 쓰기위해 많이 알아봤지만 어려워서, 전문적내용을 거의다빼게 됐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주시면 좋겠어요.
*댓글달아주신분들, 읽어주신분들, 추천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즐거운 일요일이네요 ^^
첫댓글 우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ㅠㅠㅠㅠ 우현이 일어날거에요 ㅠㅠ
전문적인 의학적 내용이 없어도 읽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으니 이대로 해도 될거 같아요...
우현이 왜 갑자기 저렇게 됐는지 너무 안타깝네요.
얼른 나아서 둘이 알콩달콩 했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우현이 입원한거 성훈이와 은재는 아는데 왜 재휘만 모른거예요???
어서 비밀을 밝혀 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게요.
-뒤로가면 좀.... 설명불가해한 내용이 있어서요 아하하핳
성훈이와 은재만 아는건 아니고 재휘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게 맞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현이 어떻게 되는거야...우현아....
-금방 일어날거에요! 걱정마세요ㅠㅠㅠ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ㅠㅠㅠㅠ 우현이는 건강한 녀석이에요 벌떡일어날겁니다!
수술 부작용 ??아니죠 아닐거야 왜 그러세요 작가님 !우현아 안돼 ㅜㅜ
-뭐가 잘못되도 잘못되긴 한거죠...... 죄송해요 우현이 괴롭혀서 흑흑 ㅠㅠ
우현이어떻게되는거예요?갑자기 왜그런지~~ㅠㅠ
-죽....죽진 않을거에요! 걱정마세요...
우현이 어떻게 되는거에요?ㅠㅠㅠㅠㅠㅠㅠ안되.....이젠 말을 할수 있게 됬나 기뻤는데...ㅠㅠ
-죽진 않을거에요.... 걱정마세요! 말도 할수있을거라고 믿습니다~
우현이 우찌 되는 거에요??? ㅠㅠㅠㅠㅠ 담편 기다릴게요
-훌훌털고 일어나지 않을까요. 설마 이대로 죽...........................................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젬있게 보고가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흐음...설마 암인가요???
-으앗 목을 수술한 우현이가 갑자기 불치병에 걸린다면...... 전 소설 그만써야죠. 그런막장이라니 ㅋㅋㅋ 아니에요. 수술예후가 잘못된거라고 봐야겠죠?
새드앤딩인가요 ㅠ0ㅠ 흑흑..버러 중반이네요..다음편 기대하고 있을께요~
-전 새드앤딩을 싫어한답니다.................... 호호호. 언젠가 새드소설을 쓸지는 모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