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틈새
어제 오후부터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이 동시 장마권에 들어 간밤 우리 지역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날이 밝아온 유월 하순 월요일이다. 종일 비가 오락가락할 날씨라 바깥으로 나갈 생각은 접고 집에 머물렀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책이 있어 무료함은 면할 수 있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강의하는 팀 페리스의 ‘자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를 펼쳐 읽었다.
아침나절 집에 머물며 책상에 앉아 보내다 점심은 국수를 끓여 먹었다. 한 달 전 밀양 수산을 다녀오면서 그곳 명물로 통하는 ‘수산국수’ 면을 사 둔 게 있었다. 수산국수는 시중의 면보다 질이 우수한 지역 특산으로 희소성이 있다. 멸치와 양파를 썰어 넣은 국물을 먼저 끓여 놓고 국수 면을 삶아 건져 한 끼 점심을 때웠다. 고명은 번거로워 줄이고 곰취와 죽순 장아찌로 갈음했다.
이른 점심을 국수로 해결하고 식후 잠을 청했다. 작년에 퇴직 후 아침나절을 집에 머물러보기도 드물었고 낮잠을 자보기는 처음이었다. 현직 시절은 점심 식후 양치를 끝내고 의자에 등을 기대어 십분 남짓 쪽잠을 자기 일쑤였다. 퇴직 후는 매일같이 산천을 주유하기에 낮잠을 잘 겨를이 없었다. 자연학교 일과 후 귀로에 시내버스를 타고 오면서 짧은 시간 깜빡 졸았던 경우는 있다.
달콤했던 낮잠에서 깨니 오후 2시였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그친 소강상태였다. 접이 우산을 손에 든 채 창원천으로 산책을 가려고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우람한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하늘 높이 솟구쳐 위용을 자랑했다. 퇴촌교 삼거리에서 창원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나처럼 장맛비가 그친 틈새 산책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산책로 갓길에 조경수로 자라는 목백일홍은 꽃을 피우려고 몽우리가 생겨가고 있었다. 배롱나무로도 불리는 목백일홍은 장마철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한여름을 거쳐 가을 들머리까지 개화기간이 꽤 길었다. 목본에서 피는 꽃으로는 무궁화와 함께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 목백일홍이다. 산책로 길섶에 초본 금계국은 꽃이 저물면서 씨앗이 영근 꼬투리가 달리고 개망초꽃은 지천이었다.
창원천에 흐르는 물은 불지 않아 간밤 내렸던 비는 예상만큼 많이 내리지 않은 듯했다. 냇바닥에는 몇몇 종의 습지 식물이 무성했다. 노랑꽃창포가 시퍼런 잎줄기를 칼날처럼 세워 자랐다. 냇가 가장자리 물억새와 갈대는 뒤섞였고 수크령도 보였다. 냇바닥은 달뿌리풀이 엉켜 자랐는데 강수량이 많아 냇물이 불어나면 휩쓸려가도 왕성한 생장력으로 다시 잎줄기를 불려 자리지 싶다.
물웅덩이에는 둥근 잎을 동동 띄워 노란 꽃잎을 펼친 노랑어리연이 수면을 덮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는 왜가리와 쇠백로는 목을 길게 빼고 표적물을 겨냥했다. 창원천을 가로지른 징검다리와 교량을 차례로 지나 지귀동에 이르니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비치파라솔에 비닐을 감싼 과일 노점상이 보였다. 길섶에는 원추리가 주황색 꽃을 피웠고 붉은토끼풀은 잔디에 우점종으로 자랐다.
명곡 교차로 부근 반송천이 흘러온 지점에는 팔뚝보다 큰 잉어가 어슬렁거렸다. 파티마병원 맞은편 길섶은 당국에서 심어둔 코스모스가 너무 밀식된 상태라 모종을 솎아내야 하는데 때를 놓쳐가고 있었다. 백일홍이나 메리골드 새싹도 마찬가지였다. 창원대로의 용원지하차도에 이르니 산책객은 발길을 되돌려 가 뒤따라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현대로템을 거쳐 계속 나아갔다.
남천이 흘러와 창원천에 합류한 두물머리까지 내려간 봉암은 갯벌이 드러나지 않은 물때였다. 갯벌 가장자리 잎줄기가 무성한 갈대는 바람에 일렁였다. 창원천보다 물줄기가 굵은 남천 천변을 거슬러 올라 삼동교에 이르러 두산메가텍 앞을 지났다. 충혼탑 사거리로 향해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지나 원이대로를 건너 반송시장으로 갔더니 비가 와 저잣거리 오가는 이들은 한산했다. 2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