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180만 년 전 시작된 화산활동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한라산과 크고 작은 오름은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졌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제주도의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해 2010년 섬 전체를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했다. 한라산, 만장굴, 성산일출봉, 서귀포패류화석층, 천지연 폭포, 중문 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산방산, 용머리해안, 수월봉 화산쇄설층, 우도, 비양도, 선흘곶자왈, 교래삼다수마을 등 13곳이 지질명소다.
이 중 제주 수월봉 화산쇄설층(천연기념물 제513호, 이하 수월봉)은 화산학 연구의 교과서로 불린다. 성산일출봉의 정반대 쪽인 고산리 해안에 봉긋 솟은 야트막한 오름이다. 높이는 77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서 마주한 풍광은 들인 발품이 민망할 정도로 멋지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그 바다에 다소곳이 몸 담근 차귀도, 엉알길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해안절벽이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수월봉에서 바라본 엉알길
수월봉 정상에서의 풍경
차귀도
1만8000년 세월이 만든 화산체의 나이테
수월봉 지질탐방은 제주 최고의 일몰 명소인 수월봉 정상에서 차귀도선착장을 잇는 수월봉 엉알길을 따라간다. 수월봉 정상에서 내려와 수월봉탐방안내소를 지나면 길은 해안으로 바짝 다가선다. 길이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낮아 보이던 해안절벽도 조금씩 높이를 키운다. 해안을 따라 넓게 펼쳐진 수월봉 화산재 지층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수월봉 화산재
수월봉 화산재
수월봉은 수성화산체인 응회환의 일부다. 즉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솟아오르며 지층의 물을 만나 폭발할 때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낮고 넓게 쌓이면서 생성된 것이다. 성산일출봉도 같은 수성화산이지만 화구륜이 높고 경사가 가팔라 응회환이 아닌 응회구라 부른다. 제주도의 동서 양끝에 수성화산을 대표하는 화산체가 각각 자리한 셈인데, 아쉽게도 분화구를 포함한 수월봉의 많은 부분이 침식으로 유실돼 둘의 온전한 모습을 비교해볼 수는 없다. 현재 남은 수월봉은 폭발 당시 만들어진 화산체의 4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수월봉과 엉알길
성산일출봉
수월봉 화산재 지층은 사포로 문질러 도드라진 나이테처럼 또렷하고 선명하다. 마치 얇은 돌판을 촘촘히 쌓아 올린 것 같다. 이를 살펴보면 화산탄이 박혀 울퉁불퉁한 지층, 저각도로 기울어진 지층(사층리), 수평으로 발달한 지층(수평층리), 층리가 발달하지 않은 지층(괴상층) 등 다양한 형태의 지층이 관찰된다. 화산 분출물이 사막폭풍처럼 지표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가며 쌓이는 화쇄난류의 결과다. 화산탄에 의해 지층이 휘어진 탄낭구조(bomb sag)는 당시 폭발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준다.
수월봉 화산재 지층
해안절벽에 남은 역사의 아픔
수월봉 해안절벽은 우리의 아픈 역사도 품었다. 멋진 화산재 지층을 사이에 두고 엉성하게 들어앉은 두 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주인공이다. 갱도진지. 제주도에는 일제강점 말기에 일본군이 조성한 군사시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수월봉 화산재 지층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갱도진지도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갱도진지
일본군은 1944년 미군이 필리핀을 점령하자 제주도의 요새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결(決)7호 작전’이다. 일본 본토 부대와 만주 관동군 등 7만여 병력이 제주도에 집결했고, 제주도 내 370여 개 오름 가운데 120여 곳이 군사기지가 됐다. 수월봉 갱도진지도 당시에 생긴 깊은 상처다. 미군이 고산지역으로 진입할 경우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해 전함을 공격하는 일본군 자살특공용 보트와 탄약을 보관했던 장소다. 합판으로 제작한 일본 해군의 해상특공정인 신요(震洋)에는 250kg의 폭약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흉물스러운 갱도진지 앞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을 위로하는 건, 수월봉 해안에서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월봉 해안의 용암(현무암)
해안에 닿아 흩어지는 하얀 포말에 답답한 마음을 실어 보내고 걸음을 옮긴다. 옥빛을 머금은 바다에서 밀려든 거친 파도는 쉴 새 없이 검은 해변을 훑고 지난다. 수월봉 엉알길을 걷다 잠깐씩 걸음을 멈추게 되는 건 이때다. 해안으로 밀려든 파도가 검은 바위에 닿아 하얗게 부서지는 순간. 모래 고운 백사장에서 찰랑대는 그것과는 힘부터 다른 파도와 그 파도를 온몸으로 감당해내는 검은 바위의 당당함에 걸음은 절로 멎는다. 여행자의 걸음을 멎게 한 검은 바위의 정체는 용암(현무암)이다. 화산체가 집이라면 용암은 기초다. 수월봉 해안에 넓게 분포한 검은 바위는 1만8000년 동안 수월봉을 받쳐준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용암 표면에서 관찰되는 육각형의 균열은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절리다. 절리가 단면을 이뤄 기둥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주상절리라 한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주상절리로는 수월봉에서 멀지 않은 중문 대포해안의 주상절리대를 꼽을 수 있다.
용암에서는 절리가 관찰된다.
화산체가 흘린 눈물
효심 가득한 남매의 애틋한 전설이 깃든 ‘녹고의 눈물’은 갱도진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옛날에 병든 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수월과 녹고라는 남매가 있었다. 모진 고생 끝에 남매는 99가지 약초를 얻었다. 하지만 마지막 약초인 오가피를 구하기 위해 절벽을 오르던 수월이 떨어져 죽고 말았다. 수월의 죽음을 슬퍼한 녹고는 누이가 떨어진 언덕 위에서 몇 날 며칠을 목 놓아 울었다. 녹고의 모습을 본 마을사람들은 남매의 효심을 기려 이곳 언덕을 ‘녹고물 오름’ 또는 ‘수월봉’으로 불렀다.
녹고의 눈물
녹고의 눈물
녹고의 눈물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양도 제법 많다. 고산리 주민들에게 귀한 식수이기도 하다. 녹고의 눈물은 물이 잘 스미는 화산재 지층의 특성 때문에 생겼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화산재 지층으로 스미고, 지층을 통과한 물이 진흙으로 된 고산층(불투수성 지층)에 고여 밖으로 흘러나온 것. 녹고의 눈물을 지나면 엉알길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다. 수월봉 엉알길은 고산기상대나 차귀도선착장 어느 방향에서 출발해도 걷는 거리와 난도는 비슷하다.
산뜻하게 포장된 엉알길
수월봉 지질탐방로인 엉알길은 편의상 두 코스로 나눌 수 있다. 고산기상대가 있는 수월봉 정상에서 차귀도선착장을 잇는 구간이 1코스라면, 수월봉 너머 엉알과 화산재 지층에서 해녀의 집을 잇는 구간은 2코스가 된다. 수월봉 정상, 엉알, 화산재 지층이 바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엉알과 화산재 지층, 검은모래해변, 해녀의 집 등을 함께 돌아보기 위해서는 고산기상대에서 올레길 12코스를 따라 도로까지 내려선 뒤 노을해안로를 이용해 해녀의 집까지 가서 탐방을 이어가야 한다. 고산기상대에서 해녀의 집까지는 1km 남짓. 해녀의 집에서 엉알과 화산재 지층을 잇는 구간은 별도의 탐방로 없이 해안을 따라가는 코스여서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개별 탐방은 자제하는 게 좋다. 해녀의 집에서 엉알과 화산재 지층까지 다녀오는 거리는 왕복 2.4km 정도다.
해녀의 집-엉알-화산재 지층 구간
해녀의 집-엉알-화산재 지층 구간
당산봉 둘레길은 엉알길과 연결해 걷기에 좋다. 차귀도선착장에서 출발해 거북바위와 생이기정, 당산봉수를 거쳐 다시 차귀도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거리는 대략 4.5km 남짓.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초입 경사구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능선과 평지로 이뤄져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걸을 수 있다. 올레길 12코스 가운데 최고의 비경으로 꼽히는 생이기정이 포함돼 걷는 재미만큼 눈맛도 일품이다.
거북바위 전망대에서 본 풍경
거북바위 전망대에서 본 풍경
전체 구간이 부담스러울 경우 전망대가 있는 거북바위까지만 올라도 좋다. 거북바위 전망대에 서면 수월봉에서 차귀도선착장까지 방금 지나온 길이, 1만8000년 전 만들어진 화산체의 속살을 비집고 지나온 길이 눈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