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중생심(번뇌심)에서 천연의 청정부동한 본래의 불성로 환원본제 되었다는 뜻이로소이다.
따라서 覺人의 법위에서는 행주좌와 선정 아님이 없으며, 원론적으로 볼때도 본래 선정 아님이 없으나,
중생의 번뇌망상이 치성함으로써 이 선정이 미혹으로 마치 붕어가 어항속을 분주히 맴도는것과 같은 것일 뿐이로소이다.
선정을 통해서 삼매에 들려 하는 것은 전도된 소견이니, 거꾸로 찾지 마오.
수행인이 화두의심이 간절하면 그로써 화두삼매가 되는 것이며 그 화두삼매는 곧 선정으로 이어져 깨어있음이 되는 것이로소이다.
선정이라는 용어도 치우쳐 아시면 그를치는 것임을 알아야하는 것이니,
각인의 선정과 수행인의 선정이 다른것도,
본성실상의 선정의 뜻이 또한 다름도 반드시 가려 살펴야 할것이로소이다.
그리고 수행인은 반드시 명안종사를 참문하고,
신수봉행하며 닦지않으면 처연외도가 되기 쉽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임을 명심하기 바라오.
수행가운데의 선정은 누가 죽이려 한다해도 모르고 있는 것 당연하다 할 것이외다.
그러나 "수행이 참으로 깊어 정(定)가운데 있다면 귀신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다" 하는 뜻을 알아야 하는것외다.
감히 누가 그목을 취할수 있으리까? 물론 호법신장의 보호를 받고있게됨은 당연한 것이로소이다.
생사를 두려워해서 주변을 살피고 의식으로 살펴 깨어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선정으로서 깨어있음과는 천지로 벌어져 깨어있는, 분별심인 심의식 가운데 있는것이니
그런 수행으로는 미륵하생이라도 해탈과는 거리가 십만팔천리인 것이로소이다.
覺人의 깨어 있음은 항시 선정 아님이 없으니 논할 것이 없는 것이라
參學人의 깨어 있음을 일러드리겠소이다.
우선 어떻게 하면 깨어 있게되는 것인가?
화두를 놓지 않게 되면 곧 깨어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명해 드린다면,
사물에 응하고 묻고 대답함에 응해서 항상 自性을 여의지 않고 묻고 답하며 두두물물을 그러한 마음으로 살피신다면 곧 깨어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https://buddhajukbi.com/layout/res/home.php?mid=30&go=pds.list&pds_type=9&start=0&num=886&s_key1=&s_head=%ED%9B%88%EA%B5%90%EC%99%80%20%EA%B2%BD%EC%B1%85&s_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