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반지]
지난 주말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남해 해안도로를 따라
중간 중간 잠시 멈추기도 하면서 섬을 한 바퀴 주욱 돌았다.
여행 중 미조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많은 종류의 회가 있었지만 나이 드신 어머니가 먹기엔
그 유명한 멸치회가 딱이다. 아주 부드러우니까.......
어머니는 맛이 괜찮은지 자주 손이 그 쪽으로 움직였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우연히 어머니 젓가락과 내 것이
부딪치면서 어머니의 손가락에 분홍빛 구슬이 박힌 반지가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아닌가. 어... 어...
"엄마, 반지에 박힌 구슬이 수정이가?" 난 퉁명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내는 모른다." 하시면서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계셨다.
엄마의 손등엔 파랗고 굻은 선들이 거대한 龍처럼 꿈틀거린다.
거세게 몰아친 삶의 흔적이 짠한 손가락에 끼어있는 이 반지가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세 번째 반지다.
[첫 번째 반지]
어머니의 첫 번째 반지는
그 옛날 "엄마, 나 공부 좀 해야 되는데 책 살 돈이 없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어머니는 며칠 후 노란 봉투를 내밀며
"이거 밖에 없다. 니가 꼭 필요한 것만 사 봐라."
그런데 봉투를 내민 어머니의 손엔 전에 보였던 반지가 보이질 않는다.
어머니는 아무도 몰래 그분의 소중한 반지를 팔아 마련한 돈을 자식인
나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밀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때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아들아, 꼭 시험에 합격해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라고 빌었을 것이다.
[두 번째 반지]
어머니의 두 번째 반지는
난 삼십이 넘어 결혼을 했고 그때도 공부한답시고
이 절 저 고시촌을 방황하고 있었다.
내 나이 서른 여섯에 첫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아내도 나이가 있는지라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내는 사정상 자연분만 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아침 식사 후
파랗게 죽어가는 아내를 처남이 그대로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한 것이다. 산모가 우선이니 숨도 쉬지 않는 애는 버려둔체...
사실 큰 놈은 자연분만 하려고 정상보다 20여일이나 늦게 나왔으니..
인명은 재천이라 죽었다고 버려둔 애가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에게도 자식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힘든 줄 아는 어머니는
"병원비 있나? 제법 많이 나오낀데..." 의료보험이 안 되니까.
나는 "........ "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나, 이거하고 좀 더 보태서 아 하고 에미 퇴원 시켜라"
하시고는 나에게 또 다시 봉투를 내 밀었다.
회갑 때 동생들이 해 준 두 번째 반지를 어머니는 묻지도 않고
조용히 큰 손자를 위해 내놓으며 부담스러워 말라 하셨다.
언젠가는 그 사실을 큰 놈에게 얘기 해 줘야지.
얼마 전 나는 이 이야기를 조카와 동생에게 처음으로 얘기했다.
‘진짜가? 정말 그런 일이 있었나?’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 글을 쓰는 내 눈엔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해서인가? 아니면 무엇 때문에......
하늘이 있음에 해와 달·별이 있듯이,
부모님이 계시기에 나와 우리가 있는 것인데.
삶이 자신을 핍박하고 괴롭힐 지라도
어버이 날 우리 모두 부모님 모시고(아니면 이웃 어른 모시고)
저녁 먹고 노래방 가서 [부모]란 노래나 실컷 불러 봅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부모 되어 알아보리라.'
내가 부모 되어보니 부모님의 깊은 사랑 만분의 일 쯤 알 것 같은데.
울 엄마 올해 팔팔(88)이니 사시는 날까지 건강해......
엄마!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는 ‘어머니’라 불리우는 이름의 숭고함이요 위대함이리라.
- 어머니의 반지를 생각하며(2009년 5월 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