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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현은 부득이하게 기말고사를 보지 못했으므로 중간고사성적의 7~80%를 반영하는 것으로 기말고사 성적이 처리되었다. 덕분에 석차나, 성적자체는 좋게나오지 않았지만 학년을 유급하지는 않았다.
그 후 얼마 뒤 대원고는 겨울방학을 했고 세상은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학 후 바로 이틀 뒤가 크리스마스인 덕에 재휘는 오랜만에 성훈과 은재를 데리고 우현의 병실을 찾았다. 커다란 케이크와 각종 간식거리를 들고 찾아온 아이들은 상태가 많이 좋아진 우현과 함께 조촐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열었다.
1인실이지만 병원인 탓에 왁자지껄하게 놀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파티였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두 밤이 늦기 전에 돌아갔다.
-드르륵
성훈과 은재를 배웅한 재휘가 다시 병실 안에 들어섰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우현이 고개를 들어 재휘를 본다. 우현이 깨어난 지 2주. 그새에 우현은 혈색도 좋아지고 빠졌던 살도 보기 좋게 다시 쪄서 이제는 아주 건강해보였다.
“애들은 다 갔어. 어휴. 정신 하나도 없었다. 그치?”
-끄덕끄덕
이미 복도와 다른 병실은 점등을 했기 때문에 재휘도 병실에 들어와 우현에게 양해를 구하고 불을 껐다. 그리고 수면등을 켜자 들고 있던 책을 덮어 탁자에 놓는 우현이 보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재휘를 마주본다. 그 시선이 간질간질하게 박혀 들어와 피하고 싶었지만 우현이 먼저 다가와 앉으라며 손짓해 선수를 친다.
우현이 앉은 옆자리에 엉덩이를 내리자 갑자기 고요한 병실이 불편해진 재휘가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크리스마스 특선영화 같은 거안하나? 으음…”
티비가 켜지고 줄여진 볼륨 때문에 작은 소음이 생겨났다. 재휘는 이 병실에서 하루 이틀 있어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색한지 불만스럽게 생각하면서, 친구들이 시끄럽게 왔다갔기 때문이라고 괜히 속으로 투덜댔다. 그때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고만 있던 재휘의 손을 우현의 손이 덮어왔다.
계속해서 움직이던 화면이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화면 속에서는 요즘 한창 시청률이 잘나온다던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우현…아?”
재휘의 손을 잡고 리모컨을 뺏은 우현이 티비를 꺼버렸다. 그나마 있던 소음이 사라지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속에서 재휘는 점점 커지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우현이 들을까봐 걱정됐다. 당황스러움에 목소리도 떨려서 나간다.
“잘…려구? 피곤해? 잘까?”
차마 우현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재휘가 더듬거리며 떠드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현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 바람에 재휘가 우현에게로 시선을 돌린 순간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우…우현아?”
재휘의 손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 우현이 재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 간질거리는 행동에 재휘의 세차게 뛰던 심장이 쿵 떨어진다. 아무 말도 못하고 ‘어어…’ 하고 있는 재휘에게 우현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아래로 눈을 내리깔고 우현의 살짝 벌어진 입술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재휘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뜨고 있던 눈을 꾸욱 감았다.
-쪽
재휘는 볼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에 감았던 눈을 다시 번쩍 떴다. 그러자 한 뼘 정도 거리를 둔 우현의 얼굴이 보인다. 우현의 입술이 장난스럽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마치 ‘내가 뭘 할 줄 알고?’ 라는 표정 같아 재휘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밝은 낮이었다면 분명 새빨갛게 얼굴이 익은 얼굴을 들켰으리라.
“뭐…뭐야!”
자신을 놀렸다는 생각이 든 재휘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우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보다 우현이 먼저 재휘를 품에 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신 재휘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현은 품에 안은 재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밭은 숨을 내쉬었다. 목을 따라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재휘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소름이 돋았지만 망설이던 팔을 들어 우현을 마주 안았다. 그러자 우현이 재휘를 더욱 당겨 안았고 맞닿은 가슴으로 서로의 심장소리가 공명하며 울린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이 손끝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며 재휘는 조심스럽게 우현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가슴 한가운데에 충만함이 차오른다. 이 따스함이, 이 떨림이, 이 행복이,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사랑일수 있을까.
예전에 결론은 나있었다. 비록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마음을 먹고나서 차분하게 이야기할시간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끌어오고 말았지만.
이렇게나 먼 길을 돌아왔고, 많은 시간이 걸렸으니 이제는 직접 녀석에게 전해줄때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녀석이 자신의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녀석의 마음을 받아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래도록 우현을 안고 있던 재휘가 조심스럽게 우현을 밀어냈다. 그러자 싫다는 듯 조금 반항하던 우현이 어쩔 수 없이 작은 한숨을 내쉬면서 재휘를 놓아준다.
“있잖아 우현아”
“……?”
“고마워”
“……??”
“정말… 고마워”
이렇게 건강해져서 고마워. 이렇게 내 눈앞에 있어줘서 고마워. 날 기다려줘서 고마워. 날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날 좋아해줘서 고마워…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그 어떤 말도 완성하여 뱉을 수가 없었다. 이 순간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재휘에게는 마음 자체가 벅차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당황한 것인지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우현의 뺨에 재휘가 조심스레 쓸었다. 우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어둠속에서도 확연히 보여 재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올려 우현에게 다가갔다.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움직이지 않는 우현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은 재휘가 조심스럽게 우현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언젠가 우현이 했던 것처럼 새털같이 가벼운 키스를 한 재휘가 천천히 떨어지며 눈을 뜨자 놀란 얼굴 그대로 굳어져버린 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에 재휘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우현의 얼굴이 구겨지는가 싶더니 거칠게 재휘의 입술을 덮쳤다.
우현의 한쪽 손은 재휘의 얼굴을 더듬다 뒷목을 감쌌고, 한손은 재휘의 연신 얼굴을 쓰다듬었다. 재휘는 그 격렬한 반응에 당황해 굳어 있다가 자신의 입술을 깨무는 우현의 이에 놀라 우현의 팔을 덥석 잡아챘다. 하지만 우현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금세 재휘의 입속으로 혀를 침범시켰다. 조급해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우현의 키스는 달콤하고 부드러웠고 재휘도 놀라 긴장했던 몸을 서서히 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우현의 키스에 응해갔다.
서로의 입술이 농밀하게 얽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새빨갛게 부어오를 때까지 이어지던 키스가 우현이 재휘의 아랫입술을 쪽 빨아들이고 떨어지며 끝났다. 천천히 눈을 뜨고 코가 맞닿을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둘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쁜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재휘의 귓불을 만지작거리던 우현의 손끝이 내려와 재휘의 입술을 한번 쓸었다. 반짝거리는 발갛게 익은 입술이 굉장히 유혹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재휘가 적막을 깨고 입을 열었다.
“첫… 키스였어”
“……?!”
그 말 만을 한 재휘는 재빨리 양손을 들어 우현의 목을 감아 끌어안았다. 마치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리고 싶은 것처럼. 반사적으로 재휘의 몸을 끌어안은 우현은 박장대소를 하고 싶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제부터 유재휘의 모든 ‘처음’을 자신이 가질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웃음이 간절했다.
넘쳐흐를 것 같은 행복함에 당장이라도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재휘에게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고맙다고, 내게 와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참고 재휘를 끌어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다.
해가 바뀌고, 우현이 재수술을 마친지 딱 한 달이 되던 날. 우현은 드디어 퇴원을 할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받았다. 한번 재발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보름정도면 충분했을 입원기간이 한 달까지 길어졌던 것이다. 덕분에 우현의 수술 예후는 굉장히 좋았고, 아직 말을 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천천히 훈련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는 희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우현의 상태가 좋아지자 임시로 서울에서 내려와 계시던 우현의 부모님이 다시 일 때문에 올라가시게 되었고, 우현을 돌보는 일은 재휘가 도맡았다. 혹시 모를 비상시에 대비해서 우현이 퇴원하면 재휘의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사실 우현의 부모님은 우현을 서울로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우현이 단호하게 거부하는바람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재휘는 부모님을 따라가서 보살핌을 받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은 꺼내보았지만 자신역시 떨어지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기에 겉치레나 다름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뭐하고 있어, 얼른 따라와!”
퇴원수속을 마치고 오랜만에 밖에 나온 우현은 바깥공기에 대한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자취방에 끌려가 짐을 싸고 재휘를 뒤따라야 했다. 적어도 겨울방학동안에는 재휘의 집에서 지내기로 말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자취방에 있는 겨울옷이란 겨울옷은 죄다 챙겨 나와야 했다. 물론 우현은 적당히 가져가고 필요하면 왔다 갔다 하려고 했지만 재휘가 한사코 나서는 바람에 우현과 재휘의 양손에는 무거운 짐이 들려있었다.
그러게 적당히 챙기지….
손이 묶여 전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만 삼킨 우현은 뒤뚱뒤뚱 걸어가는 재휘의 뒷모습을 바지런히 쫓았다. 꽤나 무거운지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영차!’ 하며 짐을 추켜올리는 모습이 끙끙대는 어린애같이 귀여워 보인다.
“왜 웃고 있어?? 내가 웃겨?”
따라오는 걸음소리가 늦어지자 눈꼬리를 쫙 찢으며 돌아본 재휘가 키득대며 웃고 있는 우현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걸 본 우현이 재빨리 도리질을 한다.
“엄마말대로 택시 부를 걸 그랬나봐. 지금이라도 부를까?”
1월의 찬 겨울바람이 부는 밖을, 그것도 무거운 짐을 든 채로 한참을 걸었으니 힘들만도 했다. 침울하게 중얼거리는 재휘의 코끝이 새빨갛게 얼어있었다. 우현은 재휘의 말에 고개를 잽싸게 끄덕이며 짐을 내려놓았다.
“우와, 동작 빠른데… 어디… 콜택시 번호가…”
냉큼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우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재휘도 짐을 한쪽구석에 세워두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손도 꽁꽁 얼어서 핸드폰을 조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 우현아?”
가만히 재휘를 보던 우현이 자신의 짐 꾸러미 중 하나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내들고 재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휙 채어갔다.
“아…”
놀라서 손을 빼려던 재휘는 자신의 손을 감싸고 호오- 하며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주는 우현의 행동에 몸을 굳혔다. 손끝에 닿아오는 우현의 따뜻한 온기도 좋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재휘는 얼굴에 홧홧하게 열이 오른다.
“으앗, 괘… 괜찮은데. 너도 춥잖아!”
그제야 정신이 든 재휘가 손을 빼려하자 우현이 더 강하게 손을 잡더니 한 번 더 입김을 불어넣고는 더 손을 당겨 손등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뭐, 뭐…!”
고개를 슬쩍 올리며 씩 웃은 우현이 주머니를 뒤적여 까만 가죽장갑을 꺼내들었다. 아까 짐 꾸러미에서 찾은 장갑이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당황한 재휘가 굳어져 있는 사이 우현은 장갑을 꼼꼼하게 재휘의 손에 끼워 넣었다. 완전히 들어가자 한 번 더 손목부분을 정리해준 우현이, 달아 오른 건지 추위에 얼어붙은 건지 빨갛게 익은 재휘의 양볼을 감싸 쥐었다.
“우현아…”
얼어붙은 얼굴이 사르르 녹으면서 재휘의 얼굴에 슬쩍 웃음기가 떠올랐다.
“고마워. 너도 추울텐데…”
-도리도리
“빨리 가자. 집은 따뜻할 거야. 내가 밥도 해줄게”
알아들었다는 듯 우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재휘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다시 얼굴을 매섭게 치는 찬 기운에 재휘는 이곳이 길거리라는 것에 입만 다셨다.
전화한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가 도착했고, 몇 분 걸어간 것이 무색하도록 둘은 재휘의 집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와.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까 편하게 해도 돼”
낑낑거리며 짐을 엘리베이터에 싣고 재휘가 사는 12층까지 올라오자, 재휘가 재빠르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다.
“비밀번호는 들어가서 알려줄게. 별로 안 어려우니까 한 번에 외울 수 있을 거야”
다시 읏쌰- 하고 짐을 들어 올린 재휘가 집안으로 사라지는 꽁무니를 보고 있던 우현이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한 뒤 현관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탕-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힌다. 흘낏 뒤를 돌아본 우현은 신발을 벗고 천천히 집안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복도를 따라 걷자 널찍한 거실이 나타났다. 들어간 재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우현의 뒤쪽에서 재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현아 이쪽~”
지나왔던 되돌아 조금 걷자 작은방하나가 보였다. 그 안쪽에 재휘가 들고 간 짐을 내려놓고 우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가 네가 쓸 방이야. 원래 우리 형껀데, 나가 살고 있어서 집에 잘 안 들어와”
재휘의 형이 쓰던 방에는 싱글침대와 책상, 그리고 작은 책장이 전부였다. 옷장은 붙박이 장이었는데 그것도 재휘가 열어젖힌 덕에 알 수 있었다.
“침대시트는 새로 갈아둔 거니까 그냥 쓰면 되고, 책상도 그냥 써. 무선인터넷 되니까 노트북에 연결해줄게. 에또… 옷장은 이건데. 형이 옷은 거의 다 가져가서 많이 비어있거든. 한쪽에다 형 옷 밀어놓고 사용하면 될 거야”
원래 자주 청소를 해둔건지, 우현이 온다고 새로 청소를 한건지 방은 매우 깨끗했다. 바닥에 굴리던 짐 가방들을 내려놓기가 미안할 정도로 깔끔한 모습에 우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왠지 다시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표정은 뭐야. 우리 집 청소담당은 나니까 걱정하지 마. 엄마아빠는 손도 안댔어. 내가 너 온다고 완전 열심히 청소했어. 나 잘했지?”
청소담당이라는 얘기는 조금 의외였지만 자신을 위해 열심히 했다고 칭찬을 해달라는 모습이 귀여워서 우현은 재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곤 내려둔 짐을 풀기 시작했다.
“거의 다 옷이니까 옷장에 정리해 넣고, 혹시 옷걸이 같은 게 모자라면 얘기해. 나는 점심 준비하고 있을게”
끄덕이는 우현을 확인한 재휘가 방을 빠져나가고, 우현은 가져온 옷들을 하나하나 옷장에 걸었다. 그리고 비어있는 서랍에 속옷 등을 정리한 뒤 책상에 다가갔다. 정말 살림살이는 전부 재휘의 형이 자취방으로 가져갔는지 책장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철학적인 제목을 가진 몇 권의 책과 소설책이 전부였고, 책상위에는 스탠드하나와 액자하나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트북가방을 들고 책상에 가져간 우현은 덜렁 책상위에 놓인 액자를 집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인지, 대원고 교복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남자와 얼마 전에 보았던 재휘의 부모님, 그리고 조금은 앳되어 보이는 재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재휘 형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인 듯싶었다.
우현은 재휘의 형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그저 지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재휘보다 3살이 많다는 정도밖에 몰랐다. 사진속의 그는 재휘보다는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사납기보다는 샤프한 이미지라서, 언뜻 보면 순해 보이지만 화를 내거나 정색하면 무서울 정도로 싸늘해 보이는 재휘의 얼굴과 꽤나 닮아있었다.
조심스럽게 액자를 내려놓은 우현은 노트북을 꺼내 책상위에 올려둔 뒤 가져온 책들을 대충 책꽂이에 꽂아 넣었다. 슬슬 밖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밥솥이 끓는 밥 짓는 소리부터, 달그락거리는 분주한 소리까지. 한동안 자취를 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입원해서는 더더욱 느낄 수 없었던 따스함이 마음속 깊은 곳부터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대강의 정리를 마친 뒤 짐가방을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하는데 재휘가 우현을 불렀다.
“밥 먹고 해!”
그 소리에 가방을 한쪽구석으로 밀어둔 우현이 거실로 나갔다. 거실과 이어진 부엌에 셔츠소매를 걷고 바쁘게 움직이는 재휘의 뒷모습이 보였다. 식탁위에는 각종 반찬들과 따끈한 김이 오르는 밥이 놓여 있었고 가스레인지위에는 보글보글 찌개가 끓었다.
“나왔어? 앉아 그쪽에”
우현이 자리에 앉자 커다란 장갑을 낀 재휘가 냄비를 들어 재빨리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장갑을 벗어 휙 조리대위로 던져놓더니 우현의 맞은편에 앉았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지는 않아서. 그냥 김치찌개로 했어. 괜찮지?”
-끄덕끄덕
“많이 먹어”
마치 평가를 해달라는 듯 눈을 반짝이는 재휘의 모습에 피식- 한번 웃은 우현이 숟가락을 들고 찌개를 맛봤다. 맛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더 괜찮은 맛에 우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때? 괜찮아?”
-끄덕끄덕
정말 맛이 괜찮다는 듯 크게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이는 우현을 보며 재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마주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재휘도 밥을 먹기 시작하자, 아침부터 짐 싸랴 옮기랴 고생했던 둘은 말은 안 해도 꽤나 허기졌었는지 대화도 없이 밥만 먹었다. 식탁위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접시소리만 울렸다.
*자축!!!!!! 드디어!!
*일단은 완결까지 다썼습니다! 조금 손봐야 할부분이 있지만..... 일단은 마지막점을 찍었습니다.
벌써 아이들을 떠나보낸거같아서 허하네요 ㅠㅠ
하지만 여러분과 다시 끝까지 달려야겠죠?!
*읽어주신분들, 댓글달아주신분들, 추천해주신분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첫댓글 재밌어요 ㅎㅎ 응원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퇴원했네요^^다행이예요~~ㅎ 이제 한집에서 같이살게됐네요~ 달달한모습이 나올려나 벌써부터 흐뭇해져요^^
-그럼요 . 건강하니까요 우현이는! 같이 살기도 하겠다- 둘이 염장을 팍팍질러줘야할텐데요... 그쵸?
잼나요~ㅎㅎ
-감사합니다 ^^ 다음편도 재밌게봐주세요~
벌써 완결까지ㅜㅜ 이제야 키스했는뎅ㅜㅜ
-사귀자마자 키스했으니 빠른편이지요! (????) 과연 저 부끄럼쟁이 녀석들이 완결까지 얼마나 진도를뺄지 기대해주세요 ㅋㅋ
드디어 키스 ㅋㅋㅋ 아제한집에 사내요
-다들 키스쪽으로 초점이 ㅋㅋ 재휘네집에 더부살이하게된 우현입니다~
보기좋다!!!
-엄마미소 지어지시나요? 호호호홋 한창 우현재휘달달모드네요
우현이 거의 회복해서 정말 다행이네요.
기왕이면 혼자 사는 우현이네로 병간호 한다는 맹한 소리하면서 들어가면 얼레리꼴레리도 생기지 않을라나 ㅎㅎㅎㅎㅎ
너무 노골적인 상상인가요?
아무튼 다행이예요.
벌써 완결까지 다 쓰신거예요? 끝나면 많이 아쉬울것 같아요.
이거 마치고 좀 쉬시다가 다른거 들고 오실거죠? 제발 그래 주세요.
몇몇 재미있게 글 쓰시는분들은 계속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편도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다음편 기대할게요.
-아무래도 미성년자니까요. 재휘부모님이 허락해주실리가 없죠 ㅋㅋ 물론 이벤트는..... 더많겠네요
역시 단둘이란 설정은 많은상상(?)을 불러일으키는군요 ㅋㅋㅋㅋ
차기작은...........
정말 장담못하겠네요. 내년 봄에나 올리려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젬있게 보고가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아...다행이네요...
-드디어 둘이 사귀게 되었답니다. 정말 다행이죠!!
한동안 바빠서 못왔더니 이렇게나 많이 올라왔네요~ 아웅!! 역쉬~ 한동안 같은집에 사니 어떤일이 또 있을지~ ㅋㅋㅋㅋ
-밀린편에도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정말 감사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