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주남저수지
엊그제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주춤한 유월 하순 화요일이다. 장맛비 사이로 산책을 다녀오려고 아침 식후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 소하천을 따라 걸으니 회사로 출근하려는 이들이 지정된 통근버스 승차 지점에서 줄을 서 있었다. 원이대로로 나가 동읍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타려니 거기는 경남도청 서부 청사로 출근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서 통근버스를 기다렸다.
나는 본포로 가는 30번 녹색버스를 타고 충혼탑에서 창원대로를 둘러 명곡교차로에서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었다. 동읍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나 주남삼거리에서 고양과 석산을 지난 용산에서 내렸다. 용산은 용(龍) 자를 붙인 지명답게 물과 깊은 연관인 마을이다. 북쪽의 산남저수지와 남쪽의 주남저수지가 수문을 사이로 연결된 곳의 들판 마을이다.
예전에는 초등학교가 있기도 했는데 폐교된 지 오래되었지만 환경단체에서 생태학교로 바꾸어 묵히지는 않는다. 용산마을에서 주남저수지 산책로 데크를 따라 걸으니 저수지 가장자리는 넓은 잎을 펼친 연이 분홍색 꽃망울을 달고 나와 꽃잎을 펼쳐가고 있었다. 단감나무가 자라는 밭뙈기로 내려가 연꽃을 피사체로 삼아 폰 카메라 사진으로 담았다. 아득한 저수지 수면도 함께 찍었다.
용산마을의 야트막한 멧부리를 돌아서 둑길을 따라가니 내 키보다 높이 자란 무성한 물억새가 바람에 일렁였다. 넓은 들판으로 물길을 튼 배수장엔 내수면 어로작업을 하는 선착장이 나왔다. 남녀 화장실을 두 마리 오리가 마주 앉은 형상으로 만든 쉼터 정자에 신발을 벗고 올라 한동안 머물렀다. 몇몇 지기들에게 아까 연꽃과 함께 주남저수지 풍경을 담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다.
날마다 지기와 초등 동기생 단톡으로 보내는 시조를 한 수 준비해 놓았다. 오늘 아침 ‘왕원추리’는 넘겼고 내일 보낼 ‘주남지 홍련’을 남겼다. “속진과 거리 두는 제 본디 성정 좇아 / 주남지 수면 가득 연둣빛 둥근 잎새 / 청정한 기운을 받아 꽃대에다 모은다 // 영롱한 이슬 맺힌 연분홍 꽃봉오리 / 눈대중 헤아림은 다섯 겹 감싸 안아 / 여기가 연화장일세 가던 발길 멈춘다”였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비가 와 우산을 펼쳐 썼기에 젖은 채 들고 다녔다. 정자에 올라 쉬면서 젖은 우산을 펼쳐 두었더니 그새 거의 말라갔다. 장맛비 틈새 햇살이 비치니 더 뜨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바람이 불어와 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아득한 주남지 둑길을 걸으니 맞은편 한 젊은 여성이 뜀박질로 달려와 스쳐 갔다. 중년을 넘긴 산책객도 두서넛 마주쳤다.
봄날에 꽃이 화사했을 유채밭은 새로운 꽃씨를 뿌려 싹이 트고 있었다. 아마 여름에 잎줄기를 바삐 키워 가을에 꽃을 피울 코스모스 싹이지 싶었다. 꽃밭 가장자리는 코스모스처럼 하늘거리는 기생초가 군락을 이루어 노란 꽃을 피웠다. 재두루미 쉼터에서는 그냥 지나지 않고 걸터앉아 쉬었다. 광대한 호수와 같은 수면도 수면이거니와 둑 아래 벼가 자라는 드넓은 들판도 볼만했다.
용산에서 주남저수지 둑을 북에서 남으로 걸어 낙조대에 이르니 아주머니급 할머니들이 여럿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아마 아침나절 장맛비가 주춤해 날이 개자 예정에 없던 나들이를 나온 이들인 듯했다. 길섶에는 이른 봄에 꽃을 피운 괭이밥이 뒤늦게 꽃을 한 번 더 피웠다. 거기는 노랑나비 계열의 얼룩무늬인 표범나비가 팔랑거리다 나에게 곁을 내주어 폰 카메라에 담아봤다.
탐조대와 생태학습관을 지난 가월마을 들머리에 이르렀다. 동판저수지를 거쳐 자여로 들어 우곡사에서 정병산을 넘을까 싶었다. 아니면 무점마을에서 덕산으로 나가 남산리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 지인을 찾아가 볼까도 싶었다. 어디선가 점심을 때우고 오후까지 걷기는 뙤약볕이 뜨거울 듯해 귀가를 택했다. 이번에 신설된 좌석버스 3000번을 탔더니 곧장 정병산터널을 넘어왔다. 23.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