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바다와 섬 이야기

[멋쟁이필]

     

바다, 그리고 섬 

 한여름이다. 태양이 훅훅, 들볶는다.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쾌하고 짜증스러운 계절이다. 이럴 때면 언젠가 들려봤던 바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피서는 바다가 제격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바다는 단순히 피서지만을 제공하는 장소는 아니다. 인간의 근원적 향수를 일깨우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고향인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바다를 여성 대명사 She로 받는다. 한자의 바다 해(海)에도 어미 모(母)가 들어 있지 않은가.
 파도가 출렁이는 어느 바닷가의 절벽에 섰을 때, 문득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원초적 향수에서 비롯된 귀소본능인지도 모른다. 모성애에의 그리움 같은 것일 게다.
 바다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항구로 발길을 옮기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세상잡사에서 벗어나 연락선에 몸을 싣는다. 배는 선수로 물살을 가르고, 선미로는 맥주 거품처럼 시원한 흰 포말을 내뱉으며, 상쾌하게 달린다. 기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바다 물빛, 괭이갈매기가 우웽우웽-! 소리치며 날개 터는 모습, 물짐승이 검은 등을 번쩍이며 해면 위로 솟구치는 자태, 모두가 일상의 권태로부터 일탈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그를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섬에 무작정 하선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바다는 섬에서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 섬은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규암이 파도에 씻겨 다기한 모습으로 서 있고, 청갈치 빛으로 시나브로 어둠에서 깨어나는 섬. 물안개가 해면 위를 기고, 그 너머로 아득히 펼쳐지는 수평선. 형형색색의 해조류 사이로 물고기가 유영하는 섬. 해파리가 둥실 떠간다.
 게다가 바다에 명줄을 걸고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우직하고 투박하지만, 그래서 순박한 인심이 또한 좋다. 척박한 땅에 소출이 적은 곡식을 심고, 간혹 심통 부려 애를 옥죄는 바다와 싸워온 그들이지만,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바다처럼 넉넉하다. 그들이 갓 건져 올린 펄펄 파닥이는 생선을 회쳐 놓고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그네들과 바다를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그때 문득 떠오를 것이다. 내가 미워하고 싸우며 갈등을 겪던 사람들. 그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연습이었다고. 그들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아집에서 비롯된 오해의 산물이었다. 이제 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저 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것이라고.
  나의 마음은 벌써 항구로 달려가고 있다. 목포도 좋고 마산도 좋다. 아니, 가까운 연안부두라면 어떠랴. 배를 타고 훌쩍 떠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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