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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져 가신 예수님(4)
행 1:6-14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 설 교 >
오직 성령이십니다
행 1장 8절 / 김삼환목사
성경에는 두 복음의 책이 있다고 합니다. 두 절의 요절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는다고 약속해 주신 구원의 약속입니다. 두 번째 약속은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나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면 구원이 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성도,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성령의 은혜를 목마르게 사모합니다. 항상 성령의 은혜를 갈급하게 찾고 구하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 없이, 도움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소원이 있습니다. 기다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가 금년에도 5만명이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사채를 쓰는 시민들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사채를 쓰고 있는데 거기에 53%는 천만원 미만의 사채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일생동안 그 천만원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자가 197%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얼마나 고율이자입니까? 천만원 빌려오면 1년에 이자만 천5백만원 이상 갚아야 되는 겁니다. 어떻게 갚겠습니까? 빌릴 때는 집의 남편이 위기에 와있고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빌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은행의 절차를 밟아서 빌릴 기회가 없는 겁니다. 너무 급한 일이 있는 겁니다. 또 어려운 일이 있어서 피할 수 없어서 사채를 빌렸는데 빌린 다음에는 거기에 눌리는 겁니다. 저도 많은 우리 교인들의 그런 상담을 했습니다. 3천만원 빌려왔는데 3억이라고 하는 돈이 이자로 다 나갔고 아직까지 원금은 늘어나고 있다라는 겁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자율이 이렇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빚진 사람을 완전히 건지기 위해서 구약성경에는 면제년이라는 해를 하나님께서 정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율법은 너무 인간적으로 고려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잘 살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법이 율법입니다. 그래서 면제년은 7년마다 돌아옵니다. 내가 남에게 돈을 빌리면 7년 되는 해만 가면 그 해에 완전히 탕감이 되어버립니다. 왜 그러느냐? 하나님께서 “너, 남에게 빌려줄 때 어려운 사람 빌려주어서 갚을 길이 없으면 너는 다시 받지 말아라.”라는 겁니다. “그 대신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다.”라는 겁니다. “너는 같은 동족이지 않냐. 그 사람이 빚의 종이 되지 않냐.” 우리가 육체의 종이 되기도 하지만 빚이 있으면 물질의 노예가 또 되어 버립니다. 물질의 노예나 육체의 노예나 비슷합니다. 다 시간, 생명, 바쳐가지고 빚을 갚으려고 하니 얼마나 어렵냐는 겁니다. 너는 7년째는 받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돈이 있는 사람이 머리를 굴립니다. 거기에 무엇이라고 말씀을 합니까? 내년이 7년인 해에는 금년에 안 빌려줄 거라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받을 기회가 없으니까. 그래서 빌려줬다가 연말까지 못 갚으면 안 되니까 3년 전 같으면 받을 기회가 3년이나 있으니까 가능한데 만약에 내년에 안 갚으면 어떻게 하냐 해서 안 빌려주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너를 저주하겠다.”라는 겁니다. “너는 너의 형제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그렇게 싫으냐?”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은 정말 돈이 없어 빚진 사람을 불쌍히 여기기를 바랍니다. 돈을 떼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그래서 남에게 빚을 졌을 때도 그 집에 가서 밥 그릇 같은 것은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문고리까지 빼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빼가는 겁니다. 이불까지 다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무슨 옷을 입고 잡니까? 자야 일을 하고, 먹어야 그 사람이 돈을 벌어 갚을 수 있는데 그렇게 잔인하면 안 된다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이 있어도 잔인한 부자 되지 말고 손을 펴서 나누어 주십시오. 죽어가는 사람 건져내는 일에 돈이 쓰여지면 그같이 돈을 잘 쓰는 것이 없습니다. 잘 먹고 배부는 것만 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 살리는데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소원이 많이 있습니다. 빚 진 사람은 빚 벗는 것이 소원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사람은 자녀가 잘되는 것이 소원입니다. 건강이, 행복이 소원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런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런 소원은 이루어져도 또 문제가 있습니다. 천만원 빚 갚았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산 건너면 또 산입니다. 물 건너면 또 물입니다. 천만원 갚았다고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성령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겁니다. 성령이 함께 하실 때 빚도 벗을 수 있고 병에서도 건짐 받을 수 있으며, 저주에서도 건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아서.” 너가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가정을 괴롭히고,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모든 저주에서 우리는 이겨낼 수 있고, 일어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리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에스겔 36장에는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게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서 30절은 “그 후에 내가 내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우리의 하나님께서 말세에 내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말씀 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의 말씀이며,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인류의 역사와 우주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획하고 계십니다. 지도가 다 그려져 있습니다. 게놈 프로젝트와 같이 이미 지도가 다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때가 되어 부르셨습니다. 그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인도하여 가나안에 가서 나라를 건설하여 다윗을 세우시고, 앞으로 다윗 같은 온 인류의 참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스라엘 왕국과 비교할 수 없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멸망에서 우리를 건지시며,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다 구원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게놈에 다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인체에만 게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게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섭리대로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주님은 “내가 간 다음에 성령을 보내어 줄 것이다.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들은 성령을 사모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40일이 지나서 주의 약속을 기다리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친히 지시해 주신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므로 이 땅에 교회가 탄생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줄로 믿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령에 의해서 모여지고 성령에 의해서 시작되며, 성령에 의해서 운영됩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성령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성령이 이끌지 않고, 인간에 의해서 운영이 되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약하고 부족한 것 같아도 주의 성령이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로 하나 되게 하시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고 영적으로 날마다 우리를 지켜주시며, 보호해 주시고 길러주십니다.
제가 10 여 년 전에 옐로우 스톤이라는 공원을 가보았습니다. 옐로우 스톤은 미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원, 세계에서도 아름다운 공원입니다. 그래서 공원에 갈 때에 제가 집회한 목사님 내외하고 저희 내외하고 같이 여행사에다가 예약을 했습니다. 여행을 할 때 여행사에다가 예약을 하면 돈이 1/3밖에 안 듭니다. 제가 비행기 타고 차 가지고 가서 하면 고생도 많고 알지도 못하며, 그러니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효과는 없습니다. 여행은 여행사에다가 의뢰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여행사에 의뢰를 하니까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월요일 아침 8시에 LA공항 한쪽 코너에 아메리칸 에어라인 그쪽에 있는 전화박스 뒤로 모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내외가 그리로 시간이 돼서 갔습니다. 둘씩, 셋씩 모이는 겁니다. 하나도 우리는 모릅니다. 30명이 하나도 모르는데 거기 와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겁니다. 거기에 교인들도 있을 테니까 저는 가능하면 혹시 제가 목사인지 알면 여행 중에 불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자도 쓰고 선글라스도 끼고 가서도 뒤에 앉았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말을 하면 저도 힘들고, 목사님이 옆에 있다면 일주일 동안 힘듭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제가 생각 하면서 제일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를 지났는데 앞에서 수군거리는 겁니다. 꼭 김삼환 목사님 닮은 것 같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닮은 것 같다는 겁니다. 수군수군 거리는데 저쪽에서도 그런 것 같다고 자꾸 그러는 겁니다. 말하는 것을 보니까 더 이상 숨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이틀 지나 나와서 “오리지널 김삼환입니다.”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며칠 동안 잘 하고 왔습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어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성령에 의해서 모이는 겁니다. 강남에 있는 분도, 강북에 있는 분도, 여기에 보면 춘천서도 오는 교인이 많고, 청주에서도 오는 분도 많습니다. 몇 년 동안 한번 안 만났지만 이분들이 열심히 나옵니다. 제 힘으로 청주에 있는 분을 오라고 해 보십시오. 오겠습니까? 강원도 행성이 있는 분을 제가 오라고 해서 오겠습니까? 그분들의 농장일이 얼마나 바쁜데 그래도 매주일 여기에 나오는 것은 제 힘이 아닙니다. 누가 모으십니까?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를 성령이 모아주셔서 교회라는 에클레시아를 만들어 주십니다. 모인 다음에도 누가 이끌어 갑니까? 모인 다음에도 계속해서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세상 사람은 내가 세상을 산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알고 보면 마귀에 의해서 이끌려 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내가 술집으로 간다?” 그것은 자기의 생각이지 우리가 보면 마귀에 의해서 술집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내가 도박판으로 간다?”, “내가 음란한 창녀를 굴로 간다?” 그것은 자기가 가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마귀에 의해서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이고, 교회에 나오는 것도 “내가 간다?”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서 이끌려 오는 겁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교회에 나가도록 모든 면으로 밀어주시고 이끌어 주시며, 함께 하시므로 여기에 온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성령을 빼면 안 됩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나를 인도하실 이는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을 의지해서 살아야 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며, 성령을 사모하며 살고, 성령의 뜻을 항상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한강에 자기가 간다?”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보면 “내가 목매어 죽었다?” 아닙니다. 자기 정신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탄에 의해서 목을 매는 겁니다. 마귀에 의해서 물에 빠져 죽는 겁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 내 뜻이 아닙니다. 사탄이 파괴시키는 겁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믿음으로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내 힘이 아닌 성령이 주시는 은혜요, 성령이 주시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유럽 사람들의 최고의 꿈과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잘사는 선진국은 어디에 맞추어서 사는지 알려드릴까요? 우리도 이제 잘 살게 되면 어디에 맞추느냐? 선진국 사람들은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느냐? 하나입니다. 여행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은 온 나라가 휴가가 깁니다. 모든 시민들은 1년 내내 알뜰히 살뜰히 모아서 다른 데 안 씁니다. 그렇게 아낍니다. 그리고 몽땅 어디에 쓰느냐? 여행에 가서 다 씁니다. 한 주일 여행은 유럽 천지에 한 나라도 없습니다. 최하가 한 달 입니다. 두 달, 석 달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모아가지고 여행을 하는데 씁니다. 인생의 제일 행복, 제일 기쁨은 여행에 있다라는 겁니다. 왜 그런지 또 알려드립니까? 여행이 왜 좋습니까? 내 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100% 여행사가 이끌어줍니다. 얼마나 책임지느냐 하면 비행기 마지막 돌아올 때 티켓도 다 끊어줍니다. 짐도 다 붙여줍니다. 안 해 주는 것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미안해 가지고 호텔에 내려 내 가방은 내가 끌어가야 되겠다 그러는데 몰라서 그렇습니다. 가방까지 다 가져다줍니다. 손가방도 다 놓고 다녀야 됩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밥 먹는 것 내 모든 발걸음 계획은 그분들이 다 짜가지고 가장 좋은 코스로 만들어 안전하게 재미있게 즐겁게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도록 끝까지 도와줍니다. 여자들이야 얼마나 좋습니까? 화장만 하면, 하루일이 그것입니다. 밥을 합니까? 반찬을 합니까? 수건까지 다 바꿔줍니다. 침대도 안 핍니다. 여행 안 해 보니까 전달이 잘 안 됩니다. 침대도 다 그분들이 갈아줍니다. 베개도 다 갈아줍니다. 하여튼 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까지 다 가져다줍니다. 몽땅 다 해 줍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곳에 갑니다. 이 지구에 가장 좋은 곳을 보니 얼마니 즐겁습니까? 이 세상을 같이 살면서 그래서 유럽은 여름이 되면 파리가 텅 빕니다. 한국사람, 중국 사람만 와가지고 전부 얼른 거리고 돌아다닙니다. 그 사람들은 다 떠나갑니다. 길거리마다 여름휴가 때면 다 버리고 가 수많은 개가 돌아다닙니다. 여행에다 맞추는 겁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가서 버스를 타고 가는 분에게 물어보니까 “몇 개월 됐냐?” 그러니까 “석 달 됐다.”고 그럽니다. 일생동안 돈을 모아가지고 그것입니다. 제일 초점을 여행에 맞추는 것입니다. 한해에 맞추고, 몇 년을 모아가지고 그렇게 맞추는 것이 선진국 문화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들은 즐겁게 살아가고 기쁘게 여행을 합니다. 오늘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인데 우리 교인들이 왜 행복합니까? 왜 교인들이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즐겁게 삽니까?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겁니다. 이 세상을 잘 아시는 가이드는 성령 밖에 없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성령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교인의 삶은 이 괴로움 많은 세상, 환란 많은 세상을 항상 찬송하며 살고 기쁨으로 살며, 걱정하지 않고 살고 감사함으로 살며,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27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렐루야! 성령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측에 여기 앉아 계시는 분, 강막감 권사님 사위이고, 아들들 딸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어제 장례식을 했는데 9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끝까지 교회에 잘 나오시고 저를 사랑하시며, 지난 목요일에 돌아가셨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침을 잘 잡수시고 그다음에 안아달라고 그래가지고 안으셨는데 딸그닥 소리도 안하고 웃으면서 돌아가시더라는 겁니다. 요사이 ‘99881233’ 그러는데 말이 그렇지 그렇게 살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99세 되도록 누가 인도하셨느냐? 성령이 인도하는 겁니다. 우리의 삶을, 이 세상을, 가이드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 처음 모르는 세상을 살지, 알고 인도할 분이 어느 학자 어느 과학자가 어느 능력 있는 지도자가 인생의 길을 알고 가르쳐 줄 사람이 한명이나 있습니까? 성령만이 우리의 앞날을 아십니다. 성령에게 강막감 권사님을 맡기니까 성령이 이끌어 주시고, 수많은 권력이 다 무너졌지만 어수룩한 우리 교회가 27년 동안 무너지지 아니한 것은 성령이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맡기면 여러분의 가정을, 여러분의 일생을 맡기면 여러분의 일생을 지켜주셔서 찬송하며, 이 어두운 세상, 환란 많은 세상에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 줄로 믿습니다. 성령은 능력이십니다. 성령은 나의 갈 길을 다가도록 책임져주시는 스승입니다. 어머니입니다. 지도자이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강남에 사는 어떤 분이 저에게 식사대접을 해서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분은 강남의 큰 병원 원장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그럽니다. “목사님! 저는 19살 우리 딸이 우리 병원에서 암에 걸려 죽었습니다. 내가 현대의학이 이렇게 발달하고, 이렇게 능력 있고, 내가 이 병원에 있으면서 몇 개월 동안 얘를 치료하면서 인간의 능력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인간의 능력이 이것을 넘을 수 없구나. 길이 없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의학이 우리의 길을 다 인도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권력이 우리의 길을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지상에 히틀러 같은 능력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러나 자기 길이 막혀서 99.9% 지지 받던 국민이 다 떠나가고 권총으로 자살해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기 아들들이 현장에 있으니 구속됐습니다. 제가 그때 검찰에 높은 분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바로 그때 아니까 그랬습니다. “그런 것 좀 도와드리세요. 그것 좀 못 도와 드립니까?” “목사님! 제가 왜 안 도와드리려고 그러겠습니까? 그러나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도저히 길이 없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사람이 누구를 돕는다라는 겁니까? 여러분이 누구의 도움을 받으면 성공을 하겠습니까? 오늘날까지도 가장 능력이 있는 분들이 함정이 더 많습니다. 오히려 지난 주일에 말씀을 드린 호빗족 같이 약하면 피할 길도 많습니다. 적으니까 숨을 곳도 많은데, 벌써 힘이 있으면 마귀 공격에 그냥 구멍이 다 뻥뻥뻥 뚫어지는 겁니다. 힘으로 승리할 생각을 마십시오. 돈으로 승리할 생각을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이 여러분과 한 평생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황중선 집사님, 자이툰 부대 사단장이지 않습니까? 한 달 전에 귀국했습니다. 이제 사단장이 1년 반 만에 바뀌었습니다. 제가 작년 9월에 다녀왔지 않습니까? 9월에 그 사단에 박 장로님하고 참모총장 하시던 김진영 장로님하고 다녀왔습니다. 가보고 놀란 것은 황 집사님이 사단장인데, 매일 새벽기도 나와서 두 시간을 쿠르드족 영혼을 살려달라고 기도 하고, 이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는 겁니다. 세상에 이라크보다 위험한 곳이 없는데도 1년 반 동안 이만한 사고 하나 안 나는 겁니다. 그런데 딱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바로 두 주 전에 쿠르드족의 폭탄테러가 바로 그 부대 앞에서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서 30명이 죽었고 50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전 세계 뉴스에 다 나가고, 바로 지난주에는 무엇이 났습니까? 그 안에 장교가 또 자살 했습니다. 자살했는지 무엇인지 모르는데 방송에 계속 나옵니다. 여기에서 전부 가고, 국방부에서 가고, 조사단 가고, 보십시오. 황 집사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도와달라고 가이드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이 사단을 관리해 주시고 지켜주시며, 안전하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 도움을 바라는 것이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면 인생은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영적피조물입니다. 육의 문제도 영으로 해결해야 되고 영의 문제도 영으로 해결해야 되며, 영적으로 성령이 떠나가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여러분의 가정에 평강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는 길을 지켜주십니다.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그 부대 안전하게 1년 반 동안 아무 일 없다가도 한 달 안에도 한순간에 이것은 세계가 뉴스를 다루지 않습니까? 자이툰 부대니까, 이라크니까 얼마나 또 큰 사고입니까? 부대에도 그런 사고 일어나면 지휘관이 책임을 지니 얼마나 어렵습니까?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일어나면 여러분이 책임을 지니 얼마나 힘이 듭니까? 우리도 교회에 왜 나옵니까? 새벽기도 왜 나옵니까? 주님에게 내짐을 맡기는 겁니다. 내 앞날을 맡기는 겁니다. 오늘 가이드를 해 달라는 겁니다. 내 사업의 짐이 무거우니까 좀 져달라는 겁니다. 주님이 짐을 져주시면 우리는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내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며 근심에 싸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날 구해 주리 주예수시니 오직예수♬ (찬송가 363장)
누가 우리를 도와주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여러분의 인생 남은 생애를 백년을 살던, 10년을 살던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에게 맡기면 예수 그리도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완벽하게 도와주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기적적으로 나옵니다. 제가 교인들 얘기를 들어보면 1분 전에 나와서 거기서 살고, 한 순간 한 순간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의 성령이 늘 도와주십니다. 항상 지켜 주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성령은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로 큰일을 하게 하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늘 사모해야 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참 삶을, 가치 있는 삶을, 아름다운 삶을 주셔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온유와 겸손하게 하시며, 사랑과 기쁨과 소망을 넘치게 하셔서 신명의 천국이 찾아옵니다.
저는 원주 수양관에 우리 교회 집사님이 감자를 보고 “목사님 고구마입니까?” 서울 사람, 진짜 이렇게 무식할 수가. 감자, 고구마를 분리를 못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그렇게 모릅니까? 감자 잎하고 고구마 잎은 잎이라고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시골 사람이, 농촌에 농사짓는 사람이 항상 기다리는 것이 비입니다. 1년 내내 비가 자주 와야 됩니다. 꾸준하게. 비가 안 오면 농사 시작이 안 됩니다. 밭농사도 안 됩니다. 논농사도 안 됩니다. 논은 벼, 밭에는 곡식을 고루고루 채소를 심을 때 비가 와야 됩니다. 그래서 밭을 갈아놓고도 어떤 해에는 한 달, 두 달 비를 기다리는 겁니다. 비가 안 오면 안 됩니다. 비가 안 오면 논도, 밭도 금이 다 갈라지고 딱딱합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흙이 비가 안 오면 돌덩어리 같습니다. 그렇게 딴딴하고 갈라지는 겁니다. 사람이 지식이 있고, 아무리 물질이 있어도 성령이 임하지 아니하면 사람은 메마르고, 딱딱하고 강퍅하고 금이 갈라집니다. 형제간에도 갈라집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갈라집니다. 부부간에도 금이 납니다. 사랑과 감사가 없습니다. 대화하기 싫습니다. 만나기 싫습니다. 이야기하기 싫다라는 겁니다. 왜?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성령의 영적인 피조물이기 때문에 영적을 것을 제외하고 물질만 가지고 우리가 멋있는 인생을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 사회가 유물주의지 않습니까? 영을 빼버리고, 영이 없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이라는 사람이 로켓트 타고 가서 “하나님이 없다. 망원경으로 봐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영을 어떻게 눈으로 보는 것만 세상입니까? 생명이 망원경으로 보입니까? 사랑이 망원경으로 보입니까? 그래도 사랑은, 생명은, 마음은 있는 겁니다. 마음이, 양심이 망원경으로 보입니까? 마음을 촬영한 사람이 있습니까? 성령은 나와 함께 하시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영으로 지음 받은 것을 항상 믿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메마른 땅입니다. 그래서 비가 안 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 결국 비를 기다리다가 안 되면 지하수를 퍼 올립니다. 밤새도록 물 퍼는 소리가 들립니다. 불을 켜놓고, 퍼 올려야 되겠습니까? 오늘 현대인들은 물을 퍼서 행복하려고 하니, 처음에야 물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가뭄을 못 넘어섭니다. 부부간에도 연애할 때에도 물이 많습니다. 너무 넘쳐서 탈입니다. 그러나 금방 가뭄이 듭니다. 20일만 비 안 오면 그대로 가뭄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1년에 10번 이상은, 20번 이상은 비가 계속 와주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농사는 안 됩니다. 한 번, 두 번 인생에 비가 왔다고 그래서 다 되느냐? 아닙니다. 계속 비가 와야 됩니다. 인생은 끝나는 날까지 비가 와야 됩니다. 성령의 단비가 와야 됩니다. 비가 안 오니까 금이 가고, 비가 안 오니까 강퍅해 집니다. 딱딱해 집니다.
이번에 이천시에 모두 와 돼지를 한 마리를 가져다 놓고 네 다리를 그 지도자들이 묶어 당겼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잘 살고 지성인들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는 일이 살아있는 돼지 다리 네 개에다가 끈을 묶고 서로 당겨가지고 찢어 죽이는, 여러 사람 앞에서 사람이 할 일입니까? 그렇게 현대인들 잔인합니다. 무시무시합니다. 그래야 잘난 줄 압니다. 여러분! 운동권이 왜 오래 못가는 가는지 아십니까? 강퍅해서 정복은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은 잡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다 떠나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운동권에 있는 분들이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겁니다. 제가 이스라엘을 다녀왔는데 ‘하마스’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단체인데, 백성들의 마음이 다 떠나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민족도 강퍅한 마음에 있는 분들, 가장 강해야만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 악랄한 사람들, 속히 빠져나와야 삽니다. 누가 돼지 다리 잡아당기는 것을 오래 보고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성령만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내 마음에 평안과 사랑, 고운 마음을 줍니다.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은 성령이 오셔야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여러분을 오늘 옥토를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성령이 여러분을 새롭게 하셔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갈급한 내 영혼을 충만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찬송가 172장 같이 한번 부릅시다.
♬1.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2.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3.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4.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후렴)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사랑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 이미 성령이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성령이 함께 하시고, 우리 교회도 성령이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가끔가다 성령이 함께 하심을 져버리고 내 힘으로 내가 잘나서 성령의 역사를 거역할 때마다 늘 시험 들고 어려움이 옵니다. 남은 생애 길이길이 우리의 신령한 내 영혼의 가이드이신, 저 하늘의 영이신 성령의 충만하심이 저와 여러분, 이 민족의 가이드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충만으로 증인이 되는 교회
행 1장 8절 / 이상호목사
오늘은 부활후 둘째주일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 표어 5번째로 전도를 생활화하자는 말씀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특별 훈련을 받았습니다. 기도 훈련도 받았고, 전도 훈련도 받았습니다. 어려운 사람 구제하는 섬김 훈련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나라의 왕으로 군림하셔서, 온 세계를 호령하는 유대나라로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으로 등극하시기만 하면, 유대나라도 독립되고, 제자들은 그 덕에 한자리 차지할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도 누가 예수님 우편과 좌편에 앉느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퉜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누가 예수님 왕국의 실세가 되느냐하는 싸움이요 갈등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나라의 독립과 한자리하고 싶다는 그 현세적인 야망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6을 보면,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이까 하니……"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작별하기 위해서 감람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님과 작별하는 그 엄숙한 순간에도, 제자들은 평소부터 꿈꿔 오던 현세적인 야망을 내버리지 못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그 엄숙한 순간에도 현세적인 야망과 유대의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사역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역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에 혼란을 겪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역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셨을까요. 오늘의 본문을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 노릇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 1번의 사역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성경공부보다, 기도, 봉사, 구제보다, 증인 노릇을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의 형편을 보면 교회 성장률이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보도에 따르면 8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성장률이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교회성장은 거의 멈추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단 한가지 이유는 성도들이 전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체 여러분과 이 교회는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이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오늘 날 교회는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넘치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일들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교회를 통해서 생명을 공급받아야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살맛이 나야 하며, 인생의 의미를 교회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인생이 더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는 창립 24주년을 맞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앞으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만 번지르르 한 교회,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듯한 교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란 어떤 교회입니까?
첫째로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입니다
피터 와그너는 ‘내가 신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7가지 능력 원칙들’ 이란 책에서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최근에 현대 교회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거나,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지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역동적인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는 일곱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성령의 사역적인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둘째, 전투적인 예배 즉 영적 전쟁의 승리가 체험되는 예배가 드려진다는 것.
셋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넷째, 기적적인 치유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탄이 쫓겨가는 축사 사역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능력있는 풍성한 기도가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새로운 수준의 영적 전쟁이 나타나 하나님의 나라를 널리 확장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교회를 신사도적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이 신사도적 교회란 한 마디로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사실 교회의 모든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을 때 일어납니다. 교회 일을 사람들의 힘으로 해 보겠다는 발상입니다. 막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오르신 기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께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있던 9명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해 보려고 애를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러 몰려든 군중들 앞에서 여간 망신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정말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오시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종용히 주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주님처럼 하지 못했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이것이 교회가 취해야할 방법입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적 방법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매사에 무릎꿇고 기도하고 기도 안에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가 주도하며 진행하여 나가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하여 역사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미국의 스탄 톨러와 알란 넬슨이 쓴 “별 다섯 개 짜리 교회”(Five Star Church)란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호텔등급을 무궁화로 표시하지만 세계적으로는 별로 표시합니다. 별이 3개면 호텔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을 갖추게 되고, 4개면 특급 호텔이고, 5개면 초특급호텔로 최고 수준의 호텔을 의미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회를 호텔과 비교했습니다. 별이 세 개 짜리 교회가 있고, 또 네 개 짜리 교회가 있고, 그리고 다섯 개 짜리 최고 수준의 교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되려면 건물이나 시설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때부터는 서비스의 질이 문제입니다. 투숙객들이 정말 최상의 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한 쉼을 만끽할 수 있을 때 그 호텔은 최상의 호텔인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의 수준은 건물이나 모이는 수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서비스의 질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오늘날의 교회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우리 교회도 최고 수준의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만족하시고 기뻐하실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평안을 누리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로 서로가 섬김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기득권을 주장한다든지, 누군가가 주도권을 장악하려한다든지, 누군가가 높아지려고 한다면 거기에 충돌이 생기고 갈등과 아픔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 높여주고, 자기 부족함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이해하며 진정한 마음으로 서로 섬길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상의 교회가 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별 다섯 개 짜리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배인에서 벨 보이,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호텔 종업원들이 철저하게 봉사정신으로 무장된 최고의 호텔처럼 모두가 사랑과 섬김의 정신으로 교제하여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사랑으로 서로 섬겼습니다. 사랑하기에 자기 시간을 희생했고, 자기의 소중한 물질을 드렸고, 사랑하기에 땀을 흘리며 봉사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의 수고가 좋은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사랑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사랑으로 교제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를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만들기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교회입니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이면서도 정작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숭배하면서 왜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그는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가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 가운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영국 선교사가 있었는데 간디는 그와 매우 친했고, 그에게 전도 받고, 설교도 듣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간디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안내위원들이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그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 후로 그는 교회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속화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인수의 많고 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자랑해야 합니다.
4. 증인이 되는 교회 - 전도하는 교회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입니다. 특히 부활의 증인입니다. 당시 로마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부활했다고 말하는 것은 박해를 받는 원인이었습니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전도하심 바랍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말로, 삶으로, 물질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아무리 커도 죽은 것은 힘도 없고 값도 없습니다. 고기는 산 고기가 힘있고 값이 있습니다. 죽은 고기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의해 변하는 것입니다. 죽은 고기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커도 죽은 고기는 떠내려 갈 뿐입니다. 교회가 작고 신자의 수가 적어도 진정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가 되어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방법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하여 삶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자선단체가 아닙니다. 영혼을 살리는 영적 병원입니다. 그들에게 물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복음 밖에 없습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될 때 사회는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교회는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할 때마다 나의 이름을 내기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교회창립 24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변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며,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일에 열심을 다해 섬기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적 활력으로 비상하는 교회
행 1장 8절 / 강용규목사
며칠 전에 저는 기독교방송국의 종교부 담당 기자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현재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첫 번째 대답은 지금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기독교가 개교회 중심주의인데다, 기독교의 구심체도 하나가 아닌 둘로 분리되어 있어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 힘을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 기독교는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인 KNCC와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둘로 나누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두 조직이 중요한 사안을 결정할 때면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기 보다는 둘로 나누어져 힘을 내기 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대답은 기독교가 신비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시대에 흔들림 없는 원칙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적당히 타협하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친 기독교의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에 시대를 앞서며 시대를 밝히던 우리 기독교가 지금처럼 힘을 잃은 때도 없는 듯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창립 32주년을 맞이했습니다. 32주년을 맞으며 저는 지난 한주 내내 우리 교회가 “예수님을 추락시키지 않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뒤바꿔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두려움에 방문을 굳게 닫아 벌벌 떨던 제자들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보며 고난을 받기 싫어 숨어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으로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하던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하루에 3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고,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향해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말하자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엇이 제자들을 이렇게 바꾸게 했을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령이었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자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가, 성령 받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세상의 역사는 변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책임이 바로 유대인 너희에게 있다고 말했을 때,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가운데 “어찌할꼬”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회개할 때 그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탄생이요, 초대교회 부흥이었습니다.
우리는 믿노라 하면서도 세상의 일을 더 큰 일로 여기며 살 때가 많습니다. 직장의 일이 큰 일이고, 직장 상사가 큰 사람이고, 나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며, 예수님을 작은 분으로 주님의 일을 작은 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일이 작은 일이라고 여겨지더라도 작은 일에 충성하게 될 때 여러분은 다시금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가 다시 비상하려면 베드로전서 4장 1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세상 의 것으로 갑옷을 삼지 말고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 한신교회는 성령으로 옷을 입고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기도는 우리 교회를 영적 활력으로 가득하게 하며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은 더러운 그릇에는 임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즉 남종과 여종들에게 약속대로 물 붓듯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창립 32주년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과거의 모든 죄들을 벗어버리고 깨끗한 그릇에 성령을 충만히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에 아직도 감동으로 남는 ‘미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션에는 로드리고 멘도사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노예를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 때문에 자기 동생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그러고 나서 가브리엘이라는 사제를 통해서 끊임없이 예수 믿기를 권유받습니다. 멘도사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이 세 나라 국경에 있는 이과수 폭포 꼭대기에 과라니 족속들이 하나님 믿는 아름다운 마을로 떠나게 됩니다. 그가 이과수 폭포 언덕을 등에 잔뜩 짐을 지고 올라갑니다. 그 짐 안에는 과거에 자기를 살게 했던 칼, 방패, 그리고 자신을 보호했던 모든 장비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등에 지고 가다가 쓰러지고, 밑으로 떨어지곤 합니다. 짐이 밑으로 떨어지면 다시 내려가서 그 짐을 다시 지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등에 밧줄로 묶여 있는 짐을 칼로 내리쳤습니다. 그 짐이 저 수백 밑에 있는 폭포에 빠집니다. 그 짐이 떨어지고 난 후 멘도사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난 후 이전과는 달리 얼굴에 웃음을 띠게 됩니다.
우리도 죄를 벗어버리고, 세상에 믿던 것을 내리고 주님을 바라볼 때 성령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할 줄 믿습니다. 한신의 성도 모두가 성령의 능력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 받아 증인 되라
행 1장 8절 / 박찬길목사
사람들이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할 때에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먼저는 유행형이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자가 누구이고 내용이 어떤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베스트셀러이니까 그냥 사는 겁니다. 사실 유행형은 책을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둘째는 제목형이 있습니다. 제목이 멋있으면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문학형의 제목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명령형의 제목을 좋아한답니다.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마지막으로 실리형이 있습니다. 책의 이곳 저곳을 살피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서점에서 서론을 모두 읽습니다. 요즘은 프롤로그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서론에는 저자가 책을 기록한 목적이 나와 있잖아요. 이것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알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실리형에 속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 의도가 무엇일까? 이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알게 되어서 말씀대로 사는 것이 훨씬 쉬워질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QT를 배울 때에 묵상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데, 묵상을 깊이 하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도 말씀 묵상을 깊이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깊이 할수록 하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깨닫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정확히 알 수만 있게 된다면, 신앙생활을 반듯하게 할 수가 있고, 예수를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는 성령강림절기를 지내고 있는데, 오늘은 성령강림절 열 번째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기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성령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절기에는 성령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요. 일반적으로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왜 보내주셨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왜 성령을 보내주셨을까요? 제자들은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훈련받았는데, 뭐가 부족해서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엄청난 것을 보고 배우지요. 혼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께서 물을 가지고 포도주를 만드시는 것을 직접 보았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5천명을 먹이는 현장도 체험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 가서 주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좋아서 여기에 초막을 짓고 살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모습도 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물위를 직접 걷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 훈련받았으면 성령을 보내주시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겁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번 살펴보시다. 익숙한 말씀이니까 개역 성경으로 읽어봅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의 핵심적인 두 단어가 있지요. 성령과 증인입니다. 중간은 성령이 임하시면 어떻게 된다는 것과 어느 지역에 가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핵심을 연결시키면 이렇게 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 증인이 되리라"
여기에서의 증인은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말씀이나 마가복음 16장 16절의 말씀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사도행전 1장 8절의 증인이나 마태복음 28장 19절의 제자나 마가복음 16장 16절의 복음은 모두 같은 의미입니다. 생명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증인이 되라는 것도 생명을 구원하라는 말씀이고, 제자를 삼으라는 것도 생명을 구원하라는 말씀이고,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도 생명을 구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인 줄로 믿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씀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성령은 보혜사로 우리를 돕는 영이지요. 요한복음 14장 16절에서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26절에서는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치시며,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겁니다. 성령의 역할은 생명을 구원하는 데에 있다는 겁니다. 사실 생명 구원은 복음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서 여러 곳에서 생명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30절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서의 생명은 생물학적인 면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이지요.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성경을 기록한 첫째 목적도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성령을 주신 목적도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모든 사역도 생명 구원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생명 구원에 두어야 하고, 섬기는 것도 생명 구원에 두어야 하고, 수련회를 가는 것도 생명 구원에 두어야 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놀러 가는 것도 생명 구원에 두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은 생명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만일 교회에서 하는 일이 생명을 구원하는 것과 상관이 없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친교 단체에 불과한 겁니다.
성령을 보내주신 목적이 생명을 구원하는 데에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생명을 구원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서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과 함께 하심이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거든요. 빌립보서 2장 6절에 보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종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성령을 부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내어쫓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든 자를 일으키게 하신 겁니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여기에서 우리라는 말에는 사도 바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분인가요? 성령이 충만한 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분입니다. 3층 천에 다녀온 분입니다.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분입니다. 예수님 다음으로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왜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불같이 내려야만 했을까요?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120명의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해도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의 일은 제자들의 열심으로 안 되는 겁니다. 제자들의 선함으로도 안 되는 겁니다. 제자들의 인내심으로, 제자들의 충성함으로는 절대로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구원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성령을 받아야지요. 우리가 대단한 것 같고 굉장한 것 같아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완전하다고 해도, 신실하고 충성스럽다고 해도, 성품이 좋다고 해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없어요. 받은 것이 없으니 무엇을 할 수가 있겠어요.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발전을 하든 물을 흘려보내든 하지 않겠어요. 저수지에 물이 없으면 어떻게 물을 보냅니까? 자동차 배터리에 전류가 가득 차 있어야 시동을 걸 수가 있지 않겠어요.
우리는 위로부터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받아야 줄 것이 아니겠어요. 베드로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해야지요. 베드로가 성령을 받아서 일하는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받아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받아서 하는 사람들이지 배워서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의 것으로, 자기 경험으로, 자기 주장으로, 자기 고집으로, 자기 철학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인들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먼저는 불 받은 사람들이 있어요. 신앙생활의 핵심을 알아서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에요. 성령을 받으니까 마음이 뜨겁잖아요.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릅니다. 받아서 하니까 지칠 줄을 모르지요. 날마다 은혜가 넘쳐요. 다른 하나는 불쬐는 사람도 있어요. 성령을 받지 못해서 불 받은 사람들을 쳐다보고는 불쬐는 거예요. '야, 잘한다.' 또 하나는 열 받는 사람도 있어요. 성령을 받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가지고 일하려고 하니까 자신의 뜻대로 안 되거든요. 그러니 열 받지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머리만 뜨거워서 씩씩거려요.
여러분, 우리는 불 쬐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되고, 열 받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으로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하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먼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거든 그 때에 가서 일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먼저 성령을 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들도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먼저 받고 헌신하고, 성령을 먼저 받고 가르치고, 성령을 먼저 받고 찬양하고, 성령을 먼저 받고 증인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나라의 교회처럼 교육 프로그램이 잘된 나라가 없을 거예요. 좋다는 프로그램은 우리 나라 교회에 다 있어요. 제자훈련 프로그램도 많고, 이 교회에서 뭐가 유행한다 싶으면 모방해서 그대로 해서 발전시킵니다. 예배당을 지어도 답사하러 가고..., 그런데 한국교회가 잘 됩니까? 이민교회가 잘 됩니까? 교인들이 말할 수 없이 줄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성령을 먼저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먼저 받고 일해야 하는데 일부터 합니다. 받은 것이 없이 일하려고 하니까 스킬만 늘어서 프로그램만 발전시키잖아요. 그러다가 번아웃 되잖아요.
여러분이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제자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을 가졌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기선교를 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훈련받았어도 안 되잖아요. 성도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내가 직접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성령을 받아서 내 마음속에 성령이 가득할 때에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고, 선교할 수가 있는 것이고,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성령을 받으면 증인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법적인 용어잖아요. 재판정에서 자기가 직접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증인입니다. 증인은 침묵해서도 안 되고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만일 거짓을 말하면 위증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헬라어에서 '증인'이라는 말을 '마르투스(martus)'라고 하는데, 영어의 Martyr-순교자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이라는 것은 순교자의 각오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여러분, 현대의 교인들이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가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올인해야 하는 것도 다 압니다. 그럼에도 증인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순교자의 각오가 없어서일까요?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증인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저절로 증인이 되는 겁니다. 증인은 무엇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자신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렇다면 성령을 받으면 가만히 있나요?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봤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셔서 내 마음이 뜨거운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마음이 불타서 뜨거운데 가만히 있어요. 사랑이 이루어질까요?
오늘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증인으로 설 수 있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아도 증인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런 분들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성령을 받은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처럼 세상으로 나가서 증인되게 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데에 열심으로 이끄십니다. 전도하는 데에 힘쓰게 하십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성령을 받기 이전의 베드로는 어떠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부인하잖아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부인하잖아요. 나중에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니까 실망해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갈릴리 바닷가에 가서 다시 고기를 잡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그냥 따라다닌 거예요.
그런데 오순절 성령이 임한 후에 어떻게 됩니까? 성령의 능력을 받으니까 물불을 가리지 않지요.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변화됩니까?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왔어요. 유대 지도자들과 장로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합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느니라(행4:19). 사도행전을 보면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2:32, 3:15, 5:32, 10:39, 22:15)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주도적으로 증인이 되는 일에 힘썼습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가 증인되어야 할 지역을 거론합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루살렘은 교회를 말합니다. 유대는 나라지요. 사마리아는 이방 땅이지요. 땅 끝은 세계를 말하지요. 성령이 임하시면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이웃과 나라와 세계로 확장되면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지역에서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는 강조하지 않고 땅 끝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땅 끝을 찾아 나서는데, 땅 끝이 어디인가요? 중국인가요? 아프리카인가요? 10/40 윈도우인가요? 지구를 한 바퀴 돌아야 땅 끝인가요? 성경에는 땅 끝이 어디라고 구체적인 장소를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복음을 온 세계에 퍼지게 하라는 의미이지 땅 끝만 전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증인이 되는 것은 장소의 제한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한 쪽으로 치우치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지역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인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도 증인이 되고,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사회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서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로나 행동으로나 인격에서 품격으로 예수 믿는 증인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우리는 전도축제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해마다 7월부터 9월까지 석달 동안 전도에 힘쓰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되어서 주님의 증인이 됩니다.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성령 받아 증인 되라. 주님의 관심에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생명을 구원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성령의 능력을 받아 증인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사오니 저희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한 생명 한 생명을 구원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성령을 체험하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교우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장 8절 / 이필재목사
부활하신 예수님의 출현 장면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는데 마지막 지상 기록이 네 군데 나옵니다. 마태복음 28장, 마가복음 16장, 누가복음 24장, 그리고 오늘 말씀 사도행전 1장입니다. 이 네 군데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도 9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현장에서 육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승천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제자들에 대한 관심과 부탁의 말씀이 복음서에 모두 똑같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증인이 되라.” 이 말씀을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3년 동안 예수님 사역의 총결산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12제자와 70인 제자를 선택하셔서 열심히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최종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말씀이 오늘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당했다면 가장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저는 그렇게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을 많이 듣고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때는 누구든지 자신의 가장 깊은 영혼의 진솔한 이야기를 남기고 죽게 됩니다. 부인이나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 떠나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나는 당신 때문에 참 행복하게 살다 가는 거요.” 그렇게 고맙게 말을 하고 가는 사람도 있고, 자녀들에게 신앙생활 아주 잘하고 예수 잘 믿으라는 말을 남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런 사람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미안합니다. 모두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나는 참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많이 남기고 임종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그런 시간에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목사한테 남긴 말도 임종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한 가지 유언적으로 목사에게 부탁한 말을 그 가족들에게 실천할 때는 잘 안됩니다. “아버지가 임종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 이것인데 이것을 그대로 실천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잘 안합니다. 그래서 ‘그런 말은 별로 소용없는 유언이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오히려 살아있을 때, 정신이 멀쩡할 때 자기의 소원을 다 이루고 조용히 가는 것이 훨씬 낫겠다.’ 아무리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겼는데도 자녀들이 나타내주지 아니한 안타까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잘 실행되지 않는 유언도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 살아있을 때 하는 것이 오히려 유언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떤 구두쇠 영감이 임종 때 자식들을 다 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앞도 잘 보이지 않고 말도 아주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큰 아들 왔느냐?” “네, 아버지! 여기 있습니다.” “네 색시는 어디 갔느냐?” “여기 있습니다.” “둘째는?” “여기 있습니다.” “네 색시는 안보이냐?” “여기 있습니다.” 셋째, 딸, 사위 모두 부르는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 여기 다 있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십시오.” 아마 죽으니까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싶었나 봅니다. 다 모여 있으니까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여기 다 와 있으면 가게는 누가 보는 거냐? 꽥!” 하고 죽었답니다. 유언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를 통해서 법적 효력이 있는 유언장을 미리 작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늘푸른 대학 장영하 변호사님이 유언장을 어떻게 쓰라고 자세히 가르쳐주셨지 않습니까? 만약 썼던 유언장을 무효화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라고 방법론에 있어서 아주 세밀하게 강의해 주셨습니다. 이대로 하면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마지막 말을 이상하게 세상에 남긴 사람도 많습니다. 유명한 시인의 묘비를 제가 실제로 가보지 못하고 책에서 봤지만 자기 묘비에 그 사람이 그렇게 써달라고 해서 써준 것입니다. “괜히 왔다 간다.” 그 유명한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아십니까? “갈팡질팡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게 묘비입니다. 중국의 주월래 묘비에는 아무 글자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그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인간의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고백하는데 태곳적부터 예수 그리스도 탄생시까지 구약에 성부적 사역으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오셔서 활동한 시기인 성자적 구원 사역으로, 예수 그리스도 승천 이후 지금까지 성령 사역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생애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은 특별한 시간으로 취급을 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이 부활하신 몸이기 때문에 33년과는 또 다른 의미의 시간이라고 해서 그 40일을 신학적으로 따로 취급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특별사역 기간에 된 일을 소개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유언적 말씀하신 적은 3번입니다. 첫 번째는 마지막 만찬의 시간으로, 그때 예수님이 지상의 모든 사역 종결하시고 마지막 분위기로 말씀을 마치신 것이 나옵니다. 두 번째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오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앞서 두 번 말씀하신 그 내용보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의 가장 큰 관심사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음이 오늘 말씀에 나타났는데 제자들의 고정 관념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그렇게 열심히 어떤 성격의 사역을 해야 된다는 것을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지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이 제자들의 고정 관념은 변하지 아니하고 묻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제자들은 이것 때문에 큰 문제입니다. 고정 관념적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할 일은 이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여기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그것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이렇게 아주 관심이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이 고정관념화 되면 누구 말도 안 듣습니다. 그냥 그것을 순교자적으로 고집하고 절대 변화를 안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는데 종교인들이 심합니다. 고정관념에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일반적 진리는 과학의 진리라든가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마음을 빨리 바꿉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아주 신념화해서 절대 바꾸지 않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우리 사회가 실제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어느 종파에서는 사람 치료할 때 수혈을 거부합니다. 수술하면 피를 많이 흘리니까 피를 공급해주어야 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절대로 안합니다. 일상적인 치료 행위인데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아들일지라도 수혈을 안 하고 죽어가게 그냥 둡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의 신앙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작년 9월에 아산병원에서는 의료진과 법률 고문들이 모여서 윤리 위원회를 열어서 결정한 것이 있습니다. 생후 2개월 된 영아가 지금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부모가 수혈 반대를 고집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 아들이 죽습니다.” “그래도 내 아들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윤리위원회를 열어서 법원에 진료 업무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서 법원에서 받아들여서 판결해 주었습니다. “자녀의 생명과 신체 유지 발전에 저해되는 친권자의 주장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치료하십시오.” 그래서 이겨서 의사들이 수혈시키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부모가 나는 이 병원에서 내 아들 수술 안 받겠다고 급하게 병원을 옮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죽었습니다. 종교의 고정관념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누구의 말도 안 듣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많습니다. 절대로 안 듣습니다. 끝까지 안 듣습니다. 그것이 제자들에게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도 안 듣습니다. “이게 메시야의 할 일이 아닙니까?” “그것은 네가 할 바가 아니라고 했지 않느냐?” 그래도 안 되지 않습니까?
사실 제자들이 이렇게 고정 관념 속에 빠져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식민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로마 사람들이 와서 있지 않습니까? 빌라도가 와서 총독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메시야가 오시면 해결해 주어야 할 텐데….’ 여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AD 395년까지 수백 년을 로마에 지배 받았습니다. 635년까지 페르시아가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1072년까지 아랍이 지배했습니다. 또, 1099년까지는 터키가 지배했습니다. 1291년에 십자군이 들어가서 1517년까지 이집트, 그 다음에 1917년까지 오토만이, 그리고 1948년까지 영국이 지배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심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 모든 역사 2천년이나 지난 다음에 1948년 5월 14일에 결국 독립했지 않습니까? 그때부터 그들의 메시야관이 철저하게 “이스라엘 영광 회복을 위해서 메시야가 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입니까?” 예수님과 관심의 다른 표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알바 아니요.” 하신 것은 알지 않는 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 잘 나가는 이단 종파들이 주장해온 인류 종말 시간이 언제인줄 아십니까? 금년입니다. 2012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난리를 치고 교회에 침투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목사들 사무실까지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법적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써 붙여 놓은 것입니다. 예배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에 일어나서 별소리를 다하고 예배 방해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상의를 해서 법적 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써 붙여 놓은 것입니다. 금년 말에 예수님이 오시니 빨리 이곳에 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경험이 많습니다. 88년 예수 재림설, 92년 종말론, 2000년 심판론 다 지나갔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들, 가정들 수없이 깨져나간 것은 말도 못합니다. 어느 교회는 담임 목사가 2천년 심판론에 심취해서 교역자 회의 때 선언했습니다. 목사, 전도사들을 다 모아놓고 “성경에 하나님이 6일 동안에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하루가 천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 6천년이다. 그러므로 서기 2천년이면 예수님이 오신다. 종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1980년대이니까 십여 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니까 예수님이 2천년에 오시니까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 나와 똑같이 믿는 사람은 이 교회에서 나와 함께 사역을 계속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늘 사표를 내라.” 부목사 한 사람이 나에게 왔습니다. “이렇게 목사님이 선언하셨는데 나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뭐가 어떡하냐? 간단하다. 그 목사가 말한 대로 해라. 그렇게 믿으면 거기서 사역하고 그렇게 못 믿겠으면 사표 내라. 그것은 이단이다. 사표내고 나와라.” 그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표내고 나와서 그 부목사가 교회를 한 곳 개척했는데 나더러 첫 번째 와서 3박4일 동안 계속해서 종말론 설교만 해달라고 해서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선언한 교회는 그 후로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2000년이 지나갔는데 예수님이 안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 말에 잘못 현혹이 되면 누구 말도 안 듣습니다. 그 목사도 주변에서 왜 당신은 그런 선언을 했느냐고 많은 충고를 했지만 절대 안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어려움을 당하는 겁니다. 사실 주님이 알바 아니요 하신 것은 알지 않는 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여러분! 언제 돌아가실 것을 아는 사람 있습니까? 자기 앞날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습니까? 이런 것을 다 모르게 해놓으셨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만약 죽는 날을 미리 알려주면 세상이 절대 운영이 안 됩니다. 보험회사들 다 망할 것입니다. 죽기 전에 다 큰 보험을 들어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망합니다. 아마 죽기 한 달 전에 교회를 다 찾아올 것입니다. 그 전에 절대로 안 올 것입니다. 십자가 강도도 10분 전에 예수 믿고 죽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약삭빠른 사람들만 늘어갔지 평생을 주님 앞에 헌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시고 우리에게 이렇게 알지 않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이 “오직” 그러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세상에 나가서 내 증인이 되리라. 내가 그동안 너희에게 가르쳐준 것을 열심히 나가서 전도해라.” 선교 사명을 주시는 것이 주님의 최대 사명이었습니다.
이 증인에 대해서 해석해야 됩니다. 이 증인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이나 철학이나 논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사람에 대한 일을 내가 믿기 때문에 보증을 서는 행위를 증인이라 합니다. 사도들은 지금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증거하라.” 그런 뜻입니다. 여러분! 이 증인을 선다는 것은 운명적 동참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달라고 여러분에게 요청했을 때 내가 만약 사인을 해주면 그 사람이 겪어야 될 모든 책임을 내가 지겠다는 약속입니다. 사실 사인 한번 잘못해서 재산 다 없어진 사람도 교회 안에서 내가 경험했고 온갖 어려움 겪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계속 잘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망할 수도 있습니다. “네가 책임진다고 했잖느냐?” 그러면 법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사실 저는 보증 사인을 하도 많이 해주어서 언제 잡혀갈지 모르니 그런 줄 아십시오. 교인들이 오셔서 “목사님! 이번에 취직하는데 담임 목사가 보증을 서주면 취직되고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이럴 경우 어떡하시겠습니까? 가난한 집사가 이제 겨우 취직을 해서 먹고 살겠다는데 신원보증을 서라는데 그러면 그 사람의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는 그런 사인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보증을 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목회하면서 보증 좀 서달라고 할 때 내가 사인을 안 해줘 보십시오. “무슨 목사가 저렇게 사랑이 없냐? 가난한 교인이 취직 좀 해서 먹고 살겠다는데 사인하나 부탁하는 것도 안 해주고…. 저런 교회를 내가 왜 나가?” 이렇게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그런 일이 있을 경우는 “에라, 모르겠다. 죽으면 죽으리라.” 사인을 너무 많이 해주었습니다. 저는 은행에 융자 신청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크레디트 카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내가 집을 사야 할 텐데 융자 해주십시오.” 한 번도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빚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슨 빚이냐? 교회 주차장 사느라, 건축하느라 빚진 것이 다 내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찍어보면 “당신은 빚이 50억입니다. 무슨 융자를?” 하나도 못합니다. 평생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입니다. 이게 짐입니다.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이때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맞다. 우리가 예수의 증인이 되려면 예수와 함께 죽어야 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로마를 찾아갑니다. 기독교의 최대 핍박 근거지를 찾아가서 네로 황제와 싸움을 하면서 거기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지 않습니까? 이게 증인입니다. 도마는 인도를 찾아왔습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땅 끝을 찾아온 것입니다. 순교 당해서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 도마 기념 교회가 여러 곳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밧모 섬으로 유배를 당해서 마지막 예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가는 우크라이나로 갔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 아가야로 가서 증인 역할을 했고 빌립은 히에라 골리에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 당해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아르메니아, 부르기아, 루가오니아, 메소보타미아, 페르시아 이 많은 사역지를 돌면서 증인 역할을 하다가 가장 잔인하게 순교 당했는데 마치 소가죽을 벗기듯 얼굴부터 발끝까지 껍질을 벗겼습니다. 지금 베드로 성당 안에 가보십시오. 바돌로매가 자기 껍질을 들고 있는 동상이 그래서 서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각자 우리 문화 안에서 자기 사역에 충실하게 살아갑니다.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공무원을 하고 예술가, 혹은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가 예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나의 조그만 힘이 보탬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다 그런 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목적을 하늘나라에 두고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필요한대로 살아가는 것이 증인이고 그것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따라나서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선교를 하고 증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오늘 여기 책 한권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제목이 “3분”이라는 책입니다. 여기 서있는 아이가 4살짜리입니다. 지난번에 미국에 갔더니 미국 사회에 이 소문이 파다합니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바로 이 책입니다.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나와서 서점에 알아보니까 정말 이렇게 번역이 되어서 나왔는데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5백만 부 팔렸습니다. 여러분! 책 내는 사람이 책 써냈는데 1만부만 팔리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5백만 부 팔렸습니다. 우리 갈보리교인들은 아무리 어마어마한 소리를 해도 놀라지 않는 것이 특징이지만 하여튼 그렇게 팔렸습니다. 뉴욕타임스 세계적 최고 권위 있는 신문이 이 책이 48주 연속 베스트셀러라고 발표했습니다. USA투데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신문이 미국 판매 기록 1위로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뭐냐? 아주 고난을 당하는 목사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신체적으로 고난이 있어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신장결석, 세포 이상 증식, 나선형 골절, 남자인데도 유방암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별명은 욥이었습니다. 병과 고난이 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치료가 거의 끝나갈 때 4살 된 아들이 똑같은 신체적 고난에 시달렸습니다. 4살 된 아이의 배를 두 번이나 갈랐습니다. 수술을 했지만 이제는 거의 가망이 없는 수준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기적적으로 소생을 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정상적으로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제 겨우 4살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4살 아들이 이상한 말을 한 것입니다. 평소에 전혀 아버지가 가르쳐주지도 않고 생각할 수도 없는 말을 4살짜리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셨다.” “너 지금 무슨 말을 했냐?” “예수님이 고쳐주셨단 말이야.” 아버지가 그런 말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기특하게 들릴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목사인 아버지가 “얘가 이상한 말을 하네? 예수님이 너를 고쳐주셨다고? 어떻게 네가 이런 간증을 하냐?” “예수님이 나더러 말했다. 착한 아이 되라고 하셨어.” 목사가 교인 장례식이 있어서 장례를 집례하고 오는데 차 안에서 “아빠! 그 사람 예수 믿었어?” ‘아니! 4살짜리 아이가 이런 데 무슨 관심이 있지?’ “그럼! 그래서 아빠가 장례식 치르고 오는 건데?” 그렇게 대답해줬더니 혼잣말로 “예수님 모르면 천국에 못 가는데!” 어른들이 하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점점 이상해지는 겁니다. “나 수술하는 거 내가 봤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자기가 하늘나라에서 의사들이 자기 수술하는 모습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그때 작은 방에서 기도하고 있었고, 엄마는 전화 받고 있었다.” 계산해보니까 그 아이가 수술하던 그 시간에 아버지는 너무 염려되어서 막 기도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교인들이 아이에 대해서 자꾸 물어보니까 답변하느라고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 기억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네가 어떻게 아니? 너는 그때 죽을 뻔 했는데?” ‘얘가 좀 이상해졌다.’ 그래서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너 혹시 예수님 만난 거 아니냐?” “응. 예수님 만났어. 예수님 만나서 얘기 많이 했다.” 그래서 천국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겁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이 아이는 할아버지를 본 일이 없답니다. “나 하늘나라에 가서 할아버지 만났다.” “너는 할아버지 못 봤잖아?” “그래도 만났다. 누나도 만났어.” “누나는 지금 살아있는데?” “아니야. 거기 누나 있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유산된 아이가 하나 있었답니다. “누나라고 말했어. 그래서 재미나게 놀았어. 천국에는 사람들이 날개가 있다. 얼굴에 다 빛이 나.” 천국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건 분명히 신앙 간증이다. 이 아이가 천국 경험을 했다.’ 그래서 쓴 책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많이 팔렸느냐 하면 그동안 천국 다녀온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많이 있었지만 어른들의 간증은 거짓말이 많습니다. 보태서 과장해서 그리고 어렴풋이 말한 것이 많아서 그것이 나중에 밝혀져 신빙성이 없습니다. 이 아이는 말을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4살 밖에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이 삽시간에 5백만 부가 팔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를 뉴욕타임스지가 어떻게 말했느냐 하면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사람의 증언이 있었지만 신빙성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방법을 달리 하시는 것이다. 아예 그런 일을 전혀 할 수 없을만한 어린 아이의 입을 통해서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이런 평가를 내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전할 것인가? “내 증인이 되라.” 교회가 세상에 왜 존재해야 되는 것인가? 갈보리 교회 하나가 있음으로 인하여 세상에 예수를 증언할 수 있고 수없이 많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의 마지막 관심사요 마지막 부탁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모두 주님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예수의 증인이 되어 나의 작은 삶을 통해서, 소시민적 삶을 통해서 주님을 증언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인도해 주옵소서. 앞으로 평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갈보리 교회가 되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행 1장 8절 / 김영삼목사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서론>
아버지의 사랑과 눈물 그리고 은혜를 가슴 깊이 헤아리는 자식은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저려 올 것이며 한없는 눈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는 반듯이 효자가 됩니다. 아담의 타락 때에도 낙담하시지 않던 하나님은, 창세기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지고 하나님의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신 그때에 피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애절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나만을 위하여 수천 년간 힘써 오셨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하나님 자신도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바라보시며, 이 기쁜 소식을 세상 만민에게 전하기를 애타게 바라십니다. 이제라도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자식)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며 즉시 증인되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할 것이고 성령님 또한 그 사람에게 기꺼이 충만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와 능력 부흥을 재연(계승)하려면 구약부터 신약시대와 교회시대 그리고 오늘 날 까지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구속사역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초대교회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처럼 강력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살려 낼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오직 구속사역으로만 일관하셔서 완성하십니다.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예언과 성취입니다.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예표(pattern, type)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그것들이 성취됩니다.
1) 구약에서는 성령님은 많은 종들을 택하셔서 오실그리스도 대해 예언 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오실 구세주(예수)의 사역에 대한 예형(豫形)입니다.
⓵구약은 그리스도가 동정녀로 탄생할 것(창3:15,사7:14)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심으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실 것(사53:1-6)것을 구체적으로 예언합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7: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⓶구약 율법 속에 있는 속죄제사의 어린양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요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⓷예형(pattern, type)의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에서 아담하나가 죄를 지으므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망이 들어왔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 하나가 순종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롬5: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as did Adam, who was a pattern of the one to come.)
롬5: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⓸그 외에 구약에서 나타난 모든 충성된 선지자의 활동, 행동, 태도 등등은 모두 주님의 모습입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모습도 주님의 모습이며 모든 성군(다윗, 요시야)들이 통치하는 모습의 원형도 물론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성막, 성전, 5대제사, 등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예표(豫表)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에서 제자들은 나중에서야 깨달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 하실 때는 주님이 성전이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야 주님이 하나님성전인 자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것을 나중에 서야 손뼉 치며 깨달았습니다.(요2:19-22)
요2:19-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그 외에 제자들은 메시야가 죽어야 한다는 것과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았으면서도 믿지 않았다가 나중에서 주님이 부활하신에야 비로소 구약이 성취 되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2)신약에서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⓵신약에서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왕, 구세주), 제사장, 선지자라는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오시므로 구약의 예언을 완벽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빌2:6-8)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⓶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을 메시야로, 마가복음에서는 “종으로”누가복음은 이방인과 가난한자를 위한 구세주로 구약을 성취하셨습니다. .
⓷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대속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경사요 인류최대의 숙원이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 간절한 소망과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죽는 그 순간에도 회개하고 믿은 강도를 용서하시고 낙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⓸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주체는 성령님이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하신 모든 패턴대로 신약에서 성령님은 예수를 통하여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마1:18).세례를 받으신 뒤 성령의 능력을 받으셨고(마3:16)성령에게 인도되어 광야로 가셔서 금식하셨습니다(마4:1-2) 성령님의 지시에 의해서 살아가시며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승천 하시기까지 성령님의 지시와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모든 것은 성령님이 행하신 구약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참고>
행1: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2.주님은 십자가 구속의 성취직전부터 성령님을 통한 증인사역을 준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사역을 마치시면 그다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만합니다. 그래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 일 또한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1)그리스도 이후에 오실 성령님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인류의 숙원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마지막 하나님까지 죽으심으로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그 귀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남은 마지막 최대 과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이 좋은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역은 구약 요엘서에 예언된 것(행2:16)으로써, 신약에서는 구체적으로 주님에 요청의해서 성취됩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서 주님은 아버지께 성령을 구하여 허락받으시고 제자들에게 성령님이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성령은 다음과 같은 분입니다
(1)성령님이 오시는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요16:14.)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2)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입니다 (요15:26)
요15: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증거)하실 것이요
(3)주님의 간구에 따라오신 성령님은 믿는 자의 속에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요14:16)
요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4)성령님은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도 말씀해주십니다 (요16:12.-13)
요16:12.-13.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5)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14:26)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6)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요16;8-11)
책망하신다는 말씀은 헬라어로<엘렘코>는 “죄를 깨닫게 하다”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벌주다.”입니다. 즉 성령께서 인간의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시며 또한 그 죄를 밝히 드러내어 꾸짖으시고 바로 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⓵“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헬라어로는 <하마르티아>로 빗나감 악행 위법입니다 인간이 아담처럼 불순종함으로 원수가 되어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고 깨닫게 하시며 올바로 교정하셔서 구원의 길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⓶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여기서“의”는 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그리스도자신을 의미 하는 말입니다.(행3:14-15)
행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아버지께로 가니.”는 (십자가 대속과 부활 후) 승천하심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이것에 대해 밝히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⓷“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세상임금” 이란 사단을 말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서 인류를 위해 대속하실 때 사탄에 대한 심판은 시작되었으며 부활하심으로 결국 사탄은 패배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것에 관하여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요16;8-11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깨닫게한다 폭로한다)하시리(현-8. 그분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7)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만 활동하십니다.(요16:15.)
요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성령의 소개는 소설로 말하면 복선과 같은 것으로 앞으로 예수님이후에 성령님의 사역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님의 사역을 묵상하면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을 안 읽어도 대충은 교회사와 신학적 교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게 됩니다.
<참고>
성령 보혜사(保惠師)의 의미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역어로서, 이것은 동사 [파라칼레오-(parakaleo,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에서 온 형용사이다. 종종 명사로사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를 가리킨다. 랍비 문학에서는 [페라 클레타 (pera qleta')]의 형(形)으로 인용되고, 피고인의 성격에 대하여변호하고, 특히 유리한 ...
2)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될 것을 명하시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들을 지원(sup·port·ing)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⓵이 구원의 소식을 제자들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24장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의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시면서 이 모든 일을 보고 들은 너희가 증인이 이라고 하셨습니다.
눅24:44-48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라
그리고 주님은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으로 충만한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 권능을 입혀 주셔서(눅24:49) 증인사역을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전할 자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지원(sup·port·ing)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⓶그 권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언급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동원해서 도와주시고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28:18-20)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니다. 제자들이 온 천하로 다닐 때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 손을 얹으면 났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막16:15-20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신가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병든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보장하시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애절함과 한 영혼을 천하 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진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절하신 마음을 안다면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행1:4-5)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어떠한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이 오셔서 시작하지 않으면 그 사역은 공백 기간이 됩니다. 제자들은 성령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다립니다.
이것 또한 성경에 나오는 일관된 전통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충만이 있기 전에는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선지자라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충만하기 전까지는 본격적 하나님의 사역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습니다. 모세는 40세에 자원했으나 80세에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고 사무엘은 성전에 머문 후 어린나이에 하나님이 부르시면서 부터 성령의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믿음으로 무조건 밖에 나아가서 전도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지 말고, 믿고 성령 충만 을 부어주실 때 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면 주님의 말씀대로 얼마 안가서 충만히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대는 성령님의 강권하는 역사로 인하여 견딜 수 없어 뛰쳐나가 외치게 될 것이며 증인을 위한 강력한 능력으로 뒷받침하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임하시므로 드디어 증인 사역이 시작되었고 많은 권능과 기적이 나타났고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1)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방언이 임했습니다.
행2장에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힘써 기도할 때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자 큰 소동이 일어낫습니다. 이때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던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소란한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국어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2:11)라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성령님의 첫 번째 설교였습니다.
2)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옴으로 하나님은 한을 푸셨습니다.
이일을 성령님이 하신일 이지만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그날 하나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영혼도 아니고 3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돌아왔으니 그야말로 하늘나라는 잔치 중에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은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였으나 예수님이 부어주신 세례는 불세례였습니다. 이 성령의 불길은 닿는 이마다 옮아 붙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설교는 가르침과 권면, 설득을 뜻하는 '디다케'가 아니라 “케리그마”입니다. 케리그마란 어떤 공적인 사자(使者)가 어떤 일정한 소식을 가지고 공중 앞에서 외쳐 선포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선포하고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이러한 성격적 원리가 오늘날 에도 정확히 맞아 들어갈 때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복음을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정확하게 나타났습니다.
복음의 선포를 위하여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는 사도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행3장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 행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 행8장에서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중풍병자가 나으며 수많은 표적이 일어난 것 행9장에서 기독교인을 죽이려고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고 행10장에서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예수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 행11장에서는 스데반이 죽을 때 쫓겨 간 성도들이 안디옥으로 가서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이 믿어 교회가 생긴 일 행 12장에서는 베드로가 옥문이 열려서 나온 사건 등등, 모든 기적과 역사는 주님 이 약속하신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이후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과 기사를 합치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다 기록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지 시는 것은 수천 년간 노력해 오셔서 당신의 죽음으로 성취하신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애절한 심정을 알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의 대속, 부활, 승천, 재림을 전할 때, 주님은 모든 기사와 능력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4)성경사적으로 새로운 사실은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애절하신 것인지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에게만 부어주신 성령을 교회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시어 증인이 되게 합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 에게까지 성령을 부어주시어서 믿는 자는 모두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선다씽,)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복음이 얼마나 빨리 세상에 전해지시기를 원하시고 얼마나 많은 영혼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므로 사명자입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님영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음으로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된 것입니다 (겔3:17-23) 파수꾼이 자기사명을 감당치 않으므로 영혼들이 죽으면 하나님의 그들의 피 값을 그 에게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겔3:17-2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즉 오늘날은 만인이 제사장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시대입니다. 목사만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모두가 작은 목회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목양을 해야만 한 영혼을 구원할 때 누리는 하나님의 기쁨과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이후 지금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구약은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그분이 구원의 사역을 어떻게 성취하실 것인지를 수천 년간 오직 그것 하나만을 기록해놓았고 신약에서는 메시야를 통해 성령으로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인류의 숙원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사실 죄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하나님까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그 귀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남은 최대 과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노력해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갑니다. 그 영혼을 붙잡고 울어야 합니다. 통곡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죽으시면서 수천 년 동안 필사적이 노력으로 만들어놓으신 구원의 길을 말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돌아 올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그들도 이 구원의 혜택을 상속 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형제가 몰라서 지옥으로 간다면 하나님이 땅을 치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뵙게 되는 날에 무슨 낮으로 통곡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겠습니까? 이 수고와 슬픔뿐인 세상(시90:10), 저주와 사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에서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메시야(구원자)입니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행 1장 8절 / 임덕순목사(한가람교회)
어떤 볼펜이 좋은 볼펜일까요? 금장으로 된 것?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 값이 비싼 것? 모두 아닙니다. 글씨가 잘 써지는 볼펜이 좋은 볼펜입니다. 무엇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질에 충실한 것이 훌륭한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교회는 재정이 많거나 성도의 숫자나 많거나 건물이 좋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을 지키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몸입이고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러므로 머리가 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는 교회가 훌륭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원대한 계획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셨습니다.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리라,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너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스라엘을 조성하셨습니다.
늙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고,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한 어머니의 소생이 아니라 네 어머니의 소생이어서 서로 질투가 심했습니다. 그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은 라헬의 소생인 요셉이었는데, 배다른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아버지 몰래 장사꾼들에게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은 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어느 집에 종으로 팔려갔는데, 팔려간 지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애굽에서 성공한 요셉의 호의로 온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일강 삼각주 부근의 고센 땅을 분양받아서 편안히 목축하며 번성하여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후손은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을 큰 민족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을 사용하여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거기서 안주하게 하지 않으시고 거기서 떠나지 않으면 안 될 환경을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우선 요셉을 중용하던 왕조가 바뀌게 하시니까 과거 요셉이 애굽에 세운 공을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하나님앞에 해방을 간구하게 되었고, 때가 되자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아무것도 없는 광야 한가운데로 이끄셨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뜨거운 광야에서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고 마셨고 적들을 막아내며 살아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전파해야 할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성실하심을 그토록 날마다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불평하였기 때문에 광야생활을 40년이나 하고서야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간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나안은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북쪽에는 가장 오래된 문명인 메소보다미아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남쪽에는 가장 큰 문명인 나일 강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 두 문명은 끊임없이 충돌했고 그들이 충돌하는 장소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면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는 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배운 대로 엿새 동안은 부지런히 일하고 일곱째 날인 안식일은 철저하게 쉬어야 했으며, 농사하거나 목축을 해서 얻은 수입의 십일조를 철저하게 주신 하나님께 바치며 살아야 했습니다. 먹는 것이나 하는 일 중에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구분하여 법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넘치도록 주시게 되어 있고, 세상은 그들을 통해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부러 그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들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지도 않았고 십일조를 바르게 드리지도 않았으며,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하나님의 신신당부도 잊어버리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전능하시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전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한 심판을 받아서 나라가 남북으로 나뉘었고, 결국은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조 유다는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모양이 되었지만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포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때는 모든 상황이 구주가 오셔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로마 군대가 전 세계로 신속하게 이동 할 수 있게 도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했고, 언어는 헬라어가 세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당시 로마사회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심히 타락하여 뭔가 새로운 사상을 기다리고 있었고,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를 가나 회당을 짓고 율법을 배우며 살았기 때문에 복음이 드러나면 전 세계로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다 된 때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쓰시려고 준비하신 이스라엘이라는 도구는 전혀 준비 되지 않고 폐기될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유대인들을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이스라엘은 열매를 맺지 못해서 도끼에 찍힐 나무였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얻으리라”(마21:43) 그리고 롬11장에 보면, 그들은 열매를 맺지 않아서 찍혀 나가자 그 자리에 다른 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찍혀 나간 자리에 접붙인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폐기한다고 선언하신 후에 열 두 명의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왜 열 두 명뿐인지 아십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열두 지파였습니다. 그들이 감당 했어야할 사명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들 대신에 세운다는 뜻으로 제자를 열두 명을 뽑은 것입니다.
주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처럼 육정으로나 혈통으로 뽑힌 이들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사람들, 즉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요1:11-12)
그 열 두명을 사도라고 부르고, 그 사도들이 주님을 따르며 섬기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들을 중심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엡2:20에 보면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움을 입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살아계실 때 열 두명 제자들에게 전도훈련만 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와 거라사인의 땅을 반복적으로 넘나드시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고 만나고 고치고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해주는 행동입니다.
신약의 교회는 구약 이스라엘이 포기한 하나님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 이스라엘 대신 세워진 단체이고, 그러므로 교회의 별명은 새 이스라엘이며, 교회는 선교 때문에 생겨난 단체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포기한 세계선교를 너희가 대신 하라고 불러 세우신 단체가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교회가 선교에 관심이 없고 복음전도에 최선 다하지 않는다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복음전파 사역을 맡기고 승천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본문의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약속대로 성령님은 오셨고, 제자들은 성령에 이끌리어 힘 있게 복음 전파를 했습니다.
행 1:8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리라는 ‘예고문’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을 어떻게 완성해 가실까요?
사도행전은 주님이 주신 예고의 성취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2장에는 성령강림과 함께 모든 성도가 방언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주신 것은 ‘복음은 만민족의 것이다.’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 삼천명이 회개하였고, 다른 날에는 오천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는 얼마 못가서 엄청난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자기 재산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숨과 재산을 다 내놓은 사람들이 수 만명이 모였으니 누가 그들을 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의 남은 사람들은 신자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하니까 더 이상 모일 수가 없어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재산과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하지 않고 예루살렘 안에서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들을 억지로 밀어내기 위해서 예루살렘교회에 박해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흩어진 교인들이 안디옥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중심인물인 사도들은 성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넬료 사건이 일어납니다.
10장에는 경건한 로마군인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베드로를 청해서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욥바에 머물던 베드로에게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너를 데리러 올테니까 따라가라는 환상과 말씀을 주시어,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가서 보니 고넬료의 친구와 친척들인 수많은 이방인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그들에게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전했더니 그들 모두가 오순절에 자기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는 광경을 보고 충격을 받고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도 차별하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다른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이방인과 상종한 베드로를 소환하여, 어찌하여 더러운 이방인을 접촉했느냐고 추궁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고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있겠느냐.” 그러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에 예루살렘 교회 지도부가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는 이방인에게 보낼 인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9장에 보면 성령은 율법학자요 교회를 박해하는데 최선봉에 서있던 사울이라는 사람을 다메섹 성문앞에서 사로잡아 변화시켜 놓고 계셨습니다. 바나바라는 사람이 그 사울을 예루살렘교회에 소개했고, 그를 데리고 자기가 개척한 안디옥교회로 데리고 가서 일 년 동안 둘이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아마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배운 안디옥교회는 일 년 뒤에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을 세계선교를 위해 선교사로 파송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결국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이 예고하신 대로, 교회는 성령에 의해서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기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일은 사도들이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하셨습니다.
교회는 쓰임을 받았을 뿐입니다. 사도들은 언제나 멈추어 서려 했지만, 성령께서는 언제나 그들의 등을 밀어 내보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선교하기 위해서 세운 주님의 몸입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참된 교회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머리로만 알고 끄덕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헌신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 그리스도를 따른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냥 공짜로, 말로만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장차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 오늘 주님 위해서 무엇을 희생하십니까?
우리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제일의 목적이라고 인식하고 이 일을 시작하였고 오늘까지 근 30년을 이어왔습니다. 왜 이 일을 해왔습니까? 주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것이 유일한 이유입니다.
이 일이 쉬울 거라고 믿거나 이 일을 하면 교회가 저절로 부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이 옳은 일이고, 바른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에 힘겨운 줄 알면서도 시작한 것이고, 감사하게도 그동안 잘 감당해왔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의 헌신이 컸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교회가 큰 교회도 아니고 재정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선교사님 여덟 가정이나 감당해온 것은 성도님들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지난 십 수 년동안 매월 백만원이상 선교헌금을 헌금해 주신 분들의 공이 컸습니다.
나는 이분들을 어떻게 대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을 따른다면, 선교사 파송 패라도 만들어서 그 가정의 이름을 적어 수여하고 성도들 앞에서 한번 칭찬이라도 해 드리면 좋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해서 사람들 앞에 칭찬을 받아버리면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장차 받을 상을 가로막지 않으려고 흔한 상 한번, 표창한번 못해드렸습니다. 그것이 나의 목회방법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셨을 때는 아마 내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는 선교정책의 첫 머리에 선교가 주님이 분부하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그물에 고기를 가득 채우신 것처럼 우리의 그물도 채워주실 것이라는 고백을 넣고 시작했었고, 언젠가는 우리의 그물도 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지만, 현재 우리의 경제는 넉넉하지 못합니다. 전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우리 개인들의 경제사정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몇 년 지나면 우리 동네가 재개발 될 것이고, 그러면 50년 넘게 여기 비계에 터를 잡고 있는 우리교회는 유일한 종교부지를 받아서 새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우리의 선교사역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가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수 십 년 동안 힘에 겨운 선교헌금을 드리고 있는 중입니다. 작년 12월 첫 주일에 선교헌금을 작정하셨고, 일 년 동안 그 헌금을 충실하게 드린 줄 믿습니다. 그중에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힘겨운 헌금을 작정하고 드리신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분명히 갚아주실 것을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선교이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는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며, 그래서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선교헌금을 작정해야 합니다. 혹시 지난 해에 선교헌금을 작정하지 못하고 드리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혹시 작정은 했지만 잘 드리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올해는 더욱 힘을 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드립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면 모르지만 알면서 모른체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르겠거니와 이미 시작했고, 선교지에 우리 선교사 여덟 가정이 나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대신 나간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한국에서 사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다 알지만 가난하고 불쌍한 외국인들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고 나간 사람들입니다.
언제는 그들에게 평생을 바쳐 우리대신 복음 전하는 일을 해 달라고 보내놓고, 언제는 우리가 형편이 어려워서 뒷감당이 힘드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도리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것도 아닙니다.
삼년 반 가뭄에 시달리다가 모든 것이 다 바닥이 난 사렙다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으로 빵을 만들어서 자기와 외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라는 사람이 찾아오더니 그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빵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시켰다는 것입니다. 과부는 어이가 없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배부른 사람에게야 빵 한개 있으나 마나 별것도 아니겠지만, 배고파 죽게 된 사람에게 빵 한개는 체면이나 양심을 생각할 수 없는 생명이 달린 음식입니다. 그런데도 사렙다 과부는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앞에서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엘리야가 와서 한 말이, 하나님께서 네 떡을 누구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으니 내놓으라고 했다면 말이 되지만, 네 떡을 나더러 빼앗아 먹으라고 하셨으니 내 놓으라고 하는데, 줄 수 있겠는가? 너무나 뻔뻔하고 무리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렙다 과부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임목사가 쓰겠다고 내놓으라고 한다면 여러분 재산을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사렙다 과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 이었음에도 그녀는 순종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내가 쓰려고 내놓으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사들을 먹이고 일을 하게 하라고 내놓으라고 하시니, 우리는 사렙다 과부에게 하신 명령보다는 훨씬 쉬운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선교비를 다시 힘있게 작정하고, 새로운 각오로 몇 년 동안 선교에 최선 다합시다.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사는 인생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죄악 투성이인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것은 행복입니다. 인생은 한번이고 잠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기회에 자신을 바쳐 순종하면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얻습니다.
선교회는 선교헌금 봉투를 모든 성도에게 드리고, 성도 여러분은 그 봉투에 최선을 다해서 선교헌금을 넣어 매월 드려서 일을 계속해 갑시다. 이 일은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명령하신 가장 지엄하고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하는 명령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적 순종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렙다 과부 모자는 그 마지막 음식을 내어주고 그냥 굶어죽고 말았습니까? 그날 이후 3년 반의 가뭄이 끝날 때 까지 그 밀가루와 기름이 그만큼 다시 채워져서 날마다 기적의 음식을 먹으며 살아났습니다. 그들 모자가 매일 기적의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들의 생명과 장래를 책임진다는 사실을 매일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나중에 더 큰 믿음의 삶을 살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사렙다 과부 같은 결단적 순종을 하십시다. 그러면 그 순종은 우리에게 새로운 축복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인 선교사역에 함께 동참하여 함께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한가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교하는 교회
이상호목사(세광교회) / 행전 1:1~8
우리 세광교회 영구표어는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땅끝까지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선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3년간 동고동락하시면서 훈련시키신 목적도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훈련 중에 12제자뿐만 아니라 따로 70인을 세우셔서 두 사람씩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임상훈련’도 실시하셨습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말씀도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에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존재하며,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노회는 선교하는 노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총회는 선교하는 총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러나 문제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전도하기가 어렵고, 부흥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사람의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진리를 모른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사람들은 복음을 귀찮아하고 외면합니다. 옛날에는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통하여 전도의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방법들이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이질감과 혐오감만을 키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범람하면서 현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참된 생명과 신앙에 대하여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오직 육신의 즐거움과 행복만이 최대 관심사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요?
첫째, 선교에 대한 사명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기를 맞았던 몇 십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오늘의 시대는 선교의 문이 닫혀가는 듯이 보입니다. 여러 가지 통계 조사 결과가 그렇고,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아니 더 열심히 복음전파와 선교에 매진해야 합니다.
사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복음이 전파되는 데 크고 작은 장애물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강퍅하던지 주님께서는 그 시대를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마 11:17)라고 개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역사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기를 원한다고 할 만큼 그의 삶은 복음을 위한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에 핍박이 일자 안디옥까지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하면서 결국 안디옥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안디옥교회는 장차 이방인선교(세계선교)를 위한 교두보요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확장은 장애물이 없거나 미미했기에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초대교회의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무엇을 하든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들의 믿음과 영성이 세상과 장애물을 이기게 된 것입니다.
디도서 1:3에서는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복음을 전파하며 헌신한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본래 중국에서 복음을 전파하던 미국 선교사로 조선에도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늘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때마침 미국의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조선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한문으로 된 성경을 가지고 배를 타고 조선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배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대동강을 타고 평양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관군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배는 불에 타게 되었습니다. 그는 육지로 피하였지만 관군에게 붙잡혀 평양 감사 박규순에게 잡혀가서 순교하였습니다. 선교의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수당하기 전, 가지고 간 한문성경을 자신의 목을 치는 박춘금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 성경을 받아든 박춘금은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이후 평양은 “한국의 이스라엘”이라 할 정도로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선교자에게서 흘려진 순교의 피가 오늘날 세계교회가 주목하는 놀라운 부흥을 이루는 밀알이 된 것입니다.
일찍이 서방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터툴리안(Tertullian)은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선교의 문이 닫혀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선교에 대한 우리의 열정이 식어가고 희생이 작아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오늘날에도 우리가 죽을 각오로 선교의 사명 완수에 온 힘을 다하면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의 열매가 더욱 풍성히 열릴 줄 믿습니다.
둘째, 이제는 말이 아닌 선한 행실로 선교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성장이 아닌 퇴보를 겪게 된 데는 무엇보다 우리 기독교인이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단언하셨는데, 우리 한국기독교 신자들의 신앙은 아직 생활 속에서 체화된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가 사회에 대해 비판이나 충고를 하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핀잔을 듣기 일쑵니다.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명령하셨습니다. 과연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대체로 로마제국이라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타락한 로마의 문화와 풍습에 동화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정체성과 신앙문화를 가지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마의 황제마저 자신의 행정관에게 "구제에 관해서는 기독교인들을 본받으라!"고 나무랄 정도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믿음과 행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과 동화되지 아니하고 성별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속적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개인의 풍요와 향락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고 함께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정의와 평화를 따라 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배워 실천하는 선교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몇 마디의 말로 영혼을 사로잡고 회심케 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닫는 이들에게는 몇 마디 말 대신에 사랑과 실천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다."라고 말씀하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와 편지가 되어,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 참여와 복지는 훌륭한 선교가 될 것입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신학자 호켄다이크(J. C. Hokendijk)는 "교회에서 하는 선교란 사회적 공동과제의 수행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 평화와 생태의 문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여성 해방, 민족, 경제 평등과 같은 문제들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선교적 과제"라고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곧 기독교 선교가 개인적인 영혼 구원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을 포괄하는 전인적인 구원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영혼의 생명 따로, 육신의 생명 따로 존재할 수 없듯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온 힘을 다하는 것이 선교의 올바른 목표요 방향이 될 것입니다.
셋째,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종합적인 선교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기장 교회 가운데 전주 안디옥교회가 있습니다. 일명 깡통교회로 알려진 전주 안디옥교회는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선교적 비전과 체계가 잘 갖추어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단의 자랑입니다. 이 교회를 개척하셔서 오늘의 안디옥교회로 성장시키신 이동휘 원로목사님은 사도행전 1:8,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토대로 선교 대상지역을 총 4개로 구분하였습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그 교회가 위치한 전주(혹은 전북)를, 다음 '온 유대'는 대한민국 전체를, '사마리아'는 이방인처럼 천대받았던 지역을 상징하여, 북한선교사역이나 장애인사역, 교도소사역 등 특수선교사역을, 그리고 마지막 '땅끝'은 세계선교를 뜻하는 것으로 적용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해석이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만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비단 한국인들만을 위한 교회가 절대 아닙니다. 서구교회가 공동화 현상을 빚는 요즘, 한국 교회는 이제 이 시대의 세계선교를 책임지고 나아가야 할 막중한 선교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국내에서 선교적 결실이 미흡한 동안, 한국 교회는 세계선교에 대단한 열정을 보여 왔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전쟁과 반목의 앙금을 상당 부분 털어내면서 꾸주한 지원과 준비를 해오고 있습니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주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활발한 선교와 섬김으로 대한민국이 세계복음화의 허브로 성장해 가고 있는 듯싶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선교활동의 궁극적인 힘은 한국 교회 신자들의 영적, 인적, 물적 토대에서 나옵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가 곧 세계교회의 위기요, 이 시대의 위기로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거대한 세속주의의 유혹과 도전 앞에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면 이 시대는 더욱 영적 암흑기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으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일에 앞서서 행해야 하는 최우선의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단이 한 뜻,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주제는 “주여, 이 땅을 고쳐주옵소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사명은 주님의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주님의 복음을 따르지 못한 채 상처를 갖고 죽어가는 이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돌봄의 실천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죽어가는 이 땅, 죽어가는 생명의 회복에 우리가 앞장섭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성령님이 임재하신 자
사도행전 1:8 / 피종진목사
사도들의 발자취가 기록된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말합니다. 사도들의 발걸음마다 성령께서 동행해주시고 역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장은 성령에 대한 약속의 말씀, 2장에는 성령님이 임재하신 사건, 3장~28장에는 성령님이 임재하여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 임하시면
첫째,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고(롬 8:2),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시기 때문입니다(롬 8:11).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성령)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롬 8:15). 성령님이 임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과 온 생명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행 6:3)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가 됩니다. 초대교회의 일꾼을 선택하는 기준 중에 하나는 성령이 충만한 자였습니다. 초대교회인 안디옥교회가 부흥하게 된 비결 중에 하나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4) 성령이 충만할 때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수많은 열매가 맺혀집니다.
①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② 전도의 열매가 맺힙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③ 입술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잠 13:2) 또한 감사의 열매, 축복의 열매, 기도의 열매, 찬송의 열매 등이 주렁주렁 맺힙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진리를 행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웃에게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님이 임재하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고, 성령의 열매를 비롯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도하여 제자 삼으라
행 1장 8절 / 윤석전목사
예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 하신 것처럼
우리도 죄로 지옥 가는 영혼을 살리려 몸부림쳐야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영원히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인간에게 모든 축복을 제한 없이 부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7~28).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말미암아 그 죗값으로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멸망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멸망, 즉 사망, 지옥이라고 하는 죗값을 갚으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형벌이라고 하는 당치도 않은 죽음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 공로로 인간을 죄에서 완전히 해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롬8:1~2).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1:21~22).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죄 사함받은 은혜입니다. 사람들이 ‘죽으면 어떡하지’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천국이 준비된 사람들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예수로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 자식, 진노의 자식, 저주의 자식, 멸망의 자식, 지옥의 자식을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바꿉니다. 죄의 자식을 의의 자녀로, 지옥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신분을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살 신분으로 바꿉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입니다.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 교리나 종교적 차원에서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 빠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속죄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경험의 관계로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지옥 자식에서 천국 자식이 되었고, 멸망의 자식에서 영생의 자식이 되었으며, 진노의 자식에서 축복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마귀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바꿔 놓았으며, 죄와 저주로 말미암아 지옥이라는 절망적인 고통을 영원히 당할 자를 영원히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 시민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든 구세주이십니다.
예수 피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다는 증거로 성령이 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 때 세상 사람들이 이 엄청난 신분을 알겠습니까.
오직 예수로 경험한 경험자만 압니다. 이방종교는 그런 경험이 전혀 없이 자기들이 만든 교리를 숭상하며 믿지만 기독교는 경험을 가지고 믿습니다.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에게 영육 간에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려고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성육신하신 근본 하나님인 분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절망적인 신분인지 전혀 모른 채 마귀와 죄의 노예로 살다가 육체가 끝나면 그 영혼이 곧바로 지옥에 가서 영원히 세세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계19:13~15).
주님은 이같이 고통당할 자가 한 명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본문과 같이 전도를 명령하셨습니다(마28:16~20).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절대적인 사랑이요, 기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적을 행하시며 전도하신 것처럼 하여 한 사람이라도 죄로 멸망하지 않게 하여 주님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사명(使命)입니다.
주님은 단 한 사람도 죄 때문에 지옥 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셨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시려 죄와 사망을 해결하신 구세주라고 전하라 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몰라 멸망하여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제자 삼으라고 하신 절박한 명령은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지 못해서 육체가 죽을 때 영혼이 지옥 가는 자가 없게 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기까지 고통을 지불하신 그 사랑의 절규요, 다급한 명령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자신이 주님의 제자인 동시에, 구령의 열정이 불타는 십자가 고통의 분량만큼이나 애절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또 다음 제자를 계속 삼으라는 것입니다.
제자가 없으면 전해 주는 자가 없고, 전해 주는 자가 없으면 듣는 자가 없고, 듣는 자가 없으면 아는 자가 없으며, 아는 자가 없으면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는 자가 없으면 구원받는 자가 없으니, 구원받는 자가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속죄의 은혜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피 공로 헛되지 않게 해야
하나님 아버지는 인류 구원의 뜻을 정하실 때 율법을 보내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양을 잡듯 예수를 십자가에 잡아 피 흘려 내 죽음을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마가 다락방에 최초로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제자를 사용하여 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6장 38절 이하에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나를 믿는 자마다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마지막 날에 다 살리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시더니 정녕 죽어야 하는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하시며 인류의 죽음을 갚으시는 순간, 인간의 죽음은 끝났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인류를 구원하신 소식 전파를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구원의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여 멸망하여 지옥 가는 영혼들 때문에 아파하십니다. 또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 자, 제자 삼지 않는 자 때문에 애타시고 아파하십니다. 서둘러 전도하여 제자 삼아 주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십자가의 고통만큼이나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죄로 지옥 가는 영혼을 방관하지 마십시오. 당신도 주님과 같이 구령의 열정으로 지옥 가는 영혼 구원하지 못해서 아파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 때문에 제자 삼고, 전도하지 못하는 아픔 때문에 제자 삼고, 전도하지 못하는 것을 못 견뎌서 전도를 시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
행 1장 8절 / 김영삼목사(장곡교회)
슥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서론>
아버지의 사랑과 눈물 그리고 은혜를 가슴 깊이 헤아리는 자식은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저려 올 것이며 한없는 눈물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는 반듯이 효자가 됩니다. 아담의 타락 때에도 낙담하시지 않던 하나님은, 창세기6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지고 하나님의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신 그때에 피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애절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나만을 위하여 수천 년간 힘써 오셨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하나님 자신도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바라보시며, 이 기쁜 소식을 세상 만민에게 전하기를 애타게 바라십니다. 이제라도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자식)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낄 것이며 즉시 증인되기 위하여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할 것이고 성령님 또한 그 사람에게 기꺼이 충만히 부어주실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령의 역사와 능력 부흥을 재연(계승)하려면 구약부터 신약시대와 교회시대 그리고 오늘 날 까지 일관되게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눈물겨운 구속사역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초대교회의 사도 베드로와 바울처럼 강력한 복음의 증인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살려 낼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에서 오직 구속사역으로만 일관하셔서 완성하십니다.
성경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관한 예언과 성취입니다.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예표(pattern, type)로 나타나고 신약에서는 그것들이 성취됩니다.
1) 구약에서는 성령님은 많은 종들을 택하셔서 오실그리스도 대해 예언 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오실 구세주(예수)의 사역에 대한 예형(豫形)입니다.
⓵구약은 그리스도가 동정녀로 탄생할 것(창3:15,사7:14)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심으로 십자가에 고난 받으실 것(사53:1-6)것을 구체적으로 예언합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사7: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⓶구약 율법 속에 있는 속죄제사의 어린양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말했습니다.
요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⓷예형(pattern, type)의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에서 아담하나가 죄를 지으므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망이 들어왔던 것처럼 예수그리스도 하나가 순종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롬5:14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as did Adam, who was a pattern of the one to come.)
롬5:19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⓸그 외에 구약에서 나타난 모든 충성된 선지자의 활동, 행동, 태도 등등은 모두 주님의 모습입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모습도 주님의 모습이며 모든 성군(다윗, 요시야)들이 통치하는 모습의 원형도 물론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성막, 성전, 5대제사, 등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성취하실 예표(豫表)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약에서 제자들은 나중에서야 깨달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 하실 때는 주님이 성전이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야 주님이 하나님성전인 자신의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 것을 나중에 서야 손뼉 치며 깨달았습니다.(요2:19-22)
요2:19-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그 외에 제자들은 메시야가 죽어야 한다는 것과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았으면서도 믿지 않았다가 나중에서 주님이 부활하신에야 비로소 구약이 성취 되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2)신약에서 성령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⓵신약에서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말하는 메시아(왕, 구세주), 제사장, 선지자라는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오시므로 구약의 예언을 완벽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체는 하나님이시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빌2:6-8)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⓶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을 메시야로, 마가복음에서는 “종으로”누가복음은 이방인과 가난한자를 위한 구세주로 구약을 성취하셨습니다. .
⓷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대속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경사요 인류최대의 숙원이 해결된 것입니다. 하나님 간절한 소망과 인간의 간절한 소망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죽는 그 순간에도 회개하고 믿은 강도를 용서하시고 낙원으로 인도하셨습니다.
⓸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주체는 성령님이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하신 모든 패턴대로 신약에서 성령님은 예수를 통하여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마1:18).세례를 받으신 뒤 성령의 능력을 받으셨고(마3:16)성령에게 인도되어 광야로 가셔서 금식하셨습니다(마4:1-2) 성령님의 지시에 의해서 살아가시며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승천 하시기까지 성령님의 지시와 능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모든 것은 성령님이 행하신 구약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참고>
행1: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4:1-2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2. 주님은 십자가 구속의 성취직전부터 성령님을 통한 증인사역을 준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사역을 마치시면 그다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만합니다. 그래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 일 또한 성령님이 하실 것입니다.
1)그리스도 이후에 오실 성령님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인류의 숙원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마지막 하나님까지 죽으심으로 이룬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그 귀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남은 마지막 최대 과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이 좋은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역은 구약 요엘서에 예언된 것(행2:16)으로써, 신약에서는 구체적으로 주님에 요청의해서 성취됩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서 주님은 아버지께 성령을 구하여 허락받으시고 제자들에게 성령님이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소개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성령은 다음과 같은 분입니다
(1)성령님이 오시는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요16:14.)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2)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입니다 (요15:26)
요15: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증거)하실 것이요
(3)주님의 간구에 따라오신 성령님은 믿는 자의 속에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진리의 영이십니다.(요14:16)
요14: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4)성령님은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도 말씀해주십니다 (요16:12.-13)
요16:12.-13.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5)성령님은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14:26)
요14:26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6)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요16;8-11)
책망하신다는 말씀은 헬라어로<엘렘코>는 “죄를 깨닫게 하다”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벌주다.”입니다. 즉 성령께서 인간의 죄를 스스로 깨닫게 하시며 또한 그 죄를 밝히 드러내어 꾸짖으시고 바로 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⓵“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죄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입니다 헬라어로는 <하마르티아>로 빗나감 악행 위법입니다 인간이 아담처럼 불순종함으로 원수가 되어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을 꾸짖으시고 깨닫게 하시며 올바로 교정하셔서 구원의 길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⓶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여기서“의”는 죄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그리스도자신을 의미 하는 말입니다.(행3:14-15)
행3:14-15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아버지께로 가니.”는 (십자가 대속과 부활 후) 승천하심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이것에 대해 밝히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⓷“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이 세상임금” 이란 사단을 말하는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서 인류를 위해 대속하실 때 사탄에 대한 심판은 시작되었으며 부활하심으로 결국 사탄은 패배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것에 관하여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요16;8-11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깨닫게한다 폭로한다)하시리(현-8. 그분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7)성령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만 활동하십니다.(요16:15.)
요16: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하신성령의 소개는 소설로 말하면 복선과 같은 것으로 앞으로 예수님이후에 성령님의 사역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님의 사역을 묵상하면 사도행전이나 바울서신을 안 읽어도 대충은 교회사와 신학적 교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게 됩니다.
<참고>
성령 보혜사(保惠師)의 의미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의 역어로서, 이것은 동사 [파라칼레오-(parakaleo,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에서 온 형용사이다. 종종 명사로사 [변호자], [탄원자], [중보자]를 가리킨다. 랍비 문학에서는 [페라 클레타 (pera qleta')]의 형(形)으로 인용되고, 피고인의 성격에 대하여변호하고, 특히 유리한 ...
2)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증인될 것을 명하시고 영혼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들을 지원(sup·port·ing)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⓵이 구원의 소식을 제자들이 모든 족속에게 전파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을 성취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24장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의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부활한 것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시면서 이 모든 일을 보고 들은 너희가 증인이 이라고 하셨습니다.
눅24:44-48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라
그리고 주님은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으로 충만한 증인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들에게 권능을 입혀 주셔서(눅24:49) 증인사역을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전할 자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지원(sup·port·ing)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⓶그 권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언급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동원해서 도와주시고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28:18-20)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니다. 제자들이 온 천하로 다닐 때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 손을 얹으면 났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막16:15-20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신가를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가 병든 자식을 살릴 수만 있다면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보장하시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애절함과 한 영혼을 천하 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진하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애절하신 마음을 안다면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주님이 명령하신대로 성령님을 기다립니다. (행1:4-5)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어떠한 일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이 오셔서 시작하지 않으면 그 사역은 공백 기간이 됩니다. 제자들은 성령님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다립니다.
이것 또한 성경에 나오는 일관된 전통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충만이 있기 전에는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선지자라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충만하기 전까지는 본격적 하나님의 사역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르심을 받습니다. 모세는 40세에 자원했으나 80세에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고 사무엘은 성전에 머문 후 어린나이에 하나님이 부르시면서 부터 성령의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움직이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믿음으로 무조건 밖에 나아가서 전도하는 것이 좋은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지 말고, 믿고 성령 충만 을 부어주실 때 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면 주님의 말씀대로 얼마 안가서 충만히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대는 성령님의 강권하는 역사로 인하여 견딜 수 없어 뛰쳐나가 외치게 될 것이며 증인을 위한 강력한 능력으로 뒷받침하심이 나타날 것입니다.
3. 성령님이 임하시므로 드디어 증인 사역이 시작되었고 많은 권능과 기적이 나타났고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습니다.
1)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방언이 임했습니다.
행2장에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힘써 기도할 때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각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자 큰 소동이 일어낫습니다. 이때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왔던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소란한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국어를 배운 적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2:11)라고 말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성령님의 첫 번째 설교였습니다.
2)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3천명이 회개하고 돌아옴으로 하나님은 한을 푸셨습니다.
이일을 성령님이 하신일 이지만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그날 하나님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영혼도 아니고 3천 명씩이나 회개하고 돌아왔으니 그야말로 하늘나라는 잔치 중에 잔치를 벌였을 것입니다
결국 모든 제자들도 베드로와 같은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였으나 예수님이 부어주신 세례는 불세례였습니다. 이 성령의 불길은 닿는 이마다 옮아 붙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설교는 가르침과 권면, 설득을 뜻하는 '디다케'가 아니라 “케리그마”입니다. 케리그마란 어떤 공적인 사자(使者)가 어떤 일정한 소식을 가지고 공중 앞에서 외쳐 선포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을 믿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선포하고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이러한 성격적 원리가 오늘날 에도 정확히 맞아 들어갈 때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3)복음을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정확하게 나타났습니다.
복음의 선포를 위하여 밤낮없이 동분서주하는 사도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행3장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난 기적, 행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사건, 행8장에서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중풍병자가 나으며 수많은 표적이 일어난 것 행9장에서 기독교인을 죽이려고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회개했을 뿐만 아니라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고 행10장에서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가 예수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 행11장에서는 스데반이 죽을 때 쫓겨 간 성도들이 안디옥으로 가서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자 수많은 사람이 믿어 교회가 생긴 일 행 12장에서는 베드로가 옥문이 열려서 나온 사건 등등, 모든 기적과 역사는 주님 이 약속하신대로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이후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기적과 기사를 합치면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다 기록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지 시는 것은 수천 년간 노력해 오셔서 당신의 죽음으로 성취하신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애절한 심정을 알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의 대속, 부활, 승천, 재림을 전할 때, 주님은 모든 기사와 능력을 아끼지 않으실 것이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4)성경사적으로 새로운 사실은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애절하신 것인지 구약에서 선지자들에게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에게만 부어주신 성령을 교회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시어 증인이 되게 합니다. 심지어는 이방인들 에게까지 성령을 부어주시어서 믿는 자는 모두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선다씽,) 우리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면서 하나님이 복음이 얼마나 빨리 세상에 전해지시기를 원하시고 얼마나 많은 영혼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는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므로 사명자입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님영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부여받음으로 이스라엘의 파수꾼이 된 것입니다 (겔3:17-23) 파수꾼이 자기사명을 감당치 않으므로 영혼들이 죽으면 하나님의 그들의 피 값을 그 에게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겔3:17-2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즉 오늘날은 만인이 제사장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는 시대입니다. 목사만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모두가 작은 목회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목양을 해야만 한 영혼을 구원할 때 누리는 하나님의 기쁨과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은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이후 지금까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구약은 성령님을 통해서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대망하며 그분이 구원의 사역을 어떻게 성취하실 것인지를 수천 년간 오직 그것 하나만을 기록해놓았고 신약에서는 메시야를 통해 성령으로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므로 인류의 숙원인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사실 죄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하나님까지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그 귀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남은 최대 과제는 성령님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노력해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갑니다. 그 영혼을 붙잡고 울어야 합니다. 통곡해야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죽으시면서 수천 년 동안 필사적이 노력으로 만들어놓으신 구원의 길을 말해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돌아 올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그들도 이 구원의 혜택을 상속 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형제가 몰라서 지옥으로 간다면 하나님이 땅을 치고 통곡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뵙게 되는 날에 무슨 낮으로 통곡하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겠습니까? 이 수고와 슬픔뿐인 세상(시90:10), 저주와 사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에서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메시야(구원자)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해야 할 것
행전 1:8 / 박찬길
오늘 본문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말씀이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40일 동안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실 때에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라. 성령이 오면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동문서답한 것이지요.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에 관심이 많았어요. 정치적으로 로마에 속해 있으니까,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무엇을 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 관심을 갖지 말고 성령에 관심을 가져라. 성령을 기다렸다가 성령이 임하면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앞으로 성령의 시대가 개막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어떤 분입니까?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주님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스마트 폰 시대잖아요. 스마트 폰으로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모두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스마트 폰이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앞으로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릅니다. 기계 하나를 통해서도 삶이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오시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오시면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임할 때에 제자들이 해야 하는 일을 말씀하십니다. 세 가지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해결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 까요?
첫째는 권능을 받으라고 했어요.
8절,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는다는 것은 능력 받는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권능의 원어는 두나미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이나마이트’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두나미스는 세상적인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교육이나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나미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만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두나미스의 권능이 여러 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여기에서 능력이 두나미스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중풍병자를 고칠 때에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그 때의 능력을 두나미스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9장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 때에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는데, 병을 고치는 능력이 두나미스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힘을 모든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사도들이 이 능력을 받아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고, 이 능력을 받아서 병을 고친 것이고, 이 능력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면 권능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에너지를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제자들처럼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을 증거하고, 사랑하고, 고난을 이기고, 환경을 극복하고, 넘어졌던 사람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8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말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현재 위치한 곳이지요.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가족, 친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지요. 자기 민족을 이야기합니다. 땅 끝까지는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성령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손짓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합니다. 마게도냐에 가서 옷감 장사인 루디아를 만납니다. 그의 가족이 예수 믿게됩니다.
또 그곳에서 기도하는 곳을 찾다가 귀신 들린 종을 만납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고쳐줍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데 지진이 일어나더니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벗어집니다. 간수가 자다가 깜짝 놀라는데 사도 바울이 나타나서 전도하잖아요. 그 유명한 말씀,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후에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그의 가족이 예수를 믿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거예요. 유대로 가라고 하시면 가는 거예요. 땅 끝으로 가라 하시면 가는 거예요.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 중에 어느 형제가 토요일 밤인데 성령께서 이런 생각을 주시더랍니다. 아래층에 있는 후배에게 전해라. 이 친구가 바로 순종하고 갔어요. “내일 교회에 갈래?” 그 친구 대답이 “그러지 뭐” 그 주일부터 교회에 왔어요. 은혜 받고 세례 받고 청년회장까지 했습니다. 성령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니까 영혼이 구원되었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2천 년 전에 성령이 임했지요. 사도들이 성령이 가라는 곳으로 갔듯이 우리들도 성령이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내 생각을 앞세우면 안 되는 거예요. ‘바쁜 데요. 그 사람은 안 되는데요. 때가 아닌데요.’ 아닙니다. 성령이 가라는 대로 순종하는 거예요.
백부장처럼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겁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내 논리를 앞세워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논리를 앞세워 가면 되는 거예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8절,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이 되라는 말은 증거 하는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증인이라는 말의 원어 뜻은 두려워하지 않고 보고 들은 것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약성경에 34번 기록되어 있는데, 사도들이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증거 할 때에 이 표현을 썼습니다.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거예요.
우리가 보통 증인이라고 하면 내가 본 것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증인은 여기에서 한 단계 뛰어 넘습니다. 교회 앞에서 택시하고 다른 승용차하고 충동했습니다. 내가 봤습니다. 내가 증인입니다. 이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경험한 예수를 말하면 내가 고난 받을 텐데, 내가 체험한 성령님을 말하면 사람들이 핍박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하는 것을 증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세요.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다가 많은 핍박을 받지요. 옥에 들어갑니다. 대제사장이 베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경고하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하나요?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다.”(5:32)
사도행전에는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하나님이 살리신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경험하고 체험했는데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나님의 생명이 나에게 있는데 내가 고난당한다고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 나는 고난당해도, 옥에 들어가도 증인이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5:14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비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라는 거예요.
여러분, 성령이 임했을 때에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증거 하는 삶을 사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면 지식적으로 이론적으로 머리로 신앙 생활하던 것들이 가슴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거예요. 내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은 거예요. 학교에서도 전하고 싶고, 직장에서도 전하고 싶고,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거예요.
때로는 직장을 그만 두고 전하잖아요. 교수, 의사, 사업을 그만 두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싶어서 전하잖아요. 누가 억지로 선교사로 가겠어요. 억지로 선교사를 시키겠어요? 자기가 좋아서 가는 거예요. 성령이 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해서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자기가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길을 가는 거예요. 우리에게 이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빛을 비추라고 했더니 자기에게만 비치는 사람이 있어요. 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둡니다. 말은 곡물을 재는 그릇인데, 등불을 켜놓고 말로 덮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빛이 밖으로 나가지 않지요. 그래서 세상의 빛 역할을 하지 못하지요. 등불은 등경 위에다 둡니다. 그러면 빛이 넓게 비추게 되잖아요.
성도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내 안에 숨겨 놓으면 안 됩니다. 겉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복음이 전달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의 능력, 성령의 권능이 있잖아요. 세상에 비추세요. 사람들에게 비추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시잖아요.
성도라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입니다. 얼마나 좋은 말인지 모릅니다. 레위기 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우리는 죄인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으니 거룩하다는 말이에요. 기가 막힌 말입니다.
성도는 예수 믿고 공부 잘하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예수 믿고 돈 많이 번 것을 자랑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고 자식이 잘 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물론 이것도 자랑해야지요. 그러나 성도는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내가 만난 예수님, 나의 죄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의 영혼을 사명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예수님, 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나의 마음을 성령으로 뜨겁게 하여 복음을 위하여 쓰시는 성령님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지만, 학교나 직장의 문제로 불안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으니까요. 어느 것 하나 안정된 것이 없어 보이지만 성령을 체험했기 때문에 순교자의 자세를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에게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처음에 말씀을 드렸듯이 성령이 임할 때에 순서가 중요한 것입니다. 첫째가 성령의 권능을 받는다고 했지요. 권능을 받으면 그 다음의 것이 저절로 된다고 했잖아요. 권능을 받으면 순종해서 가는 것이 쉬워집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증인 되는 것이 쉬워집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권능을 받을 수가 있을까요?
누가복음 24장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나오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낙심해서 고향으로 갑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 제자들과 동행하시지요. 한참 동안 말씀을 나눕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뭐라고 말해요?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설교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감동을 받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잖아요.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했어요.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고 했어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러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성경 말씀,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말씀이 생명이기 때문에 말씀을 잘 들으면 내 심령 속에 생명이 들어옵니다. 말씀이 생명으로 들어오면 내 마음을 움직입니다. 내 마음이 움직이면 영혼이 움직입니다. 내 영혼이 흔들리면 성령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움직이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라. 쉬워집니다. 유다로 가라 쉬워집니다. 땅 끝까지 가라. 쉬워집니다. 순종하기가 쉬워진다는 말씀입니다. 증인되기가 쉬워집니다. 내 안에 성령의 권능, 하나님의 힘이 들어와 있잖아요.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옷 입기만 하면 모든 것이 쉬워지는 것입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단번에 해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전도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초신자들은 별로 안하는데 예수를 믿은 경륜이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잘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해서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의 능력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멘하면 좋을 텐데, 말씀을 깊이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능력이 없게 되고, 능력이 없으니까 순종하지 못합니다.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요즘 많은 성도들이 벙어리잖아요.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합니다. 예수 믿으라고 말을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환경에 무너지고, 힘들면 좌절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짓밟히고 비참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근사한 것 같은데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해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보세요.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인을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반대가 되었단 말입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성령의 능력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능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야 하는데 향기를 맡을 수가 없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창피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으라는 이유는 권능을 받아야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말로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경험해 보셨잖아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전도하려고 하면 마귀의 방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고린도전서 2:13,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유식한 사람이에요? 당대에 천재인데, 말로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해야 만이 그 사람의 영혼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전도 축제가 시작됩니다. 3개월 동안 지속되는데,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전도하기 전에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인 두나미스를 받게 되면 저절로 순종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라. ‘아멘’하게 됩니다. 친구에게 가라. ‘아멘’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할 말을 생각나게 해 주신다고 했으니까 순종해서 가면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도축제 기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저절로 하게 되는 겁니다. 안 하고는 못 견디는 겁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이 맛있으면 소문내고 다닙니다. 누가 말하라고 했나요? 음식이 맛있으니까 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능력에 반해버리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에 저절로 가게 되는 겁니다.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가 전도축제 기간에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영혼을 구원할 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기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요.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기가 막힌 겁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능력이 생기고, 고난을 이겨나가는 능력이 생기고, 환경을 극복하는 능력이 생기고,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삶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떤 문제가 있으십니까?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순종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증거 하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옷 입으셔서 순종하는 생활이 쉬워지시고, 복음을 증거 하는 생활이 즐거워지시는 놀라운 축복을 저와 여러분이 다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하셔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게 하시고, 말씀을 증거 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이 임하시면 … ….
이기복목사(하늘문교회) / 행 1:8, 2:1-4
오늘은 5월 마지막 주일이면서 성령강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또한 감리교의 창시자이신 요한 웨슬리목사님의 회심 27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교회 절기로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성령이 임하시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지난 주일 낮 설교시간에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면서 크게 4가지의 은혜와 선물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이 최고의 은혜요, 선물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며, 셋째가 성령, 그리고 넷째의 은혜와 선물이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이 네 가지의 은혜와 선물 중 성령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령(聖靈)은 하나님의 영으로 다른 말로는 성신(聖神)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을 거룩한 영(Holy Spirit)이라고 하며, 희랍어로 파라클레토스(Paracletos)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주신 보혜사 성령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우리를 도우시는 분일까요? 보혜사라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는 “도움을 베풀기 위해 곁으로 부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1) 위로자(Comforter): 우리가 외롭고 슬프고 괴로울 때, 답답할 때 우리를 위로해 줄 분이 보혜사 성령입니다.
2) 중보자(Mediator):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중보역할을 해 주십니다.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중보역할을 해 주십니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사람과 사람 관계에 이간질을 합니다.
3) 돕는자(Helper):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강하고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4) 상담자(Counselor):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상담할 때 우리에게 친절히 상담해 주시는 상담자입니다.
5) 탄원자(Supplicator: 억울하고 답답할 때 우리를 위하여 탄원(歎願)하여 주십니다. 이상과 같이 보혜사 성령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필요하고 좋은 역할을 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뜻이 무엇일까요? 또 그 사역이 무엇일까요? 오늘은 성령님이 오시면 어떤 역사를 이루시는지 말씀을 전하면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1. 변화를 받고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욜 2:28).
성령이 임하시면 영의 눈을 뜨게 되고, 영적인 눈을 뜨면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영적으로 새로운 변화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구약 요엘 선지자는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환상을 보리라(욜2:28)”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합니다.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것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환상(Vision)을 봅니다. 성령을 받으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지고 삶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성령강림 이전의 제자들은 세상의 안목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서로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투었으며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무섭고 두려워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성령강림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다음에는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을 떴습니다. 유대인의 위협도, 핍박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고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변해야 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이나 가치관은 변하지 않고 자꾸 눈에 보이는 현상학적인 것만 생각하고 추구한다면 진정한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2. 능력(권능)을 받습니다(행 1:8).
성령은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가장 큰 힘입니다. 모세는 한 낮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동에 불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는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구약의 사사들도 마찬가지로 대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여 함께 하실 때는 적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의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소년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느니라(삼상 17:45)”고 외치며 나가 그 누구도 감히 맞서지 못했던 골리앗과 싸워 보기 좋게 이겼습니다. 성령충만을 받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능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수난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며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도행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에는 능력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은 사도 바울은 생명을 다해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3. 진리로 인도하시고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요 15:26, 16:13).
하나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십니다. 진리란 “바르고 참된 이치” 즉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올바른 이치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영원한 진리입니다. 진리란 일시적인 것이나, 수시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부분적인 것이 아닙니다. 요 17:17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길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벧전 1:24-25에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진리입니다. 요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 중의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5:33, 요 8:32).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고 성령을 말씀하실 때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성령인 보혜사가 오시면 예수님을 증거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요 15:26, 요1서 5:5, 행 1:8). 진리의 영인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아야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증거자가 됩니다.
4. 세상 끝 날까지 지켜 주십니다(요 14:16).
요 14:16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시어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보혜사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는 목적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크고 위대한 복이요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시 121편에 “졸지 않으시며,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네 오른 쪽에서 네 그늘이 되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낮의 해가 상치 못하게 하시며 밤의 달도 해치지 못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네 영혼을 지켜 주신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now and forever). 웨슬리 목사님은 마지막 임종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당당하고 담대하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아무 걱정할 것이 없으며,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 주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전도와 섬김
김명혁목사 / 행 1:8, 막 10:45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8년 2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안산에 있는 작은 교회인 안산 능력교회에는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담임 목사님들에게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묻곤 합니다. 김지영 목사님께서 “전도와 섬김”에 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오늘은 “전도와 섬김”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전도와 섬김”은 아주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전도와 섬김”은 또한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와 섬김”의 사역을 동시에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을 내어 보내시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 9:3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마 10:5-7).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기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고 제자들도 섬김의 삶을 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15). 예수님께서는 “전도와 섬김”의 사역을 동시에 하셨습니다. 참된 전도는 “섬김의 삶” 즉 “착한 삶”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화란 암스텔담에서 “국제 전도대회”가 개최되었었는데 빌리 그래함 박사님은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 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리 그래함 박사님은 전도자가 전도자로서의 성결한 착한 삶을 잃으면 전도자로서의 삶은 끝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나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아 마루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성경에 나타난 “전도의 비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전도”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리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변화된 사람들의 “섬김의 삶” 즉 “착한 삶”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말이나 기술이나 훈련으로 이루어지는 것보다는 변화된 사람들의 “섬김의 삶” 즉 “착한 삶”과 간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교회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 존재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신자들과 교회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요 등대인데 소금과 빛과 등대가 하는 일은 세상 사람들에게 “섬김의 삶” 즉 “착한 삶”을 나타내 보이므로 올바른 삶을 살도록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인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두루 다니시면서 “섬김의 일” 즉 “착한 일”을 하셨다고 베드로가 지적했습니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그러면 성경에 나타난 “전도”의 모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요 4장에 기록된 사마리아 수가 성 여자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과 수가 성 여자의 “전도”의 모습 두 가지를 함께 발견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수가 성에 세상을 등지고 불행하게 살아가던 부도덕한 여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정오 시간에 우물가에 와서 물을 길어가곤 하던 외로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가성 여자가 우물가에 오는 정오 시간에 맞추어 그 여자와 비슷한 피곤한 그리고 목 마른 모습으로 우물가에 와서 앉아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이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찾아가서 기다리는 온유와 겸손과 따뜻함과 착함의 모습이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이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자가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건네며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요4:7). 피곤하고 불행한 사람은 사람들과 말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걸으셨습니다. 그 것이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이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전도”는 찾아가는 것이고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을 좀 달라” 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매우 퉁명스러웠습니다. 불만과 원망이 가득한 투로 대답을 했습니다. “별 사람 다 봤네. 점잖게 생긴 유대 양반이 개 같은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다 달라고 하시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거만한 태도에 개의치 않으시고 친절하게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누구이심을 가리켜 보여주셨습니다. “여인이 만일 하나님의 선물이 얼마나 귀한 지를 알았더라면, 그리고 여인과 말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당신이 나에게 생수를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요. 그러면 내가 여인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요." 그 여자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수” 라는 말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 여자는 여전히 따지는 투로 말을 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누구 시길래, 나에게 생수를 주실 수가 있다는 말이요? 당신이 이 우물을 판 야곱 보다 더 큰 사람이란 말이요?” 마음 한 구석에 약간의 관심을 가지면서도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서 반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부를 당하시면서도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전도의 비결이 인내와 온유와 겸손과 따뜻함과 착함인 것을 발견합니다. “이 우물 물을 먹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 말을 들은 수가 성 여인은 무엇인가를 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주님, 이런 물을 내게 주시옵소서.” 그 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가리켜 “주님”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달라고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이런 물을 내게 주시옵소서.” 수가성 여인은 이제 할 말을 제대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셨고 예수님에게 무엇인가를 구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이 여자는 생각하지 않았던 말씀에 너무나 당황하고 놀랐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숨겨 오던 사실을 그대로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가 성 여자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실 직고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그 여자의 마음을 몽땅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 네 말이 참되도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도덕한 그 여자를 인정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전도”의 모습이고 “전도”의 방식이었습니다. 수가 성 여자는 주님 앞에서 완전히 항복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면서 주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그런데 주님, 메시야가 곧 오신다고 했는데 메시야가 언제쯤 오시게 됩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이야말로 자기가 메시야임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할 때 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내가 바로 메시야니라.” 예수님께서는 수가 성 여인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주님을 믿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전도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이제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죄를 사하시고 생명의 물을 부어 주시는 메시야를 만나고 믿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인데 온유와 겸손과 따뜻함과 착함과 섬김의 모습으로 다가가서 주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그 여자의 몸과 가슴과 영혼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자기 몸과 영혼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생명의 강물이 온 몸에 출렁거림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평안과 감사가 넘쳐 흘렀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새로운 존재로 바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운명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도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가 성 여인이 수가 성으로 달려가서 “전도”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전도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도의 기술을 습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한 것뿐이었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가운데 그녀의 운명이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운명의 변화”가 수가 성 여인으로 하여금 달려가서 “전도”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혼과 삶의 변화가 없는 전도는 형식적인 전도에 그칠 수가 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요4:28-29). 수가 성 여인의 “삶의 변화”와 “운명의 변화”는 “간증”과 “전도”로 이어졌습니다. 자기를 싫어하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메시야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만나기 싫어하던 수가 성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입을 열어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자기의 부끄러운 삶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어 보여주시고 그리고 자기에게 생수를 부어 주신 주님을 큰 소리로 증거했습니다. “나를 좀 보시요. 나는 메시야를 만났소. 그 분은 나를 변화시켜 주셨소. 내 마음에 기쁨의 강물이 넘칩니다. 여러분들도 메시야를 만나 보십시요.” 생수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흘러 넘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수가 성 사람들이 수가 성을 떠나서 예수님에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 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 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요4:39-42). 수가 성 여인의 “삶의 변화”와 “순수한 간증”이 너무너무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주님을 만난 사람의 “회개”와 “변화된 삶”과 “간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참된 전도는 온유와 겸손과 따뜻함과 섬김의 모습으로 이루어집니다
둘째로, 욥바에 살던 도르가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행9:42은 욥바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42). 그리고 그 배경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 배경 이야기란 도르가란 여인이 욥바에 살던 불쌍한 사람들에게 “섬김의 일” 즉 “착한 일”을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9:36). 도르가는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전도의 기술을 습득한 것도 아니었고 전도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도르가의 “전도의 비결”은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것뿐이었습니다. 도르가가 병들어 죽었을 때 욥바 사람들이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여 오게 했고 도르가의 도움을 받았던 과부들은 모두 함께 모여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행9:37—39). 감동을 받은 베드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40-42).
도르가의 이야기의 중요한 결론은 온 욥바 사람들이 많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욥바에서 이루어진 “전도의 비결”도 도르가의 “섬김의 일” 즉 “착한 일” 이었습니다. 도르가가 죽었다가 살아난 것도 중요하지만 사도행전 9장이 강조해서 지적하는 것은 도르가가 과부들에게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전도”가 힘있게 이루어졌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어느 교회든지 전도를 많이 하고 성장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선행과 구제와 봉사”가 많아야 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동네의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면서 청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과 격려의 손길을 펼 수도 있습니다. 나팔 부는 선행과 구제와 봉사가 아닌 도르가처럼 조용히 하는 선행과 구제와 봉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기술이나 훈련보다는 변화된 사람의 “착한 삶과 섬김”입니다. 물론 도르가처럼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도 필요합니다. 즉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전도”는 “변화된 사람”의 “삶의 모습”과 “사랑과 구제와 봉사”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셋째로, 안디옥에서 이루어진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행11:24을 읽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안디옥에서 이루어진 큰 전도는 바나바의 “착함”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고 전도가 힘있게 이루어진 근본적인 배경에는 스데반 집사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삶”과 “순교의 죽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11:19-21). 순교 신앙이 안디옥교회 전도의 뿌리요 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안디옥에 전도의 열매가 크게 맺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바나바의 “착함” 때문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라고 지적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전도는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드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순교”의 죽음에 바탕을 둔 그리고 “착함”의 손길을 펴는 방식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 목회도 안디옥교회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비결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안디옥교회가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교회를 향해서 “구제와 착함”의 손길을 편 일도 계속해서 부흥 발전한 비결 중의 하나였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9,30). 안디옥교회는 결국 가장 중요한 이방 선교의 기지가 되었고 이방 선교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전도와 부흥”의 비결은 결국 “착함”과 “섬김”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끝으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전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목회와 전도의 방식과 비결”은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믿음은 나환자 사랑과 원수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한번은 박옥선이란 여 환자가 발 밑에 난 종기 때문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입으로 악취 나는 환부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습니다. 나병의 환부에는 사람의 침이 좋은 약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에게 모든 사랑과 정성을 다 쏟아 부은 한국의 프랜시스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 더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보다는 더 사랑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반란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자기가 그렇게도 사랑하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하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당에 들어가서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결국 손양원 목사님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원수 같은 안재선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았습니다. 전도의 폭탄이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랑의 원자탄에 맞아서 죄 사함과 구원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안재선이 나중에 손양원 목사님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아버님전 상서 천부님의 은혜 가운데 아버님 어머님 기체 만강하심을 비옵니다. 소자는 예수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음을 감사합니다. 이 죄인은 아버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죄값을 회개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믿음으로 중생하였습니다. 중생하였으나 소자는 인간인고로 때때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인을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심을 진실로 감사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중생하고 보니 하나님께 몸 받쳐야 되겠습니다. 나의 있는 것 모든 것 다 받쳐야 되겠습니다. 우리 신자는 다 순교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우리가 죽도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하겠습니다….아버님 어머님의 기도의 덕인 줄로 믿습니다. 아버님 모든 것 용서해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사랑이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니 사도 바울의 뒷길을 따라가고자 한걸음 두 걸음 걷고 있습니다. 두 형님의 뒤를 따를 것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나이다. 1949년 9월 15일 편지 받아본 즉시 저녁 안재선 상서.”
안재선은 완전이 변화된 새 사람이 되었고 안재선의 아들은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목회와 전도의 방식과 비결”은 유창한 설교도 아니었고 심오한 신학강의도 아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몸에 지니시고 삶으로 나타내 보이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나타내 보이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었고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 나타내 보인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었는데, 손양원 목사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이었습니다. 사실 손양원 목사님께서 1950년 9월 28일 밤 미평 과수원에서 공산당에 의해서 총살을 당해 순교하시면서도 자기에게 총을 쏜 공산당 군인을 위해서 사죄의 기도를 드리다가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전도의 비결”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손길을 펴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전도는 가장 귀중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보람된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즉 전도하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말씀이 말씀을 전파하며 전도인의 일을 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즉 전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을 받음으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을 친밀하게 만나야 합니다. 성령님의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회개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생생한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리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변화된 사람들의 “섬김의 삶” 즉 “착한 삶”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녀야 하고 그리고 “섬김과 착함”의 손길을 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산 능력교회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를 섬김과 착함의 손길을 통해서 많이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과 성령 충만의 은사
한태완목사 / 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강원도 예수원에서 사역하셨던 대천덕 신부님은 성공회 신부님이신데 그분 할아버지인 R. A. 토레이 목사님의 글에는 성령 충만이 자주 강조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한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하면 실언이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입니다.”
R. A. 토레이 목사님은 이처럼 성령 충만을 사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의 죄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사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고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주기도문을 보세요.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사랑이 없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7)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 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4:20)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나의 변화나 사회개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전12장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곡해하여 자기가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있으니, 자기는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입으로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말하고 있지 실제로는 자기 인생의 주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 또는 돈, 가족 등이 내 삶의 주인(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내(자아)가 죽어야 내 안에서 하나님이 왕노릇하실 수 있습니다.(마16:24, 눅14:26)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4, 35)
성령 없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내 안에 구주로 모실 수 없는 것입니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으려면 먼저 돌감람나무가 죽어야 합니다.(롬11:17- 24)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1서5:12)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내가 준비된 그릇 만큼만 받은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내가 받은 은사만을 고집하고 다른 이들의 받은 은사를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