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송수권시문학상 본상
고요를 시청하다 / 고재종
초록으로 쓸어 놓은 마당을 낳은 고요는
새암가에 뭉실뭉실 수국송이로 부푼다
날아갈 것 같은 감나무를 누르고 앉은 동박새가
딱 한 번 울어서 넓히는 고요의 면적,
감잎들은 유정무정을 죄다 토설하고 있다
작년에 담가 둔 송순주 한 잔에 생각나는 건
이런 정오, 멸치국수를 말아 소반에 내놓던
어머니의 소박한 고요를
윤기 나게 닦은 마루에 꼿꼿이 앉아 들던
아버지의 묵묵한 고요,
초록의 군림이 점점 더해지는
마당, 담장의 덩굴장미가 내쏘는 향기는
고요의 심장을 붉은 진동으로 물들인다
사랑은 갔어도 가락은 남아, 그 몇 절을 안주 삼고
삼베올만치나 무수한 고요를 둘러치고 앉은
고금*의 시골집 마루,
아무것도 새어 나게 하지 않을 것 같은 고요가
초록바람에 반짝반짝 누설해 놓은 오월의
날 비린내 나서 더 은밀한 연주를 듣는다
*고금 : 외롭게 홀로 자는 잠자리.
제6회 송수권시문학상 젊은 시인상
북향 사과 / 황정희
이건 북향 사과군
당신은 맛없는 사과를 만나면
그렇게 말하는 버릇이 있더군
사과 좀 안다 이거지
꽃눈이 늦어 씨알이 잘고
오래 시고 푸른 사과
당신은 북향 사과 앞에서는
이 말도 잊지 않더군
비바람에 가지 놓치지 않고
껍질 두꺼워 벌레가 잘 끼지 않는다고
듣다 보면 내 이야기나 당신 이야기 같은
낯익은 이야기가 되어
잠깐 서글퍼졌다 훈훈해지지
사과를 고르다 보면 고르게 둥근 사과를
만나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더군
한쪽이 기운 사과를 깎으며
더듬더듬 사과의 북향을 지나
기운 쪽은 내 것으로 당겨 놓고
도톰한 쪽을 내밀며
꿀사과야 하고 권하면
우리는 또 잠깐 서글펐다 오래 훈훈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