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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국악마을국악학원 원문보기 글쓴이: 복돼지총무
판소리 /흥부가 가난타령 흥보가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의 하나로, ‘박타령’이라고도 불린다.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 주었더니, 그 제비가 물어 온 박씨를 심었다가 얻은 박을 타서 보물을 얻어 부자가 되고, 부자이나 심술궂은 형 놀보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서 고쳐 주고 얻은 박씨를 심었다가, 박 속에서 나온 상전, 놀이패, 장수 따위에게 혼이 난다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판소리로 짠 것이다.
짐승이 사람에게 은혜와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몽고의 ‘박 타는 처녀’ 이야기, 일본의 ‘혀를 자른 새’ 이야기, 중국의 ‘은혜를 갚은 누런 새’ 이야기 따위에서도 보이듯이, 아시아에 널리 퍼져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를 조선 왕조 어느 때쯤에 가객들이 판소리로 짠 것 같다.
흥보와 놀보 형제를 등장시켜 엮어 나가는 이 이야기 속에는 서민다운 재담이 가득 담겨있고, 또 놀보가 탄 박통 속에서 나온 놀이패들이 벌이는 재잠도 들어 있어서, <흥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민속성이 강한 마당으로 꼽힌다. <흥보가>를 재담소리라고 하여 한편으로 제쳐 놓던 가객들도 있었던 점으로 봐서도 <흥보가>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와는 달리,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 <배비장타령>, <옹고집타령>과 같이 민중의 해학이 가득 담긴 판소리로 꼽힌다고 하겠다.
조선 왕조 초기 문헌에 “광대소학지회”라는 광대 놀음에 관한 글이 보이는데, 판놀음 속에 판소리가 끼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흥보가>도 부분적으로라도 그때에 이미 판소리로 불렸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지만, 문헌에 자세히 보이지 않으니 짐작에 그칠 뿐이다. 판소리 <흥보가>의 내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순조 때의 문인 송만재가 쓴 “관우회”라는 글이다. 그 속에는 <흥보가>를 포함한 판소리 열두 마당의 내용이 짧게 소개되어 있다. 조선 왕조의 영조 때에서 헌종 때에 걸친 시대의 명창인 권삼득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니, “관우회”가 쓰인 순조 무렵에는 <흥보가>가 꽤 널리 불렸을 것이다.
권삼득의 뒤를 이어 많은 명창들이 <흥보가>를 불러 <흥보가>는 훌륭한 판소리로 발전했던 것 같다. 권삼득은 특히 놀보가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설렁제 대목을 더늠으로 내어 놓아서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 또 순조 때의 명창인 염계달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헌종 때에 전라도 장흥 사람인 명창 문석준도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하는데, 특히 흥보가 궤에서 돈과 쌀을 매우 빠르게 떨어 내는 대목을 소리로 짠 것으로 유명하며, 그 대목은 그의 더늠으로 오늘날까지 전재하고 있다. 그밖에도 헌종 때의 경기도 수원 명창인 한송학, 철종 때의 전라도 함평 명창인 정창업, 충청도 한산 명창인 정흥순과 최상준이 <흥보가>를 잘 불렀다고 한다.
고종 때에 원각사에서 창극을 이끌던 명창 김창환도 잘했는데, 특히 제비가 강남에서 박씨를 물고 흥보 집까지 날아오는 과정을 그린 ‘제비 노정기’를 잘 짜 불러 이름이 높았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명창들이 이 대목을 김창환 더늠으로 부르고 있다. 고종 때에 원각사에서 김창환과 같이 일하던 명창 송만갑도 잘 불렀는데, 특히 흥보가 박을 타며 부르는 ‘박타령’이 장기였다. 1978년에 죽은 여자 명창 박녹주도 <흥보가>를 잘하였다.
지금 전해지는 <흥보가>에는 송홍록에게서 송광록과 송우룡을 차례로 거쳐 송만갑에게 이어지는 동편제 <흥보가>와, 정창업에게서 김창환에게 이어지는 서편제 <흥보가>가 있으며,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전해지던 중고제 <흥보가>는 전승이 끊어졌다. 송만갑의 <흥보가>는 김정문을 거쳐 박녹주, 강도근이 이어받았고, 또 박봉래를 통하여 박봉술이 이어받았다. 김연수의 <흥보가>도 동편 계통에 든다. 서편제 <흥보가>는 김봉학, 오수암, 박지홍을 통하여 정광수, 박초월, 박동진이 이어받았다.
<흥보가>는 내용으로 보아, 첫째로, 초앞에서 흥보가 쫓겨나가는 데까지, 둘째로, 흥보가 매품 파는 데에서 놀보에게 매 맞는 데까지, 세째로, 도사 중이 흥보 집터 잡는 데에서 제비 노정기까지, 네째로, 흥보 박 타는 데에서 부자가 되어 잘사는 데까지, 다섯째로, 놀보가 흥보 집 찾아가는 데에서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 데까지, 여섯째로, 놀보가 박 타는 데에서 뒤풀이까지로 가를 수 있다.
<흥보가>에서 유명한 소리 대목은 놀보 심술, 돈타령, 흥보가 매 맞는 대목, 중타령, 중이 집터 잡는 대목, 제비 날아드는 대목(사설에 따라 “겨울 ‘동’자, 갈 ‘거’자…”라고도 불린다), 제비 노정기, 박타령, 비단타령, 화초장타령,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따위를 들 수 있다. <흥보가>를 도막소리로 할 때에는 이 가운데에서 골라서 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놀보가 박 타는 대목은 재담이 많고, 놀이패들이 잡가를 부르는 대목이 많다 하여 여자들은 소리하기를 꺼렸다. 박녹주의 것도 놀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까지만 짜여 있다.
충청·전라·경상도 접경에 살던 연생원은 놀부와 흥부 두 형제를 두고 죽었는데, 형인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동생인 흥부를 내쫓는다. 흥부는 아내와 여러 자식을 거느리고 움집에서 헐벗고 굶주린 채 갖은 고생을 하면서 묵묵히 살아간다. 그리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여도 흥부의 살림은 여전히 가난하기만 하였다. 그런 어느 날 흥부는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새끼제비를 주워다가 정성껏 돌본 끝에 날려보낸다. 이듬해에 그 제비는 흥부에게 보은(報恩)하고자 박씨 한 개를 물어다가 주었는데, 가을이 되자 잘 여문 박을 거두어 켜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 속에서는 온갖 눈부신 보물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와 흥부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그것을 안 놀부가 흥부에게 달려와 벼락부자가 된 자초지종을 듣고는 자기도 새끼제비 한 마리를 잡아다가 다리를 부러뜨린 뒤 실로 동여매어 날려보낸다. 그 제비 또한 이듬해 봄에 박씨를 물어다 주었다. 그러나 놀부가 심어서 거둔 박 속에서는 온갖 괴물이 나타나 그의 재산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없어지고 그의 집은 수라장이 되었다. 마음씨 고운 흥부는 그래도 놀부를 지성으로 섬겨서 함께 행복을 누렸다는 이야기이다.
감상하기 아니리 아동방이 군자지국이요, 예의 지방이라. 십실지읍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아도 효도를 일삼으니 무슨 불량한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요순시절에도 사흉이 났었고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있었으니 아마도 일종 여기야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어름에 놀보 형제가 살았는디 흥보는 아우요, 놀보는 형이라. 사람마다 오장이 육본디 놀보는 오장이 칠보라. 어찌허여 칠본고 허니 왼편 갈비밑에가 장기궁짝만허게 심술보 하나가 딱 붙어 있어 본디 심술이 많은 놈이라. 그 착한 동생을 쫓아낼 량으로 날마다 심술공부를 허는 디 꼭 이렇게 허든 것이었다.
자진모리 대장군방 벌목허고 삼살방에 이사권코 오구방에다 집을짓고 불붙는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박고 길가는 과객양반 재울듯기 붙들었다 해가 지면은 내어쫓고 초란이 보면 딴낮 짓고 거사 보면은 소구도적 의원 보면 침 도적질 양반 보면은 관을 찢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과부는 모함잡고 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 넣고 새망건 편자 끊고 새 갓 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밴 부인은 배를 차고 길가에 허방 놓고 옹기전에다 말달리기 비단전에다 물총놓고.
무장단 창조 이놈의 심사가 이래 놓니 삼강을 아느냐 오륜을 아느냐 이런 모지고 독한 놈이 세상 천지 어디가 있더란 말이냐.
아니리 이놈이 삼강도 모르고 오륜도 몰라노니 어찌 형제 윤기인들 알 리가 있겄느냐, 하루는 놀보가 심술이 나서 비오는 날 와가리 성음을 내어
"네 이놈 흥보야.! 너도 늙어가는 놈이 곁말에 손 넣고 서리맞은 구랭이 모냥으로 슬슬 다니는 꼴 보기 싫고 밤낮으로 내방출입만 하야 자식새끼만 도야지 이물돛 퍼낳듯 허고 날만 못살게 구니 보기 싫어 살 수가 없다. 너도 나가 살어 봐라 이놈!"
무장단 창조 "아이고 형님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니리 "잔소리 말고 나가!"
중모리 나가란 말을 듣더니마는
"아이고, 여보 형님 동생을 나가라고 허니 어느 곳으로 가오리까? 이 엄동 설한풍의 어느 곳으로 가면 살 듯허오 지리산으로 가오리까 백이숙제 주려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이놈 내가 너를 갈 곳까지 일러주랴 ? 잔소리 말고 나가거라!"
흥보가 기가 맥혀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고 여보 마누라! 형님이 나가라고 허니 어느 영이라 거역허며 어느 말씀이라고 안 가겄소, 자식들을 챙겨보오"
"큰자식아 어디 갔나 둘째 놈아 이리 오너라"
이삿짐을 챙겨지고 놀보 앞으가 늘어서서
"형님 갑니다. 부디 안녕히 계옵시오"
"오냐 잘가거라!"
흥보 신세 볼작시면 울며불며 나가면서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내 신세는 왜 이런고 부모님이 살어 계실 적으난 니 것 내 것이 다툼 없이 평생의 호의호식 먹고 입고 쓰고 남고 쓰고 먹고도 입고 남어 세상 분별을 내가 모르더니마는 흥보놈의 신세가 일조에 이리 될 줄을 귀신인들 알것느냐. 여보게 마누라 어느 곳으로 갈까"
아서라 산중으로 살자 전라도난 지리산 경상도로난 태백산 산중으가 살자 허니 백물이 없어서 살 수 없고 아서라 도방으로 가자 일월산 이강경이 삼포주 사백성이 도방으가 살자 허니 비린내 찌우어 살 수 없고 아서라 서울 가서 살자 서울 가서 사자 허니 경우를 모르니 따구만 맞고 충청도가 사자 허니 양반들이 억시어서 살수가 없으니 어느 곳으로 가면 살 듯 허오.
아니리 성현동 복덕촌을 당도허여 고생이 자심헐 제
무장단 창조 철모르는 자식들은 음식노래로 부모를 조르난 디, 떡 달라난 놈, 밥 달라난 놈, 엿을 사달라난 놈 각심으로 조를 적의, 흥보 큰아들이 나앉으며
"아이고 어머니!"
"이 자식아 너는 어찌허여 고등부살이 목성음이 나오느냐"
"어머니 아버지 공론허고 날 장가 좀 들여주오 내가 장가가 바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가만히 누워 생각허니 어머니 아버지 손자가 늦어 갑니다."
흥보 마누라가 이 말을 듣고 기가 맥혀
진양 "워따 이놈아 야 이놈아 말들어라 내가 형세가 있고 보면 니 장개가 여태 있으며 중한 가장을 못 맥이고 어린 자식을 뱃기것느냐 못 맥이고 못 입히는 어미 간장이 다 녹는다. "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거 없이 사는 살림에 밤낮 그렇게 눈물만 짜니 먼 재수가 있겄소? 나 오늘 읍내 좀 갔다 오리다."
"읍내는 멋허로 가실라요?"
"환자맡은 호방한테 환자섬이나 얻어냐 굶어 가는 어린 자식들을 구환하지 않겠소"
"내라도 안 줄테니 가지 마오"
"사구 일생이제 누가 믿고 가나? 거 내 갓 좀 내주오"
"갓은 어디다 두었소?"
"굴뚝 속에 두었제"
"아니 여보 영감! 갓을 어째 굴뚝 속에 두었단 말이요?"
"그런 것이 아니라 신묘년 조대비 국상시에 얻어 쓴 백립이 갓냥이 단단하다고 하야 끄을음에 끄슬려 쓸라고 굴뚝 속에 두었제. 거 내 도복 좀 내주오"
"도복은 어디다 두었소?"
"장안에 두었제"
"아이고 여보 영감! 우리 집에 무슨 장이 있단 말이요?"
"허허 이 사람 달구장은 장이 아니란 말인가?"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칠청을 들어가는 디
자진모리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가 들어간다. 흥보 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 매여 조새 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건 밥풀관자 종이 당줄 뒤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죽어도 양반이라고 여덟 팔자 걸음으로 의식비식이 들어간다.
아니리 아 이러고 들어가다가 별안간 걱정이 하나 생겼지
'내가 아무리 궁수남아가 되었을망정 발남박가 양반인디 호방을 보고 허겔허나 총격을 허나 아서라 말은 허되 끝은 짓지 말고 그냥 웃음으로 닦을 수밖에 없구나.'
흥보가 질청을 들어가니 호방이 문을 열고
"박생원 오시었소, 어찌 오시었소 ?"
"양도가 부족하야 환자 한 섬난 꿔주면 가을에 착실히 갚을 터이니 호방생각은 어떨는지? 허 허 허!"
"박생원 그리 말고 들어온 짐에 품이나 한 번 팔아 볼라요? "
"아 돈 생길 품이면 팔고 말고 해 "
"우리 골 좌수가 영문에 잡혔는디 대신 가서 곤장 열 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은 꼽아놓은 돈이요, 마삯까지 닷냥 제지했으니 그 품 하나 팔아보오"
"매맞으러 가는 놈이 말 타고 갈 것 없고 정강말로 다녀올 것이니 그 돈 닷 냥을 나를 내어 주지"
중모리 저 아전 거동을 보아라 궤문을 떨껑 열고 돈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아들고
"다녀오리다"
"평안히 다녀오오"
박흥보 좋아라고 칠청 밖으로 썩 나서서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금 있다가 나는 지환을 손에다 쥐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지니 보이난 것 돈밖의 또 있느냐 돈 돈 돈 돈봐라 돈, 떡국집으로 들어가서 떡국 한 푼어치를 사서 먹고 막걸리 집으로 들어가서 막걸리 두 푼어치를 사서 먹고 어깨를 느리우고 죽통을 빼트리고 대장부 한 걸음에 엽전 서른 닷냥이 들어를 간다. 얼씨구나 좋구나. 저의 집으로 들어가서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고 집안이라고 들어오면 우루루루 쫓아 나와 영접 허는 게 도리 옳지, 계집이 이 사람아 당돌이 앉아서 좌이부동이 웬일인가 에라 이 사람 몹쓸 사람!"
중중모리 흥보 마누래 나온다. 흥보 마누래 나온다.
"어디 돈 어디 돈 돈 봅시다 돈봐!"
"놓아두어라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봐라"
아니리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이 돈 가지고 쌀 팔고 고기 사서 육죽을 누구름허게 열 한 통만 쑤소!"
아이도 한 통 어른도 한 통 각기 한 통씩 먹여노니 식곤증이 나서 앉은자리에서 고자백이 잠을 자는 디 죽말국이 코끝에서 소주 후주 내리 듯 댕강댕강 허것다. 이 틈을 타서 막내 하나를 또 맹글었지
"여보 영감 이 돈이 웬 돈이요? 이 돈 속이나 좀 압시다."
"이 돈 속 알면 큰일낼 돈일세, 우리 골 좌수가 영문에 잽혔는디 대신 가서 곤장 열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 냥씩 서른 냥을 준다기에 삯전으로 받어 왔으니 아무 누설 내지 말소 이 옆집 꾀쇠 애비란 놈이 알면 영락없이 발등거리 허기 쉽네"
창조 "아이고 여보 영감 중한 가장 매품 팔어먹고 산단 말은 고금 천지 어디가 보았소"
진양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불쌍한 영감아 가지를 마오 천불생 무륵지인이요 지보장 무명지초라 하날이 무너져도 솟아날 궁기가 있는 법이니 설마헌들 죽사리까 제발 덕분에 가지 마오 병영영문 곤장 한 대를 맞고 보면 종신 골병이 든답디다 영감 불쌍한 우리영감 가지를 마오"
아니리 이 놈들이 저의 어머니 울음소리를 듣더니 물소리들은 거위모양으로 고개를 들고
"아버지 병영 가십니까?"
"오냐 병영간다."
"아버지 병영갔다 오실 때 나 담뱃대 긴 것 하나 사다 주시오"
"에이 나쁜 놈 같으니라고!"
또 한 놈이 나앉으며
"아버지 나는 투전 한목만 사다 주시오"
"투전은 뭣 허게?"
"아버지 재산 없어 고생하시니 놀음해서 돈 많이 벌어 오리다"
그때여 흥보 큰아들이 나앉으며
창조 "아이고 아버지 !"
"이 자식아 너는 또 왜 불러 ?"
창조 "아버지 병영 갔다 오실 때 나 각시 하나만 사다 주오!"
"각시는 뭣허게?"
창조 "아버지 재산 없어 날 못여우니 다리고 막걸리장사 할라요"
중중모리 아침밥을 지어먹고 병영 길을 나려간다. 허유 허유 나려를 가며 신세자탄 울음을 운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부귀영화로 잘 사는디 내 신세는 어이허여 이 지경이 웬일이냐?"
병영골을 당도허여 치어다 보느냐 대장이요 나려 굽어보니 숙정패로구나 심산맹호 운룡같은 용자 붙인 군로 사령이 이리 가고 저리 간다. 그때여 박흥보는 숫헌 사람이라 벌벌벌 떨면서 있구나.
아니리 방울이 떨렁 사령이 예이 야단났지 흥보가 삼문군기를 들여다보니 죄인들이 볼기를 맞고 있거날 흥보 숫헌 마음에 저 사람들도 자기모양으로 돈 벌로 온 줄 알고
"내 앞에와 돈 수십 냥 번다! 나도 볼기를 까고 업져 볼거나?"
삼문간에 볼기를 까고 업져노니 사령 한 쌍이 나오더니
"허! 병영 배판지후에 볼기전 보는 놈 생겼구나"
"아니 당신 박생원 아니시오?"
"알아 맞혔구먼"
"박생원 곯았소!"
"곯다니 계란이 곯지 사람도 고나?"
"아까 어떤 놈이 박생원 대신이라 허고 곤장 열 대 맞고 돈 서른 냥 받아서 벌써 떠났소"
창조 흥보가 이 말을 듣고 기가 맥혀
"아이고 이 사람아 그놈이 어떻게 생겼든가?"
"키가 구척이나 되고 기운 좋게 생겼습디다."
흥보가 이 말을 듣더니 마는
"어젯밤 우리 마누라가 가지요 못 가지요 밤새도록 울더니 옆집 꾀쇠애비란 놈이 발등거리 허였구나 "
중모리 "번수네들 그리헌가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수번이나 평안이 허소 내 집이라 들어가면 엿 달라고 우는 놈은 떡 사주마고 달래이고 떡 달라고 우는 놈은 밥해 주마고 달랬는디 돈이 있어야 말을 허지"
그렁 저렁 당도허니
아니리 흥보 마누래가 막내를 받아 안고 흥보 오난 곳을 바라보며
"우지마라 너의 아버지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온다."
흥보가 당도커날
"여보 영감 얼마나 맞았소 장처나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말어, 요망한 계집이 밤새도록 울더니 아 그것이 와전되야, 엽전 한 푼 못 벌고 매 한 대를 맞았으면 내가 인사불성 쇠아들 놈이제"
중중모리 흥보마누래 좋아라 흥보마누래 좋아라
"얼씨구나 절씨구! 영감이 엊그저끄 병영 길을 떠날 때 부디 매를 맞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시라 하나님 전의 빌었더니 매 아니 맞고 돌아오시니 어찌 아니 즐거운가 얼시구나 절씨구 옷을 헐벗어도 나는 좋고 굶어 죽어도 나는 좋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얼씨구 절씨구"
아니리 흥보도 절굿대춤을 한 번 추었겄다.
"여보 영감 이러지 말고 건넌말 시숙한테 건너가서 죽게된 자식 사정을 여쭈어 놓면 다소간 전곡간에 줄 것이니 한 번 건너가 볼라요? "
"내가 만일 건너갔다가 쌀을 주면 좋지마는 보리를 주면 어쩌꺼나"
"아이고 여보 영감 없이 사는 살림에 보리라도 많이만 주면 좋지요"
"아 이 사람아 먹는 보리 말고 몽둥이 보리 말이여"
"형제간 윤기가 있는디 그럴 리가 없으니 한 번 건너가 보오"
흥보가 치장을 채리고 저의 형님댁을 건너 가는 디
자진모리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가 건너간다. 흥보 치레를 볼작시면 철대 떨어진 헌 파립 버릿줄 총총 매여 조새 갓끈을 달아서 떨어진 헌 망근 발풀 관자 종이 당줄 두통나게 졸라매고 떨어진 헌 도포 실띠로 총총 이어 고픈 배 눌러 띠고 한 손에다가 곱돌 조대를 들고 또 한 손에다가는 떨어진 부채 들고 서리아침 찬바람에 옆걸음쳐 손을 불며 이리저리 건너간다.
아니리 아 이러고 건너가다 놀보하인 마당쇠를 만났겄다.
"아이고, 작은 서방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오냐, 그래 그동안 마당쇠 너도 잘 있었으며 요새 큰서방님 성미는 좀 어쩌시냐?"
"아이고 말씀 마십시오. 작은 서방님이 계실 적에는 제향을 모셔도 포군을 시키드니마는 서방님이 떠나신 후로는 그냥 대전으로 바칩니다. 접시에다 이것은 편육이라 이것은 제육이라 패지를 써 붙이지 이 통에 들어가셨다가는 매만 실컷 맞고 갈 것이니 그냥 도로 건너가시지요."
"그러나 내가 여기까지 왔다가 형님을 아니 보고 간대서야 인사도리가 아니지 안겠느냐."
흥보가 성큼 성큼 놀보 사랑 앞을 들어서니 어찌 겁이 났던지
창조 "형님 소인 놈 문안이요"
"예, 거 성씨가 뉘댁이시오."
창조 "아이고 형님 흥보 동생을 모르시오?"
"예, 나는 오대차 독신으로 아우가 없는 사람이요."
창조 흥보가 빌면은 될줄로
진양 두손합장 무릎을 꿇고
"비나니다. 비나니다. 형님 전의 비나니다. 살려주오. 살려주오 불쌍헌 동생을 살려주오. 그제께 하루를 굶은 처자가 어제 점도록 그저 있고 어저께 하루를 문드러미 굶은 처자가 오늘 아침을 그저 있사오니 인명은 재천이라. 설마헌들 죽사리까마는 여러 끄니를 굶사오면 하릴없이 죽사오니 형님 덕택의 살거지다. 벼가 되거든 한 섬만 주시고 쌀이 되거든 닷 말만 주시고 돈이 되거든 닷 냥만 주옵시고 그도 저도 정 주기가 싫으시면 니명이나 싸래기나 양단간의 주옵시면 죽게된 자식을 살리겄소. 과연 내가 원통허오. 분하여서 못 살겄소. 천석꾼 형님을 두고 굶어 죽기가 원통헙니다. 제발 덕분의 살려주오."
아니리 과거를 꽉꽉 대놓니 뗄 수가 없지
"오, 니가 바로 그 흥보냐. 네 이놈 심심허던 판에 잘 왔다. 얘 마당쇠야 대문 걸고 아래 행랑 동편 처마 끝에 지리산에서 박달 홍두깨 헐라고 쳐내온 검목 있느니라. 이리 가지고 나오너라. 이런 놈은 그저 복날 개 잡듯 잡아야 되느니라."
자진모리 놀보놈 거동 봐라. 지리산 몽둥이를 눈우에 번 듯 들고
"네 이놈 흥보놈아! 잘 살기 내 복이요, 못 살기는 니 팔자, 굶고 벗고 내 모른다. 볏섬 주자헌들 마당에 두지 안에 다물다물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두지 헐며 전간 주자헌들 천록방 금궤 안에 가득가득이 환을 지어 떼돈이 들었으니 너 주자고 궤돈 헐며 찌갱이 주자 헌들 구진방 우리 안에 떼돼야지가 들었으니 너 주자고 돛 굶기며 싸래기 주자헌들 황계 백계 수백마리가 턱턱하고 꼭꾜우니 너 주자고 닭 굶기랴. "
몽둥이를 들어 매고
"네 이놈 강도놈 !"
좁은 골 벼락치듯, 강짜싸움에 계집 치듯, 담에 걸친 구렁이 치듯 후닥딱 철퍽
무장단 "아이고 박 터졌소!"
"이놈!"
후닥딱,
"아이고 형님 허리 부러졌오!"
흥보가 기가 맥혀 몽둥이를 피하랴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대문을 걸어놓니 날도 뛰도 못허고 그저 퍽퍽 맞는디 안으로 쫓겨 들어가며
"아이고 성수(형수)씨 사람 살려주오! 아이고 성수씨 날 좀 살려주오!"
아니리 아 이러고 들어가거들랑 놀보 기집이라도 후해 전곡간에 주었으면 좋으련만 놀보 기집은 놀보보다 심술보 하나가 더 붙었던 것이었다. 밥 푸던 주걱을 들고 중문에 딱 붙어 서서
"아니 여보, 아주뱀이고 도마뱀이고 세상도 귀찮아 죽겄네. 언제 나한테 전곡갔다 맽겼든가? 아나 밥, 아나 쌀, 아나 돈!"
창조 허고 뺨을 때려놓니, 형님한테 맞는 것은 여반장이요. 성수한테 뺨을 맞어놓니 하날이 빙빙 돌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진양 "여보 성수씨, 여보 여보 아주머니, 성수가 씨아재 뺨치는 법은 고금천지 어디가 보았소. 나를 이리 치지 말고 살지 중지 능지를 허여 아주 박살 죽여주오. 아이고 하나님, 박흥보를 벼락을 때려 주면 염라국을 들어가서 부모님을 뵈옵는 날은 세세원정을 아로련마는 어이 허여 못 죽는 거나"
매운 것 먹은 사람처럼 후후 불며 저의 집으로 건너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래가 밖을 나와 보니 건넌산 비탈길에서 작지집고 절뚝 절뚝 오는 모양이 돈과 쌀을 많이 가져 오는 듯 하거날 흥보가 당도허니
"여보 영감 얼마나 얻었소. 어디 좀 봅시다."
"날 건드리지 말어."
"아니 또 맞었구료."
"시끄러 그런 것이 아니라 형님댁을 건너갔더니 형님 양주분이 어찌 후하던지 전곡을 많이 주시기에 가지고 오다가 요 넘어 강정 모퉁이에서 도적놈에게 싹 빼앗기고 이렇게 매만 실컷 맞았네."
창조 흥보 마누래가 이말을 듣고 힘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중모리 "그런대도 내가 알고 저런대도 내가 아요. 가빈에는 사현처요, 국난에는 사양상이라. 내가 얼마나 우준허면(의젓허면?) 중한 가장 못 맥이고 어린 자식들을 뱃기겄오. 차라리 내가 죽을 라요."
밖으로 우루루루루루루 뛰어나가 석가래에 목을 매고 죽기로만 작정을 허니 흥보가 달려들어
"아이고 여보 마누라 ,그대가 죽고 내가 살면 어린 자식들은 어이 헐거나.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둘이 서로 부여잡고 퍼버리고 앉아 울음을 우니 자식들도 모두 설리 운다.
아니리 이리 한 참 설리 울제, 그때여 흥보를 살리랴고 도승이 나려오난디
엇모리 중 나려온다. 중하나 나려온다. 저중의 거동을 보소. 허디헌 중 다 떨어진 송낙 요리송치고 저리송치고 호흠벅 눌러쓰고 노닥노닥 지은 장삼 실띠를 매고 염주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소상반죽의 열두 마디 용두 새긴 육환장 채고리 길게 달아 처절철 철철 흔들 흔들 흐늘거리며 나려올 제 염불허고 나려온다. 아아 에 에 에 에에 으으 으으으으으 아아아아 아아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상내소수 공덕해요. 회양삼처 실원만 봉위 주상전하 수만세요. 왕비전하 수제년 세자전하 수천추 국태민안 법륜전 나무아미타불"
흥보문전을 당도허여 개 쿼겅컹 짖고 나면
"이댁에 동냥왔오!"
흥보가 깜짝놀래
"여보 마누라 우지마오. 밖으(에) 중이 왔으니 우지를 마오."
아니리 흥보가 나가보니 중이 왔거날
"여보 대사님, 내 집을 둘러보오. 서발 장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는 집이요."
저중이 대답허되,
"소승은 걸승으로 댁 문전을 당도허니 곡소리가 낭자키로 생사가 미판이라 무삼 연고가 계신지요."
흥보가 대답허되
"권솔들은 다솔허고 먹을 것은 없어 죽기로 작정하고 우난 길이요."
"불쌍하오. 복이라 허는 것은 임자가 따로 없는 것이니 소승 뒤를 따르시면 집터 하나를 잡아 드리리다."
진양(빠른 진양: 세마치) 박흥보가 좋아라고 대사 뒤를 따러간다. 이 모롱을 지내고 저 고개를 넘어 서서 한곳을 당도허여 그 자리에서 우뚝 서더니마는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 제일강산 악양로 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대강 성주를 허시되 임좌병향 오문으로 대강 성조를 허게 되면 명년 팔월 십오일에는 억십 만금 장자가 되고 삼대진사 오대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 적실허니 그리 알고 잘 지내오."
한 두 말을 마친 후의 눈을 들어 사면을 둘러보고 손을 곱아 무엇을 생각터니 인홀불견 간 곳이 없다.
아니리 그제야 흥보가 도승인줄 짐작허고 있던 집을 헐어다가 자리에다 집을 짓고 살아갈 제 차차 차차 살림이 나아지거늘 하루는 흥보가 좋아라고 집터글자를 붙여본즉
중중모리 겨울동자 갈거자 삼월삼질에 올래자 봄춘자가 좋을시고 행화분분 도화요. 이화만지 불개문 허니 실실동풍의 꽃화자 나비접자 펄펄 춤출무자가 좋을시고 꾀꼬리 수리룩 날아 노래 가(歌)자가 좋을시고 기난 건 짐생수 나는 것은 새조라 쌍쌍이 왕래허니 제비연자가 좋다.
아니리 하루난 제비 한쌍이 날아 들거날 흥보가 좋아라고
"반갑다 저 제비야. 고루거각을 다 버리고 궁벽강촌 박흥보 움막을 찾아드니 어찌 아니 기특허랴."
수 십일만에 새끼 두 마리를 깟는 디, 먼저 깐 놈은 날아가고 나중 깐 놈이 날개공부 힘을 쓰다 뚝 떨어져 다리가 작각 부러졌것다. 흥보 내외 어진 마음으로 명태껍질을 얻고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동여 매여 제집에 넣어주며
"부디 죽지말고 살아 멀고 먼 만리 강남을 평안히 잘 가거라"
미물의 짐승이라도 흥보 은혜 갚을 제비거든 죽을 리가 있겠느냐. 수 십일만의 부러진 다리가 나아가니 하로난 날개공부 힘을 써보는디
진양 떴다 보아라 저 제비가 둥그렇고 둥그렇기 구만 장천의 높이 떠 거중으로 둥둥 펄펄 날거날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고
"반갑구나 내 제비야 부러진 다리를 원망을 말어라 고자의 손빈이도 양족이 없었어도 진나라 가서 대장이 되고 초한적 한신이도 일지수가 없었으되 대장단 높은 집이 일군개경을 하였으니 멀고먼 만리 강남을 부디 평안히 잘 가거라."
제비 저도 섭섭하여라고 빨래줄에 가 내려앉더니마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허고 구만 장천의 높이 떠서 이리 저리 노니난 거동은 아름답고 반가워라.
"잘 가거라 내 제비야 만리 강남을 훨훨 날아 들어간다."
아니리 강남 두견은 촉종지망제라 백조들을 점고를 하는디 미국 들어갔던 분홍제비, 독일 들어갔던 초록제비, 중원 나갔던 명맥이, 만리 조선 나갔던 흥보제비 나오
중중모리 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박흥보 제비가 들어온다. 부러진 다리가 봉통아지가 져서 전둥거리고 들어와
"예---이!"
제비장수 호령을 허되
"너는 왜 다리가 봉통아지가 졌노?"
흥보제비 여짜오되
"소조가 아뢰리다. 소조가 아뢰리다. 만리 조선을 나가 태어나 소조운수 불길허여 뚝 떨어져 대반에 다리가 작각 부러져 거의 죽게 되었으나 어진 흥보씨를 만나 죽을 목숨이 살었으니 어찌허면은 은혜를 갚소리까 제발 덕분의 통촉허오."
아니리 "그러기에 너의 부모가 나의 영을 어기고 나가더니 그런 변을 당하였구나. 너는 명춘에 나갈 적에 출행날을 받어 줄 터이니 그 날 나가도록 하여라."
삼동이 다 지나고 춘삼월이 방자커날 하로난 흥보제비가 보은표 박씨를 입에다 물고 만리 조선을 나가는디 꼭 이렇게 나오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흑운 박차고 백운 무릅쓰고 거중의 둥둥 높이 떠----두루 살펴보니 서촉 지척이요 동해 창망 허구나 충융봉을 올라가니 주작이 넘논다. 상익토 하익토 오작교 바라보니 오초동남 가는 배는 북을 둥둥 울리며 어기야 어야 저어가니 원포귀범이 이 아니냐. 수벽사명 양안태 불승청원 각비래라 날아오난 저 기러기 갈대를 입에 물고 일점 이점이 떨어지니 평사낙안이 이 아니냐 ,백구백로 짝을 지어 청파상에 왕래허니 석양천이 거있노라. 회안봉을 넘어 황릉묘 들어가 이십 오현 탄야월은 반죽까지 쉬어 앉어 두견성을 화답허고 봉황대 올라가니 봉거대공에 강자류 황학루를 올라가니 황학일거 불부반 배운천재 공유유과 금릉을 지나여 주사촌 들어가 공숙창가 도리개라 낙매화를 툭쳐 무연의 펄렁 떨어지고 이수를 지내여 계명산을 올라 장자방은 간 곳 없고 남병산 올라가니 빈터요 연제지간을 지내여 장성을 지내여 갈석산을 넘어 연경을 들어가 황극전에 올라 앉어 만호 장안 구경허고 정양문 내달아 천안문지내 동문을 들어가니 사미륵이 백이로다. 요동칠백리를 순식간 지내여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다달아 영고탑 통군정 올라 앉어 안남산 밖남산 석벽강 용천강 좌우령을 넘어 부산파발 환마고개 강동다리 건너 평양은 연광정 부벽루를 구경허고 대동강 장림을 지나 송도를 들어가 만월대 관덕정 박연폭포를 구경허고 임진강 시각에 건너 삼각산에 올라앉어 지세를 살펴보니 천룡의 대원맥이 중령으로 흘리쳐 금화금성 분개허고 춘당영춘이 휘돌아 도봉 망월대 솟아있고 삼각산이 생겼구나 문물이 빈빈허고 풍속이 희히하야 만만세지 금탕이라 경상도는 함양이요 전라도는 운봉이라 운봉함양 두얼품에 흥보가 사는지라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박씨를 입에 물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남대문 밖 썩 내달아 칠패 팔패 배다리 지나 애고개를 얼른 넘어 동작강 월강 승방을 지나여 남타령 고개넘어 두쭉지 옆에 끼고 거중에 둥둥 높이 떠--- 흥보집을 당도, 안으로 펄펄 날아들 제 들보 위에 올라 앉아 제비말로 운다. 지지지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리차로 함지표지 내지배요 빼드드드드드드드득!
중모리 흥보가 보고서 좋아라
"반갑다 내 제비 어디를 갔다가 이제와"
당상 당하 비거비래 편편이 노난 거동은 무엇을 같다고 이르랴 북해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으로 넘논 듯 단산봉황이 죽실을 물고 오동 속으로 넘논 듯 지곡청학이 난초를 물고 송백간으로 넘노난 듯 안으로 펄펄 날아들 제 흥보 보고 고이 여겨 찬찬히 살펴보니 절골 양각이 완연 오색 당사로 감은 흔적이 아리롱 아리롱 허니 어찌 아니가 내 제비, 저 제비 거동을 보아 보은표 박씨를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다 흥보양주 앉은 앞에 뚝 떼그르르르르르 떨쳐놓고 백운간으로 날아간다.
아니리 흥보 마누라 줏어 들고
"여보 영감 제비가 연씨를 물고 왔소"
"그게 연씨가 아니라 박씨로세."
동편 처마 끝에다 거름주고 심었더니 수십일 만에 박 세 통이 열렸는디 팔월 추석은 돌아오고 먹을 것이 없어 어린 자식들을 앞에 두고 가난 타령으로 울음을 우난디
중모리 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의 가난이야 복이라 허는 것은 어이 허며는 잘타는고? 북두칠성님이 복마련을 허시는가? 삼신지왕님이 짚자리의 떨어질 적의 명과 수복을 점지 허느냐? 몹쓸년의 팔자로다. 이년의 신세는 이어허여 이지경이 웬일이란 말이냐! 퍼버리고 앉아 설리운다.
아니리 이리 한참 설리 울 제 흥보가 들어오며
"여보 마누라 아, 이렇게 우지만 말고 저 지붕에 있는 박을 따다가 박속일랑 끓여먹고 바가질랑 부자집에다 팔어다가 아 어린 자식들을 살리면 될 것 아니요."
"아이고, 그럽시다. 여보 영감 좌우간에 박을 따다가 우리 한 번 타봅시다."
그때여 흥보내외가 박 세 통을 따다놓고 우선 한 통을 타는디
진양 "시리리리렁 실건 당거주소 에이여로 당겨주소 이박을 타거들랑은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밥 한 통만 나오너라 평생의 포한이로구나 에이여루 당그여라 톱질이야 여보게 마누라 톱소리를 어서 맡소."
"톱소리를 내가 맡자고 헌들 배가 고파서 못 맡것소"
"배가 정 고프거들랑은 허리띠를 졸라를 매소, 에이여루 당거주소 작은 자식은 저리가고 큰 자식은 내한트로 오너라 우리가 이박을 타서 박속일랑 끓여먹고 바가질랑은 부자집에다 팔어다가 목심보명을 살아나세. 당겨주소. 강상의 떴난 배가 수천석을 지가 싣고 간들 저희만 좋았지 내 박 한 통을 당할 수가 있느냐, 시리리리렁 실건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실건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씩싹 톡캐
아니리 박을 딱 쪼개놓고 보니 박속은 휑-- 무복자는 계란에도 유골이라 하더니 박속은 어떤 도둑놈이 쏵 다 집어먹고 난데없는 궤 두 짝이 나오거날, 흥보내외 기가 맥혀,
"아이고 이것이 뭔 일이요? 여보 영감, 좌우지간에 우리 한 번 궤짝을 열어봅시다. "
흥보가 한 궤를 가만히 열고 보니 돈이 하나 가뜩, 또 한 궤를 열고 보니 쌀이 하나 수북, 흥보 내외 좋아라고 궤 두짝을 한번 털어 비어 보난디,
휘모리 흥보가 좋아라고, 흥보가 좋아라고 궤 두 짝을 떨어 붓고 나면 도로 수북, 톡톡 털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가뜩허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이 하나 가득, 돌아섰다 돌아보면 도로 하나 가득허고, 돌아섰다 돌아보면 쌀과 돈이 하나 도로 가뜩,
"아이고 좋아 죽겄다. 일년 삼백 육십 일을 그저 꾸역꾸역 나오너라"
아니리 어찌 털어 비어 놨던지, 돈이 일만 구만 냥이요, 쌀이 일만 구만 석이라 흥보 내외 좋아라고 돈 한 궤를 들고 잠깐 노난디
중중모리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돈 봐라 돈 봐라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여보아라 큰자식아 건넌말(마을) 건너가서 너의 백부님을 모셔 오너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 형제 보자 얼씨구 절씨구 여보시오 여러분들 나의 한 말 들어보소 부자라고 자세를 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엊그저끄까지 박흥보가 문전걸식을 일삼더니 오늘날 부자가 되었으니 이런 경사가 어디가 있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불쌍하고 가련헌 사람들 박흥보를 찾아오소. 나도 오날부터 기민을 줄란다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네 얼씨구 절씨구
아니리 흥보내외 아 이렇게 돈을 들고 놀더니마는
"여보 마누라 우리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많이 부르요 그러니 둘째 박을 타 봅시다."
"아이고 그럽시다."
진양 "시리렁 시리렁 당겨주소 헤여루 당그여라 톱질이야 이 박을 타거들랑은 아무것도 나오지를 말고 은금보화만 나오너라. 은금보화가 나오게 되면 형님 갖다가 드릴란다."
흥보 마누래 기가 맥혀
"나는 나는 안 탈라요, 여보 영감 형제간이라 잊었소 엄동설한 치운날의 구박을 당하여 나오던 일은 곽속의 들어도 못 잊겄오."
흥보가 회를 내며
"갑갑허구나 이 사람아, 계집은 상하의복이요 형제는 일신수족이라 의복은 떨어지면 해입기가 쉽거니와 형제 일신수족은 아차 한 번 뚝 떨어지면 다시 잇지를 못 허는 법이라,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시리렁 실건 당그여라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쓱싹 톡캐
아니리 박을 딱 쪼개놓고 보니 이 박통 속에서는 왼갖 비단이 나오는디 꼭 이렇게 나오든 것이었다.
중중모리 왼갖 비단이 나온다. 왼갖 비단이 나온다. 요간 부상의 삼백 척 번떳다 일광단, 고소대 악양루 적성아미가 월광단, 서왕모 요지연의 진상하던 천도문, 천하주구 산천초목 그려내던 지도문,등태산 소천하의 공부자의 대단, 남양초당의 경좋은데 천하영웅 와룡단, 사해가 분분 요란허니 뇌고함성에 영초단, 풍진을 시르르릉 치니 태평천곤 대원단, 염불타령 치워놓고 춤추기 좋은 장단, 큰방 골방가루다지, 국화새긴 완자문, 초당전 화계상의 머루다래 포도문, 화란춘성 만화방창 봉접분분의 화초단, 꽃수풀 접가지에 얼그러졌다 넌출문, 통영칠 대모반의 안성유기 대접문, 강구연월 격양가의 배부르다 함포단, 알뜰사랑 정든 님이 나를 버리고 가거주, 두 손길 덥뻑 잡고 가지 말라 도리불수, 임 보내고 홀로 앉아 독수공방의 상사단, 추월적막 공단이요, 심산궁곡 송림간의 무섭다 호피단, 쓰기 좋은 양태문, 인정 있는 은조사,부귀다남 복수단, 포식과객에 궁초단, 행실부족의 객초단, 절개 있난 송죽단, 서부렁 섭적 새발 낭능, 노방주 청사홍사 통견이며, 백랍능, 흥랍능, 월하사주, 당포, 융포, 세양포, 수주, 통오주, 경상도 황저포, 매매 흥정의 갑사로다. 혜주 원주 공주 옥구 자주 길주 명천 세마포, 강진 나주 극상 세모시며, 한산 세모시, 생수삼팔 값진 고사관사, 청공단, 홍공단, 백공단, 흑공단, 송화색까지 그저 꾸역꾸역 나오는디
아니리 흥보내외 어찌 좋던지
"여보 마누라, 마누라는 나한테 시집 온 이후로 비단옷을 한번도 못 입어 보았으니 이렇게 많이 나온 김에 뭔 색이 좋은가 한 번 골라 보소이."
"여보 영감 나는 송화색 삼호장 저고리가 제일 좋습디다. 영감은 뭔 색이 좋습디여?"
"나는 검지 않는 흑공단이 좋데."
"그럼 영감이 먼저 꾸며 보시오."
흥보가 흑공단으로 한 번 꾸며 보는디
중중모리 흑공단 망건 흑공단 갓끈 흑공단 저고리 흑공단 두루막 흑공단 바지 흑공단 행전 흑공단 버선 흑공단 다님 흑공단으로 수건을 들고
"어떤가 날보소"
흥보 마누라도 꾸민다. 송아색 댕기 송아색 저고리 송아색 허리띠 송아색 초마 송아색 단의 송아색 꼬쟁이 송아색 속속곳 송아색 버선 송아색으로 수건을 들고
"어떤가 날보소"
아니리 "그러고 보니 마누라는 하릴없는 꾀꼬리같네."
"영감은 그렇게 채려놓고 보니 꼭 까마귀 같소."
"여보 마누라 셋째 박을 마저 타 보세. 이 속에서 무엇이 나올란가 보게."
중중모리 또 한 통을 들여놓고 시리렁 실건 톱질이야 시리렁 시리렁 러렁 실건 실건실건 톱질이야.이 박속에서 나오는 보화는 김제 만경 오백미들을 억십 만금을 주고사자 충청도 소새뜰을 수만금을 주고 사면 부익부가 되겠구나 시리렁 실건 톱질이야
휘모리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시리렁 박이 반쯤 벌어진다. 박통 속에서 사람소리가 수근수근 대짜구 든 놈 소짜고 든 놈 끌든 놈 호미든 놈 몽치든 놈 가래든 놈이 그저 꾸역꾸역 나오더니 흥보집을 짓난디
진양 동산앞 넓은 터에 임좌병향 터를 다져 팔괘를 놓아 왼담을 치고 주란 화각을 좌우로 세웠난디 안팎 중문 소슬이 대문 풍경소리가 더욱 좋다. 천석지기 밭문서와 만석지기 논문서와 백가구 종문서가 가득 담뿍 들어있고 안방치레 볼작시면 큰 병풍 작은 병풍 샛별 같은 순금대와 다문담숙 놓였으니 흥보가 보고 좋아헌다.
중모리 사랑치레 볼작시면 가장장판 소래반자 완자밀창의 화류문갑 대모책상까지 놓여있고 시전 서전의 주역이며 이백두시 어어어 통사략을 좌우로 좌르르르 별렸난디 박흥보가 좋아라고
"여보아라 큰 자식아 건넌 말 건너가서 너의 큰아버지를 오시래라 경사를 보아도 우리형제 볼란다. 얼씨구나 좀도 좋네. 이리렁성 저리렁성 흩트러진 근심일랑 마누래와 같이 모여 앉아서 거드렁 거리고 놀아 보자."
아니리 이리 한 참 놀릴 적에 놀보가 저의 동생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흥보집을 딱 건너 갔겄다.
"아니 이놈이 별안간 거부가 되었나? 네 이놈 흥보야"
흥보가 저의 형님 소리를 듣고 나와
"아이고 형님 건너 오시었습니까?"
"그래 대관절 이 집이 뉘집이냐?"
"예 제 집이올습니다."
"야 그 집 참 좋다. 내집허고 바꾸자."
"형님 처분대로 허옵시오."
"야 흥보야 내가 요세 니 소문을 가만히 들어보니 니가 요새 밤이슬을 맞고 다닌다는구나."
"형님 별안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어째서 영문 포졸들이 너를 잡으로 다니느냐? 이러지 말고 농문열쇠, 광문열쇠 나한테 맞기고 저 만주로 들어가서 한 오 년만 있다 오너라 이 집은 내가 잘 지켜줄게."
"형님 그런 것이 아니오라 하루는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새끼 두 마리를 깠는디 먼저 깐 놈은 날아가고 나중 깐 놈이 날개공부 힘을 쓰다 뚝 떨어져 다리가 작각 부러졌지요.아 그래서 명태껍질을 얻고 당사실을 구하여 부러진 다리를 동여매어 제 집에 넣어 살려 주었더니 그 이듬해 강남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박씨를 물어다 주어 그 박씨를 심었드니 박 세 통이 열려 팔월추석은 돌아오고 먹을 것이 없어 박속이나 먹을 양으로 박을 타보았더니 아 그 속에서 이렇게 은금 보화가 많이 나왔지 제가 무슨 도적질을 했단 말씀이요."
이 놈이 가만히 듣더니마는
"야 거 부자되기 천하에 쉽구나. 너는 한 마리 분질러서 부자가 되었거니와, 나는 한 열 댓마리 분질러 보내면 거부장자가 될 것이야."
사랑으로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여보 마누라 건넌말 형님이 건너오시었으니 나와 인사를 드리오."
창조 흥보 마누래가 시숙 왔단 말을 듣고 구박 당하던 일을 생각허니 사지가 벌렁 벌렁 떨리나 가장의 명령을 거역치 못하여 나오난디
중모리 흥보 마누래가 나온다. 흥보 마누래가 나온다. 전일에는 못 먹고 못 입고 굶주리던 일을 생각허니 지금이야 비단이 없나 돈이 없나 쌀이 없나 은금 보화가 없나 녹용 인삼이 없느냐 며느리들을 호사를 많이 시키고 흥보 마누라도 한산 세모시다가 당청아물을 포로소롬허게 놓아 주름은 잘게 잡고 말은 널리 달아 아장거리고 나오더니
아니리 시숙께 다소곳이 인사를 드리니, 아 이놈이 제수가 인사를 하거든 그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제수가 쫓겨날 때 보고 지금 보니까 미꾸라지가 용되었구나."
흥보 마누라가 들은 체도 아니 허고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차리는디
자진모리 음식을 차리는디 안성유기 통영칠판 천은 수저 구리저 집리서리 수벌리듯 주루루루 벌려놓고 꽃그렸다 오족판 대모양각 당화기 얼기설기 송편 네 귀 번듯 정절편 주루루 엮어 삼피떡 평과 진청 생청 놓고 조락산적 웃찜쪄 양회간 천녑 콩팥 양편에다가 벌여놓고 청당수단 잣백이며 인삼채 도라지채 낙지연포 콩기름에 갖은 양념 모아놓고 산채 고사리 수근 미나리 녹두채 맛난 장국 주루루루 들어붓고 청동화로 백탄숯 부채질 활활 계란을 톡톡 깨 웃딱지를 떼고 길게 느리워라 꼬꼬 울었다 영계찜 오도독 포도독 매초리탕 손뜨건데 쇠저말고 나무저를 드려라 고기 한 점을 덤벅뭍혀 맛난 기름 간장국에다 풍덩 디리쳐 피시이
아니리 과하주 좋은 술을 화잔에 가득 부어
"옛소 시숙님 박주허나 약주 한 잔 드시지요."
이놈이 제수가 주는 술이거든 그대로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야 흥보야 너는 형제간이라 내 속을 잘 알제. 내가 남의 집 초상 마당에 가서도 술잔 끝에 권주가 없이 술 안 먹는다. 제수 곱게 차려 입은 김에 권주가 한 자리 시켜라."
창조 흥보 마누래가 이말을 듣고 기가 맥혀
진양 "엇소 시숙님, 여보 여보 아주버님 제수더러 권주가 허란 말씀 고금천지 어디가 보았소 지성이면 감천이라 나도 이제는 돈과 쌀이 많이 있소 전곡자세는 그만허오, 엄동설한 치운 날의 자식들을 앞세우고 구박을 당하여 나오던 일은 나는 죽어도 못 잊겄소 보기 싫소 어서 가시오 속을 채리면 뭣하러 내 집에 왔소 안 갈라면 내가 먼저 들어갈라요"
떨쳐버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아니리 놀보가 가만히 듣더니마는
"야 흥보야 니 계집 못 쓰겄다. 썩 버려라 내 다시 좋은 데로 장가 들여 주마."
"형님 처분대로 허옵시오."
"그리고 저 웃목에 벌근 것이 무엇이냐?"
"예 그것이 화초장이올시다."
"화초장이 무엇이냐?"
"예 그 안에는 은 금 보화가 가득 들어 있지요."
"그러면 그것 날 도라."
"형님 좋아하시면 내일 아침 하인지어 보낼 테니 건너가십시오."
"에이 씩씩치 않은 놈 보물은 밤새 다 빼내고 빈 괘만 보낼라고 그러지야.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날 보고만 도적놈이라고 헐 것이다. 아서라 매사는 불여 튼튼이라 하였으니 내가 짊어지고 갈란다."
이놈이 끌방을 늦이간 하게 짊어지고 잊어버릴까봐 화초장 석자를 한 번 외우고 가는디
중중모리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다"
또랑을 건너 뛰다
"아차! 내가 잊었다. 초장초장 아니다 방장 천장 아니라 고초장 된장 아니다
송장 구들장 아니다 "
이놈이 거꾸로 부르면서도 모르겄다.
"장화초 초장화 아이고 이거 무엇이냐 갑갑허여서 내가 못살것다 아이구 이것이 무엇이냐"
저의 집으로 들어가며
"여보게 마누라!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집안이라고서 들어오면 우루루루 쫓아 나와 영접허는 게 도리 옳지 좌이부동이 웬 일인가 에라 이 사람 몹쓸 사람"
놀보 마누래 나온다. 놀보 마누래 나와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오 영감 오신 줄 내가 몰랐소 이리 오시오 이리와 "
아니리 놀보가 화초장을 지고 저의 문 앞에서 저의 마누라를 한 번 불러 보는디
"여보 마누라."
"어찌 그라요?"
"여 이리 나와서 내 등에 짊어진 것이 무엇인가 한 번 알아 맞춰 볼란가?"
"영감은 그것이 무엇이요?"
"아 글세 나는 알고 있지만 임자가 한 번 알아 맞춰 보란 말이여."
"저어 서울 친정서 그라는데 그걸 화초장이라 합디다."
"아이구 내 딸이야."
"아니 여보 영감 마누라보고 딸이라는 데가 어디 있소."
"아 급할 때는 이리도 쓰고 저리도 붙여 써 보세."
"그란디 여보 영감 이 좋은 화초장을 어디서 가져 왔소?"
"좌우지간에 내가 흥부집을 건너 갔드니 이 놈이 제비다리를 분질러 가지고 거부장자가 되었네 그려. 그 놈은 한 마리 분질러 부자가 되었거니와 나는 한 이십 마리 딱 분질러 보내면 거부장자가 될 것이여."
그날부터 제비 딱지를 수천개 만들어서 삼지사방에 붙였드니 집이 동편으로 쓰러졌것다. 놀보가 아무리 기다려도 제비가 안오니 죽을 제비가 들올 리가 있으리요. 하루는 기다리다 못하여 그물을 매어 드러메고 제비를 한 번 후리러 나가는디
중중모리 이때 춘절삼각 하사월 초파일 연자나부언 펄펄 수양버들에 앉은 꾀꼬리 제 이름을 제 불러 복희씨 맺은 그물을 에후리쳐 드러매고 제비를 후리러 나간다. 방장산으로 나간다. 이편은 우두봉 저편은 좌두봉 건넌봉 낮은 봉 좌우로 칭칭 둘렀난디 아아 이루워 덤풀을 툭쳐 후여 어어허 허차 저 제비 방장산의 집늘러 덤불을 툭쳐 후여 어어어어어어 떴다 저 제비 어느 곳으로 행하나 연비여천에 소로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남비오작에 까치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춘일황앵에 꾀꼬리만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층암절벽에 비둘기 보아도 제비인가 의심
"저기 가는 저 제비야 그 집으로 들어가지 마라, 천화일에 지은 집이로다 화급동량이라 내 집으로 들어오너라 이이이이리워!"
------ 후략 ----------
* 작가: 미상 * 갈래: 판소리계 소설, 국문 소설 * 형성: 근원설화 - 판소리 사설 - 판소리계 사설 - 신소설 * 성격: 풍자적, 해학적, 교훈적 * 문체: 가사체, 율문체, 만연체 * 배경: 시간적(조선 후기), 공간적(전라도 운봉과 경상도 함양 부근) * 별칭: '흥부가', '박타령' 등 * 사상: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생활원리 유교적 생활관 * 특징 ▶ 표현상 3.4조, 4.4조 운문과 산문이 혼합됨 ▶ 양반의 품격 있는 한문투와 서민들의 비속어 표현 공존 ▶ 일상적 구어와 현재형 시제를 사용 ▶ 사실적 표현 ▶ 판소리 중 서민적 취향이 가장 강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농민층의 분해상을 보여줌 * 판소리 계통: 동편제 * 배경설화: 방이설화, 몽고의 '박 타는 처녀', 동물 보은 설화 * 주제: 형제간의 우애와 권선 징악 * 시점: 전지적 작가시점 * 의의: ①춘향가, 심청가와 더불어 3대 판소리계 소설이다. ②놀보와 흥보의 삶을 해학으로 승화한 평민문학의 대표작이다. ③ '박타령-흥보가-흥보전-연의 각'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민중문학이다.
<흥부전>의 주제를 흔히 '우애'라고 말한다. 그것은 '놀부'와 '흥부'를 한 집안의 형과 아우라는 관계로만 보는 관점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는 형제 관계를 넘어선 복합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둘의 관계가 단순히 형제 관계에만 그친다면 놀부 박 속의 사람들이 나와서 놀부를 괴롭힐 명분이 없다. 그러므로, 놀부는 '형'의 의미가 확대된 '있는 자, 착취자, 악덕 지주'의 전형적 인물로 볼 수 있다. 한편, 흥부는 '아우'의 의미가 확대된 '없는 자, 유량농민, 품팔이꾼'의 전형적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흥부전>의 해석은 놀부·흥부를 형제 관계로만 보는 좁은 의미의 해석과 아울러 이와 같이 넓은 의미의 해석까지 고려해야만 온전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놀부가 흥부를 내쫓은 작품의 발단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 당시의 윤리 위주 가치관을 누르고 새로운 물질 위주 가치관이 득세해 나가기 시작하던 현상을 보여 준다. 이는 좁게 보자면, 형제간에도 우애보다 자기 개인의 물질을 더 중시하는 황금 만능의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물질 위주 가치관이 심화되던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넓게 해석하면, 조선후기에 악덕 지주들이 없는 자들을 더욱 착취하여 유량 농민으로 내몰던 사건을 상징하고 있다.
흥부가 제비를 구해 주고 또 제비는 흥부에게 보은하는 작품의 중반부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제비'는 단순히 한 미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야 하는 서민'을 상징한다. 이는 제비국과 제비왕의 설정 등을 통해 볼 때 그들이 어떤 민중 계층을 뜻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흥부가 제비를 구해줌은 없는 사람이 더 절박한 형편의 없는 사람을 도와줌을 의미한다. 또 뒤에 그 제비가 보은함은 그 절박했던 사람이 잘 되어 품팔이꾼 흥부를 다시 도와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보은담은 없는 사람끼리 서로 도움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민중들의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생존철학을 보여 준다. 놀부 같은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흥부마저 버린다. 그러나 흥부 같이 가난한 사람은 오히려 어려운 형편의 제비를 구원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둘 다 같이 잘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흥부전>의 주제는 "인간 사회는 모든 사회계층이 서로 돕고(相扶相助) 더불어 살아야(共存共榮) 평화롭고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것은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가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를 끌어안고 사랑을 베풀 때 가능하다."는 것이 된다. 한 마디로 줄이면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끌어안고 사랑을 베풀어 모든 사회계층이 서로 돕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이며, 더 줄이면 "사랑을 베풀어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이다 <남원의 고전문학, 남원문화원,1996>
지금까지 <흥부전> 근원설화에 대해서는 고유설화, 고유설화와 외래설화와의 혼합, 몽고설화, 불교설화의 네 가지 갈래로 추론되었다. 그 중에도 몽고의 '박타는 처녀 설화'가 <흥부전>과 내용이 비슷하여 가장 가까운 근원설화로 지목되어왔다. 그러나<흥부전>의 실화적 구조와 유형을 추출하여 악하고 착한 형제가 등장하는 선악 형제담, 동물이 사람에게서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한다는 동물 보은담, 박 속에서 한없이 물건이 나오듯 어떤 물건에서 한없는 재물을 쏟아내는 무한재 보담의 세 유형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구비설화를 대비함으로써 <흥부전>의 설화적 원천은 명확하게 밝혀질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설화는 선악 형제담으로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흉내내다 실패한다는 모방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는 <혹 떼러 갔다 혹 붙이고 온 영감>·<소금장수>·<부자 방망이>·<금도끼 은도끼>·<단방귀장수>·<말하는 염소>등의 구전설화가 동일 유형의 설화에 해당한다.
동물보은담에 해당하는 설화로 <육도집경 六度集經>의 <방구보은설화 放龜報恩說話>, <삼국유사>의 <자라토주설화(吐珠說話)>, 그밖에 구전설화인 <새보은설화>·<사슴보은설화>등이 있으며 무한재보담으로는 구전설화 <이상한 남>등이 있다.
결국 선악형제담·동물보은담·무한재보담이 <흥부전>을 구성하는 3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세 가지 이야기가 불교적 색채를 지녔다는 점에서 <흥부전>의 근원설화에 해당하는 불전설화로서 <현우경 賢愚經>의 <선구악구설화 善求惡求說話>, <잡비유경 雜譬喩經>의 <파각도인설화 跛脚道人說話>등을 들 수 있다. 결국 <흥부전>은 어느 하나의 근원설화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설화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흥부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조선후기 판소리계 소설호<흥보전>·<박홍보전 朴興甫傳>·<놀부전>·<연(燕)의 각(脚)>·<박흥보가>·<흥보가>·<박타령>등으로도 불린다. 전하는 이본은 사본으로 <흥보전>·<박흥보전> 등 6종, 판본으로는 경판본만 20장본·영창서관본·세창서관본·중앙인서관본 등 7종이 전하는데, 이 중 영창서관본과 세창서관본 중에 <연의 각>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고, 중앙인서관본은 심정순(沈正淳)의 창본(唱本)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활자본 경성서적 조합본은 한문본이다. 한편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렸기 때문에 많은 창본도 전하는데 신재효(申在孝) 여섯 마당 중의 <박타령>, 이선유(李善有) 오가(五歌) 중의 <박타령>, 그밖에 한농선(韓弄善)의 <박타령>, 박봉술(朴奉述)의 <흥보전> 등이 유명하다. 이들 이본들은 경판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판소리적인 서두로 시작되고 있어 <흥부전>은 판소리 사설의 정착과정에서 생산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본간의 관계를 보면, 경판본과 사본인 일사본(一蓑本) <흥부전>이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나 경판본이 훨씬 축약되어 있고, 신재효의 <박타령>의 독창성이 가장 강하며 다른 이본들은 서로 비슷하다. 작품의 지역적 배경을 일사본·신재효본·<연의 각>등은 모두 충청·전라·경상 삼도의 어름이라고 하였는데, 세창본에는 두형재가 연생원의 아들이라 하였고, 신재효본에는 박가(朴歌)로 나온다.
이본 가운데 가장 독특한 면을 보이는 것이 신재효본이다. 신재효본에는 흥부의 착한 행실을 말한 부분,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 나와 오랫동안 빌어먹는 장면 등이 추가되어 있는 반면, 흥부가 매를 대신 맞으러 가는 장면 등은 빠져 있다. 신재효가 전래의 <흥부가>를 <박타령>으로 개작한 것은 대략 1870년대로 추측되는데 개작 당시에 신재효의 독창성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흥부내외가 가난에 못 이겨 자살소동을 벌이고, 도승이 나타나 명당을 점지하여 그 자리에 집을 짓는 부분 등은 개인적 창작이다. 신재효의 <박타령> 개작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놀부의 당당한 양반으로의 격상, 흥부의 타락한 인물로의 전락, 작품의 서민적 삶의 발랄성 거세, 또 주제를 다분히 윤리 도덕적으로 바꾸어 놓은 점등은 반드시 긍정적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전용오는 흥부전의 근대적 성격을 인간성 옹호정신을 구현, 선악공유의 인간성 창조, 사회비판 의식의 표출, 갈등 양상의 전이, 또 전근대적 성격을 권위주의로부터의 미탈피, 행복추구의 초현실성 등으로 흥부전의 문화사적 위치를 논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남원의 고전문학, 남원문화원,1996>
조선 시대의 도덕적 소설로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물론 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춘향전, 심청전, 별주부전 등과 함께 판소리계통에 드는 소설이다.
몽고의 "박 타는 처녀" 또는 <유양잡조속집(酉陽雜俎續集)>에 나오는 "방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일본에도 거의 같은 내용의 것이 있다.
작품의 구성은 소설적 구성보다는 희곡적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당초에 판소리의 각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쓰여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이 문학성보다도 독자들에게 많이 감명을 준 것은 아마 대중적이며 통속적 주제가 아주 자연스럽게 해학과 풍자적인 표현을 통해서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되었고,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당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던 일반 대중들의 몽상(夢想)과 염원을 문학의 세계에서나마 달성시켜 주어서 마음의 위안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흥보와 놀보라는 두 형제를 사이로 이야기가 설정되어 있지만, 단순히 형제간의 우애라는 도덕적 주제를 강조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당대의 퇴락하는 양반가와 서민의 생활상에 대한 풍속사적인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적으로 조선 후기의 신분 변동에 따라 나타난 유랑 농민과 신흥 부농(富農)과의 갈등상이 반영되어 있는 점이 그러한 특징을 말해 준다. 그러면서도 전래의 설화에서 차용한 모방담(模倣談)으로서의 소설적 구조를 계승하고 있으며, 인물이나 사건을 그려 나가는 방식은 다분히 서민적이고 해학적인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문체상의 특징은 이 작품에 설정된 시대적 배경의 심각성이나 비극적 상황을 서민 특유의 건강한 웃음에 의해 인식, 극복하려는 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근래, 특히 1960년대 이후 흥부를 부정적인 인간형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반면, 놀부야말로 바람직한 인간형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비쳐졌을까? 요컨대, 못 사는 것을 제가 못난 소치라고 밀어붙이는 왜곡된 사고 방식이 고전 작품에 투시된 결과이다. 편향된 물신(物神)주의, 근대주의는 인간의 정신을 왜곡시켜 문화 유산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자연 보호만 시급한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양지(良知)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놀부는 이익의 추구에 집착한 나머지 돈에 심술이 뒤집히고 환장한 인간, 꼬집어 말하면 '돈의 걸귀(乞鬼)', '돈의 악마'이다. 화폐 경제의 발전이 기형적으로 반인도적, 반사회적 치부열(致富熱)을 불러일으켜, 비인간화된 걸귀, 악마들을 분비시킨 것이다. 이 괴물의 출현은 세도 정치로 역사의 진보를 억압했던 우리 나라 19세기의 특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돈의 악마' 놀부는 근래 '유능한 사업가'를 선망하는 요즘 세상의 인심이 놀부를 긍정하게 된 것은 괴이할 일이 없는 노릇이다. 흥부에 대해서는 그의 인후(仁厚), 정직, 근면을 미덕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무기력으로 곡해한 것도 또한 있을 수 있겠다.
'걸귀'란, 새끼를 여러 배 낳아 속이 비어 허기진 돼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놈은 허천이 나서 아무리 처먹어도 꿀꿀거린다. 그래서 걸귀가 되면 사료만 무진 들고 재미가 없으므로 주인은 곧장 처분해 버린다. 그놈의 생리가 저의 파멸을 촉구한 것이다. '돈의 걸귀' 놀부도 영락없이 이와 같다. 부(富)를 아무리 아무리 축적해도 만족을 못 느끼고 그만 환장해서 눈앞에 어른거리는 돈의 환영을 좇다가 필경 자멸하고 말았다. 놀부의 돈에 혹탐한 생리, 곧 자기 모순에 빠져서 몰락한 것이다. 흥부를 흥하게 한 박통은 다섯 개인 데 비해서 놀부를 망하게 한 박통은 열 세 개나 된다. 제목은 '흥부전'이지만 전체의 반이 넘는 지면을 놀부의 몰락이 차지하고 있다. (임형택, '한국 문학사의 시각')
■ 형성 평가 ♣ 이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라. ▶ (형 놀보와 아우 흥보의 심성과 행위를 뚜렷하게 대조, 과장하는 수법을 통해 해학적 골계미를 풍부하게 나타내는 작품이다. 판소리 중 서민적 취향이 가장 강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농민의 분해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양반의 품격 있는 한문투와 서민들의 비속한 표현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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