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클럽 안티 기독교
 
 
 
 
 
카페 게시글
▶종교발언대 스크랩 10강. 제발 날 좀 깨우지 마세요
어린오빠 추천 0 조회 75 10.03.30 23:43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10강. 제발 날 좀 깨우지 마세요! (아가 2:5-10)

 

아 2:5-10=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6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8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술람미가 솔로몬과 사랑을 하다가 병이 났다고 합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병이 났겠습니까! 우리도 주님과 사랑하다가 병이 들게 하옵소서. 주님 품에서 깨어나지 말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모세가 우리의 인생은 밤의 한 경점과 같다고 했어요.

경점이란? 1경을 말해요.

이스라엘은 밤을 초경 이경 삼경으로 구분을 해요.

1경은 4시간을 말하는데 이는 짧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시간도 신속히 날아간다고 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세월도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오죽했으면 욥은 복중에서 죽은 아이가 복되다고 했을까요.

그것보다도 더 심하게 말을 해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복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산다는 것이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자기 삶을 자기가 결정 할 수가 없어요.

창조주가 허락한 삶을 살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토기장이고 인간은 토기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땐 토기장이의 필요에 의해서 만드는 겁니다.

 

이건 마치 영화감독이 배우를 캐스팅 하는 것과 같아요.

감독이 악역으로 캐스팅 했으면 악역으로 영화를 찍어야 하고!

감독이 선한 역으로 캐스팅 했으면 선한 역으로 영화를 찍어야 합니다.

배우가 자기 마음대로 역할을 바꿀 수 없어요.

 

사울로 캐스팅이 되었으면 평생 사울처럼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지옥으로 가고!

다윗으로 캐스팅 되었으면 사울에게 핍박받고 쫓겨 다녀야 해요.

그러니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들이 있는 겁니다.

지옥으로 갈 자와 천국으로 갈 자들입니다.

 

지옥으로 갈 자들은 예수를 따라다녀도 결국엔 가룟 유다처럼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야 하고!

천국으로 갈 자들은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였을지라도 예수님의 용서하심으로 천국에 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토기들인 인간들은 각 사람마다 하나님이 정한 도구로 살다가 가게 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진노의 그릇으로 살다가 가고!

어떤 사람은 긍휼의 그릇으로 살다가 가요.

연극배우같이 각자 맡은 역활을 하다가 창세전에 예정된 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게 믿어지고 예수가 믿어진다면 안심하고 사세요.

반드시 여러분의 행함과 상관없이 천국으로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이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줄 아세요.

예수에게 속한 성도는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 찾아내서 천국으로 데리고 갑니다.

이것처럼 복된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니 예수가 나의 대속주이고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면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낙망치 말고 담대하게 사세요.

예수님의 피가 나의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심이 믿어진다면 죄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마세요.

바울과 실라가 이게 믿어지니 감옥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할 수가 있었고 죄수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스데반이 이게 믿어지니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어차피 인간은 하나님의 창세전 언약으로 인하여 생겨난 존재들이기 때문에 각자가 예정된 대로 살다가 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간에 언약을 맺지 않았다면 우린 없는 존재들이에요.

이걸 안다면 산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죄가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인생을 살라고 합니다.

행복하게 말이에요.

하지만 그 행복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각 사람마다 분복을 주셨어요.

분복(分福)이란? 복을 각각 나누어 주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예쁘긴 한데 머리가 돌이든가!

반대로 머리는 좋은데 얼굴이 호박이라든가!

 

어떤 사람은 재물은 받았는데 명(命)이 짧다든가 하고!

어떤 사람은 명(命)은 긴데 재물이 없다든가 해요.

하여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다 나름대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어요.

 

과거 마릴린먼로가 아인슈타인에게 그랬다고 하지요.

당신과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날 닮은 예쁜 얼굴에 당신 머리를 닮은 아이를 낳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니 아인슈타인이 날 닮은 얼굴에 당신 머리를 닮은 딸을 낳으면 어쩌려고 하느냐 라고 했다지요.

이건 하나님은 모두가 다 좋은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분복만큼 살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도 이 인생이라면 그건 여러분의 분복이라서 그래요.

그러니 감사하고 사세요.

 

술람미도 술람미로 살고 싶지 않아요.

인간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여자들처럼 화려하게 살고 싶지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아요.

술람미가 만약 예루살렘 여자들처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솔로몬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을 겁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말이 있지요.

원숭이(인간)들은 먹이를 아침에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주면 싫어해요.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어야 좋아해요.

외상보다 현찰을 좋아한다는 말과 같아요. 

 

이처럼 인간이란 당장을 위하여 살지 미래를 위하여 살지 않아요.

내일 산수갑산을 가더라도 오늘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해요.

죽어서 가는 천국은 좋아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천국으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인간들은 눈만 뜨면 하나님께 나와서 고난 없는 삶을 달라고 부르짖는 겁니다.

 

사람들은 아픈 것을 싫어합니다.

저 역시도 아픈 건 싫어요.

예수 믿어도 고난 없고 아픈 것 없이 믿고 싶고!

복 받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 갔으면 싶어요.

 

어릴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을 겁니다.

부모의 간섭을 받기 싫어서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잖아요.

그래서 자고 일어나면 키가 하늘만큼 커져서 어른이 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을 했잖아요.

 

노는데 미쳐서 밥 먹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알약 하나만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고 밥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밥보다 노는게 더 좋았잖아요.

실컷 놀고 공부를 안 해도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잖아요.

여러분은 안 그런지 몰라도 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들의 잔소리가 싫어서 난 나중에 시집가고 장가가서 아이를 낳으면 잔소리 안 할 거야!

아이가 해 달라고 하는 것 다 해 줄 거야!

지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 둘 꺼야!

그러지요.

 

하지만 막상 결혼해서 아이 낳고 키워보세요.

그렇게 되는가!

더 심하잖아요.

인간은 갑(甲)과 을(乙)일 때가 달라요.

 

차를 운전 할 때와 걸어갈 때가 다르지 않던가요.

내가 운전을 할 때 입장하고, 내가 걸어갈 때 입장하고 달라요.

운전할 땐 빵빵하면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면서도 비키지 않으면 욕이 나오잖아요.

그러나 반대로 내가 걸어가 보세요.

가는데 뒤에서 빵빵 거리면 욕을 하고 가서 멱살 잡고 싶잖아요.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가 이중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에요.

사람은 항상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고 살아가요.

그러니 내게 잘 해주면 사랑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힘들게 해 보세요.

밉고 꼴도 보기 싫어요.

이게 죄인들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해도 아픈 것 없이 사랑하고 싶어요.

하지만 죄인에게선 온전한 사랑이 나올 수가 없어요.

모두가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욕먹지 않고 싶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해요.

이건 십자가정신과 상반된 것인데도 육신의 생각은 늘 이런 것을 원해요.

 

십자가를 이용해서 편해지고 싶어해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우린 그 십자가를 이용해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입니까?

입술로는 주님!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내 뜻대로 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악함을 고발하려고 아픈 사랑을 주세요.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으면 아파요.

원수들이 진(陣)을 쳐서 괴롭혀요.

 

하나님은 사랑을 주고선 아픔 속으로 밀어 넣어요.

너도 좀 아파 보라고 해요.

우린 아픈 사랑이 싫은데 말이죠.

 

하지만 우리 원함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아픔을 당하게 해요.

이는 모두가 우리 인생이 예수님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아픔을 당하였는지 좀 당해 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고난을 받고 널 구원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고난당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짜로 주어지지만 그 값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은 아픈 겁니다.

아프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에요.

 

술람미가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으니 팔자 편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술람미는 솔로몬의 사랑을 받아서 엄청난 고난을 당하였어요.

성경의 증거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한결같이 고난당했어요.

이를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영(靈)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당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가인과 아벨을 보세요.

아벨이 왜? 죽었습니까?

하나님께 사랑 받아서 죽었어요.

그것도 자기 형에게 돌에 맞아 죽었어요.

 

술람미도 솔로몬에게 사랑 받지 않았으면 예루살렘 여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아요.

예루살렘 여자들이 미워할 이유도 없어요.

촌것을 상대해서 뭐하겠어요.

 

그런데 촌것이 자기들도 받지 못한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어요.

예루살렘 여자들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해요.

아니 자기들보다 나은 것한테 빼앗기면 덜 서운한데 이건 영 아니거든요.

 

영화에 보면 대학교수가 술집 아가씨와 바람을 피우면 사모님이 자존심을 상해하지요.

왜? 하필 저런 여자냐!

좀 고급스러운 여자하고 바람을 피우면 덜 자존심이 상하잖아요.

남들 보기에도 덜 창피하고!

그런데 누가 보아도 천하다고 하는 술집아가씨랑 눈이 맞았어요.

바람피운 것도 화가 나는데 그 상대가 별 볼일 없다고 하면 이중으로 고통을 받아요.

그러니 화가 나고 뚜껑이 열리는 겁니다.

 

지금 예루살렘 여자들 입장에선 술람미는 자기들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미워하는 겁니다.

어디 감히 왕을 넘보느냐!

넘 볼 걸 넘 보아야지 어디서 꼬리치고 있느냐고 그러는 겁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를 핍박함으로서 솔로몬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속된 말로 술람미의 머리채를 솔로몬의 머리채라고 생각하고 잡아 흔드는 겁니다.

여러분들도 남편이나 아내가 미워지면 남편이나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걷어차거나 던지거나 하잖아요.

 

만약에 아내가 곰 인형을 좋아 한다면 아내가 미워지면 그 곰 인형을 땅 바닥에 ? 패대기치면서 내 던지고 차면서 씩씩거리잖아요.

그냥 던지지 않아요.

울분을 토하면서 내동댕이쳐요.

 

이건 누구나가 마찬가지에요.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다 똑같아요.

분풀이 하는 것은 동일해요.

화가 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훼손하거나 숨기거나 버리잖아요.

이게 인간이에요.

죄가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요.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도 하나님께 대한 반감(反感) 때문이에요.

아벨에게 너만 아니었으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벨만 없으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식을 키워보면 알아요.

동생이 생기면 괜히 언니가 심청을 부려요.

엄마가 없을 때 동생을 꼬집고 하잖아요.

 

동생에게 너 때문에 엄마 사랑을 빼앗겼다고 질투를 하는 겁니다.

형제들끼리 싸울 때 보면 너 때문에 내가 엄마 아빠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모두가 너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게 다 죄 때문이에요.

 

가인도 아벨이 제사만 안 지내도 하나님이 자기 제사를 받았을 것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죄가 그렇게 생각게 한 겁니다.

그래서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한 겁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건 가인의 착각이에요.

아벨이 없어도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아요.

그건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예루살렘 여자들도 그러고 있어요.

이게 어리석음이고 착각이에요.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 때문에 솔로몬이 자기들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술람미만 없으면 솔로몬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인가 하면!

예를 들어서 말합니다.

개그콘서트에 보면 못생긴 여자 두 명이 있어요.

오나미와 박지선이에요.

둘 다 스스로 못난 여자 캐릭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옆에 허경환이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나미와 박지선이가 착각하기를 허경환이가 다른 여자 때문에 자기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허경환이가 사랑하는 여자를 핍박하는 겁니다.

죽여버렸어요.

 

그리곤 이제 허경환이가 자기들을 사랑해 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요.

왜냐하면! 오나미와 박지선이는 허경환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오나미나 박지선이도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최고로 예쁘다고 칭송을 들어요.

짚신도 짝이 있듯이 임자 만나면 예쁨 받고 호강하고 살아요.

다만 허경환이 한데는 사랑 받지 못해요.

허경환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에요.

 

지금 예루살렘여자들이 그런 겁니다.

솔로몬이 자기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은 모든게 술람미 저 여시 같은 년 때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시간만 나면 술람미를 다 너 때문이라고 구박을 해 대는 겁니다.

 

하지만 술람미가 없어도 예루살렘 여자들은 솔로몬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어요.

예루살렘 여자들과 같은 사람들은 솔로몬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솔로몬은 혼자 살아도 예루살렘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아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하면 돌아버려요.

괜히 옆에 있는 사람을 물어요.

잘사는 꼴을 못 봐요.

고통당하면 같이 당해야 속이 시원하지 난 고통당하는데 옆에서 히히거리면 죽이고 싶어요.

이게 인간의 마음이에요.

이건 믿음이 좋아도 불쑥 불쑥 나와요.

 

목사들도 자기 교회가 부흥 안 되면 괜히 옆에 있는 목사를 욕해요.

트집 잡고 비판해요.

그런다고 그쪽 교인들이 자기에게 오지 않아요.

하지만 잘 되는 놈은 이유없이 밉고 물어뜯고 싶은 겁니다.

괜히 저쪽 교회 때문에 우리교회에 교인들이 안 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 할 때 제 이웃에 있는 목사가 그러더군요.

이단이래요.

전 그래서 개척하자마자 이단이 되었어요.

자기 구역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내가 그곳에 교회를 개척하지 않으면 그 동네 사람들이 다 그리로 오는 줄 알고 있는 겁니다.

몇 년을 해도 교인 3명 있다고 합니다.

그 교회 있는 교인 두 명이 우리교회로 왔어요.

어떻게 왔는가 하면 그 목사가 하도 절 보고 이단이라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이단인가 보러 왔다가 눌러 앉아 버렸어요.

나중에 자기가 이사를 가더라고요.

그러니 한국교회에선 같은 교단 소속은 500m 이상 떨어져 개척을 하여야 한다는 웃지 못 할 개 같은 법이 있는 겁니다.

 

암튼 인간은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봐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요.

이게 인간이에요.

 

지금 예루살렘 여자들이 그러고 있어요.

술람미를 물어뜯고 있어요.

하지만 솔로몬이 술람미를 사랑하는 것은 술람미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잖아요.

솔로몬이 술람미를 일방적으로 사랑했어요.

왜냐하면! 솔로몬의 눈에는 술람미가 예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고 하면 좋은 겁니다.

싫다고 하면 싫은 거예요.

 

그럼에도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쪽에서 사랑받을 근거를 찾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단장을 하고 좋아해 달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싫다는데도!

 

성화주의자들이 그래요.

자기들이 성화하면 하나님이 사랑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성화를 싫어해요.

하나님이 싫대요.

왜? 싫어한대요?

그냥 싫대요.

 

하나님이 인간과 상대하지 않는대요.

인간의 의(義)는 싫대요.

안 받는데요.

하나님은 예수님 의(義)만 받는대요.

하나님은 예수님하고만 상대하겠답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끄집어 낼 수가 없어요.

그러니 내가 이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야! 라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내가 착하면 하나님이 기뻐할거야!

내가 테레사수녀처럼 헌신하면 하나님이 기뻐할거야!

내가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할거야!

내가 전도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거야!

내가 집안일 다 팽개치고 교회에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할거야!

내가 집을 팔아서 헌금을 듬뿍하면 하나님이 기뻐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지 마세요.

 

그건 목사들이 지어낸 말이에요.

하나님은 예수님 것만 기뻐해요.

예수님 피만 좋아한다고요.

 

히브리서에 보면 하늘에 있는 성소에는 예수님의 피를 들고 들어간다고 했어요.

우리의 열심과 충성과 성화를 들고 들어가지 않아요.

오직 예수님 피만 들고 들어가요.

예수님 피 이외는 천국 문이 열리지 않아요.

 

인간들이 이런 저런 것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사랑받기 위해서예요.

그래서 인간들이 좋아하는 것도 하나님이 좋아하는 줄 알고 들고 오는 겁니다.

나 이것 들고 왔으니 사랑해 달라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는 행동은 모두가 다 사랑받고 싶어서 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차별적이에요.

내가 사랑받고 싶다고 해서 사랑해 주지 않아요.

마치 솔로몬이 술람미를 편애(偏愛) 한 것처럼 하나님도 편애하세요.

그러면 사랑 받지 못한 자들이 사랑받는 자들을 핍박하는 겁니다.

 

가인이 아벨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자 시기와 질투가 발하여 죽이잖아요.

하나님은 이걸 죄의 소원이라고 했어요.

좌가 문에 엎드려 있다가 확 물어버렸다고 합니다.

죄는 반드시 누군가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람을 미워하도록 되어 있어요.

 

이를 역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주고 미움당하도록 한다는 말이 됩니다.

사랑을 주고선 미움에 넘겨주는 겁니다.

마치 술람미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알려주신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사실을 알려 준 것은 제자들 마음속에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를 우상(偶像)성이라고 해요.

 

인간은 우상성을 가지고 태어나요.

모든 인간에게 다 있어요.

이 우상성이 신을 섬기면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있어요.

이걸 버리려고 하지 마세요.

안 버려져요.

그냥 안고 살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아세요.

내 자신이 우상이라는 것을 아세요.

 

그러면 이런 죄인이 예수님의 피로 용서 받고 산다는 것에 감사가 되어요.

감사는 깨달음으로부터 나타나요.

깨닫지 못하면 감사가 안 나와요.

깨달으면 고난 속에서도 감사가 나와요.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 속에서도 찬송하고 기도 할 수가 있어요.

피투성이가 되어도 말이에요.

 

내가 죄 덩어리라고 알면 범사가 감사됩니다.

죄 덩어리가 살고 있으니 감사가 되지요.

다만 우리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실감을 못하니 감사치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잘난 사람이 되고자 하지 마세요.

잘난 사람이 되면 맏아들처럼 감사 대신 원망이 나와요.

감사는 탕자가 했어요.

아버지 재산을 말아먹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아버지 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감사가 되는 겁니다.

 

어떤 목사들의 설교를 들으면 여러분 탐심을 버립시다! 라고 해요.

탐심은 우상이니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리라고 하고 있어요.

그러니 거짓말인 겁니다.

 

그러면서 여러분 전도해서 교회 부흥시킵시다!

그러고 있어요.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리곤 자기는 말씀대로 했다고 합니다.

 

말씀대로 하라고 하니 거짓 목사인 겁니다.

목사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면 그게 엄청나게 설교 잘하는 줄 알아요.

바리새인들이 눈만 뜨면 이런 설교 했어요.

그런데 지금 지옥 밑바닥에 가 있어요.

 

여러분 탐심(貪心)을 갖고 사세요.

인간 자체가 탐심덩어리인데 어찌 버립니까?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아요.

탐심은 죄인의 본성이에요.

그림자처럼 착 달라붙어서 안 떨어져요.

 

그림자 없는 인간은 귀신이듯이 탐심 없는 인간은 죽은 놈이에요.

육신이 죽어야 탐심도 죽어요.

그러니 우리가 살고 있는 한은 탐심은 안고 살게 되어 있어요.

 

탐심뿐만 아니고 모든 죄성이 그래요.

죄성은 없앨 수가 없어요.

그냥 평생 안고 살다가 죽어야 해요.

 

성령이 탐심을 물리쳐 주지 않아요.

도리어 속에 감추어진 탐심을 더 들추어내는 일을 하세요.

탐심을 안 내려고 안 내려고 하면 도리어 탐심이 나오도록 유혹해요.

달콤한 것을 가지고 유혹을 해요.

달콤한 것을 코 앞에서 얼씬 거리면 탐심이 덥석 물어요.

덥석 물면 하나님이 봐라!

넌 탐심덩어리잖아!

 

이 사실을 알면 주여! 난 탐심의 인간입니다! 라고 고백하게 만들어요.

탐심을 못 이기겠어요.

주여!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런다고요.

성령은 주여! 나는 죄를 이길 수 없는 죄인입니다! 라고 토설하게 하세요.

 

우째 한국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사뭇 다르지요.

전 은혜 받고 깨달은 것은 죄를 이기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늘 상한 심령으로 사는 겁니다.

주여! 주께서 겪으신 뼈(예수님의 대속)로 나의 즐거움이 되게 하소서 라고 한다구요.

예수님의 피가 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그래요.

 

제가 깨달은 것은 인간은 오래 살수록 죄가 더 드러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죄가 더 드러나요.

말씀을 알면 알수록 죄의 깊이도 더 알아가요.

살면 살수록 자신이 아주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깊이 알아가요.

괜찮은 인간이 아니라 아주 못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요.

 

전 목사가 된 것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 의무적으로라도 성경을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을 보면 참으로 나라는 인간은 죄 덩어리라는 것을 실감을 해요.

나도 별수 없는 위선자라는 것이 드러나요.

 

전 지금 설교를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하고 있어요.

미움도 있고 시기도 있어요.

탐심도 있고 악한 생각도 있어요.

생각이 있다는 것은 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뿌리가 있으면 언젠가는 그 생각하는 짓을 하게 되어 있어요.

 

미운생각이 있으면 언젠가는 살인으로 나타나고!

탐심이 있으면 언젠가는 도적질하고 강도짓하게 되어 있고!

음란이 있으면 언젠가는 간음을 하게 되어 있어요.

이게 인간이에요.

 

우리 속에는 죄가 주렁주렁 고기 뱃속의 알처럼 들어 있어요.

조건만 되면 쏟아져 나와요.

지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난 죄 안 지었어! 라고 자랑하지 마세요.

죄는 씨와 같아서 환경만 맞으면 반드시 싹을 내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누가 범죄하거든 손가락질 하지 말고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더 크게 느껴지는 겁니다.

죄인이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러니 잘 사네!

못 사네!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죄를 깨달을수록 예수님의 피 흘리심에 은혜가 더욱더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이 복음인가를 알 수 있어요.

제가 은혜를 받고 보니 그래요.

전 그렇게 깨달아요.

 

그러니 누가 여러분 죄짓지 마십시오!

그러면 사기 치지 말라고 하세요.

말은 고맙지만 인간이 각오한다고 해서 그 각오대로 살지 못하니 어찌합니까.

 

죄인더러 죄짓지 말고 살라는 것은 살지 말고 죽으라는 말이에요.

죄인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아요.

죄를 지으니 죄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구원파와 같은 자들은 이를 오해해서 성도는 의인인데 왜? 자꾸만 죄인이라고 하느냐 라고 화를 내요.

이런 것은 구원을 자기 것으로 챙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의인이에요.

성도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고 있어요.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려면 우리는 죄인으로 드러나야 해요.

예수님의 생명이 부활 생명이잖아요.

부활은 죽은 몸을 통하여서 일어나요.

산 사람에겐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서 성령은 날마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을 하세요.

십자가에 죽인다는 말은 우리를 죄인으로 드러나게 한단 말입니다.

죄인이라야 십자가에 죽지요.

그러면 죽은 우리 몸에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려내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십자가에 죽고 날마다 예수 안에서 산다고 고백한 겁니다.

자기가 죄인으로 나타난단 말이에요.

구원파 같이 난 의인이야!

그러지 않고 난 죄인입니다! 라고 해요.

 

내가 죄인이라야 예수님의 피가 뿌려지지요.

그래서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날마다 자신은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넘겨주고 예수님께 용서받은 생명으로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신을 의인이라고 하지 않고 죄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성도는 죄인으로서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용서받고 사는 자에요.

 

그리고 이건 죄고 저건 죄 아니고 라는 식의 죄의 경중은 없어요.

죄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들이 만든 겁니다.

하나님 앞에선 크고 작은 죄가 없어요.

 

여러분 어린아이의 똥이나 어른의 똥이나 냄새 나기는 마찬가지에요.

큰 똥은 냄새가 더 나고 작은 똥은 냄새가 덜나지 않아요.

둘 다 냄새가 나요.

 

똥은 꽁꽁 싸두어도 냄새 나고 흩어놓아도 냄새가 나요.

죄인이 이와 같아요.

죄인은 가만있어도 죄이고 움직여도 죄에요.

 

그러니 죄 안 지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세요.

살면서 주여 난 죄인입니다!

그러세요.

죄인으로 살면서 이런 죄인이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오늘도 죄악 중에서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라구요.

 

제발 인간의 행실로 죄를 구분하고 나누지 마세요.

이건 죄이고 저건 죄 아니다 라는 식을 버리세요.

술 먹어도 죄이고 안 먹어도 죄에요.

도적질해도 죄이고 안 해도 죄에요.

바람피워도 죄이고 안 피워도 죄에요.

 

이걸 하라는 말이 아니고 해도 안 해도 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죄에요.

말귀를 좀 알아들으세요.

 

김길태를 손가락질 하지 말고 내가 김길태인 걸 아세요.

김길태는 드러난 죄를 지었고 우린 잠재된 죄를 안고 있을 뿐이에요.

언제 불쑥 튀어나올지 몰라요.

 

예수님이 그러잖아요.

살인한 놈이나 미워한 놈이나 매 일반이라고!

간음한 놈이나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쳐다 본 놈이나 같다고 하잖아요.

육신이 멀쩡한 건강한 인간이라면 선남선녀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어떻게 가만있겠어요.

 

우린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요.

다스려야지 하는 마음뿐이지 안 되어요.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은 간절해도 이미 미움이 자리 잡고 있어요.

탐내지 말아야지 하는데 이미 탐이 나고 있어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에게도 이 우상성은 있어요.

우상성이 예수 믿고 팔자 고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팔자 고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팔자를 버린다고 했어요.

제자들 속에 있는 우상성을 깨트리려고 예수 믿으면 미움 받는다고 알려 준 겁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을 받으면 미움이 넝쿨채 굴러와요.

사랑과 미움이 동시에 옵션으로 주어져요.

 

그래서 안으론 기쁨인데 겉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겁니다.

안으론 행복한데 겉으론 죽을 지경인 겁니다.

속으론 천국인데 겉은 지옥인 겁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술람미가 그랬어요.

속으론 솔로몬의 사랑을 받아서 기쁘고 행복했지만 겉으론 사면초가(四面楚歌)였어요.

누구하나 술람미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가 적이었어요.

 

술람미가 당한 고난은 솔로몬의 사랑 때문에 주어진 겁니다.

그 아픔이 술람미로 하여금 더욱 더 솔로몬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사모하고 갈급해 하게 만든 겁니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말하기가 좀 걸쩍지근합니다.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난감하네요.

암튼 성령께 지혜를 구하고 해 봅시다.

 

오늘본문은 술람미가 솔로몬과 사랑을 하다가 병이 낫다고 합니다.

 

아 2:5절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케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음이니라”

 

아니 얼마나 좋았으면 병이 날 지경으로 사랑을 하였을까요.

아마도 밤새도록 한 모양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랑해 보았나요.

 

그럴 만도 하지요.

만인이 지켜보는 만찬 석상에서 이 여자는 내 여자입니다! 라고 공표를 해 주셨으니 죽도록 사랑 할만도 하지요.

밤이 새도록 사랑 할만도 하겠지요.

 

여러분 사랑도 기력이 있어야 해요.

기력이 없으면 힘이 부쳐서 사랑도 못해요.

술람미가 기력이 딸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도록 기력을 좀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건포도로 힘을 돋우고 사과로 시원케 해달라고 합니다.

건포도는 기력을 돋우어주는 음식이에요.

당시 건포도와 사과는 소성(蘇醒)제로 쓰였어요.

기력이 쇠잔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력회복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었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영양제와 같아요.

여행을 하거나 전쟁터에 나갈 때 가지고 다니면서 먹고 힘을 회복하곤 했어요.

 

사과는 시원하게 해 주어요.

사과는 목마름을 해소케 해주는 청량음료와 같아요.

건포도가 먹고 힘을 돋우는 밥이라고 한다면!

사과는 목마름을 해갈케 해 주는 생수와 같아요.

 

자 이걸 신약식으로 이해해 봅시다.

 

믿음이란? 생명과 같아요.

살아 움직이는 겁니다.

살아 움직이려면 힘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산 사람은 밥을 먹는 겁니다.

생명은 밥의 힘으로 사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생명의 양식이라고 해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죽음에서 구원을 받지요.

죽음의 천사는 어린양의 피를 보고 넘어 갔어요.

그런데 피를 바른 집 안에선 어린양 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어요.

어린양고기를 밥으로 먹는 겁니다.

 

앞으로 가나안으로 가자면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든든히 먹이는 겁니다.

허리엔 띠를 띠고!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어린 양 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고 했어요.

 

예수님도 새 언약을 세울 때 유월절 양 대신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지요.

피는 죄사함을 주는 겁니다.

그러나 살은 죄사함 받은 성도가 먹어야 할 양식인 겁니다.

다름 아닌 말씀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말씀으로 든든해져 가야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밥을 먹고 자라가듯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통하여서 주어집니다.

 

말씀을 많이 알아야 시험에 들지 않아요.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갖가지 시험거리들이 닥칩니다.

이러한 시험 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해요.

 

광야에서 예수님이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을 때 말씀으로 이겨냈어요.

마귀도 말씀을 들고 시험해요.

어떤 식으로 하는가 하면 말씀을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이용해요.

자기를 드러내는데 사용하고자 한단 말입니다.

이런 마귀의 말은 연약한 사람은 훅하고 넘어가요.

왜냐하면! 인간을 긍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항상 예수를 이용하여서 영웅이 되라고 미혹합니다.

인간을 부추겨요.

여기에 넘어가면 자기 잘난 것을 증명하려고 예수를 이용하기에 이릅니다.

 

지금 마귀가 광야에 계신 예수님에게 와서 영웅이 되라고 미혹하는 겁니다.

성경에 봐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천사가 받아 준다고 했잖아!

그걸 증명해 보라고 부추겨요.

 

그래야 사람들이 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정해 줄 것 아니냐!

그러니 돌로 떡을 만들고!

슈퍼맨처럼 높은데서 뛰어내려 보고!

천하만국의 영광을 차지하라고 하는 겁니다.

 

꼭 이 시대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는 말과 같아요.

얼마나 달콤한 말입니까?

꿩 먹고 알 먹는 것 아닙니까?

세상에선 예수 믿고 복 받아서 잘 살다가 죽으면 천당에 가고!

이런 기쁜 복음이 어디에 있어요.

얼른 아멘이라고 해야지요.

 

그러니 말씀을 모르는 교인들은 마귀의 말을 넙죽 넙죽 받아먹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인지 마귀의 말인지 분간도 하지 않고 목사들이 성경을 가지고 말을 하니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치도 않고 넙죽넙죽 다 아멘! 아멘! 하면서 받아먹고 있어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말씀을 몰라서 그래요.

히브리서 기자의 말대로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여서 그래요.

그러니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거짓 종들의 거짓말에 넘어가는 겁니다.

마귀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속는 겁니다.

 

바울이 그러지요.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지요.

이는 믿음 안에 든든하게 서 있으란 말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님과 사랑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운명에 동참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당하였던 것을 그대로 당하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과 사랑하기 때문에 육에 속한 자들로부터 미움도 많이 받아요.

이삭처럼 약속으로 난 자는 육으로 난 이스마엘에게 핍박을 받아요.

 

그러니 예수님께 찜을 당하여서 사랑을 받으면 아스팔트길이 놓인 것이 아니고 가시밭길이에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 디딜 때마다 아파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이런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말씀 밖에 없어요.

말씀을 먹으면 힘이 생겨요.

마치 요나단이 전쟁 통에 수풀에서 꿀 한 모금만 먹었는데 눈이 밝아진 것처럼!

하나님 말씀은 꿀처럼 눈을 밝게 해 주어요.

소망을 준단 말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과 사랑을 하자면 힘이 있어야 하듯이!

성도들도 예수님과 사랑을 하려면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사랑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요.

말씀을 들어야 믿음도 강건해져요.

말씀을 알아야 하나님의 약속이 과연 그러한가 확인 한단 말입니다.

 

말씀을 모르면 어린아이들처럼 유괴범들이 주는 아이스크림 하나에 유괴당해요.

거짓 종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요.

한국교회는 수많은 거짓 종들이 우글거려요.

어느 놈에게 코 베일지 몰라요.

 

바울이 그러지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지요.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에요.

 

신앙생활은 전쟁이에요.

술람미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어요.

겉으론 예루살렘 여자들로부터의 핍박을 견디어 내야 하는 전쟁이고!

안으로는 솔로몬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상사병이라는 전쟁이에요.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원수가 가만히 안 있어요.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그 은혜를 쏟을 일들이 닥쳐요.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과 같이 은혜와 시험은 항상 같이 병행하면서 주어져요.

 

베드로가 그러지요.

 

벧전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하나님께선 우리의 믿음을 시련하려고 불같은 시험을 주신다고 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면서 불같은 시험이 온다는 겁니다.

우리 생각엔 사랑하면 시험을 주지 말아야 하잖아요.

도리어 시험이 안 오도록 막아 주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 우리 생각과 다르게 하세요.

사랑한다 하고선 힘들게 만들어요.

세상에선 차라리 하나님께 사랑 안 받으면 편해요.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고로 미움을 받는다고 했잖아요.

역설적으로 택함 받지 않으면 미움 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단 소리 듣지 않아요.

그냥 한국교회 주류에 속하여서 목사입네 하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살 수 있어요.

교회도 부흥하고 목사 대접받고 잘 살수가 있어요.

 

복음과 함께 이런 것을 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복음과 함께 고난을 주세요.

 

지난 시간 술람미는 솔로몬이 잔치 집에서 자신을 내 것이라고 깃발을 꼽았다고 했지요.

이는 만인들 앞에 공개를 한 겁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술람미 앞에 굽신거리고 예! 예! 하여야 하잖아요.

왕후에게 잘 보여야 하잖아요.

 

그러나 정 반대로 여기저기서 시기와 질투와 분냄들이 나타났어요.

예루살렘 여자들이 가만있지를 않았어요.

더 길길이 날뛰면서 죽여라! 죽여라 했어요.

 

솔로몬이 술람미에게 기(旗)로 덮은 것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니 우겨쌈을 당하지요.

온 유대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핍박을 했어요.

우리 생각엔 하늘에서 불의 혀 같은 모습들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았으면 너도 나도 대접을 해 주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이고~ 사도님들 우리 집에 오셔서 쉬다가 가십시오!

저희 집 저녁 식사에 초대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잖아요.

아니! 하나님의 종들인데!

그런데 도리어 죽이자고 달려들었어요.

이건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잖아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인간들이 아이고 하나님 아들님 어서 오십시요!

여기 앉으세요!그래야 하잖아요.

 

아니 대통령이 지금 여러분 앞에 와 있으면 각하 어서 오십시오.

영광입니다!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럴 것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느 놈도 거들떠보지 않았어요.

완전히 무시했다고요.

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그랬어요.

지금도 복음 전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인간들이 이단이라고 해요.

이게 다 이 세상이 악마의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몰라요.

자신들을 장악하고 있는 자가 마귀란 것을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 마귀를 들추어내는 겁니다.

지금은 제자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전하는 종들을 통해서 드러내고 계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고난 속으로 밀어 넣은 겁니다.

이는 원수들을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입으니 원수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적으로는 나 구원받았다고 자랑만 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늘 룰루랄라 행복하지 않았어요.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 못지않게 사람들로부터 미움도 받았어요.

육신으로는 엄청난 고난을 받았어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에요.

늘 크고 작은 시험거리들이 닥쳐요.

이는 신앙생활이란? 죄악 된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이에요.

 

성경은 이 세상을 바다라고 합니다.

그것도 그냥 바다가 아니고 고해라고 해요.

고해(苦海)란? 고생의 바다란 말입니다.

풍랑이 이는 곳이란 말이에요.

 

바다는 늘 크고 작은 파도가 있어요.

바다엔 예상치도 못한 풍랑이 일어나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항해를 할 때 풍랑을 만난 것도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자 함입니다.

예수와 동행함에도 풍랑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면서도 두려워 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깨어나서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을 한 겁니다.

우리들도 예수님하고 동행하면서도 세상에 조그마한 일만 닥쳐도 두려워해요.

예수 예수 하면서도 예수를 안 믿어요.

 

관념이에요.

관념의 예수를 실제로 바꿔치기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풍랑을 일으키는 겁니다.

결국 믿음을 알려주려고 풍랑이 일게 하여 배에 물이 들어오게 한 겁니다.

그리곤 그 풍랑을 어떻게 잠잠케 하는지 알려 주었어요.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늘 은혜가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때론 시험에 들 때도 있고 낙심 될 때도 있어요.

시험을 이겨 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뿐입니다.

 

술람미가 핍박을 이겨내고 상사병을 이겨내는 것은 솔로몬의 약속이에요.

그 누가 뭐라고 하여도 솔로몬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건포도와 사과는 말씀과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시험에서 이겨내요.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서 역사해요.

믿음은 말씀과 같이 활동해요.

말씀은 밥과 같아요.

밥을 먹어야 힘을 얻듯이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라는 힘이 생겨요.

믿음이라는 힘이 있어야 시험에서 이기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 속으로 밀어 넣는 겁니다.

말씀을 붙잡게 만들어요.

 

시 107:17-20=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18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19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보세요.

죄인이 범죄로 인하여 시험을 당하여서 낙심이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선 말씀을 보내서 위경(危境)에서 구원하신다고 하지요.

위경이란? 위험한 환경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위경(危境)에서 구한다는 말은 시험을 이기게 한단 말입니다.

 

말씀을 보낸다는 말은 언약 안으로 인도한단 말입니다.

언약이 믿어지게 한단 말입니다.

신앙생활의 시험은 모두가 마귀가 주는 겁니다.

마귀는 성도를 지옥으로 보낼 수가 없어요.

다만 구원의 즐거움을 상실케 만들어요.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우리야를 죽인 것으로 인하여 나단 선지자로부터 엄청난 책망을 들었어요.

 

시 51:10-1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책망 듣고 좋아 할 사람이 누가 있나요.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책망을 들었는데 낙심이 되지요.

그 누구도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마음이 상해요.

 

다윗도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곤 깊은 시름에 잠깁니다.

왕이 되어서 일반 백성들보다 더 악한 죄를 지었으니 얼굴을 들 수가 없지요.

앞으로 어떻게 백성들을 다스리겠어요.

간음한 자이고!

살인한 자인데!

누가 왕의 말을 듣겠어요.

명령하면 세피하게 여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왕이라는 즐거움도 상실했어요.

마음이 천근만근인 겁니다.

기쁨도 없고!

밥맛도 없고!

죽을 지경인 겁니다.

이걸 신약에선 성령이 근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게서 성신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합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이로보건데 다윗의 마음을 회복케 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인 겁니다.

술람미 식으로 말하면 건포도와 사과인 겁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치료해 달라는 말입니다

 

술람미는 인간적으로 보면 사면초가에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했어요.

피할 방도가 없어요.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술람미는 핍박을 이기는 방법으로 솔로몬과의 행하였던 사랑을 생각을 해 낸 겁니다.

왕에게 사랑 받은 것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

맞아!

내가 솔로몬 왕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고초를 당하는 거야!

 

너희들이 아무리 날 핍박을 해 봐라!

솔로몬의 사랑이 변할 줄 아느냐!

절대 안 변한다!

나에게 약속을 했단 말이야!

그 약속을 생각하고 솔로몬과의 황홀했던 사랑을 생각함으로서 이겨내는 겁니다.

 

솔로몬이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 주었는지를 회상하는 겁니다.

 

아 2:6절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

 

솔로몬이 술람미를 왼손으로는 베개하고 오른 손으로 안았다고 합니다.

이는 솔로몬의 품에서 안식하였던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솔로몬의 품은 그리스도의 품과 같아요.

성도가 시험을 이기는 것은 말씀 안에서 든든히 서는 것뿐이에요.

누가 이단이라고 하여도 예수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깃발을 꼽아 준 것을 믿는 겁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어요.

그 어떤 마귀의 참소도 예수님의 피로서 이겨내요.

그러니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새 언약을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겁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양 팔로 안은 품속은 새 언약과 같아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에요.

그 어떤 것으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술람미는 누구든지 이 평안함을 깨트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아 2:7절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노루와 들 사슴으로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찌니라”

 

상상을 해 보세요.

문자적인 의미로 보면 지금 술로몬과 술람미가 짙은 사랑을 했어요.

기운이 빠질 정도로 사랑했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너무 진하게 사랑을 하고 난후 나른한 몸으로 신랑의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어요.

아주 달콤하게 자고 있다구요.

그런데 누가 깨워보세요.

얼마나 밉겠어요.

 

그러니 제발 깨우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제발 날 좀 내버려 두라고 합니다.

이 기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고 해요.

난 지금 엄청 행복하니 방해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좀 쉬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이제 그만 핍박해라!

그만큼 미워했으면 되지 않았느냐!

제발 내비 둬 달라고 하는 겁니다.

 

노루와 들 사슴의 이름을 걸고 부탁하고 있어요.

노루와 들 사슴이란?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는 동물이에요.

노루와 들 사슴은 겁이 많아요.

사소한 일에도 놀라서 도망가요.

 

지금 술람미가 그렇다는 겁니다.

난 노루처럼 마음이 여리다는 겁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하니 제발 날 내 벌여달라고 하는 겁니다.

 

사소한 일에 자신의 달콤한 사랑을 깨트리기 싫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은 다툼을 피하고자 해요.

은혜를 아는 사람은 시비에 말려들기 싫어해요.

원수를 만들지 않아요.

 

물론 원수 마귀가 가만 두지를 않지만 말이에요.

술람미는 예루살렘 여자들과 다투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냥 종용히 살고 싶어요.

그런데 자꾸만 시비를 거는 겁니다.

 

저도 조용히 살고 싶어요.

그런데 자꾸만 곁에서 시비를 걸어요.

마음을 격동시켜요.

 

목사가 마음이 격동 되면 엄청 힘들어요.

저는 마음에 분노가 생기고 미움이 생기면 영감(靈感)이 사라져요.

제일 고통스러운게 영감이 안 떠오르는 겁니다.

그럼 미쳐요.

물론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마음에 분노가 가득해 보세요.

깜깜해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시비를 피하려고 해요.

시비 걸지도 않고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주님이 주신 은혜만 뱉어내고 싶어요.

이게 작은 소망이에요.

술람미처럼 주님과 교제하고 싶어요.

 

특히 아가(雅歌)서는 사랑이야기잖아요.

사랑이야기는 마음이 평온해야 풀어낼 수가 있어요.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해야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을 취할 수가 있어요.

제가 사랑을 느껴야 토해내지요.

 

그래서 가능하면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고 TV도 안 보아요.

흐려질까 봐서!

집에서도 조심 조심해요.

그런데 자꾸만 격동케 하는 일들을 일으켜요.

 

지금 저에게 어떤 분이 엄청 시비를 걸고 있어요.

그 분의 인격이 있으니 말하진 않겠어요.

뭔가 오해를 하고 엄청 힘들게 하고 있어요.

 

전 가만히 있는데 물벼락 맞은 꼴이에요.

이런 것을 두고 애매히 고난당한다는 겁니다.

십자가 복음이 참으로 능력은 능력인가 봐요.

 

전 다투기 싫어요.

무슨 영웅이 되겠다고 싸웁니까?

원수 갚고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두어야지요.

하나님이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해 주시겠지요.

 

그래서 전 대꾸하기 싫어요.

대꾸를 하지 않으니 사실인 것처럼 오해 받고 있는 겁니다.

시비걸기 싫다는데 자꾸만 시비를 걸어요.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마치 사울이 다윗을 그토록 죽이고자 한 것과 같이 하고 있어요.

참으로 불쌍해요.

 

전 지금 술람처럼 예수님 품에서 쉬고 싶어요.

제발 깨우지 마세요.

저도 노루처럼 들 사슴처럼 마음이 아주 아주 여린 사람이에요.

슬픈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감성적인 사람이에요.

 

아마도 오늘 본문을 쓰라고 이런 사건을 일으킨 것 같아요.

술람미의 마음이 너무도 제 마음과 같아요.

그러니 본문이 이해가 되는 겁니다.

 

처음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 성령님께서 어떻게 해석을 하게 하시려나 고민을 했는데 의외로 사건을 일으켜서 쓰게 만드네요.

혼자 이걸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가 궁시렁 거렸는데 그걸 하나님이 들었나 보아요.

이젠 궁시렁 거리지도 못하겠어요.

워낙 귀가 밝으시니!

 

난 귀찮고 괴로운데 그 괴로움을 줘 가지고서는 술람미의 마음을 이해하게 만드네요.

전 완전히 하나님의 시다바리인 겁니다.

술람미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시키려고 엉뚱한 사건 속으로 밀어 넣으니 말이에요.

하나님은 사건에 휘말리게 하면서도 챙겨 갈 것은 다 챙겨가요.

하나님 참 나빠요!

 

아니 자기들끼리 싸우지 왜? 가만있는 나를 끌어들입니까?

시비를 벌렸으면 그 분하고 논쟁을 하여야지 왜? 뜬금없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붙잡고 시비를 겁니까?

난 갈 길이 바쁜데!

 

전 그런데 빼앗길 시간이 없어요.

전 싸우기 싫어요.

논쟁하기 싫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게 논쟁이에요.

영적인 논쟁은 답이 없어요.

이건 접점이 없어요.

육과 영은 지평이 다르기 때문에 합일점이 없어요.

그러니 논쟁을 걸면 당신이나 잘 하시라고 피해요.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영감만 흐려져요.

얼마나 손해를 봅니까?

 

제발 좀 가만히 두세요.

술람미처럼 부탁할게요.

깨우지 마세요.

전 그냥 아가(雅歌)서에 취하고 싶어요.

말씀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되잖아요.

누가 억지로 먹으라고 합니까.

 

음식점에 음식 맛이 없으면 안 가면 되잖아요.

왜? 가서 주방장 멱살을 잡고 짭니 맵니 합니까?

그 사람 실력이 그것 밖에 안 되는데 닦달한다고 달라지나요.

안 달라져요.

 

그러니 그냥 내비 두고 다른 집으로 가서 잡수세요.

손님 없어서 장사가 안 되면 가게 문을 닫겠지요.

그렇게들 한가하세요.

남의 집에 돌아다니면서 시비 걸게!

제발 남 간섭할 생각하지 말고 자기 하는 일이나 잘하세요.

 

마음에 안 맞으면 그냥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세요.

이렇게 설교하는 사람도 있네!

아가(雅歌)서를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네!

그러세요.

그 넓으신 아량으로 좀 품어 주세요.

시비 걸지 말고!

 

스스로를 복음에 고수라면서요.

고수가 되었으면 하수들이 놀면 못본체 하세요.

고수가 되어서 하수들이 노는데 훈수들려고 하지 말고!

하수는 훈수를 들어주어도 그게 뭔 말인지 몰라요.

그러니 그냥 두세요.

 

이제 마지막으로 술람미가 듣고 있는 음성을 들어 봅시다.

 

아 2:8-10절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 9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술람미가 그럽니다.

자기 귓가에 님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이건 술람미의 바램이에요.

빨리 와서 자기를 좀 데려가 달라는 소망이에요.

이제 곧 님이 와서 데리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미 와서 창문 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술람미의 마음속엔 이미 술로몬이 와 있어요.

그걸 느끼고 있는 겁니다.

혼자서 느끼고 있는 겁니다.

 

지금 술람미가 뱉어내는 말들은 전부가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는 말들이에요.

한번 입맞춤을 당하고 난 후 솔로몬은 떠나갔어요.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추억하는 겁니다.

님과 사랑했던 일들을 하나 하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힘을 삼는 겁니다.

 

현실은 예루살렘 여자들로부터 핍박받고 있어요.

핍박이 심할수록 님과 가졌던 달콤한 사랑이 더욱더 그리운 겁니다.

마음 속에 담아 둔 님을 불러보는 겁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마음 속에 항상 있었어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요.

몸은 비록 떠나 있지만 마음은 항상 하나로 있었어요.

 

바울은 이런 상태를 육신은 비록 떨어져 있으나 영(靈) 안에선 항상 함께 있다고 했어요.

술람미와 솔로몬은 예수님과 성도의 사랑을 예표하고 있으니 영(靈) 안에선 항상 하나로 살았던 겁니다.

술람미는 영(靈) 안에서 솔로몬과 함께 있었어요.

 

이건 마치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과 같아요.

지난 시간에 사랑은 현재시제라고 하였지요.

이미 경험된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로 사는 것이라고 했지요.

 

우리 안엔 예수님이 항상 계세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예수님은 장차 오실 분이지만 지금 와 계세요.

이걸 믿음으로 살면 되어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하지만 현재 예수님과 교제함이 없으면 재림은 허구에요.

현재 예수님과 교제하지 않으면 재림하면 지옥에 가요.

신앙생활이란? 지금 예수 안에서 사는 거예요.

지금 천국에서 사는 겁니다.

 

현재 천국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나중에 천국을 못가요.

왜냐하면! 천국에 계신 성령이나 지금 우리 안에 와 계신 성령이나 동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성도의 마음은 이미 천국 안에서 사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한 겁니다.

바울은 이 천국 안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그 어떤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았던 겁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강한 자로 살았어요,

성령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았어요.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건포도와 사과를 많이 먹었어요.

 

그러니 우리도 건포도와 사과처럼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말씀을 많이 먹읍시다.

그래야 갖가지 시험들을 이겨 낼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십자가 복음은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미혹으로부터 지켜주는 말씀이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약속이 믿어지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누가 뭐라고 하여도 흔들리지 않아요.

예수님의 피가 든든한 건포도에요.

눈을 밝게 해 주는 꿀이에요.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의 피라는 건포도를 먹고 힘을 얻어 풍랑 이는 바다를 건너갑시다.

이제 주님이 곧 오신다고 처처에 사인을 보내고 있잖아요.

잠시 잠간 후면 예수님이 데리러 오세요.

오셔서 가자고 할 겁니다.

 

주님이 그럽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어서 가자 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술람미가 건포도를 먹고 기력을 회복하였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세운 새 언약의 복음을 먹고 힘을 얻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게 하옵소서. 그 어떤 환란이 닥쳐도 약속을 붙잡고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게 하시고 술람미가 솔로몬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살았듯이 우리도 예수님만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댓글
  • 10.03.31 21:21

    첫댓글 성경을 맹신하고 있네요.^^ 예전에는 신학 대학에서 성경이 사람에 의해 많이 변형되었다고 교육했다고 하는데 요즘 학교가 썩어서 교육내용에서 빠졌다네요.^^
    그러니 더 맹신할수 밖에요. 사람에 의해 쓰이고 고쳐진 글을 믿는다.!!!! 똑똑해요....
    기도 많이 하세요... 다만, 조용히 하세요. 좀 모자라 보여서요.ㅡㅜ

  • 작성자 10.04.01 07:11

    그러셔 쎄 여? 나는 당신이 더 아주마니 모자라보이는데요?

  • 10.03.31 23:47

    짧게 써도 빠가 씨부리는 소리 다안다.예수지옥 김밥천국 이라는 것을.

  • 작성자 10.04.01 07:15

    당신처럼 배때기가 주인인자는 김밥이 천국이지. 항상 그놈의 아가리를 채워넣어야 하니 인생이 쫌 고달플거야. 혹자는 니같은자를 식충이라고 한단다..

  • 10.04.03 11:48

    다음부터 말 짭게 하세요 당체 뭔말인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