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을의 사연
부산은 6.25의 산물로 우리에 뇌리에 언제나 떠나지 않는 사연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도다리 난간에서 금순 이와 헤어진 청춘 남녀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의 눈물들, 피난민의 판자촌,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묘지의 비석 군이 모임 비석 마을, 40계단 층층대에 홀로 우는 나그네 구슬픈 사연, 밤이면 울려 퍼지는 12열차 기적소리 그 뿐이랴! 살 길을 찾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담배장사, 구두닦이 청소년들의 울부짖음 광복동 국제시장 골목길을 헤매면서 들끓는 장사꾼, 자갈치 시장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애절한 사연들은 한두 가지랴. 살집을 마련하기위하여 찾아든 범일동 소재 안창마을 일명 범내골 호랑이가 그 산속에서 살았다는 이 마을은 전쟁 후에 모여든 피난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면서 생겨난 마을이다. 이 마을 입구에는 호랑이 조형물이 설치되어있고 공동 텃밭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을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도 추진하고 있단다.
며칠 전 전국 남강 문학회 총회를 해운대에서 마치고 부산 관광차로 들린 곳이 문화마을이다. 여기는 서구 감천동 소재 이 마을은 부산의 현대화 물결에 밀려 판자촌 집결지, 비탈진 마을 거리는 비좁은 산길도로에 층층 계단으로 되어있다. 길을 걸어올라 가는 아낙내의 뒷모습은 그 생활상은 가히 짐작이 간다.
그 곳은 사연인즉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각지에서 흩어진 일본이의 묘지를 집단으로 모아 이룬 공동묘지인 곳이다. 해방 이후 방치된 묘지를 허물어 피난민 누구든지 먼저 파헤쳐 집을 지어 살았던 곳이다. 그 비석을 깔아 계단을 만들기도 하고 추담으로도 사용했다니 피난민들의 살길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도 땅속에 묻혀 있는 비석이 종종 발견된다니 그럴 수밖에 몇 년 전 일본인이 여기를 찾아와서 조상의 묘비를 찾겠다고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난다.
살 곳을 찾아온 이들과 이런 사연 속에 생겨난 유래로 비석마을이 탄생되었고 한다.
그날따라 부슬비를 맞으면서 대학병원 뒤쪽 고개 넘어 문화마을을 찾아 마을 입구에서 하차하여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안내자를 따라 가면서 바라 본 전경은 올막졸막 계단식 마을의 구조는 50년대의 풍경그대로이었다.
안내판에 크게 그려진 벽화를 감상하면서 긴 계단 길을 올라 마을 전망대에 올라 전경을 바라 본 경치는 계단식 주택(판자촌)은 아름다운 도색으로 단장되어있지만 집의 구조는 역시 비접은 계단식 가옥이었다. 길을 따라 올라 다니는 숙달된 주민들의 발길은 넘넘하게 보였다. 주민들의 얼굴은 모두가 밝았으며 이웃 좋기로 이름난 인심들 외국 손님들을 맞는 주민들의 환대에 놀란 아프리카 흑인의 감동 받는 이야기들 안내자 아주머니들의 상냥한 안내 말에 감동을 찾아온 이들과 함께 받았다. 마을 전체에 단장한 도색은 문화 체험 장으로 조성되어 있고 문화 학습관 갤러리도 눈에 뜨인다.
전망대에서 계단 길을 내려오면서 좁다란 방 찾 집을 찾아 일행은 따스한 차 한 잔 마시고 이슬비내리는 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카메라에 마을 전경을 샅샅이 사진을 담아
떠나는 발길은 무거웠다. 나이 드신 할머니의 어두운 미소는 나의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저 앞에 내려다보이는 무수한 빌딩 숲을 앞에 두고 이 할머니는 이곳 산등성이에서 평생을 몸담아 살아 왔으며 무엇을 생각하면서 황혼을 넘기고 살아갈까? 이곳에 묻힌 일본인들의 영혼도 저 건너 감천항을 바라보면서 향수를 달래며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역사의 언저리에 변화무상한 감회 속에 찹찹한 나의 심정 금할 수 없다. 201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