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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국제경제질서는 지역주의와 다자주의가 병존하는 체제에 의해 재편될 것이다. 지역경제동맹은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동아시아로 3원화 되거나 EU와 亞太경제협력체(APEC)로 2원화 될 전망이며 2010년까지는 세 지역이 세계 국민총생산(GNP)을 3분 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경제의 핵심적 잠재력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경제는 동북아의 거점경제적 위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지는 반면 부상하는 중국(中國)경제와 동남아국가들과 경쟁관계 역시 강화될 것이므로 산업고도화와 국제화를 통한 경쟁력제고와 동북아경제권의 지역협력체계 구축이 적극 추진돼야 할 것이다. 1994년 5월 10일 출처 :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0000&newsid=19940510192400659&p=yonhap |
이런 내용은 특출하고 기발한 내용이 아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경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대단한 조직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연구소가 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릇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조그마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문민정부가 어떤 의도로 동북아중심국가를 구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구상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정책으로 추진된 것도 있다.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인천공항과 부산신항만은 동북아 물류 중심지를 목표로 건설된 것이다. 비록 동북아중심국가라는 비전까지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인프라가 되었다.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산하 21세기 위원회에서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으로 수립했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이걸 좀더 구체화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필생의 과업으로 추진했던 남북평화정책은 그냥 한반도 차원의 정책이 아니었다. 남북경협 차원에서 추진한 남북철도 역시 단순한 사업이 아니다. 남북평화정책은 동북아에 평화질서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남북철도는 장차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저 멀리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연결되고, 중국횡단철도(TCR)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가깝게는 만주횡단철도(TMR), 몽고횡단철도(TMGR)와도 연결된다. 남북철도 연결은 남북분단으로 인해 사실상 섬나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대륙으로 나가는 방책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아이디어 수준에서 출발한 정책을 국가비전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이 참여정부다. 분쟁과 갈등, 그리고 전쟁으로 얼룩진 동북아 역사를 공존과 평화의 역사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늘 전쟁터 역할을 했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늘 전쟁터 역할을 해야 했던 한반도가, 역설적으로 평화와 공존의 질서가 구축되면 역시 경제중심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어떤 힘의 균형점에 서 있다는 이야기다. 옛날에 5일장이 열리던 곳도 대체적으로 그 지역의 중심지였다. 여러 사람들이 오가기 쉬운 곳이 장터가 되는 것이다. 전쟁터가 되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참고할만한 사례도 있다. 동북아중심국가론은 끊임없는 전쟁에 시달렸던 유럽이 갈등을 청산하고 공존의 길을 선택한 유럽연합을 벤치마킹해보자는 소망이 담겨있다. 유럽연합(EU)은 로베르 슈만 프랑스 외무장관의 '슈만 계획'(Schuman Plan : 195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유럽을 항상 전쟁으로 몰고 갔던 프랑스와 독일의 원한관계를 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ECSC)의 창설로 해소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단초가 되어 ECC로, 다시 경제공동체인 EC로, 그리고 마침내는 정치적 공동체인 EU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이런 선례를 바탕으로, 아직도 분쟁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동북아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모색이 담겨져 있는 구상이 바로 ‘동북아중심국가론’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이 정도 역사적 안목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만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의 단독 작품이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처음 창조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디어 수준에서 점차 발전해 온 것이다.
그러니 노무현 대통령 취임 연설문을 마치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썼다는 식으로 냄새를 풍기는 것은 굉장히 비겁한 글쓰기임을 지적하고 싶다. 고작 문틈으로 보이는 조그만 꼬리 하나를 보고서는 자기 마음대로 어떤 동물인지 장담해서는 안 된다. 지성인의 자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확한 논거와 사실, 증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복학생 시절 재미있게 들었던 강의 하나로 전부를 규정하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가지는 것이 지성인의 자세다. 어떤 주장을 할 때는 자신의 제한된 범위에서의 지식과 경험에 갇히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타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다. 한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협소하다. 그래서 타인의 경험과 생각을 엿보기 위해 책을 읽고, 이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과 근거가 진실에 부합되지 않을 수도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황 작가님이 1998년에 처음 들어봤다는 동북아중심국가 이론. 미안하지만 필자는 90년대 초부터 들어왔다. 어쩌면 훨씬 그 이전에도 누군가가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참여정부가 출범하기 이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발표한 국정과제의 일부를 자료로 붙인다.
■ 동북아 경제 중심국가 건설 1. 동북아 시대의 비전 □ 세계 경제 중심지로서 동북아 시대 도래 ㅇ 동북아 시대는 경제적 측면을 초월, 변방의 역사를 극복하고 자주적 역사를 창출하는 계기 □ 확고한 경제중심 역할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이 동북아 시대 개척의 선결과제 2003년 2월 21일 출처 : http://knowhow.pa.go.kr/roh/news/view.asp?bid=1&pid=4522&cp=1&num=2677 |
대한민국의 미래를 찬양하면 국가주의?
황 작가님은 급기야 동북아중심국가론 하나를 가지고 곧장 ‘국가주의’까지 치달아버린다. 이 정도 되면 노무현에 대해서 증오의 감정이 있거나, 경제-자본-시장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이 내재되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감정은 개인적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니 내가 왈가불가할 사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논리비약이다.
동북아중심국가론을 언급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찬양하면 국가주의자가 되는가? 국가주의를 간명하게 정의하면 ‘국가의 발전이 개인의 발전보다 우위에 서거나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냐? 개인이냐? 이런 저급한 이분법적 대립은 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든 싫어하든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가족이 생기고, 나중에는 모교도 생기고, 직장도 생기고 이런저런 커뮤니티에 속한다.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에도 속하게 된다. 더 넓게 가면 세계라는 질서의 공동체 일원이기도 하고, 우주의 일원이기도 하다. 자연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한다. 그리고 자부심도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나쳐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목도한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그렇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공산주의체제가 그렇고, 북한의 봉건적 세습체제도 그렇다. 아무 데나 국가주의를 갖다 붙이게 되면, 이 세상에 국가주의 아닌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자부심을 갖는 것은 본성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에서도 나오고, 졸업한 학교에 대한 애정에서도 자부심이 나온다. 직장에 대한 애착에서도 자부심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부심이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이어서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다른 공동체를 억압하는 경우다.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 장려해서 나쁠 것이 없다.
아무렇게나 국가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폭력이다. 글 쓰는 사람의 만용이고, 자유의 남용이다. 무책임함이다.
사실에 무감각한 우리 사회, 참다운 지성이 필요하다
진리는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여기서 진리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사실이라도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은 진실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말한다>를 읽었다. 부분적으로 반론을 하고 싶은 내용이 많았다. 그냥 참았다. 그 책이 전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취지를 훼손할까 봐 그랬다.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노무현과 삼성의 특별한 관계’에 대하여 대단한 사실을 포착한 듯이 서술한 대목이 몇 군데 있었다.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삼성그룹에서 만들었다는 대목과 이학수 씨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점을 근거로 유착설을 제기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것이다. 그리고 김 변호사의 무책임한 글을 토대로 황 작가님은 더 멀리 나갔다. 아예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삼성에 포획이나 됐다는 식으로 규정해버렸다. 김 변호사의 증언은 검증할 필요도 없는 진실인가? 정확한 사실인가? 장담할 수 있는가?
참여정부라는 명칭에 관하여
먼저 참여정부라는 명칭이다. 근거자료부터 보자.
○.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은 오늘(2월10일) 노무현 정부의 명칭, 국정목표, 국정원리 관련 다음과 같이 발표. ▲ 대통령직 인수위는 노무현 당선자 주재 제5차 전체회의에서 노무현정부의 명칭과 국정목표, 국정원리를 확정했다. 정부 명칭은 참여정부이다. ▲ 국정목표는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이다. 국정원리는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이다. □ 성경륭 인수위원 부연설명 ▲ 참여정부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작년에 민주당 국민참여경선과 월드컵을 거치고 16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진정한 시민 주권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의미는 국민이 국정의 주인이고 국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기본정신을 천명하고 있다. 두 번째 의미는 국민의 폭넓은 참여를 통해 개혁과 통합, 나아가 선진국으로의 도약과 지속적 발전을 추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3년 2월 11일 출처 : http://knowhow.pa.go.kr/roh/briefing/view.asp?bid=27&pid=599&cp=2&num=164 |
황 작가님은 김 변호사의 책을 토대로 '참여정부'라는 명칭이 삼성그룹에서 만든 것처럼 확신을 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가치가 ‘참여’에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2001년 노무현이 부산시장에서 낙선한 이후로 만들어진 ‘노사모’라는 서포터즈 모임은 ‘참여’를 내포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서프라이즈와 같은 인터넷 매체와 정치 웹진은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한 토대이기도 했다. 구경꾼 신세를 면치 못했던 우리 국민들이 그야말로 봇물 터지듯이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던 시대였다. 그래서 ‘참여정부’라는 명칭은 굳이 삼성그룹이 말하지 않았어도 이미 인터넷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참여정부’라는 명칭은 그렇게 대단한 발명품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마치 삼성그룹이 정해준 명칭을 사용한 것처럼 표현했는데, 황 작가님은 이걸 아무런 의심 없이 ‘사실’로 포장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자신이 본 것만이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 확신에 찬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관련하여
이학수 부회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다. 그래서? 달랑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관계? 고등학교 동문은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한 관계는 어떤 유착관계나 거래관계를 뜻한다. 도대체 이학수와 어떤 유착관계였는지, 어떤 특별한 거래관계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해주길 바란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관점이다.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달라도, 친구도 될 수 있고, 인간적인 교분을 가질 수 있다. 이게 인간의 삶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무수히 많다. 적과도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어떻든 황 작가님이 경험담으로 시작했으니 나도 여기서 경험담을 풀어놓겠다. 신영복 교수님이 2006년 8월 25일 성공회대에서 정년으로 퇴임하실 때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했었다. 탤런트 권해효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콘서트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몇 명 왔는데, 거기에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포함됐다. 같은 부산상고 동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상에 올라가서 신 교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회고하기도 했다. 그러면 신영복 교수님도 삼성그룹에 포섭된, 어떤 특별한 관계라고 규정할 수 있나?
황 작가님 논리대로 나도 논리비약을 해보겠다. 삼성 브랜드의 제품을 쓰는 사람은 모조리 삼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비약이 황 작가님의 글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라는 이유로 어떤 특별한 관계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 특별한 관계 아닌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프레시안을 운영하는 분들도 어떤 형태로든 삼성과 특별한 관계일 것이고, 황 작가님 역시 어떤 형태로든 관계가 있을 것이다. 황 작가님이 삼성경제연구소 씽크탱크들의 강의를 자주 접했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이치상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황 작가님의 논리로 말하고 있다.
단순한 ‘주관적인 추측’을 ‘사실’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을 근거로 ‘주장’을 하는 것은 재판정에서 ‘범죄의 증거’를 토대로 ‘기소’를 하고, ‘변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뒷받침할 수 있는 아무런 사실도 없이 막연한 추측을 토대로 주장을 하고, 또 그것을 근거로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 사회의 논의 수준은 민주주의를 운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의 왜곡에 대하여
급기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조차 왜곡하기에 이른다. 이 발언조차도 삼성그룹과의 특별한 관계를 증명하는 듯이 주장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표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설명을 하겠다. 보통 권력이라고 하면 삼권분립에서 나오는 대통령과 행정부(행정권), 국회(입법권), 사법부(사법권)을 말한다. 이러한 삼권을 통틀어서 ‘국가권력’이라고 칭한다.
18세기 이후 근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본(시장)권력’이 성장하였고, 시민의 편에 서서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언론권력’이 성장했다. 그래서 오늘날 권력은 보통 ‘국가권력’, ‘시장권력’, ‘언론권력’, ‘시민권력’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국가권력이 가장 우위에 서 있었지만,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한 오늘날에 와서는 시장이 가장 막강한 권력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말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시민의 편에 서서 여론을 만들고, 국가권력을 견제했던 언론권력조차 시장권력의 지배 아래 놓여있음은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 광고가 거부되는 상황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장권력이 국가권력도 흔들고, 언론권력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 것이다.
‘있어야 하는 당위(Sollen)'와 ’있는 그대로의 현실(Sein)'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소망이나 자기고백이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담하게 진술한 것에 불과하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호소가 담겨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영역에서의 시민주권운동, 시장과 언론 영역에서의 소비자주권운동을 주창한 것이다. 국가권력 차원에서는 합법적인 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강화하고, 소비자보호원을 만들고,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한 것이다.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발언에 관하여
정말 이 발언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황 작가님이 쓰고자 하는 삼성그룹과의 특별한 관계에 전혀 관계도 없는 이야기를, 그것도 발언의 맥락은 거두절미한 그 당시 언론보도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근거로 주장을 펼쳐놓는 지성인의 자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다.
이 부분은 반박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무수하게 널려 있으니까. 당장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발언이 ‘정확한 발언’인지부터 확인해보기 바란다. 적어도 사실확인은 글 쓰는 사람의 몫이고 책임이다. ‘아’와 ‘어’는 다르다. 대충 같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진실을 추구하는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다.
반론을 마치며
솔직히 무릎에 힘이 쭉 빠진다. 우리나라의 담론이 이런 수준으로 간다면 어떻게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단순히 황 작가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지 않았다. 주장을 하는 데 있어서의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그저 신문에 났거나, 흘러다니는 이야기를 아무런 검증절차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무책임한 글쓰기 행태를 지적하기 위해서 반론글을 쓴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글을 책임감 없이, 그것도 종이신문으로 치면 1면 톱기사로 대문짝만 하게 게재한 프레시안에도 대단히 유감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주장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사실관계에 대한 검토는 있어야 한다. 글을 쓴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버리는 태도가 엿보인다. 문제가 생기면 ‘필자의 입장은 본지와 무관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책임에서 벗어나는 종이신문들의 태도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사건 수사 당시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다”며 대검 중수부 수사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지 사실 하나만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그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가 죽은 이후 한국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실’에 무감각한 검찰과 언론의 행태를 질타하던 그 목소리들, 과연 검찰과 언론의 행태가 우리들 자신과는 무관한 것일까? 그럼에도, 이렇게 반론을 쓰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무책임한 글쓰기에 작은 돌멩이라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기는 검찰과 언론이 생산한 온갖 허위의 사실이 춤췄던 박연차 사건으로 그렇게 허망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보낸 그 지지자들조차도 검찰과 언론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진보니 보수니를 떠나서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병폐라고 할 수 있다. 무책임한 글쓰기, 확실한 근거 없는 루머 퍼트리기, 주관적인 추측이나 생각을 사실로 둔갑하기, 사실이 확인되어도 자신의 편견을 수정하지 않기, 끝까지 우기기 등은 비단 검찰과 언론만의 행태는 아니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 전체가 이렇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못미'를 백만 번 외친들, 이런 행태가 고쳐지지 않는 한 누군가는 또 죽어나갈 것이다. 총체적인 책임감 결여, 자유의 남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사실’에 무감각한 글쓰기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지은 말이 있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진실은 ‘정확한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의 3당 합의에 의해 탄핵을 당하신 날이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프레시안은 수정본을 게재하지 않고 처음에 보낸 원고를 게재하여 다소 내용에 차이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펌질을 하실 것 같아서 직접 올립니다.
e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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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진실이라~~???? 거짖과 위선으로 남북경협을 하면 선인가?
표리부동한 모습으로 국민을 참여 시킨다고 하면 선이고 진실인가?
우리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그 추종세력들에게 보기좋게 속아넘어 갔습니다.
다시는 이런 시골동네 이장감도 안되는 인간들에게 ...그잘난 세치혀바닦에 놀아나지 맙시다.
우리는 진실을 알았을때는 너무 늦었습니다.
지금은 그들에 의해서 잘몾된 사회구조를 바로잡을때 입니다.이것이 진실을 추구하는것 입니다.
그리사시게. 현실을 목도하며 모르체, 아니면 진정 모르면서 사는 것도 행복일 것이요. 단지 그대가 누리는 지금의 민주화는 어떤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것은 알아두시게.
그러게 말이네. 그대가 누리는 민주화는? 자네는 독재시대에 거리에 나가서 최루가스 한번 맡아나 보시고 민주화 운운 하시는가? 혹시 지저분한 범죄를 저지르고 삼청교육대나 청송감호소 갇다오구서 민주화운동 했다고 목울대 세우는 그런 추잡한 놈은 아닌지 묻고싶네...허허허 이사람아 !그런놈들이 하두 많아서 그런다네..자고로 강물은 말없이 흐르는데,도랑물이 소리를 낸다네...자네가 어디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지는 모르나.남파간첩도 민주화공신이요.동의대 방화로 많은 경찰의 목숨을 앗아간 놈들도 민주화 공신이라고 보상을 해주는 그 개좆같은 김대중 노무현이가 아니던가!!잘 생각을 해보게...밥술이나 뜨고.
바보.. 정말 바보!!
반론은 정확한 근거 제시를 하며 반론을 해야지..뭐 이리 찌질대나...쯧.
무슨 정확한 근거를 제시 하라는 것인지...자네는 그리 믿고 사시게나...일가족이 돈이나 밝혀서 땅바닦에 헤딩을 하고서 떠난 그 개좆같은 노무현이 만세나 부르면서....그런다고 자네의 탓은 아니네 ...책가방끈을 길게 해주지 못한 자네의 에비에미의 잘못이지...안그런가?ㅋㅋㅋㅋ...
누구나 지 좆 꼴리는대로 사니까 .. 뭐라고 할 순 없지... 하지만 너희들이 신이라고 믿는 맹박과 그네는 이미 전쟁을 시작했고 너희들은 조만간에 줄초상 날 거니까 그날이나 기다리며 조용히 살아라.. 이번에는 김대중이 바보같은놈이 저지른 화해고 뭐고 없이 한놈이 아니라 몇놈이 땅바닥에 헤딩하고 죽게 할 것이다.. 너도 그럴지도 모르지..??
살아온 것이 그것 밖에 안되니, 계속 그리 사시게나...ㅎㅎㅎ 가방끈을 논하는 것을 보니 학벌에 자격지심이 있구먼..ㅎㅎㅎ
수준들 있는 분들이 사상이 다르니 서로 웬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진실을 논한다면 진실은 없겠지요.조건이 다르면 답도 다른데 어찌 진실을 논 할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전 선과 악으로 구분 합니다. 모두가 좋다하면 선이고 싫다하면 악입니다.비록 그 선이 독이라해도...그시대에는 어쩔수 없는 것이고 후에 역사가 그건 선이 아니라고 한다면 반성하고 되풀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지요.
어쨌던 이번 글에서 홍빨은 빠져있어 다행입니다.ㅋㅋㅋ
멍청한 녀석. 홍빨 운운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