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민족주의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다. 만일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올바른 것, 즉 보편타당한 것이라면 꼭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내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보편타당한 것이라는 자신이 없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문화교류에 있어서도 궁극적인 기준은 객관적인 옳고 그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보편성이란 곧 '강자의 것'이라는 냉소적인 주장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강대국이나 할 수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있는 약소 민족국가가 생존하는 유일한 방법은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뿐이다. 실제로 한민족은 이러한 원칙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생존과 번영을 기약해왔다. 우리는 예로부터 내려오면서 보편적인 사상과 철학,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는 불교를, 조선조에서는 유교를, 근세에 들어와서는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가장 보편적이고 수준 높은 문명을 적극 수용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상과 제도는 특정 민족과 사회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굴절되고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외래문명과 문자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살찌웠다는 역설 아닌역설이 성립된다. 불교와 유교는 '외래' 문명이지만 우리 특유의 모습으로 일구어 왔다. 팔만대장경과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한문, 즉 중국 글자로 되어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보물들이다. 그러면서도 한문이라는 국제어로 쓰여졌기에 보편성도 확보하고 있다. 민족문화는 결코 불변의 고정태가 아니다. 늘 바뀌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얘기는 결코 무국적의 보편주의자나 자유주의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우리의 문화', '우리 민족'의 번영과 미래를 기약해보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얘기들이다. 복거일씨의 말대로 '사람은 누구나 민족주의자'이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어떻게 우리에게 맞게 수용하는가이다. 복거일씨는 영어를 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새로운 사상과 체제를 보다 빠르고 올바르게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를 보다 잘하기 위해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역설이 있고 동시에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사상적 도전이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국어와 함께 우리의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 그것이 진정 한민족의 번영을 보장하는 방법이라면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과거에 한자를 도입하였듯이 영어를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도입한다면 그 결과 생겨나는 새로운 문화의 변형은 역시 한국의 것일 수밖에 없다. 한국어와 한글, 한자와의 지속적이고 균형잡힌 사용과 발전을 전제로 한 영어의 도입은 한국인의 인식의 지평을 다시 한번 세계적인 차원으로 넓혀주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로 표현된 한국문화는 그만큼 보편화될 수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전통, 고유의 사상과 미풍양속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볼 때 영어라는 국제어의 매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영어공용어 채택 여부는 철저하게 민족과 국가의 실익 차원에서 따져야 할 문제이지 반민족주의적인 발상으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