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풍경들을 단시조 속으로 불렀다.
먼 길 떠나려면 준비를 세세하게 해야 하는데 미적대다 떠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도 길을 떠나야 했고, 어설픈 행장으로 세상 속으로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세상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사람들이 시조를 더 많이 읽고 사랑할 수 있도록
쉼 없이 시조를 쓸 것이다.
- ‘시인의 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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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짐꾼/ 김영재
제 몸의 무게보다
큰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친구 할리는
아이가 다섯이다
하루에 일만 원 벌어
다섯 아이 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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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묻노니/ 김영재
생나무 한 토막을
그대가 쪼갰는가
쉽게 태울 수 없어
더 잘게 쪼갰는가
다 타고
재가 되어서
그대에게 묻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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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그네/ 김영재
서낭당에 소원 빌고 나도 한 잔 음복했다 신선이나 되
자고 솔바람에 취해 잤다 선잠 깨 눈을 떠보니 개살구꽃
그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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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뱃바닥/ 김영재
갈매기 뱃바닥이 하얗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음란하게 그녀의 배가 하얗겠지 마음먹었다
철 이른 봄 바다를 보며 배가 고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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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 어머니/ 김영재
당신이 떠나신 지 두 겨울이 옵니다
부스럭대는 낙엽 위에 한두 줄 사연 적어
언 땅을 딛고 서 있는 밑동 아래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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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고 있는 그리움/ 김영재
여름은 셀 수 없이
많은
햇살 묶음
가을은 한 사람의
마음이
마른 남자
겨울은
문밖에 서서
떨고 있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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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 우걸에게/ 김영재
친구가 택배로 보낸
잘 생긴 모과 네 알
한 알이 익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사십 년 햇살이 뭉쳐
향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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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후/ 김영재
너와 나 강이 되어 땅 깊이에서 만나리
흙 속에 살을 섞으며 잡초라도 가꾸리
흰 뼈로 뒹굴다 보면 바람처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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