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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11월 8일 토요정례법회 ○
안암 청년 정기총회
원기 94년을 이끌어 갈 안암교당 청년회 회장단 선출이 있었습니다.
1. 회장 후보
[후보추천]
이현도, 송종원, 이제선, 한경덕, 강성조, 정용환, 허석, 김호겸, 신시중, 서도안, 김혜향, 류현진,
[ 원기 94년 회장 당선]
이현도 회장님
2. 남자 여자 부회장 선출
[여자 부회장 후보]
류현진, 이제선, 강도인, 최성양, 이지현, 윤인덕, 김혜향, 이길원, 박순명
[남자 부회장 후보]
박성은, 정용환, 이태성, 서도안, 허석, 소대용, 강성조, 서제은, 김호겸
[ 원기 94년 부회장 당선 ]
최성양 부회장님 서도안 부회장님
[차기 회장단 감상담]
이현도 회장님
일단 열띤 지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까 회장 후보 중에서 나온 분들이 무게감이라는 말씀을 듣고 당선이유를 확실히 안 것 같습니다.
잘 했다면 잘하라는 것, 잘 못했다면 잘 하라는 뜻으로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뽑아주신 표들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결국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3선 때도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성양 부회장님
아무래도 경제가 안좋다보니까 행복 수익률 2배라니까 찍어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배드민턴 대회를 다녀왔는데 경기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 팀웍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안암교당 청년들이 행복한 사람들이 되도록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최선을 다하는 최성양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서도안 부회장님
최장 부회장, 한 순간도 내 마음에 차게 여러분들을 모신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많은 재물을 보시하고 많은 공덕을 행하는 것이 큰 공덕이 되지만,
한 순간이라도 진리를 느끼는 그 순간이 더 큰 공덕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런 공덕을 짓고 싶습니다.
대종경에서도 진리를 깨친 스승이나, 제자들이나, 받들고 실행하는 중생들이나 그 공덕은 같다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법을 행하면 그 공덕이 대종사님과 같다는 말씀을 듣고 무척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내 마음이 아닌 사은님의 마음으로, 내 뜻이 아닌 사은님의 뜻으로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축하공연
보리상자 연주 – 스티브 바라캇 이터니티
김혜향(피아노), 설인성(키보드), 유도솔(바이올린)
안암걸스 : 노바디 공연!
나인명, 고혜경, 김명선교우님
김제원 교무님 설법
오늘 총회였습니다. 여러분들 소중한 마음으로 한 표 한 표 모아져서 회장단을 선출된 것 같습니다.
내일 임용고시죠. 문혜은 교우 시험을 공부하는 와중에 최대한 단장도 해주시고, 부회장도 해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이고요.
우리 이현도 교우님도 회장 계속해주시고.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화요공부방에 기독교인이면서 안산에 살면서도 거의 무결석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입교했다. 입교 한 지가 만 4년 겨우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회장을 3년 했습니다.
서도안 교우님도 저에게 혼나면서도 신심 공심으로 4년째 부회장을 한다고 하니까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인물이 없나, 그렇게 한 사람을 계속 시켜야겠는가,
새로운 인물이 자꾸 나와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세상은 진보와 보수가 항상 번갈아 가며 있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돕니다.
사회주의 쪽으로 하니 사람들이 일을 안 하게 되는 부작용이 따른다.
미국도 공화당이 쭉 하다가 민주당이 됐죠.
한국도 민주당이 10년을 하다가 다시 보수당인 한나라당 쪽으로 정권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죠.
고이면 썪는 것이고 새로운 변화를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며, 우주의 진리도 그렇게 돌고 도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면 기독교인이 화요공부방을 근 1년간을 빠지지 않고 안산에서 온 것도 대단한 일이며,
입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장을 맡아서 3년동안 한 것도 대단한 일이다.
여러분들의 마음과 대조를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고, 자기가 거기에 관심이 있나 보지 욕심이 있나 보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욕심에 따른 말입니다.
나를 생가해 보자. 누가 맛있는 거 보면 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가 아침에 피곤한데 일어나기 쉽겠는가.
누가 자기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누가 자기의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신심 공심 서원이나 공부심이 있다면 개인적인 편안함과 자기만족 이기심을 넘어서서
대타적인 전체적인 함께 나누는 베푸는 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제가 대산종사님의 법문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3대 원칙에 대한 것입니다.
3대 원칙
1.지유지강(至柔至强)
첫 째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지유기강입니다.
무엇이냐면 정말로 강한 것이 무엇인가. 강자가 되고 싶거든 천하에 제일가는 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강도 유 속의 강이어야 합니다.
남자들이 다 세상의 강자라고 하지만 집에 가면 내무부장관에게 다 당하게 되어 있다.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세상을 다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공기가 이 세상을 다 안아버리는 것이고, 물이 세상의 지형도 다 고칩니다.
비가 내리면 물이 다 지형을 바꾸어버립니다.
그리고 가장 세상에 많이 죽이는 강한 힘이 있는 것은 물입니다.
불이 힘이 있는 것 같지만, 물난리가 나면 한꺼번에 수십만명도 죽여버립니다. 그것이 부드러운 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더 부드러운 것이 있죠. 그것은 바로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정말 형체도 없으면서도 잡으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지만 쇠도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우리의 참 마음이요 성자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전에 삼산종사께서 견성인가를 원불교에서 최초로 받으셨다.
초량교당에 있을 때 초량에 있는 사람들은 삼산이 부처님인 줄 알았다.
대종사님도 삼산이 법문을 하니 용이 여의보주를 물은 것 같다고 칭찬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하나 있었다. 대님을 매는데 삼산종사는 착 매고 앉아계시는데 대종사님은 무엇이 좀 어색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삼산은 교도들 앞에서는 부처님인데 대종사님 앞에 가면 꼬랑지를 내려버리시는 것이었다.
주인에게 꼬리를 흔들다가 내리는 것과 같았다.
이것은 똑 같은 마음이어도 마음의 국한, 법력의 차이에 의해서 삼산종사님은 항마 출가위의 심법이었던 것이다.
항마 출가위는 툭 튀어나온다.
동물들도 항마 출가위를 알아본다.
그 분이 가시면 고기들이 모이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대종사님이 가면 고기가 모이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인가. 진짜로 능한 것은 졸이다. 밝은 것은 어둠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아셔야 한다.
지금 세상에 오바마가 대단하지 않은가. 그 사람의 영향력과 생각, 추진할 일이 앞으로 세상을 좌지우지 할 것입니다.
지구의 반을 왔다갔다 할 정도로 권력이죠.
하지만 부시를 보자, 허망합니다. 그 쥐었던 권력 허망하지 않은가.
당장 우리나라 대통령 보세요. 맨 처음에 대통령이 나왔을 때는 뭐라고 하지만 벌써 외면하기도 하지 않는가.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진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현상의 이면까지도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 때 당시는 크게 보이지만 강하게 보이지만 정말로 강한 것은 바로 부드러운 것이다.
특히 우리가 마음을 부드럽게, 부드러운 덕을 써야 많은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대중이 너무 어리석으면 강을 쓸 수 있어요. 무력을 쓸 수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는 시대는 밝은 시대가 되어서 결국은 부드러운 것을 써야 한다.
대종사님의 신년 법문, 조금 부드러운 것이 정말, 똑똑하고 강한 체 하는 것은 바로 약자의 모습이다.
제가 예전에 예를 들은 적이 있다. 세계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 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적당히 못 사는 나라가 오히려 멋을 더 잘 내더라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세계에서 인도와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예쁘다, 눈을 못 뜰 정도로 예쁘더라, 그러나 실상을 들어가보면 정말 가난한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나 호주, 뉴질랜드, 미국을 갔더니 여자들이 꾸미고 다니지 않고 행사있을 때나 꾸미고 나온다.
아, 그렇구나.
우리가 진짜 강한 것은 강하지 않은 것이 강한 것이다.
강한 척 하는 것은 자기의 약함을 감추고자 하는 것, 나는 약자입니다 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강하기만 하다 하면 부러지죠. 태풍이 불었을 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빳빳한 나무는 톡. 부러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왕이면 좀 하심하고, 부드럽게 하고, 져주고, 손해보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대를 올려주는 것, 이것이 오히려 강자가 되는 것이다.
강을 놓아버렸을 때에 강이 되는 것이지, 강을 쫓아가면 오히려 약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칙이다.
원칙은 지름길이요, 반석이라고 하였다.
현대의 사람들 워낙 머리가 좋아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원칙은 둔하고 보수적인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러지 않다. 원칙을 잘 지켜야 한다.
약삭빠르기만 한 것은 그때는 좋을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펀드, 아마 반토막 났을 것입니다. 최소 50% 넘었어요.
미국의 주택을 통한 서브프라임, 이것은 결국 원칙을 무너뜨린 거죠.
돈이 100원밖에 없으면서 저 사람에게 50원, 다른 사람에게 50원 얻고 더 많은 사람에게 또 얻는 것이다.
일종의 사기인 것이다. 과욕이죠. 원칙을 어긴거죠.
그러니 이것이 자기만 넘어지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
서브프라임 했더니 리먼브라더스처럼 150년 된 회사가 무너졌다. 그
러나 그래도 직원들은 먹고 살지만,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니 정말 약자, 약소국에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약자 입장에서는요 결국 강자가 잘되어야 약자도 사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지도인이 되겠다 해도 강한 척 해서는 지도인이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드러워야 한다.
좀 줏대가 없는 것 같이, 바보같이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항상 부드럽게만 하라는 말도 아니다. 내유외강인 사람이 있고, 외유내강인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안은 허약하나 밖으로만 강한 사람이 있다.
전에 김민희라는 사람이 왔었다.
왜 귀걸이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다른 사람이 무시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달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참 너 약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안으로 강하고 밖으로 부드러워야지, 안으로 약하면서 밖으로면 강한 척 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내 안의 심지, 의지가 강해야지.
내가 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헌배 하라면 하고, 사경 하라면 한다.
원칙대로 멍청한 사람같이 그것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죠.
밖으로는 강한 것 같지만 안으로 약하면 한 경계에 정신적인 병까지 오는 것이다.
그러니 죽니 사니, 건들지 마세요 이런다.
그것이 무엇인가. 내 안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부드러운 공부, 능히 부드러울 자리에 부드럽고 강할 자리에 강해야 한다.
건강한 사람은 근육이 부드럽다.
고기를 보면 부드러운 고기가 맛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이다. 그것이 무서운 겁니다.
생각해 보라.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는데 그 부드러운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저는 지난 번에 명성산에 간 적이 있었다.
가다가 폭포 흐르는 자리가 있는데 그 큰 돌이 폭포의 자리에 탁 갈라져 있었다.
그 단단한 돌이, 물이 계속 흐르다 보니 물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패였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지속적으로 정성을 다해서 했더니 그것이 되더라 하는 것이다.
부드러운 것은 지속적인 정성과도 통해요.
우리의 몸에도 차지면 암이 생기는 것이다. 마음이 차지고 몸이 차지면 병이 생긴다.
몸이 딱딱하다면 병이 온다. 몸도 부드럽고 마음도 부드러워야 한다.
어린아이를 만나면 어린아이 같아야 하고 어른을 만나면 어른 같아야 한다.
나는 항상 이런 사람이라고 경직되어 있다면 그것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2. 지정지동(至靜至動)
이 정속에서 무궁무진한 조화가 나오는 것이다.
지혜도 정 속에서 나온다. 참으로, 침잠하고 침잠하고 침잠했더니 그 속에서 무궁무진한 조화와 지혜가 솟아난다.
결국 큰 일을 하는 사람을 철저한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대종사님이 깨쳤다고 바로 익산에서 총부 건설하고 교화하셨는가.
철저한 정 공부를 하셨다. 기도하셨고, 교재정비를 하셨으며 유효한 인물들을 만나고 훈련시켰다.
철저한 정 공부를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의두 성리 공부를 하셨다.
그래야 비로소 그 속에서 내가 천하를 쥘 수 있는 동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루를 놓고 보아도 동과 정이 어우러진다. 저녁에는 정이요 낮에는 동이다.
우리 몸도 동정이 골라맞아야 하는데, 내리달리기만 하면 우리 원만구족 지공무사한 몸이 피곤함을 준다.
아프게 해서 너 정해라, 하는 것이다.
이 정은 그냥 퍼지러진 정이 아니라, 철저한 대 포부와 경륜으로써의 정이다.
결국 서가모니 부처도 대종사님도 대 입정이 드셔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 활동을 하셨다.
큰 사업하는 사람들 중에서 기도를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세상에 큰 일 한 사람 중에서 정 공부를 안 하고 대통령 한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정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동에 쓰러져 버립니다.
우리가 헌배하고 요가하고 기도, 선을 하는 것은 철저한 정 공부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이 동할 줄은 안다. 동하면 배우기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시험도 합격한다.
그런데 그것이 동 공부에 바탕되지 않으니 병이 오고,
정 공부를 바탕하지 않으니 나중에 결국 그 올라갔던 지위가 낮아지며 생각이 깊지 못해 얕은 사람이 되고 경박한 사람이 된다.
우리가 죽은 영혼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깊은 영혼은 가벼워요.
그런데 생각이 얕은 영혼은 착이 있어서 무겁다. 무게라는 것이 양면성이 있어요.
영혼은 무게가 없을수록 착심이 없을수록 좋습니다.
우리가 큰 일을 하려거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도 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때는 청소년기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우리 대산종사님,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이미 20대에 영통을 다 하셨다.
대종사님 26세에 대각하셨고 우리 정산종사님도 젊을 때 그 에너지,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정에서 솟아난다.
그것이 바로 정 공부에 쓰신 것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를 저녁 내내 술퍼먹고 싸움하러 다니고 돌아다녀서는 안된다.
정 공부가 안돼 있으니 늙어서 처참하다. 사람이 가볍고 남의 원망생활을 한다.
지금 바쁘다고 핑계대로 정 공부 하지 않는 분들, 나중에 허망할 것입니다.
눈 앞에 급한 것, 보이는 것만 하고 다니고, 정말로 보이지 않은 이 마음의 정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쁜 사회이기 때문에 더 하셔야 한다.
낮에는 활동하시고 사은에 보은활동 하세요. 그러나 아침이나 저녁에는 철저하게 정 공부를 하셔야 한다.
3. 지무지유(至無至有)
세 번째는 지무지유다.
이것은 뭐냐면 천하를 콱- 부여잡고 싶거든 천하에 제일가는 무 공부를 하라고 하신 것이었다.
바로 그 대표적인 분이 서가모니 부처님이셨다.
당신은 가지고 있던 왕 자리. 모든 명예와 부를 던져버리고 철저하게 수행. 정 공부를 하셨고,
그래서 부드러워지셨고, 그 없는 자리를 알아서 오직 비우는 공부를 하셨다.
일생 사람을 키우셨고 어려운 사람에게 법문을 해 주셨다. 지혜가 어두운 사람에게 지혜를 밝혀주는 법문을 해 주셨다.
그런데 거꾸로 뒤집어 생가하면 보통 사람들은 철저하게 비우지를 못한다.
있는 것 있는 상을 다 내고, 자기 교만하다. 어떻게 하면 나를 드러내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랬더니 묘하죠. 나를 낮추고 비운 사람, 즉 내 것을 다 내놓은 사람을 사람들이 다 존경합니다.
대종사님의 일생을 한번 보겠는가.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은 일생동안 하신 일이 중생에게 당신 다 바친 것밖에 없었다.
정산종사님 돌아가셨을 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당신 딸도 다 전무출신 시켰다.
오직 대종사님께 진리에게 모든 것을 다 던졌다.
그랬더니 우리 정산종사님 만나고 나서 대종사님이 내가 할 일 다했다라는 말씀을 하셨겠는가.
만약에 정산종사가 자기 것을 챙겨먹는 사람이라면 대종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알아서 종법사 직위에 올라가고 세계 일을 다 하셨던 것이다.
정산종사님은 암에 걸리시고도 유일학림 다 다시 하시고 원광대학 세우시고, 원불교 선포 하시고 대종경 편찬까지 다 하셨다.
여러분들이 암이 걸렸다면? 어떻게 할까 미국가서 치료할까 나는 어떻게 하나 할 것이다.
그러나 정산종사님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우리 대산종사님도 의사가 포기했었고, 폐가 하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생을 다 내놓으신 것이다.
한때의 대통령은 끝나고 나면 욕을 먹는다.
그러나 성자들은 인류의 역사가 없어지지 않는한 언제가 명예와 존경과 사랑을 끝까지 다 받으실 것이다.
적당히 내 것 챙기면서는 안된다.
바로 여기에서도 차이가 난다. 보통 사람들은 공과 사의 문제에 있어서 깨닫지 못한 사람은 뭐라고 하든지간에 사가 우선이다.
단지 공이 우선이라 한다면 상을 받고 박수받으니 믿음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나라는 사가 바로 공이다, 공이 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알게 모르게 음덕을 쌓고 다 베풀고 나눈 사람은 그 음덕을 쌓은 사람은 음조가 있다.
덕을 쌓으면 알아서 사은의 보은이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음해를 했더니 확실한 음해가 있다.
우리가 보시하고 봉사하는 것이 남을 위해서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문에 여러분 아시죠.
요훈품에 불보살은 중생은. 이런 말씀이 있다.
중생은 영리하게 자기의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손해를 보고,
불보살은 어리석게도 남의 일을 해주는 거 같지만 결국 자기가 이익을 보나니라. 하셨다.
이 안에 인과의 원리 영생의 원리 즉 불생불멸의 원리가 들어가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다.
시간이 이생 뿐인가 더 추가되는가 아닌가. 그 원리에 바탕이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큰 일을 할 사람은 이것을 잘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 스스로 체크해 보십시오. 나는 어디에 치우쳐 있는가.
보면 앞의 것(지유,지정,지무)이 주요, 뒤의 것(지강,지동,지유)이 종이다.
네가 강하고 싶거든, 네가 천하의 일을 하고 싶거든, 네가 도움을 받고 싶거든
그러면 먼저 부드러워라, 정해라, 그리고 음덕을 베풀어라.
그런데 못 비울 것이다.
아까 임원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회장단 뽑혔으니 이제 단장 중앙 사업단 뽑힐 거 아니예요.
아마 여러분들이 아마 다 공과 사로 고민할 것이다.
나도 취업도 못했고, 결혼도 못하고, 경제적으로 자력도 없는데 누군가 하겠지 나는 제외라고 생각한다.
그런다면 그 사람은 내 것을 챙겨먹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묘하거든요. 텅 비었을 때 충만해져 버린다.
오죽 못났으면 도인이 돈 걱정하겠는가.
오죽 못났으면 도인이 남편감 신랑감 신부감 걱정하겠는가.
여러분들이 정말로 자기 지극한 유공부 정공부 무공부 한다면 여러분 무엇이든지 다 구해질 것이다.
남자,여자,돈도 명예도 다 구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원칙이요 진리이다.
그런데 거꾸로 적당히 강한 척하고 살고, 부드럽지 못하고
활동에 치우쳐서 정공부를 못하고, 보시할 줄 모르고 봉사할 줄을 모른다면 어떨 것 인가.
무공부를 하는 곳이 바로 여기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마음이다.
내 마음을 돌아봐야 한다.
법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시험을 보기 위해서 돈 벌기 위해서 이걸 뒷전으로 한다면 안된다.
결국은 잡을수록 도망가는 것이다. 돈을 쫓아갈수록 도망가버린다. 여자를 쫓아갈수록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내 한 친구 중에 목포에 있는 유명빌딩의 1/3은 그 사람이 설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인데 설계사무소에 진짜 예쁜 여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만 보면 좋아하고, 그 사람과 말 한번 더 해 보려고 하는데 그 사람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살면서 나에게 그렇게 했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여자가 오히려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둘이 사귀었던 것 아닌가.
그렇다고 아무나 그렇게 하더라도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황 따라서 강할 때, 동할 때, 자존심을 세울 때도 있다.
여기에서 유는, 내가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웠으면 기한을 잡았으면 반드시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되, 그 마음이 바로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어야 한다.
제가 윤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요가교실을 하는데 자, 시설 다 해주고 홍보해 주고, 너 교육하라고 1년 넘게 준비 시간 줬다.
만약에 요가교실 망하면 너 나가라고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인가.
조건이 안 맞아서 실패할 수 있다.
그런데 조건이 갖춰졌는데 실패했다면 확실하게 내 책임이다. 요가교실 망하면 다른 것도 망할 수 있다.
무너지는 것은 쉽게 갈 수 있다. 그러나 정도로 가고 진급으로 가고 점진적으로 큰일을 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가지 않는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데, 조금씩 떠서 스무 숟가락이 나오자고 하자.
스무 번 째 숟가락 먹었을 때 딱 배부른 생각이 드는가. 한 개, 두 개 세 개, 열 아홉 개까지의 숟가락 또한 다 필요한 것이다.
어떤 것은 철저한 정과 준비 속에서 동이 되는 것이다. 준비가 부족하면 동할 때 허덕인다.
작은 성공이 있고 그 다음이 또 성공이 있는 것이다. 작은 성공에 확신을 가진 사람이 비로소 큰 성공도 할 수 있다.
내가 독일에 가서 느낀 점이 있다.
독일 아주 훌륭한 나라이다.
매우 검소하고 사람들이 노후에 자신이 돈 번 것을 박물관으로 내놓는다.
그런데 정말로 독일이 대단한 것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 줄 아세요. 독일이란 나라 무서운 나라다.
정치인들이 갑자기 큰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갑자기 크죠.
점차로 커 나가는 것이다. 작은 단체에서 계속 뽑혀야만 큰 데에서 성공한다. 어쩌다가 작전 써서 성공한 적이 없다.
작은 성공이 큰 성공을 가져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렇다.
내가 단장해서 성공 못한 사람이 사회 성공 못한다.
마찬가지이다.
내 집안에서 효도하지 못한 사람이 국가에서 충성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무척 힘든 이 자리에서도 그 자리에서의 마음씨이다.
그 자리에서 정공부 유,무공부 한 것이 아닌가, 원불교로 말하면 삼학공부 했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금 나태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퍽 하고 잘 살 것인가.
대통령이 바뀌니 잘 되나요? 천만의 말씀이다.
여러분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된다.
대중의 마음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도 공부를 해야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 질문 있으시면 해 주시기 바란다.
젊을 때 적당히 이기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 쫓고, 강한 체 하면 안 된다는 거 보장합니다.
질문과 답변
Q. 박순명 교우님
교무님 말씀을 들으면 마치 한번 실패를 한 사람은 그 이후에도 영원히 실패를 경험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그것으로 실패를 했더라도 그 순간에 마음을 챙겨서 변화한다면 그 이후에는 변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설사 10월 요가가 실패했더라도 11월에는 새 마음으로 잘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교당에서 잘 안되었다가 사회에서 성공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 교당에 보은할 수도 있지 않은가.
A. 김제원 교무님
제가 말씀 드린 것은 한 부분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성공의 공부를 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면 작은 실수도 병가지상사로 내 성장통이며 거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실패를 했다면 아무리 환경이 변화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수의 분야일 뿐이다. 소수를 작게 보면 안 된다. 원칙은 지름길이요 반석이다.
아까 순명교우가 말한 것 이해 되시는가.
내가 말한 것은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실패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이 공부를 하면 작은 실패에 얼마든지 딛고 일어서고 변화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싹수가 어릴 때 있는 것이다. 그 때를 놓치면 안 된다.
물론 중간에 큰 변화가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원불교 만나기 전에는 싹수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원불교를 만나서 변화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불교를 만났어도 싹수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잘 될 수가 없다.
하기만 하면 마음만 있으면 그 누구도 마음만 있으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Q. 김현우 교우님
아까 가끔은 가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다고 하셨는데,
주위에서 성공한 군인에 대한 모습을 말씀해 주시면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사람이 성공한 경우가 많다 ”라고 하셨다.
가변적인 것과 자기가 올곧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상충된 면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김제원 교무님
좋은 질문입니다.
군인에 대해서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아는 사람이 육사생도 대표도 하고 하나회에도 있었다.
그런데 중령에서 진급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우리 반 친구도 육사수석으로 들어갔는데도 같이 중령이더라.
왜, 하나회에 들어가면 잘 될 줄 알았지. 그
런데 김영삼 씨가 대통령 되면서 하나회부터 먼저 죽었다. 하나회의 고질적인 권력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서였다.
우리 정산종사님은 6.25 전쟁 때 익산 총부에 빨치산이 들어왔고, 대종사님 당대에는 일본이 들어왔다.
당시에 총부 바로 옆에 파출소를 세워놓았었다. 그런데 대종사님은 그 일본 경찰을 감화시켰다.
정산종사님은 그 빨치산들이 오라고 했는데 간판을 안에 넣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핑계대면서 가지 않았다.
대종사님도 핑계대면서 안 가셨다.
주에만 치우쳐도 고집된 것이요, 종에만 치우쳐도 바보인 것이다.
주와 종의 조화를 잘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크게 보면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기 지금 우리 백경훈 교우가 왔는데, 그 몸은 유이죠, 그런데 쑥 들어가보면 결국 무이다.
몸뚱이는 결국 지수화풍이다. 알고 보면 무엇이 경훈이인가, 결국 무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책을 읽어야 하고 마음공부를 하고 자타력을 양성해야 한다.
때로는 자문자답을 하고 수많은 경험을 해 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갈라진다. 야비한 처신주의, 또는 고집쟁이들도 나온다. 아니면 보수가 또는 진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일원상 자리에는 고집도 있고,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
일원상자리에 다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그 공부이다.
그것은 이것이 이것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불교를 무유정법이라고 한다.
이것이라고 하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도 유가 아니고 무도 무가 아닌 것이다.
정이 정이 아니고 동이 동이 아닌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강할 자리에 강하고 부드러울 자리에 부드럽다.
그러나 원칙은 주는 이쪽(지유,지정,지무)이다.
우리가 정말로 상황 속에서 응용력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위 조항 중에서 여래위 조항이 있다.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에 절도가 맞는 것,
이것이 아까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내가 무난하고 게으른 사람은 부드러움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고 고집있는 사람은 강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동과 정이 능정능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여래위의 심법이다.
능할 자리에는 능하고, 졸할 자리에는 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계속 능하다, 계속 하심한 척 한다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공부를 해 가다 보면, 그러한 가치관 교법관을 가지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종사님 교법에 체를 잡고 나가자.
그것이 가장 혁신적이고 주관적이고 성공된 길인 것이다.
내 능력 내 판단이 그러한 성자적 판단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가 공부해야 한다.
그러려면 정말로 바빠야 한다. 괜히 싸돌아 다닐 시간이 없다.
아까 춤추어서 춤출 자리엔 하지만, 아침에는 선해야 한다. 춤만 추고 아침에는 잠들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현도 도안 혜은 회장단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현도 도안 성양 회장단님 잘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