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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리~환산~백골산~백골산성~흥진마을
현재는 과거가 쌓아올린 유물에 둘러싸여 있다.그리고 앞 길이 불투명한 미래를
향하여 떠나려는 베이스 캠프가 되기도 한다.과거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들쑤시며
투덜대는가하면 돼지꿈이나 용꿈이라도 꾼 듯이 영롱하고 아련한 추억을
더듬거리며 입맛을 다신다.추억은 아슴푸레하지만 갖가지 이모티콘처럼 영상화되어
뇌리의 안전가옥에서 문을 열어주기만을 고대한다.
시간은 금이라 했다.모든 이가 다 그런 줄 알았다.그러나 시간은 시간을 먹고
거침없이 유령처럼 자라나고 있다.돌 부스러기에서 쇳조각이나 비철금속으로 가치를
높여나가다가 시나브로 화려한 보석으로 옮기는 듯하더니 불시에 최고의 가치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로 변화를 서두르는가 하면 어느 틈엔가 지상에서 슬며시 꼬리를
감추며 연기처럼 사라진다.타의에 불현 듯 왔다가 슬그머니 시간의 무게를 감당치
못하고 솔로몬의 탄식처럼 삶을 허망하게 마감하는 것이다.시간은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우주 공간의 덫이다.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그러한 거대한 덫을 우회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영악한 생명체 중의 하나인 인간들이 심혈을 기울여 짜 낸 묘안이
종교다.조물주에 대한 무한 신뢰를 퍼부으며 시간의 무게를 줄여볼까 애면글면한다.
미세한 티끌에서 골리앗의 거대한 덩치로 다가오는 험상궂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서.그러나 그런 간절한 기원도 그것의 무게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다.솔로몬이 전도서에서 푸념했듯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시간의 가치가 최대치에 오를 즈음이면 모든 생명체
들은 삶을 내려 놓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세상으로 태어나기전의 태아에서 생을 마감한 안타까운 사연이나, 969년의 나이
로 이승을 떠난 므두셀라나 삼천갑자 동방삭이나 아쉽기는 다를 바가 없으리라.
므두셀라나 동방삭은 고귀한 시간을 수없이 탕진하고 떠났으니 다소 헤픈 삶을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반면 어린 생명이 생을 마감한 것은 얼마 안되는 시간만을
소비하고 떠났으니 경제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면 비정하고 야박하다고 탓하지는
않을까. 아! 가을은 이렇게 시간의 차가움을 실감하는 계절이다.어느 새 겨울이 곁에
다가와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만 가을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뒹구는 마른 잎사귀만큼
이나 머물곳을 잊은채 생각은 보헤미안처럼 천지간을 헤메려 한다.
- 환산(環山:고리산)은 옥천군 군북면을 주소지로 하고 있는 묏덩이다.
한글표기로도 아름다운 고리산을 굳이 해석이 필요한 환산으로 대부분의 책자에
표기하고 있는 것이 다소 못마땅하지만 줏대없는 나도 여기서는 그런 표기를
따를 참이다. 경부선 무궁화 열차의 도움으로 옥천역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반 쯤
이 되고, 역 앞 길건너 왼쪽으로 백여 미터 떨어진 버스정거장에서 들머리인
군북면 행 버스를 타고 군북면 소재지인 이백리 버스승강장에 닿은 시간은
9시 50분 쯤이다.
이백리 버스승강장에 내려서면 곧바로 맞은 편 북쪽으로 높다랗게 올려다 보이는
묏덩이가 보이는데 그 물건이 환산의 몸매의 일부가 된다.
경부선 철길과 경부고속국도를 차례로 통과하는 지하차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부분에 도로공사가 한창 진행중에 있다.공사현장을 조심스레 빠져나오면
면 소재지인 이백리와 환평리를 잇는 도로를 만난다.환평리 쪽으로 도로를 따르면
이내 도로 좌측으로 들머리가 입산객을 맞이한다.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며
기념석물를 비롯한 빗돌이 숲길 입구 왼편에 가지런하다.바로 곁으로 장대하게
닦여있는 경부고속국도를 오가는 차량들이 웅웅거리며 바람을 가른다.
가파른 산길이 초반부터 여섯노마들을(청아,회산,달거,신바람,내명,나) 몰아세운다.
입산객들의 잦은 입산으로 산길은 번듯하지만 떨어진 낙엽들이 겸손한 이동을
주문한다.소슬한 바람이 일렁인다.옷깃을 파고드는 서늘함이 하늘 빛을 닮아간다.
다들 배낭을 어깨에 메고 수긋한 동작으로 휘적거리며 된비알을 오르는 여섯 노마들.
귀머거리를 가장하며 주인호령을 흘려듣지만 그래도 일 잘하는 얼룩배기 황소의
등짝처럼 믿음직스럽게 어깨를 가볍게 기웃거리며 비탈길을 쉼없이 오른다.웅웅거리는
차량들의 소란스러움을 귓전으로 흘리며 주능선에 올라서니 산행안내팻말이 기다린다.
스텐레스 말뚝에는 이백성이라고 씌여있으며,좀 더 발걸음을 옮기면 산불초소가 지키는
봉우리에 오르게 되는데,긴 의자도 두 개가 놓여있으며 작으마한 돌무더기 서너 개가
주변에 보이고 옥녀봉의 위치가 0.6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산행을 안내한다.엷은 안개로 드리운 대청호가 처음으로 조망이 된다.
산불초소 봉을 내려서면 봉우리 하나를 오르게 되는데 묏부리 주변은
거뭇하고 퇴색한 석축의 일부가 묏부리를 이루고 있다.해발 525m의 옥녀봉이다.
"환산성 제3보루"라고 새겨진 빗돌이 보이는데 봉수대 노릇도 겸하고 있는 봉우리인
셈이다.환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전해지며,이 곳 봉수대의 위치는 옥천군
군북면 증약리 고리산 523m봉이고,건립연대는 조선시대 초기라고 밝혀놓고 있다.
외벽은 봉돌로 쌓았고 중앙지름이 9m인 긴사다리꼴 타원형으로 둘레가 87m이며
일부 지상 석축지와 봉돌 기와편이 남아있다고 옥천문화원과 옥천향토사 연구회가
밝혀놓고 있다.오늘은 11월 11일,빼빼로 데이라고,마침 11시 무렵이다.청아대장이
주유(?)를 해야한다고 다들 바위봉 언저리에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날이 날인만큼
달거형이 빼빼로 과자를 배낭에서 꺼내든다.커피와 곁들이면 맛이 배가가 된다.
따뜻한 커피에 목을 축이고 길을 재촉한다.하늘은 더없는 쪽빛이고 햇살은 금빛을
닮아간다.
우측으로 추소리 안양골로 하산하는 갈림길을 지나서 환산을 가리키는 이정표의
지시를 따르면 머지않아 참나무들이 지키고 있는 봉우리에 이른다.환산성 제4보루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대청호가 그림같으며 그림같은 대청호를 바라보는 묏부리 턱밑
으로 오래 묵은 묘 1기가 시치미를 떼고 누워있다.
묏부리 한구석에는 철모르는 진달래 꽃이 가을을 시기하려는지 연분홍색 꽃잎을 피우고
있다.감노마을과 황골말을 이쪽 저쪽으로 오르고 내릴 수 있는 사거리 갈림길을 지나면
끌밋한 노송들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거드름을 피울듯한 묏부리가 기다린다.
스텐레스 재질로 만든 용도가 불투명한 식탁(?) 2개가 노송 그늘에 놓여있는
이곳은 해발 566m의 삼각봉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묏부리다.낙엽밟는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산길을 따르면 돌로 쌓아 만든 참호도 만나게 되고 그 곳을 조금 벗어나면
비탈길의 비알을 올려치게 되며 가뿐 숨을 고를 무렵이면 널찍한 핼기장과 마른 덤불과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의 공터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환산의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해발 579.3m.이곳에서 우측으로 바라보면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보인다.판도라 상자
속이 궁금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턱대고 열어보고 싶은 궁금증이 여섯노마들을
그곳으로 안내한다.노송 두어 그루와 커다란 참나무가 덩그런이 묏부리를 지키고 있는
환산성 제6보루를 안고 있는 무명봉이다.
이 무명봉을 뒤로해서 이어지는 능선은 갈마당5코스로 이평리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더 이상 능선을 이어가는 것은 오늘 일정과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노마들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서 서둘러 환산 묏부리로 되돌아 선다.
가을은 역시 커피가 제격이다. 찬 막걸리를 저만치 밀어내고 내 입과 코를 유혹한다.
산상오찬을 마친 일행은 비야리와 항곡리를 가리키는 산행안내팻말의 지시대로
좌측의 비탈길로 들어선다.수북하게 산길을 뒤덮고 있는 낙엽들이 제법 미끄럽다.
눈덮힌 산길이나 다름없다.급경사의 내리막 산길위에 수북하게 내려앉은 낙엽들이
엉덩방아를 기다리고 나자빠지기를 부추긴다.낭떠러지나 다름없는 급경사의 내리막은
된비알을 올려치는 것이 오히려 수월하지 싶다.청아형의 방아타령이 두어 번 산길에
울려 퍼진다.끝날 것 같지않은 급경사 내리막을 걷어차이듯이 빠져나오면 광활한
공사장터로 늙은 산꾼들을 매몰차게 내몬다.대단위 택지조성현장인 것이다.
커다란 그물막을 설치해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처럼생긴 대형 굴삭기 두어 대가
꼼지락 꼼지락 땅을 고르고 있다.인적은 간데없고 꼼지락거리는 굴삭기만이 새된
목청을 산자락에 퍼뜨린다.곱게 핀 진분홍 대나물 꽃만이 반갑게 산객을 반긴다.
환산을 벗어났으니 이제부터는 다음 행선지인 백골산을 오르는 산행이 기다린다.
백골산으로 쉽게 오르려면 우선 방아재까지 이동을 해야 수월하지 싶다.공사장을
뒤로하면 이내 차도가 나오는데,이 차도는 군북면 증약리에서 대청호를 끼고있는
항곡리와 대정리를 잇는 차도다.차도를 따라 우측으로 10여 분 이동을 하면 작은
언덕을 만나는데 언덕 못미쳐 왼쪽으로 보이는 산줄기가 백골산 주능선이다.
차도 변으로 전원주택들이 산줄기를 기대고 자리를 잡았다.모양으로 판단하면 주택
뒤쪽으로 숲으로 드는 산길이 있지 싶지만 어설프게 들락거리다간 공연히 집지키는
개들만 고생시키지 싶다. 후일담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그 주변에서 들머리를
찾아보아야 했다.여섯 노마들은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왼쪽의 골짜기를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듯이 희미한 족적을 더듬더듬거리며 두꺼비 걸음 옮기듯 비탈지고 고약스러운
산길을 애면글면 이어나간다.과히 높은 산등성이가 아닌 탓에 인내심만은 자극하지
않은 채 주능선에 오르니 번듯한 산길이 다소 비웃듯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거리 갈랫길에는 산행안내팻말도 버젖하다.
우측으로 나 있는 길은 내탑동이라고 쓰여있으며 직진 방향으로는 독골이라고
적고 있다.우리 일행이 가야할 길은 백골산성을 가리키는 좌측의 산길을 따르면
된다.가랑잎이 수북하게 뒤덮힌 산길을 따르면 삼거리 갈랫길이 두어 곳 나오는데,
하나는 독골방향이며 또 한 곳은 청주절골을 가리킨다.모두 우측의 비탈길이다.
비교적 밋밋한 능선이 이어지더니 모처럼 내리막 산길이 시작되고 건너 편에
거뭇하게 모습을 드러낸 묏덩이가 위엄을 보인다.백골산의 주봉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여전하게 산길은 가랑잎과 솔갈비가 수북하게 뒤덮혀 있는 산길이다.
백골산의 정상이려니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오른 묏부리는 정상이 아니다.
그곳에서 0.2km라고 표시하고 있는 안내팻말이 재차 다그친다.그렇다면 손을
뻗으면 닿을 저만치 거리일텐데 그닥 솟구쳐 있는 묏부리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밋밋하게 구불거리는 능선을 잇다보면 슬그머니 불툭한 묏부리에
백골산성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해발 346m의 백골산(白骨山) 정상이다.
이름으로 추측되긴 위엄이나 엄숙이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모양새인데 잡목으로
대청호의 풍모를 조망하기에는 부족함이 여실하고 밋밋한 묏부리에는 주봉으로써
권위가 서질 않는 모습이다.어쨋든 백골의 이름을 달았다.산성이라고 여길만한
물증은 찾을 길이 없다.단지 산성안내문만이 덩그런하다.그 내용을 살펴보면,
백골산성은 기념물 제22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위치는 대전광역시 동구 신하동
산 13번지이며,이 산성은 해발 340m의 백골산 정상부에 테뫼식으로 쌓은 석축산
성이다.
성벽은 산 정상부의 지형에 따라 축조되었고,성 둘레는 약 400m이다.성벽은 현재 가파른
지형에 축조된 관게로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태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형학적으로 볼 때 성의 서쪽으로는 백제의 전략 거점인 계족산성이,동쪽으로는 신라의
유명한 관산성을 끼고 있으며,현재 150만 대전시민의 식수인 대청호가 자리 잡고 있지만,
성이 축조될 당시만 해도 신라를 마주보고 금강이 흐르고 있어 육로와 수로를 지키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그리고 덧붙여 테뫼식 산성이란,
테두리의 "터"뫼, 산을 뜻하는 "뫼"를 합쳐서 산 봉우리들을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것으로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하여 7~8부 능선을 거의 수평으로 하여 둘러 싼 형태를 말한다.
잠시 백골산의 묏부리에서 간식타임을 가져본다.배낭에 남아있는 먹거리를 모두 해결하는
배낭떨이 시간을 갖는거다.그러나 이런 즐거운 시간에 파리크기의 땡벌에게 아랫입술을
쏘이는 횡액을 순식간에 당하고 만다.금세 눈물이 핑돌고 통증이 솟는다.
사과 한쪽을 베어물다가 당한 땡벌의 기습인거다.밀원(蜜源)이 터무니 없이 부족한 만추에
달콤한 밀원을 찾아헤메 다니던 땡벌이 사과를 베어문 이 사람의 입술에 묻어있는 밀원을
발견하고 노리면서 벌어진 사단이다.사실 지금 산행일기를 쓰면서 땡벌에 쏘인 아래입술의
상처부위를 혀로 쓰다듬어 보면 둥그렇게 붓기가 아직도 빠지지 않고 있다.
브래드 피트를 유혹한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을 좇으려다 부작용이라도 났는가, 이 사람의
입술은 두툼한 것은 안젤리나의 그것을 닮았는데 징그럽고 흉칙스럽게 부풀었다는 것이
돌팔이 성형의의 섣부른 의술후유증이나 다름없는 꼴이 되었다.
땡벌에 쏘인 아랫입술을 혀로 쓰다듬으며 백골의 묏부리를 뒤로한다.
묏부리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가 꾀꼬리봉은 0.5m,강살봉은 0.9km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지척 아닌가.솔갈비가 수북하게 연갈색의 카펫을 깔아놓은 듯 이어지는 산길,
해발 324m의 꾀꼬리봉은 소나무 숲에 뒤덮혀 있으며 봉우리라고는 표시하고 있지만
밋밋한 능선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다.해발 335m의 강살봉도 이런 관점에서는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모습이다.이름붙이기 좋아하는 작명가(?)의 헤픈 행위는 아닐런지.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신하동 흥진마을 앞으로 나 있는 차도로 내려선다.
버스승강장에서 대전역으로 향하는 버스편을 이용하려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겠다.
그렇다면 비교적 교통이 원할한 4번 국도까지 이동을 하는 편이 옳은 판단이 될 터,
지방도 육교와 경부고속국도의 육교 밑을 지나면 옥천과 대전을 잇는 4번 국도가 나온다.
바로 세천 삼거리,삼거리 우측으로 백여 미터 전방에 버스승강장이 반갑게 여섯노마들을
기다린다(16시). (2014년 11월11일)
첫댓글 땡벌에 쏘인 통증을 핧으며 기록을 남기려는 노고 덕에...
지나온 낙엽쌓인 산길을 더듬어 봅니다.
닥쳐올 쌀쌀한 날씨로 인해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계절!!
뜨거운 열정으로 내맘산행 이어가자구여.
내맘 네맘이 어울리면 우리맘,내맘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