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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간과 동물의 상생과 공생에 대한 비유적 성찰
최미혜의 장편 동화『고양이 탐정 레오』
김문홍_동화작가
추리 형식을 통한 재미와 성찰
최미혜는 200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동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비교적 과작의 작가였지만, 최근 5, 6년 사이에 비로소 단편 동화집을 비롯한 장편 동화 대여섯 권을 연거푸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처럼 과작이었던 것은 창작에 대한 개인적인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려 온 인생 동반자에 대한 간호 때문이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최미혜의 『붉은 방』을 비롯한 일련의 몇몇 작품들은 근현대사의 트라우마 등 예리한 현실 인식으로, 동화의 일차적 독자인 어린이에게는 그 수용의 어려움이라는 부담감이 다소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간한 『고양이 탐정 레오』(최미혜, 93쪽, 고래책빵, 2024.10)는 그 주제와 소재에 있어 가독성이 높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사적 추동력이 되는 고양이 탐정 레오가 작품의 배경인 인간의 마을인 ‘황색 시’와 ‘초록 숲’을 오가며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작성한 사건 파일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추리 형식이라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형식뿐만이 아니라 초록 숲 동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는 내용 역시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거기 덧붙여 문장의 서술 형식 또한 ‘〜다’나, ‘〜습니다’ 체의 동화문학의 정통적 기술 방식보다는 ‘〜어요’체의 부드럽고 친근한 서술 방식으로, 마치 어떤 이야기꾼이 독자의 곁에서 서사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가독성에 큰 부담을 덜고 있다. 소재 또한 어린이 독자가 좋아하는 숲속 동물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동화가 갖추어야 할 내용과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가독성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 작품은 그저 서사의 추이를 가독성의 주요 요소로 상정하고 있는 기존의 대중성에만 따르는 것이 아닌, 동물과 인간은 서로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교훈적인 주제로서의 성찰에도 함께 비중을 두고 있다. 즉, 이야기 문학으로서의 동화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요소인 재미로서의 ‘쾌락적 기능’과 성찰로서의 ‘교훈적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어, 동화문학의 일반적 목표에 충실하고 있다.
이 작품은 사사적 구성이 좀 특이하다. 맨 앞의 프롤로그에 해당 되는 곳이 ‘다리 하나 건너면’이라는 시적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는 사건의 발단 부분으로 황색 시와 초록 숲마을이 다리 하나를 사이로 나누어져 있고, 이 작품의 인물인 오소리 ‘왕진진’의 근황과 걱정, 그리고 초록 숲 마을 촌장의 집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 이를 알게 된 고양이 탐정 레오가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장면이 소개 되어 있다. 그다음부터는 고양이 탐정 레오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순서대로 1장, 2장 대신에 ‘사건 파일 01’부터 ‘사건 파일 15’의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에필로그 ‘또 다른 다리를 지나’ 역시 고양이 탐정 레오의 과거, 현재, 미래가 역시 시적 산문 형태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황색 시의 이중성과 초록 숲마을의 자연 친화성
이 작품은 의인 동화이다. 의인 동화는 동물이나 식물을 비롯한 자연계의 여러 사물에 인격을 부여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작품이다. 의인 동화는 동식물을 비롯한 사물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을 빗대어 표현하는 동화의 한 형태이다.
이 작품 속의 황색 시는 다리 건너 이웃에 있는 초록 숲마을과 공생하는 관계로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자연을 침범하고 해치는 위험한 이중성의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도 선악으로 구분되어 이기심과 이타심이 있는 존재들로 구성이 되어 살아가고 있지만, 이 작품 속의 황색 시도 역시 인간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생의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자연을 침범하고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이중성을 가진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①
“저건 욕설이야. 욕이라고, 욕! 인간들이 많이 쓰는 욕. 욕설이 이곳저곳 날아다니는 그림이야. 밤마다 황색 시에 내려갔어. 인간들이 내뱉은 욕설을 통에 모았어. 커피 가게에서, 식당에서, 재래시장에서, 백화점에서. 그중 식당에서 수집한 욕이 최고였어. 독해야 하거든. 비료는 독해야 잡초를 죽일 수 있어. 욕설만큼 독한 게 어디 있어? 사람들 입안에는 뱀 다섯 마리가 똬리 틀고 있잖아! 상대방 뒤꿈치를 물곤 숨어버리지. 잡초를 죽이려면 남을 미워하는 말이 직방이야. 밤새 돌아다니며 황색시에 떠도는 욕설과 폭력적인 말을 통에 채웠어. 욕설과 조롱에 상처 입은 인간을 생각하며 독한 비료를 만든 거야. 매일매일 끈덕지게 살아나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그 방법밖에 없었어, 나만의 특별한 재료. 그걸...소냐가 봤나 봐.”
- 최미혜, 『고양이 탐정 레오』, 「비료의 비밀」, 38쪽.
②
이 말에 소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었어요. 오소리 왕서방은 그날부터 자연산 천연비료 생산에 들어갔어요. 초록숲에서 제일 부지런한 왕서방은 은행잎과 잘 익은 은행을 섞어 큰 솥에다 삶아 엑기스를 뽑아냈어요. 또 황색시에 내려가 커피 찌꺼기를 구해 왔어요. 이걸 말려서 흙에 뿌리면 땅이 기름지게 변한다고 벅수가 일러주었거든요. 비료를 만들면서 그것이 발효될 때는 음악을 들려주었어요. 말릴 때는 끊임없는 칭찬을 그들에게 해주었어요. 소냐는 열매를 키워낸 은행나무 주변을 돌며 기도를 올렸어요. 비료를 만들 때마다 아빠 옆에 서서 뭔가를 빌었어요. 왕서방은 그런 소냐가 기특했어요. 조용히 고개 숙이는 모습만 봐도 소냐가 뭘 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어요, - 최미혜, 위의 책, 위의 사건 파일, 39-40쪽.
위의 장면 ①, ②는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 딸 소냐를 늘 안쓰러워하고 있는 왕서방이 자신이 비료 공장을 만든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딸 소냐가 그린 그림을 살펴보고 아버지 왕서방은 깜짝 놀란다. 여러 가지 글자들이 뒤섞인 이상야릇한 그림을 보고 한탄하여 그는 자신이 비료 공장을 만들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밤마다 황색시에 내려가서 인간들의 욕설과 폭력적인 말을 통에 채워, 욕설과 조롱에 상처받은 인간을 생각하며 독한 비료를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인용문 ①은 독한 비료를 만들기 위해 욕설과 폭력적인 말로 상처받은 인간을 생각하며 독한 비료를 만들었다고 왕서방이 털어놓는 대목이다. 비료는 식물이 자라는 것을 해치는 벌레를 죽이기 위해서는 독한 비료가 필요한데, 그 원료가 바로 다른 인간들을 상처 나게 하는 인간의 욕설이나 말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고 상처 입히는 그런 말과 욕설들을 원료로 사용하여 독한 비료를 만든다는, 작가의 기발하고 도전적인 상상력이 아주 독창적으로 다가 온다.
인용문 ②는 왕서방의 딸인 소냐의 이상한 그림은 아버지 왕서방의 나쁜 마음에 대한 일종의 항의의 표시라고 서술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왕서방은 독한 비료를 만들기 위해 인간들의 욕설과 말을 원료로 이용한 자신의 나쁜 의도를 반성하고, 독한 비료라는 가짜보다는 진짜 비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여기에는 좋은 비료를 만드는 과정이 아주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은행잎과 잘 익은 은행, 황색시에 가져온 커피 찌꺼기, 발효 과정에서 첨가되는 음악과 끊임없는 칭찬을 버무려 자연산 천연비료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갖가지 재료 속에 아름다운 음악과 끊임없는 칭찬의 말을 첨가물로 사용한다는 부분에서, 우리는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가 있는데, 좋은 천연비료에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소리와 칭찬이라는 인간의 말이 필수적인 첨가물이 된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따스한 온기로서의 휴머니즘을 엿볼 수가 있다. 이것은 결국 문학(칭찬)과 예술(음악)이 결국은 온기와 따스한 마음을 만든다는 작가의 신념과 철학을 읽을 수 있다.
③
“그건 드러난 사실이지. 우리가 말하지 못한 게 있어. 불이 왜 났게? 인간들을 피해 도망 다니다 일어난 일이잖아. 동물들 살 곳을 빼앗아 버린 인간들이 진짜 범인 아닌가”
까막순이 이 말을 얼른 받아 따따따 쏘아붙였어요.
”그래요. 우리가 왜 여기 와 살게 됐나요? 그들이 나무를 다 베어 버리고 집을 짓는 바람에 도망친 거죠. 항상 쫓기며 그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고통스럽게 살다 죽기 싫어 여기까지 온 거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고 산 열매를 따지 않는다면 동물도 비참하게 살진 않을 거예요. 그나마 먹던 음식쓰레기조차 통에 모으니 새들은 굶어 죽기 딱 좋아요. 그래서 배고픈 개나 고양이는 황색 시를 떠도는 거죠.“ -최미혜, 앞의 책, 누구의 잘못일까?, 77쪽.
위 ③의 인용문은 초록숲 마을에 화재가 난 것은 동물들이 부주의한 탓도 있지만, 그 근원적인 원인은 황색 시에 사는 인간들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들이 동물들이 사는 터전을 빼앗는 바람에 터전을 잃은 동물들이, 살아갈 방도를 찾아다니다 결국은 부주의로 화재를 내게 된 것이다. 인간이 그들의 터전인 숲 마을의 나무들을 베어 버리고, 터전을 빼앗긴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다 이번과 같은 화재 사고를 내게 된 것이다.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인간의 마을인 황색 시로 흘러 들어가 먹이를 찾았지만, 인간들은 음식쓰레기조차 음식물 봉투에 넣어 동물들의 접근조차 막아 버리는 사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가장 근원적인 폐해는 인간들이 동물들의 터전을 침범하고 그들의 먹이까지 죄다 수거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초록 숲 마을로 상징되는 자연은 인간에게 좋은 공기와 고요한 공간, 그리고 홍수까지 막아주는 역할로 인간의 삶을 더욱더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데에도, 인간들은 그들에게 보상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에 더 바쁘다. 서로가 함께 어우러져 살지 못하는 관계의 파탄을, 작가는 초록 숲 마을의 위기를 통해 상징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최미혜의 『고양이 탐정』은 초록 숲 마을에 일어난 화재 사건을 추리하고 조사하는 고양이 탐정 레오를 통해, 인간의 세계인 ‘황색시’와 자연인 ‘초록숲 마을’의 상징적 은유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파탄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레오의 사건 파일을 통해 밝히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읽는 어린이 독자에게 둘 사이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과제를 부여하기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이 설득력이 있는점은 그러한 주제를 작품 속에 숨겨 놓고, 어린이 독자가 작품을 흥미롭게 읽으며 그들 스스로 이러한 과제를 발견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재미를 통해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며 스스로 그 방법을 찾게 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문학 치유를 통해 의지를 키우게 하다
문학은 병 들고 비뚤어진 마음을 치유하는가 하면 신체의 기능까지 회복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문학 치유의 기능이다.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독서 치료’의 한 분야인 문학 치유도 이 작품에서는 간단하게 한 두 장면을 설정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황색시와 초록숲 마을로 은유 되고 있는 인간과 자연의 비뚤어진 관계 회복과 소통을 여는 하나의 방법으로 예시되고 있다. 마음이 치유되어야 올바른 정신 기능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 속에 이러한 장면을 설정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 회복의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오소리 왕서방이 말이 어눌하고 서툰 그의 딸 소냐의 마음과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 시 수업에 참여시키는 장면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숲마을의 촌장인 원숭이 베베의 초가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음과 같은 시 수업 대목이 바로 그렇다.
①
”소냐는 어뗘? 말은 좀 하는가?“
왕서방은 속을 들키지 않으려고 불퉁하게 말했어요.
”말하고 싶으면 언젠가 하겠지.“
”베베 초가집에 데려가. 내 딸 호야도 거기 다니더니 이제 제법 똘망해졌당게. 시 수업을 받고부터 고춧대를 잡고도 혼자 시부렁거린당께. 어여 데리고 가 봐.“
”시 수업?“
”그랴. 수업을 받다 보면 소냐도 말하고 싶지 않겄어?“
”음, 좋은 생각이군.“
왕서방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요.
- 최미혜, 앞의 책, 왕서방의 고민, 21쪽.
②
원숭이 베베가 열린 창문으로 하늘을 가리켰어요.
”별 쪼가리가 떨어져 제비꽃이 되었대.“
”그럼 별을 누가 부순 거죠? 조각이 났잖아요.“
한쪽 구석에서 앳된 목소리가 날아왔어요. 고슴도치 고애였어요. 고애를 시작으로 이쪽저쪽에서 질문했어요.
”천사가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수선화가 피나요?“
부모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죠.
”자, 상상해 봐. 개구쟁이 꼬마별이 엄마 몰래 놀러 나온 거라면?“
오소리 왕서방은 흐흠, 헛기침을 했어요. 딸 소냐가 질문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소냐는 입을 꼭 다문 채 앉아 있었어요. 누군가 또 끼어들었어요. 맷돼지 호야였어요.
”제비꽃은 ...그러니까 제비꽃이 파랗게 질린 이유가 있었어요. 가여워요. 떨어질 때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얼굴이 새까만 호야가 눈물을 글썽였어요.
”아니야. 슬퍼할 이유는 없어. 조각별들은 자신이 원해서 뛰어내린 거니까. 뭐든 자기가 원한 삶은 고생이 돼도 기쁜 일이지.“ -최미혜, 위의 책, 왕서방의 고민, 23〜24쪽.
위 인용문 ①은 왕서방과 그의 친구인 멧돼지 마야가 나누는 얘기로, 촌장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 수업이 화제가 되고 있다. 멧돼지 마야는 자신의 딸이 시 수업을 받고 난 뒤부터 아주 ‘똘망해졌다’고 자랑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멧돼지 마야의 딸이 밭에 심겨져 있는 농작물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곤 했는데, 시 수업을 받고부터는 고춧대를 잡고서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고 자랑을 한다.
그것은 곧 시의 힘이다. 고춧대를 잡고 뭔가 ‘씨부렁거린다’는 것은 마야의 딸이 시인의 마음으로 사물과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에는 식물을 그냥 ‘무정의 물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영혼을 지니고 감정과 생각이 있는 ‘유정의 인물’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시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그러한 행동이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아버지인 멧돼지 마야의 눈에는 딸의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즉, 멧돼지 마야도 시에 전염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왕서방에게 지금 말하지 못하는 왕서방의 딸인 소냐도 연젠가는 말문이 터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말을 한다. 이것은 곧 시 수업이 딸을 달라지게 할 것이리는 희망의 메시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인용문 ②는 초가집 주인인 원숭이 베베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시 수업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베베는 초록숲의 동물들을 모아놓고 노래와 시를 가르치고 있다. 원숭이 베베가 주위의 자연과 사물들을 가리키며 동물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다는 것은, 시 수업에서 주위의 사물들에게 말을 건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낯선 사물들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다.
낯선 사물들에게 마음을 열어놓고 말을 걸면 낯선 것이 어느새 낯익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별쪼가리가 떨어져 제비꽃이 되는가 하면, 그렇게 하고 나면 떨어진 별이 부서진 것처럼 보이며, 천사가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수선화가 피는 것처럼 시적 상상력이 확산되어 시의 말들이 가슴 속에서 싹트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왜 이런 시 수업 장면을 서사의 한 장면으로 설정한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는 숲마을 동물들이 인간들의 도시 황색시에게 당하고만 살았으나, 이제는 초록숲 마을의 동물들도 시 수업을 통해 자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즉, 초록숲 동물들이 시 쓰기로 자아의 확립을 겨냥한 마음과 생각을 단단하게 길러, 이제는 그들도 황색시에게 당하며 살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하겠다는 하나의 의지로 읽혀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재미와 성찰, 두 마리의 토끼를 잡다
동화는 재미와 교훈(성찰)을 한꺼번에 주는 것과 함께, 주제를 드러나지 않게 속에 감추어야 한다. 거기다가 문장 역시 쉬워야 하고 음악적 리듬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만큼 동화는 일반문학과는 다른 무척 어려운 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환상과 꿈, 그리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지만, 그러나 일각에서는 죽음이나 슬픔 같은 무겁고 버거운 감정도 그 속에 녹여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감정을 겪어야 할 텐데, 작품을 통해 미리부터 그런 것을 소재로 다루어 면역성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필자 역시 나름대로는 일견 인정이 되기도 한다,
최미혜의 몇몇 작품도 후자에 속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슬픔과 비극적 멍에를 형상화한 장편 동화 『붉은 방』이 대표적으로 그런 작품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한 『고양이 탐정 레오』는 작가가 다시 동화의 본령 속으로 들어와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 작가가 고양이 탐정인 레오의 사건 파일이라는 다소 추리적인 서사 형식에 재미를 살려 넣으며,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어우러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라는 교훈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는 아이들의 가독성을 위해 탐정의 수사일지에 해당 되는 사건 파일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린 주제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과 상생이라는 성찰의 정신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주고자 함이 본래의 의도일 것이다. 자연 속의 동물들이 인간에게 맞서는 면역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시적인 힘으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재무장해야 된다는 감추어진 의도까지 매설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최미혜의 이번 동화는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과 의도가 이전 작품들보다는 더 승한 것 같다. 또한 주제 역시 한 시대에만 머물고 통용되는 주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바람직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좀 더 작품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탐정과 추리의 기법을 더 활용했더라면 하는 점이다. 탐정과 추리라는 본격적인 서사 형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 속에 녹여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본격적인 추리보다는 다소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동화작가 최미혜는 지금 병마와 싸우고 있다. 이 서평이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작가에게 뜻밖의 선물이라기보다는, 그 속으로 스며드는 하나의 작은 햇살과 같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이 세상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남은 시간을 뜻밖의 선물로 생각하며 살아라.“면서 희망을 부추기는,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의 한 구절을, 초라하고 빈약한 서평 뒤에 덧붙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024년 11월 2일)
첫댓글 <그 속으로 스며드는
하나의 작은 햇살과 같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그렇습니다.
햇살이 되고 희망적으로 다가옵니다.
멋진 서평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