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성교요지(聖敎要旨) - 광암 이 벽(曠菴 李 檗)
3. 이 벽(1754~86)의 생애와 사상 - 7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9세 되던 1783년(癸卯). 봄에는 茶山에게 中庸을 강의하여 이미
뛰어난 경지를 보여준 이 벽은 西書를 몰래 보며 西學에 심취해 있었다.
곧 서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복음을 익히고는 있었으나, 그 신앙의 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여
늘 안타까와하였었다. 그러던 그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좋은 기회가 왔다.
곧, 1783년(癸卯) 겨울 그의 知友 이승훈이 書狀官으로 北京을 가게 되는 그의 아버지 李東郁
(이동욱)을 따라 가게 된 것이다. 이에, 이 벽은 이승훈에게 참 신앙의 실체를 파악하고 돌아
오도록 부탁을 하였다. <黃嗣永帛書황사영백서>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 천재일우[千載一遇] - 천 년 동안 단 한 번 만난다는 뜻으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이르는 말.
* 지우[知友] -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
* 서장관[書狀官] - <역사> 외국에 보내는 사신 가운데 기록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정사(正使)·부사(副使)와 함께
삼사(三使)로 불리며, 직위는 낮지만 행대 어사를 겸하였다. ≒서장(書狀)·행대.
* 행대어사(行臺御史) ? 겸대 [兼臺]
* 겸대[兼臺] - 요약: 조선시대 중국으로 파견된 사신(使臣)의 일원인 서장관(書狀官)이 임시로 겸한 사헌부의 관직.
/ 본문: 겸대관의 약칭으로 행대(行臺), 또는 행대어사라고 하였으며, 그 직명은 대개 겸지평(兼持平)·겸장령(兼掌令)·
겸집의(兼執義)라 하였다. 서장관은 이와 같은 사헌부의 직함을 겸하여 본래의 기록보존 임무 외에 약 300명에 달한
사신일행의 불법행위를 단속하였다.
*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 <역사> 조선 순조 원년(1801)에,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내용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교
구베아에게 알리려고 비단에 적은 글(帛書). 천주교 박해에 대한 사정을 알리고 우리나라 교회 재흥·개국 촉진을
요청한 것으로, 현재 로마 교황청에 보관되어 있다. /帛:비단백
[ 이 때 이 벽은 비밀히 성서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훈은 그것을 몰랐다. 계묘년(1783)에
이승훈이 그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되자, 이 벽은 그에게,
‘북경에는 천주당이 있고, 천주당에는 서양사람 전교자가 있으니, 그대가 찾아가 뵙고 信經(신경)
한 부만 달라고 하고, 아울러 영세를 청하면 西士는 반드시 이를 크게 좋아
할 것일세. 그리고 서양의 기이한 물건과 좋은 완구를 많이 얻어 가지고 오지, 그냥은 돌아오지
말게.’ 이렇게 은밀히 부탁을 하였다.
* 천주당(天主堂) - 천주교회당. - 북경에는 북당과 남당이 있음. 이승훈 베드로는 북당에서 영세함.
* 신경[信經] - <가톨릭> 가톨릭의 신조를 기록한 경문. * 천주당(天主堂) - 천주교회당.
* 서사(西士)― ‘서양 선비’를 일괄하여 칭함
기실 이승훈이 북경에 들어가 영세를 받은 것도 이 같은 이 벽의 密託(밀탁)에 의한 것이다.
이승훈이 그라몽 신부로부터 베드로(礎石)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고 1784년(甲申) 음 3월24일
경 집에 돌아오자, 이 벽은 이승훈과 더불어,
「 ... 마음 깊이 성서를 읽고 비로소 진리를 깨우치었다. 인하여, 친한 벗들에게 권하고 교화시키
니, 당시의 이름난 선비로서 그를 따르는 자가 심히 많았다.」 (帛書)
* 기실[其實] - (주로 ‘기실은’ 꼴로 쓰여) 실제의 사정. ‘사실은’, ‘실제 사정은’으로 순화.
* 밀탁(密託) - 비밀히 부탁함. /密:빽빽할 밀 託:부탁할 탁
* 교화 [敎化] -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14) 성교요지(聖敎要旨) - 광암 이 벽(曠菴 李 檗)
3. 이 벽(1754~86)의 생애와 사상 -8-
이렇게 전교 길에 오른 이 벽은 양근. 감호의 사류 중 가장 명망이 높은 茶山의 형제들과
權日身의 형제. 李家煥 등에게 전교를 시작하였다. 이 벽은 權哲身의 매부이며 다산의 큰 형
丁若鉉(정약현)의 처남이다. 그러므로 그가 이들에게 새로운 하느님의 복음을 전교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茶山은 그의 「先仲氏(丁若銓) 墓誌銘」에서
? 이 벽의 부인은 권철신의 여동생이고, 누나는 다산의 형, 정약현의 부인이다.
* 양근(楊根) - 지금의 경기도 가평군
* 감호(鑑湖) - 지금의 강원도 고성군
* 士類(사류) -학문을 연구하고 덕을 닦는 선비의 무리
* 선중씨(先仲氏) - 고인이 된 둘째형(丁若銓)
「甲辰(1784) 4월 15일 형수의 제사를 지낸 뒤, 우리 형제가 이덕조와 더불어 같은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그 뱃속에서 천지조화의 비롯됨과 形神(육체와 영혼) .... ? 生死의 이치를
처음 듣고 창황하고 놀라움이 마치 河漢의 무극함과 같았다. 서울로 들어온 뒤, 이덕조를 따라가
‘天主實義’ ‘七克’ 등 수권을 보고 비로소 흔연히 마음이 기울여졌다.」
고 하였다.
* 이덕조(德操) - 李 檗의 字 德操. 즉 이 벽을 가리킴
* 창황(蒼黃·蒼皇·蒼惶) - 어찌할 겨를이 없이 매우 급함
* 무극(無極) - 끝이 없다.
* 하한(河漢) - 은하수 /河:물 하 漢:한수한, 은하수한, 사나이한 /
? “漢: 사나이 한”의 사용례 = 만리장성에 가면, 출발 지점에 “不到長城非好漢” (부도장성비호한) 이란 말이 쓰여
있는데, 이는 “만리장성에 와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 란 뜻으로, 일종의 선전문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 천주실의(天主實義) - 이 책은 명(明)나라 말기인 1583년 중국에 갔던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신부 마테오 리치
(1552∼1610) ·중국이름 리마더우·利瑪賣)가 1603년 베이징(北京)에서 현지전교를 위해 한문으로 펴낸 것이다.
* 칠극(七克) - 칠죄종(七罪宗)에 상대되는 일곱 가지 덕행. 믿음, 소망, 사랑의 향주덕 (向主德)과 지덕, 의덕, 용덕,
절덕의 사추덕(四樞德)을 이른다.
이것이, 茶山의 형제들이 천주교에 경심(傾心)하게 된 시초이다. 다산은 다시 그의 중형 丁若銓
에 관하여
「일찍이 이 벽을 좇아 놀며 역수지학(曆數之學)을 듣고 기하원본(幾何原本)을 연구하여 그 깊고
정밀함을 파헤치었다. 마침내 이 벽에게서 새로운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마음
기쁘게[欣然以悅]’ 여기었으나 몸으로써 종사(신앙) 하지는 않았다.」 하였다.
여기서 정약전이 천주교에 종사하며 신앙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가 얼마나
‘흔연히 마음 기쁘게[欣然以悅]’여기었는가를 알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정약전만에 한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새로운 지식, 새로운 철학을 갈망하던 젊은 학자들에겐 공통된 욕구이었다.
* 경심(傾心) - 마음이 기울다. / 傾 :기울경
* 역수(曆數) - 천체(天體)의 운행(運行)과 기후(氣候)의 변화(變化)가 철을 따라서 돌아가는 차례(次例)
* 역수지학(曆數之學) - 역수(曆數)에 관한 학문
* 기하원본(幾何原本) - 1605년 유클리드가 저술한 기하학서의 전반(前半) 부분의 한역서(漢譯書)./ 본문: 1605년 베이징
[北京]에서 6권으로 출판되었다. 원서는 C.클라비우스가 교정(校訂)한 《Euclidis elementorum libri》(15권)로서,
이탈리아의 선교사 M.리치의 구역(口譯:구두번역)을 중국의 관리 서광계(徐光啓)가 필기, 정리한 것이다. 외래문화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중국인들도 이 책을 중용(重用)하여 여러 번 간행하였으며, 청(淸)나라의 강희제(康熙帝)는
이것을 만주어(滿洲語)로 번역시켜 간행하였다. 나머지 9권도 후에 영국의 선교사인 A.와일리와 이선란(李善蘭:청조
말의 수학자)의 협력으로 전부 번역되었다. 지오메트리(geometry)에 기하(幾何)라는 한자어를 붙인 것은 이 책이 최초
이다.
* 종사(從事) - 어떤 일에 매달려 일함 /從: 좇을 종 事: 일 사
* 흔연이열(欣然以悅) -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모양 /欣:기뻐할 흔 然:그럴 연
* 이열(以悅) - 기쁨으로서 / 以:써(로써) 이 悅: 기쁠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