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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
구글과 손잡고 전자책 출시… 200억 적자 딛고 재기 노리는 아이리버의 고군분투
세계 1위였는데…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구글문을 두드렸다… 전자책 개발에 올인했다
대학 선후배, 입사 동기, 퇴사 동기, 다시 재입사 동기. 아이리버 정석원 부장(왼쪽)과 이상원 부장은 청춘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한 회사를 사랑했다. 사랑했던 그 회사는 어렵다. 하지만 다시 살아나리라 믿는다. 두 사람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이리버하우스 전시실에서 최근 구글과 함께 개발한 전자책 단말기 ‘스토리HD’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때 세계 1위였다. “한국에서 아이리버 MP3플레이어가 없는 집은 한 곳도 없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레인콤(아이리버의 옛 이름)을 창업한 양덕준 사장은 ‘벤처기업인의 표상’이 됐다. 당시 ‘아이리버에 다닌다’는 건 ‘삼성전자에 다닌다’는 말과 비슷했다.
정석원 부장과 이상원 부장은 2001년 이 회사에 입사했다. 5월 입사한 ‘사원 정석원’은 직장생활 3년차, 8월 입사한 서강대 경영학과 후배 ‘신입사원 이상원’은 졸업까지도 반년이 더 남은 대학생이었다.
회사는 예전 직장보다도, 심지어 대학보다도 좋았다. 매일 밤이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라빌딩 사무실 시멘트 바닥에 제품 포장용으로 쓰이는 스티로폼과 골판지박스가 깔렸다. 그리고 그 위에서 20, 30대의 젊은 청년 수십 명이 교대로 쓰러져 잠이 들곤 했다. 깨있는 사람이 더 많기는 했지만 마치 불침번을 서는 군대 같았다.
고생스러웠지만 고생이 아니라고 믿었다. 매월 ‘아이리버’ 브랜드를 달고 공장에서 완성품이 들어오는 날이면 다라빌딩 지하주차장이 꽉 찼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총판’ 사장들의 화물차였다. 공장에서 제품을 싣고 온 트럭이 멈춰서면 짐칸 앞에 ‘사장님’들이 줄을 섰다. 이 부장은 “줄 선 사장님들에게 식사 배급하듯 트럭 위에서 상자를 넘겨줄 때면 쪽잠을 잔 고생이 씻은 듯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2005년 실패가 찾아왔다. 애플이 MP3플레이어 ‘아이팟’으로 세계시장을 휩쓴 것이다. 해외 수출 물량이 급감했다. 2006년 회사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정 부장은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양 사장을 찾아가 물었다. “사장님, 다른 회사로 옮겨도 될까요?” 양 사장은 말했다. “가라.” 돌아서는 정 부장에게 한마디가 더 들려왔다. “근데, 약속 하나만 해라. 1년 뒤 다시 날 찾아와서 그 회사 계속 다닐지, 아니면 돌아올지 얘기만 해 주라.” 이 부장도 양 사장을 찾아갔다. 같은 얘기를 들었다.
회사를 떠난 둘은 1년을 못 버텼다. 레인콤 시절 ‘영업의 달인’이던 이 부장은 내비게이션 회사에 취직했다가 ‘영업의 꽝’이 됐다. 이 부장은 ‘온실 속 화초’ 같은 다른 영업사원들과는 달랐다. 대학 1학년 때부터 “밑바닥 경제부터 배워 성공하겠다”며 남대문시장에서 리어카 배달을 하고, 아이리버에 입사하기 직전에는 동대문 의류시장에서 여성 속옷을 만들어 러시아에 수출하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영업이 안 됐다. “아이리버 브랜드라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제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던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8개월 만에 이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양 사장에게 돌아갔다. 정부장은 몇 달 더 버텼다. 그는 ‘상품기획의 달인’이었다. 기왕 회사를 그만두었으니 양 사장처럼 성공 신화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회사를 그만둔 동료들과 창업했다. 그리고 1년. 정 부장은 “깨끗하게 망했다”고 했다. 돌아볼 것도 없었다. 다시 양 사장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이번엔 양 사장이 자신이 창업한 회사로부터 나가라는 요구를 받았다. 600억 원을 투자해 급한 불을 꺼준 보고펀드로부터였다. 마치 애플로부터 쫓겨난 스티브 잡스 같았지만 양 사장은 스티브 잡스와는 달랐다. 조용히 물러났다. 정 부장은 다시 한 번 회사를 나갔다. 민트패스를 새로 창업한 양 사장을 따라서였다. 이 부장은 회사에 남았다. 이후 레인콤과 민트패스는 모두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기간에 레인콤은 “가진 건 브랜드뿐”이라는 생각에 아예 사명을 아이리버로 바꿨고, 민트패스는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공중 분해된다. 양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2010년. 정 부장도 결국 아이리버로 돌아왔다. 회사엔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건 ‘아이폰’이 쓸어갔다. MP3플레이어도, 동영상 재생기도, 전자사전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양 사장도 없었고, 함께 젊음을 쏟아 부었던 동료도 없었다. 딱 한 명,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후배 이 부장이었다.
그리고 이재우 대표가 새로 취임했다. 대주주인 보고펀드의 파트너였다. ‘돈 냄새’만 맡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의외였다. 어느 날인가 이 대표는 사원들을 모두 불러놓고 “감동받았다”며 얘기를 꺼냈다. 창업자 양 사장의 얘기였다. “여러분, 제가 옛날 서류를 뒤적이다가 새 제품을 만들 때 세 가지를 갖고 판단하라는 자료를 봤어요. 양 사장님이 쓰신 글이에요. 첫째, 쓰기 쉬워야 한다, 둘째 디자인이 베스트여야 한다, 셋째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혁신적인 게 있어야 한다. 쉽죠? 그리고 예전 아이리버 제품들은 정말 그랬어요. 이게 바로 아이리버의 철학입니다. 이게 우리 경쟁력이에요.” 두 사람은 잊혀졌던 자신들의 회사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 기회가 왔다. 아이리버는 2009년 9월 ‘스토리’라는 전자책 단말기를 만들면서 구글의 문을 두드렸다. 구글은 세계 도서관의 책 300만 권을 스캔한 회사였다. 그 회사의 ‘이름값’만 빌릴 수 있다면…. 하지만 문은 1년 넘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와 합작해 중국에 중국 전자잉크(E ink) 디스플레이 회사를 세운 덕분이었다. 결국 ‘브랜드, 브랜드 또 브랜드’였다. 구글에서 한번 해보자고 했다.
5월 21일. 미국 보스턴 시내를 흐르는 초여름의 찰스 강에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생들이 조정 연습을 하고 있었다. 찰스 강을 기준으로 동쪽은 보스턴 시내, 서쪽은 케임브리지다. 정 부장과 15명의 아이리버 직원이 케임브리지에 도착했다. MIT와 하버드, 세계 최대의 인터넷 트래픽처리업체 아카마이 등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구글북스 개발팀 본부도 이곳에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정 부장은 방 5개와 큰 회의실 하나를 빌렸다. 방에 짐을 풀어놓은 뒤 모두 함께 노트북 컴퓨터를 들고 회의실로 모였다. 좋았다. 프로젝트만 무사히 끝나면 ‘구글의 첫 전자책 단말기 파트너’가 될 예정이었다. 이들은 모두 대만의 작은 휴대전화 업체 HTC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프로젝트에 첫 파트너가 된 뒤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고 있었다. 두근거렸다. 어차피 3주면 끝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할 일은 너무 많았다. 매일 새벽 별을 봐야 했고, 20시간, 30시간 연속으로 잠들지 않은 채 일하는 건 예사였다. 6월이 되자 한국에서 5명이 더 불려왔다. 방도 2개를 더 빌렸다. 이젠 미국 음식도 지겨웠다. 그냥 근처의 한인 식품점에서 컵라면만 사왔다. 육개장 사발면, 신라면 컵, 스낵면, 도시락면…. 쌓이는 라면 상자 종류가 늘어나면서 회의실 벽에 걸린 6개의 현대화 액자 위로 하얀색 전지(全紙)도 하나둘 늘어갔다. ‘대자보’ 같았다. 그 위에는 ‘Enter→Confirm’ ‘OTA update check’ ‘Wi-Fi On 하는 경우’ 등 암호 같은 단어와 도형만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직원들은 “침대에 누우면 너무 오래 잔다”며 불편한 회의실 의자에서 쪽잠을 잤다. 컴퓨터만 치운다면 호텔 회의실이라기보다는 환자를 모아놓은 야전 병원처럼 보였다. 정 부장은 9년 전 그때가 떠올랐다. 2002년 미국 베스트바이에 첫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모든 직원이 3개월 동안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자던 시절. 그 주문을 처리한 뒤 아이리버는 세계 1위가 됐다.
호텔 매니저는 날마다 회의실을 드나들며 이상한 음식 냄새를 풍기는 동양인들이 영 수상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매니저는 “도대체 당신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고 여기서 뭘 하는 것이냐?”라며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정 부장은 할 말이 없었다. “비밀이다.” 더 수상해 보였다. 하지만 정 부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글과의 계약 때문이었다. 이들이 만든 건 ‘스토리HD’라는 구글을 위한 전자책 단말기였다.
아이리버가 만들어 KT에 납품하는 유아교육용 로봇 키봇도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리버 제공
7월 17일 미국 전역의 대형마트 타깃에서 스토리HD가 발매됐다. 정 부장은 매니저에게 스토리HD를 보여줬다. “우리 이런 사람들이에요.” 매니저가 이게 도대체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정 부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책 300만 권을 무료로 볼 수 있는 전자책이에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매니저는 말했다. “내일 당장 사러 가겠다.”
정 부장과 이 부장에게 물었다. 왜 이 회사에 계속 다니는가. 이 부장은 말했다. “가족 같다.” 정 부장의 대답은 조금 길었다. “사람 뽑을 때 일 잘하는 사람을 뽑나요, 아니면 앞으로 잘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사람을 뽑나요. 회사가 나를 뽑은 게 아니에요. 내가 가능성을 보고 이 회사를 뽑은 겁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Narrative Report ::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의 현장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깊이 있는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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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난 빛viit
지팡이를 놓은 대통령
"정 선생님, 십 수 년 동안 짚어온 지팡이인데, 이제는 이놈을 좀 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소."
그 눈빛에 간절함이 느껴졌다.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만큼이나 가혹한 고난과 좌절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 그 과정에서 짚게 된 지팡이를 놓고자 무수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매번 한계에 부딪힐 뿐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를 처음 만난 것은 1994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이 날의 만남에 다리 역할을 한 조영환 아태재단 사무총장은 빛viit을 통해 자신의 오랜 고질병이었던 비염과 두통이 말끔히 해소된 것에 기뻐하며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 또한 간곡히 청해왔다.
‘된다. 해 보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빛viit을 통해 지팡이를 놓을 수 있겠냐는 조 총장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언제나처럼 순간의 느낌으로 우주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순수한 마음으로 빛viit과 함께 하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후 오래지 않아 당시 근무하고 있던 대구의 한 호텔 최고층 VIP 스위트룸으로 김 전 대통령 내외가 찾아왔다. 전 가톨릭대 총장 김영환 몬시뇰, 박노열 계명대 교수도 함께 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빛viit을 받으십시오.”
두 내외가 한동안 빛viit명상에 잠겼다. 이후 눈을 뜬 김 전 대통령의 얼굴이 아주 평온해 보였다. "기분이 아주 상쾌하군요. 머리도 맑아진 것 같고…."
"이것 좀 보세요."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에게 손바닥을 펴 보였다. 손바닥에는 빛viit분이 솟아 반짝이고 있었다. "허! 이게 조 총장에게 듣던 빛viit분이군요. 이게 도대체 뭐지요? 왜 이런 게 나타나는 겁니까?" "빛viit을 받은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아마도 빛viit이 몸을 통과하면서 남긴 어떤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김 전 대통령 내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빛viit분을 거듭 들여다보았다.
“이제 일어나셔서 지팡이 없이 걸어 보십시오.”
이 말을 들은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기대 반, 우려 반의 표정이었다. 불과 십여 분 남짓 빛viit을 받았을 뿐인데 수십 년 간 의지해온 지팡이 없이 걸어보라니, 상식으로 판단한다면 분명 의아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내 단호한 표정을 살핀 후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김 전 대통령이 말없이 발을 떼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날 때마다 굽혀지지 않던 한쪽다리에 서서히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 분은 지팡이를 짚지 않고 호텔 객실의 긴 복도 한 쪽 끝에서 다른 한 쪽 끝까지, 지팡이는 물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걸어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DJ=지팡이‘라는 오랜 공식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믿기만 하여라, 네 딸이 살아날 것이다’
일주일 후. 김 전 대통령 측의 요청으로 동교동 자택을 방문했다. "지난번 이후 거의 지팡이를 놓고 지냈습니다. 올라가지 않던 다리가 이렇게 들어 올려집니다. 정 선생님을 한 번만 더 만나면 더 좋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게 김 회장님(당시 금호 호텔 회장)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날 빛viit을 받고 난 김 전 대통령이 내게 말했다.
“조금 전 머릿속에 떠오른 글귀가 있어요. ‘믿기만 하여라, 네 딸이 살아날 것이다’ 라는 성서 구절 말이지요. 간절한 마음으로 빛viit을 청하자 문득 머릿속에 그 말이 떠오르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왠지 나도 모르게 확신이 서더군요.”
김 전 대통령이 붓과 벼루를 챙겼다.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던 내용이라 기념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표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잠시 후 그분이 내민 휘호에는 어떠한 의심이나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빛viit을 마주했던 김 전 대통령의 빛viit마음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 마음이 김 전 대통령에게 과학의 한계를 넘어 빛viit의 기적을 체험하게 한 밑바탕임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아름다운 빛viit마음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휘호가 훗날 전혀 엉뚱한 용도로 사용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 분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실 때 빛viit 이야기를 담은 책,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가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특히 이 책이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고 빛viit과 관계된 일화를 소상하게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언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러던 중 2000년 어느 날 경찰청 특수 수사과에서 나를 급히 찾았다. 책에 실린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보겠다는 명목이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휘호가 ‘결정적인 힘’이 되어준 덕택에 마지막에는 친절한 배웅까지 맞으며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빛viit과의 만남을 감사히 간직하고자 했던 그 분의 휘호가 고작 이러한 용도로 쓰였다는 사실은 퍽 씁쓸한 일이다. 어쩌면 우주의 마음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예견하고 그 때 그 휘호를 남기게 했던 것은 아닐까.
중략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으며, 정확히 15년 전인 1994년 이 날, 동교동 자택에서 그 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지난 대선 이후 정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건강에 대한 염려는 잠시 접고 일생의 마지막 꿈을 이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빛viit을 만난 후 더 이상 지팡이에 의존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은 그 분의 마음에 한동안 덮어두었던 대권 도전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근원의 빛viit마음에 의지하자, 그가 외교 순방길에서 5~6개국 정상들과 지팡이 없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지나갔다. 즉 이 분이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는 장면이었다.
"큰 뜻을 이루시면 온 국민이 화합하고 상생하는 부강한 국가를 만들어 주십시오. 빛viit이 함께 할 것입니다." 그 후 3년이 지난 1997년 12월. 그는 15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른 아침, 축하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일산 자택을 찾았다. 오랜 꿈을 이룬 기쁨과 자신이 꿈꿔온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그 분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이듬해 대통령으로서 첫 해외 순방 길에 나선 김 전 대통령이 지팡이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나란히 선 모습을 보게 되었다. 3년 전 강렬한 우주마음의 느낌과 함께 보았던 그 장면이 떠오르며, 명예와 성공의 힘, 빛viit을 그 분께 다시 한 번 가득 안겨드렸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를 빠른 시일 안에 회복하였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50인' 중 1위에 선정되고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그 영예롭던 순간들 또한 멈추지 않고 흘러 지나간 세월이 되었다. 그리고 이 분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로 역사 속에 떠나가시니 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아닐까 한다.
빛viit과 함께 하는 명예와 성공은
달콤하고 화려한 겉모습만이 아닌 아름다운 결말과 함께 하는 것...
이처럼 죽음 앞에는 명예도 성공도 노벨상도 한갓 그림자와 같다. 하지만 그 명예와 성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 진의(眞意)는 죽음 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고인이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민주와 평화, 통일의 의지를 기리는 모습에서 빛viit과 함께 하는 진정한 명예와 성공의 뒷모습이 어떠한지 발견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명예와 성공, 권력이라는 높은 고지에 오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때로는 일생을 걸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영원히 누릴 수는 없고 한 때 머물렀다가도 곧 본연의 자신의 위치로 되돌아와야 하는 것이 명예의 속성이다. 그러니 아래로 내려와 지난 날 자신의 위치를 돌이켜 보았을 때 삶이 허무하지 않고 정말 보람되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명예이자 성공일 것이다.
빛viit과 함께 하는 명예와 성공은 달콤하고 화려한 겉모습만이 아닌 아름다운 결말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 있다. 한 분 한 분이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서 빛viit과 함께 하는 진정한 명예와 성공을 향해 힘차게 정진한다면 그것이 곧 세계 속에 우뚝 솟은 대한민국의 명예, 나아가 지구 전체의 행복을 드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빛명상 ‘빛명상하는 인사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난 빛viit에서 발췌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webucs/5aMm/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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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명상하면은?
1. 어깨의 큰짐이 내려졌습니다.| ┖ 빛명상하면은?
신동철 2011.07.01. 15:10 http://cafe.daum.net/webucs/8HiT/1120
공직 생활과 사회 생활의 다름을 절감하고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무척이나 힘들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제 윤경애 선생님의 인도로 빛viit명상 터에 왔을 때도 설마 했던 것이 이제 제 혼자 아침 저녁으로 빛viit명상을 하고부터는 머리에 꽉 박혀 있던 잡음이 사라지는 것 같고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서툽니다만 스스로 내면을 정화하고 계속하면 더 밝음과 행복이 찾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함께하기에 더욱 가볍습니다.
우주 근원의 마음과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함께하시는 모든 회원님께도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2. 어두운 길도 어렵지 않아요| ┖ 빛명상하면은?
서정숙 2011.03.10. 22:51 http://cafe.daum.net/webucs/8HiT/514
삶을 살때 늘 선택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빛명상을 하면 캄캄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도 빛과 함께 한다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지금의 어려움도... 좋은 방향으로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 감사드립니다.^^
3. 모든 일에 열정과 긍정이 더욱 증감됩니다!| ┖ 빛명상하면은?
힐러리(김미영) 2010.11.25. 09:43 http://cafe.daum.net/webucs/8HiT/328
첫빛 만남 후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의 변화와 실천의 변화입니다!.
즉 예전에도 긍정적이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이었지만, 그땐 그렇게 해야되고 그게 성공의 가장 좋은 길이고, 내가 좀 더 열심히 살수있는 일이기에 내 스스로 마인드를 길러가고 실행했습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매일매일 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또 걸어서 더 좋은 얼굴 더 행복한 얼굴을 만들어 가느라 심리적으로 많은 애를 썼었습니다!.
빛을 안 이후엔 매일아침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과 자연과 부모님 및 선조님께 감사의 빛명상으로 시작하면서 원하는 바를 그림으로 그리고 이뤄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과 뜻으로 빛명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노력으로 변화를 가져오는게 아닌, 더 큰 자신감과, 더 큰 긍정과, 더 큰 열정과, 더욱 더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으로 그냥 제몸에, 가슴에 저절로 한몸 한마음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노력이 아닌, 빛을통해!.. 또한 배푸는 마음 , 감사의 마음, 사랑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자상한 마음 인간으로서 지키고 실행해야 할 많은 좋은 마음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베고 가슴에 스며들어서 특별히 노력이 필요 없는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런 변화들을 진심으로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첫빛 만남 후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많은 변화들이 있음을 직감하고, 실감하고 있습니다!.(이하 중략 바로가기 참고)
첫댓글 빛viit명상과 함께 어깨의 큰짐을 내려놓는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빛[viit]!과 함께 빛[viit]으로~~!!
빛viit은 삶의 희망입니다.
빛과함께 하는 명예와 성공은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 내면이 아름다운 삶이다,,,,감사합니다,
아이리버의 재도전성공에 축하의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빛과 함께 였다면 좀 더 수월할 수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이라도 책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명예와 성공, 빛과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좋은 내용의 글을 잘 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명예와 성공,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빛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서유종 님.
아이리버의신화가 그렇게탄생하였군요 좋은글감사합니다
빛viit과 함께 하는 명예와 성공은 달콤하고 화려한 겉모습만이 아닌 아름다운 결말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의미 있다.. ^^. 감사합니다.^^.
빛 명상과 함께 하는 많은 분들이 성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계기와 체험을 많이 하셨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감사드립니다. 서유종님.
불가능을 가능 하게 해주는 힘 빛과 함께 라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빛명상과 함께 함을 감사 드립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서유종님 즐거운 휴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