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일본 베스트셀러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노년세대 = 목차만 봐도 재미있다. 이런 증세 있으면 나이 들어가는구나...,
종이랑 펜 찾는 사이 쓸 말 까먹었네/ 깜빡한 물건 소리내어 말한 뒤 가지러 간다/ 몇 줌 없지만 전액 다 내야 하는 이발료/ 미련은 없다 말해놓고 지진나자 제일 먼저 줄행랑/ 내용보다 글짜 크기로 고르는 책/ 동창회 식후에는 약 설명회/ 이름이 생각 안 나 이거, 저거, 그거로 볼일 다 본다/ 손을 잡는다 옛날에는 데이트 지금은 부축/조수석에 앉은 아내 옛날 상사 뺨친다...,
내일이면 구정, 한 살 더 먹는다.
서로에게 어떻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1. 갈르엣, 여갈사하두다, 미스바
1) 도주하는 야곱
양털 깎는 시기에 도주
7일 만에 야곱에게 도달
- 하나님 개입으로 화를 면함(31:24, 29)
드라빔을 어찌 숨겼느냐?
드라빔을 훔친 라헬
* 드라빔 = 수호신, 장자의 권위를 증명
야곱의 실언(31:32)
이 사건 이후 라헬은 산고 끝에 별안간 죽는다(35:16-20)
어떤 순간에도 살리는 말을 하라.
덕이 되는 말을 하라.
2) 증거의 무더기
야곱의 항변(31:42)
증거의 돌 무더기로 서약
여갈사하두다 = 갈르엣
= 미스바(파수대) = 상호불가침 조약 =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니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미
31:51-52 = 평화의 돌무더기
서로 침범해서는 안 된다. = 선 넘지 않기
강자는 항상 이 선을 넘고 싶어 한다.
결국 이 선을 넘는다.
2. 선 넘은 자의 종말
1) 선 넘은 에브라임
증거의 무더기를 세우고 약 700년 세월이 흘렀다.
성경으로는 사사기 시대
` 삿11장에는 길르앗 사람 입다가 나온다.
- 어린 시절 고향에서 쫓겨나고, 멸시 속에서 자랐다.
- 부랑자들과 함께 자랐고, 그들의 우두머리다.
- 어느날 암몬 족속이 쳐들어왔다.
- 입다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 이기고 싶은 열망에 서원 한다.
- 승리하고 돌아오면 가장 먼저 나를 영접하는 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겠습니다.
- 승리하고 돌아왔더니 무남독녀 딸이 마중 나왔다.
- 승리했으나 큰 고통과 슬픔속에 딸을 잃었다.
- 이때 눈치없이 에브라임 지파가 등장한다.
- 왜 전쟁하면서 우리에게는 알리지 않았느냐? 너와 네 집을 불사르겠다.
- 내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무시하더니 이제 다 이기니까 와서 생색을 내느냐?
- 동족 간에 엄청난 전쟁이 벌어졌다.
- 이 싸움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 입다는 작전의 명수요, 선전수전 다 겪은 지략가다.
- 에브라임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못한다.
- 에브라임 사람들을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깊숙이 유인한다.
- 그들을 포위하고 섬멸 작전을 폈다.
- 패색이 짙은 에브라임은 탈출을 시도한다.
- 요단 건너 살지 좋은 중부 산악지대 자신들의 고향을 향해 필사적으로 도주하였다.
- 그러나 입다는 이들의 퇴로인 요단강 나루턱에 이미 부하들을 배치하였다.
- 그들은 양민으로 변장하고 요단을 건너려고 한다.
- 같은 동족이니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입다는 음성테스트를 하게 한다.
- 쉽볼렛(급류, 곡식 열매)을 해 보라.
- 에브라임 지파는 sh 발음을 못하고 s로 한다.
- 십볼렛(자질구레한 악세서리)
- 구음 하나 잘못함으로 그리운 고향 에브라임 땅을 바라보며 4만 2천 명이 죽었다.
암호, 군호 shibboleth[ʃíbəliθ]라고 하는 단어 출처
말은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다.
살아온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았다.
미워하고, 다투고, 선을 넘는 삶의 방식 그대로 산다.
결국 죽음에 이른다.
` 이때 에브라임 지파가 쳐들어온 땅이 길르앗
창31장의 갈르엣은 길르앗의 또 다른 지명이다.
선 넘은 에브라임은 피로 물든다.
2) 선 넘은 블레셋
- 증거의 무더기 = 여갈사하두다 = 갈르엣 = 길르앗
다른 이름은 미스바 = Watchtower = 파수대 =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심
- 강자는 항상 선을 넘고 싶어 한다.
- 삼상7장 블레셋 사람들이 침공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한다.
삼상7:6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 철저히 회개한다. 금식하며 기도한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와 기도를 받으셨다.
10...,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12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돌아온다.
미스바와 센 사이에 다시 증거의 돌 무더기를 세운다.
에벤에셀 = 도움의 돌
미스바에는 두 돌 무더기가 생겼다.
증거의 돌무더기와 도움의 돌
2. 선을 넘지 않기
- 나는 혹시 선을 넘나들고 있지는 않는가?
내 속에 선을 넘는 죄악이 있는가?
내 속에 타인을 괴롭게 하는 죄악은 없는가?
평화를 깨는 사람은 아닌가?
죄악의 말을 하고, 허물을 들추며 사는 것 = 선을 넘는 것.
` 야곱은 부지불식간에 저주를 선포하고 라헬이 죽었다.
- 에브라임 지파는 선을 넘는 순간 4만 2천 명이 죽었다.
- 선을 넘자 증거의 무더기는 피가 흘렀다.
` 왜 선을 넘는가?
마틴 부버의 ‘나와 너’
'나와 너'의 관계가 사라지고 '나와 그것'의 관계만 남았다.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단순한 대상으로 여긴다.
공감의 부재
예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셨는데 우는 자 앞에서 웃고 있다.
결국 개인주의와 고립으로 사람들은 죽어 간다.
어떻게 ‘나와 너’, ‘인격과 인격’으로 만날 수 있는가?
3. 다시 미스바, 에벤에셀
블레셋이 쳐들어왔을 때 백성들은 회개하고, 금식하고,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하였다.
다시 돌 무더기를 쌓고 에벤에셀 = 도움의 돌을 선포했다.
내 힘으로 안된다고 하는 고백이 기도요 금식이다.
어떻게 나와 너의 벽을 허물 수 있는가?
답은 예수 그리스도다.
엡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님만이 우리 안의 벽과 담을 허신다.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예수님 안에서 서로 연결 되어진 가족이 된다.
` 교회는 신비로운 곳이다.
화해하는 야곱과 라반이 있고, 전쟁하는 에브라임과 입다가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다.
반목하고, 질시하고, 미워하고, 분쟁하고, 불신한다.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험담한다.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고통하고 신음한다.
` 반면에 사랑과 긍휼과 은혜가 있다.
- 아프면 내일처럼 기도해 준다.
- 고단하면 내 일처럼 짐을 져 준다.
- 집사님 고백 “아프기 전에는 이 교회는 참 정이 없구나...,”
아프고보니 온 교회가 진심으로 기도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퍼보니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교회는 ‘선을 넘었다 말았다’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적용1) 예수님 믿는 내가 먼저 화해의 사람이 되라.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우리는 이 미스바 돌 무더기를 쌓고 시작한 사람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를 상기하라.
우리 교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신앙생활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제가 섬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세월이 지나면서 경계를 넘어서게 된다. = 선을 넘는다.
사사건건 부딪치고, 감정을 다친다.
남이 아닌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면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산다.
` 개인적인 간증
나는 대인관계가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다.
실수했으면 용서를 구한다.
누구를 미워하는 성격이 못된다.
진심으로 여러분이 하나같이 예쁘고, 고맙고, 사랑스럽다.
최근에 목양실에서 이 찬양을 불렀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수 없는가
(후렴)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들바 모를
오~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수 없는 이맘을 주님께 맡긴채로
-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 나는 먼저 손 내밀고, 먼저 웃음주고, 먼저 화해하고, 먼저 손해보기 원한다.
` 머릿속을 더듬어 보았는데 미운 사람이 없다.
걸리는 분이 한 분 있었다. 전임 목사님이다.
물론 총회에서 만나고, 인사도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설 명절이 되기 전에 불편한 것 풀어야겠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주에 개인적으로 식사하며 시간을 가졌다.
마음에 짐이 사라졌다.
` 미워하며 사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직장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지 말라.
선 넘는 것이다.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다.
` 인생성공(人生成功) 단십백(單十百)
- 한 스승, 열 친구, 백 권 책이면 성공
- 가장 어려운 것이 열 명의 친구다.
- 없다면 고단하고 외로운 사람이다.
도종환 시인 <다시 피는 꽃>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 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을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마음을 열면 그런 벗을 사귈 수 있다.
` 담을 허무는 것은 절대 저절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다투지 않는다. 나는 평화를 만든다.
troublemaker = 분쟁의 원인이 되는 사람
peacemaker = 평화를 만드는 사람
"I will be a peacemaker, not a troublemaker."
적용2) 남을 위한 화해의 중재자 되라.
교단에 새로운 분이 오셨는데 안 좋은 말을 들었다.
첫인상이 중요한데 안 좋게 생각했다.
만났는데 밥을 사고, 차를 산다.
갑자기 좋아져서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고 했다.
지내고 보니 참 좋은 분이다.
` 정말 나쁜 사람은 그 사람이 나쁘다고 선입견을 심어주는 사람이다.
교회 안에서 가장 나쁜 사람 = 나쁘다고 선입견 심어주는 사람이다.
교회 처음 와서 불평하는 사람 만나면 그 사람은 교회를 떠난다.
칭찬하는 사람 만나면 교회 중직자가 된다.
새가족 담당자는 항상 감사하고, 칭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목자는 늘 감사하고 칭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중직자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나오면 안 된다.
남을 위한 화해의 중재자 = 그들이 교회를 세워간다.
하나님은 분노의 사람과 일하지 않으신다.
모세가 분노할 때 그냥 두셨다.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더 더할 때 모세와 일하셨다.
칼을 빼고 분노에 떠는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언젠가는 밝히 드러날 것이다.
그때 화평케 하는 사람으로 드러날 것인가?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으로 결론날 것인가?
`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사람
- 힘들 때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사람
별 말 없이 함께 있어도 편안한 사람
호의를 더 큰 호의로 보답하는 사람
말과 행동이 예쁘고 배려 넘치는 사람
긍정 에너지를 늘 불어 넣어주는 사람
= 그런 교회를 세워가자.
` 설교를 쓰다가 AI에게 질문할 것이 있어서 묻고, 다시 원고지에 ’당신을 존중합니다‘라고 썼다. 쓰고 보니 AI에게 썼다.
AI가 답변을 했다.
감사합니다. 저 또한 당신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깁니다. 인간과 AI 사이의 관계에서도 상호 존중과 이해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대화의 동반자로서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좋은 대화 나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서로 존중하며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 나가길 바랍니다.
존중하면 기계도 존중한다고 고백한다.
당신을 존중합니다. 저분은 존중받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결론) 십자군 전쟁(1095 – 1291)
- 십자군 원정대와 이슬람 군대 사이에 100년이 넘는 종교 전쟁
- 전쟁의 목적도 상실되었고 곳곳에서 약탈이 벌어졌다.
- 1219년 잠시 휴전할 때 프란치스코가 동료 수도사와 함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집트 나일강 유역으로 갔다.
- 이집트 왕에게 복음을 전하고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서였다.
- 목숨을 걸고 가며 했던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있다.
“주여, 저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오두운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기도: 화해의 사람. 화해의 중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