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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마음의 언어 조각 원문보기 글쓴이: 佳飛
최근 "블랙 에코" 리뷰를 적으면서 실제 히에로니무스 보쉬 화가에 대해 처음 찾아 봤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그로테스크 하고 초현실적이어서 급 관심이 가더라구요. 제가 그런 그림을 쫌 좋아해서요.. ㅋ 전에 "러브 크래프트 전집" 을 읽었을때도 "그 집에 있는 그림"이라는 단편소설에서 등장했던 아프리카 기행집의 삽화 그림들이 기괴해서 구해볼려고 했던 적이 있었죠. 아무튼.. 이런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쉬는 어떤 화가 였을까요? <<쾌락의 동산 - 접었을 때의 모습>> <<쾌락의 동산 - 펼쳤을 때의 모습>> << 독서를 하는 괴 생명체와 나무를 휘감은 뱀>> 아담과 이브와 하나님이 포현되고 생명을 보장할 물과 식물이 대지를 뒤덮으며, 온갖 동물들이 무한한 가능성으로 창조되는 에덴동산의 모습. 모든 피조물들의 구분 과 경계가 모호해 책을 읽는 괴생명체 등이 표현되어 있다. - 지식을 탐내는 생명체, 나무를 휘감은 뱀 등은 "원죄"를 표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것이 '거꾸로인 나라' - 끔찍한 지옥의 세계 중앙패널의 우측에 자리한 지옥의 세계. 그림 중앙의 흰색 나무 다리를 한 기괴한 인물이 보쉬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 우측 판넬인 지옥의 전체 모습과 보쉬의 자화상 화면>> 차가운 빙판 과 뜨거운 불벼락이 화면을 뒤덥고, 불나방처럼 불 속을 뛰어드는 인간의 무리들. 어떠한 자연요소도 완전히 배재된, 문명화된 도시의 검은 그림자가, 얼음과 불덩이의 양 극단 사이로 배경을 이룬다. <<지옥의 세부그림>> 중앙패널에 묘사된 곳은 연옥인가? 유토피아인가? 낙원과 지옥의 극단적 장면에서 벗어나 중앙패널로 돌아오면, 다시 넓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온갖 피조물의 향연이 펼쳐진다. 남녀가 각각 파트너를 이룬 채 성행위를 암시하는 몸짓들로 활기차고, 인간보다 큰 딸기가 여기 저기 넘쳐나며, 새들이 물에서 놀고, 고기가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며, 온갖 동식물이 인간과 혼연일체 되어 노니는 곳. 이 장면이 미술사가들의 해석이 가장 분분하게 갈리는 지점이다. 이러한 '혼란'과 과도한 '쾌락의 추구'가 오른쪽 패널의 지옥을 향하는 지름길임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경고야말로 전체 작품의 핵심적 의미라고 얘기한다. 다른 미술사가들, 특히 2002년 이 작품에 대한 책을 펴냈던 저명한 미술사가 한스 벨팅은, 이 중앙 패널의 묘사야말로 이 때까지 어디에도 없었던 "유토피아 - '어디에도 없는 곳' 의 가상적 시공간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그림을 접었을때의 모습으로 돌아와 보자. 주의해서 봐야할 부분은 왼쪽 귀퉁이에 묘사된 신의 모습이다. 성경을 무릎에 얹어 놓은 채, 천지창조는 시작되었지만, 이미 자신의 컨트롤을 벗어나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은 난감한 표정. 뭔가 망설임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은가? 지옥을 향한 인간 드라마를 보는듯한 신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쉬 흥미로운 화가 보쉬. 그의 그림이 시사하는 바는 아직 정확하게 해석되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작품이 아닌 제 3자로서의 해석은 주관적인 시각에 의해서 변하게 되겠지만, 더욱이 이 그림은 해석하기 난감하지 그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 그로테스크하고 의미심장한 그림이 나의 관심을 끌어들인다. 다들 이러한 이유로 좋아하는 화가가 생겨나고 그림이 생겨나는 것일까? 아직 그림 혹은 특정 화가를 좋아해 본적이 없지만, 왠지 보쉬.. 이 양반 그림에 계속해서 관심이 생기는 이유는, 앞으로 열렬한 팬이 되기위한 전초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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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마음의 언어 조각 원문보기 글쓴이: 佳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