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을 지극히 염불하는 마음 / 선암 스님
만약 무량 백천만억의 중생이 있어서
여러 가지 고뇌를 받는 경우,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른다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觀(관) 하고
모두 해탈함을 얻게 하리라. [법화경 25.관세음보살보문품]
경전에 보면 관세음보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 이름을 정성껏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無緣(무연)의 유정물에게조차 大悲의 마음을 내야 하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보면 이름을 부르거나 안 부르거나
고난에서 구제해 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전에서는 조건을 붙였을까?
지극정성과 청정한 믿음에서 나오는 염불이 아니라면
자기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佛性을 불러 일으킬 수 없는
까닭이다.
청정한 믿음과 정성을 다해서 관세음을 念(염) 한다면
관세음을 신으로 생각하든 사람으로 생각하든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깊은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며
숨어 있던 자비심을 개발하며
나아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한
관세음보살의 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이라도
개발하게 되는 것이고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들은 관세음을 念하고 의지하는 생활을 지속함으로써
자신이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남도 구원해야 한다는
자리이타의 실천행의 가르침의 참뜻을 깨닫게 되고,
자기도 조금씩 관세음보살이 되어 가는 것이고
마침내 열반의 길로 인도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세상 어디에라도 있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 나타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받고 있는 고통만 생각하고
나쁜 점만을 보기 쉽지만, 한편으로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랑과 호의와 자비를
내가 받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설사 내 자신이 그러한 점에서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사랑과 자비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즉, 관세음보살을 세간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다.
길을 물을 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혼잡한 버스 안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있으며,
주변의 어려움을 내 몰라라 팽개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와 가정에서 아내로부터 받는 사랑 등등...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은혜와 자비 속에 파묻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붓다의 참된 가르침으로 보면
이러한 모든 것들이 관세음보살의 구제요 자비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은 모든 게 관세음보살의 도움이며
또한 지금 이 시간 누군가 관세음보살을 念한다면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주제와 잠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은 남자보다는
여인의 모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처음 불교에 입문 후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왜 여인의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어느 분에게 듣기를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여인의 덕,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사랑에
비교된 것이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끝과 깊이가 없다.
자식에게 쏟아지는 어머니의 끝없고 깊이 없는 사랑을
좀 더 넓게 이해한다면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펼쳐 보이는
자비와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의 형상을 만든다면 당연히 아름답고 청초하며
자비스러운 여인상으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데
나 자신도 스스로 공감한 적이 있다.
관세음보살에 귀의하고 청정한 믿음과 정성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관세음보살로 키워가는 곳에
진정한 붓다의 가르침이 있으며,
나아가 불교도인들의 마음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 그 림 / [관음보살도]
출처 : 봉은사랑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