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평공소
1966년 12월 4일 설립
현동면 눌인3리에서 눌인공소로 설립
1975년 4월 22일 공소 건물이 허물어져서 눌인2리로 이전하여 건축
2008년 2월 17일 도평으로 이전하여 건축, 축성
눌인공소에서 도평공소로 개칭
관할본당: 청송성당
경북 청송군 청송읍 안현로 1045
2. 석보공소
관할본당: 영양성당
1964년 6월 21일 : 공소 건립 (건평 : 10평, 목조건물)
1964년 8월 15일 : 공소 축성식.(노신부님)
1965년 2월 28일 : 종각 건립(교우 부담).종은 대구에서 구입 (대금: 11,950원).
1965년 3월 28일 : 종 축성.
1965년 7월 29일 : 14처 구입. (프랑스 노 신부님 누님이 보내 옴).
1966년 3월 31일 : 공소 자체 기금 조성을 위해 5마력 발동기 로라 보리 타작기를 구입.
(당시 자금이 없어 본당 신부님께 빌려 1년 동안 교우들이
매일 돌아가면서 봉사 해 이익금으로 신부님께 빌린 돈을 갚음).
1967년 5월 20일 : 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공소 증축(길이 21자)
(입암공소 사람들 카페에서 발췌)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길 28-4 (원리2리 269번지)
3. 입암공소
관할본당: 영양성당
1958년 설립
1954년에 강원도 삼척본당에서 영세를 받은 청년 조천규울바노가 고향인 이곳으로 귀향.
당시에는 입암은 물론 영양에도 성당이나 공소가 없었고 안동본당에 가서 미사 참례.
입암에서 교우를 찾던 중 초등학교 학부형 회의에서
이 루시아 할머니를 만나 조 울바노 형제의 사랑방에서 첨례를 보게 됨.
그 후 옹기굴 교우 한 가정이 객지에서 전입한 것을 알고 찾아
3 가족이 매 주 첨례를 보게 되었음.
1955년에 조 울바노 형제가 군 입대하게 되고,
1958년 12월 30일 : 조 울바노 형제의 제대 후 다시 첨례를 보며
전교를 시작하면서 공소 설립을 한다.(안동본당 소속)
1962년 12월 : 안동본당에서 영덕본당에 소속됨.
1963년 10월 8일 : 영양본당이 설립됨에 따라 영양 본당에 속한 공소가 됨.
('입암공소 사람들' 카페에서 발췌)
경북 영양군 입암면 입암로 64-10 (산해리 72-1)
4. 청기공소
관할본당: 영양성당
1967년 설립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영세를 받은 마을의 한 청년이 고향 청기로 돌아와서
또래의 청년들과 (공소)활동을 하면서 가톨릭이 전래된 계기로,
처음에 10여명이 마을 문중 정자나 가정집에서 예절을 해오다가
약 40년 전(1980년대)에 가정집을 구입하였다고 한다.
그후 10여년 전(2010년 즘)에 현재의 공소를 마련했다고 한다.
2022년 올해로 공소 설립 55주년이 되었다고 해서
계산을 해보니 1967년이 청기공소 설립년도가 된다.
70년대 중반 까지도 신자가 계속 늘어났으나
가톨릭 안동농민회 오원춘 사건으로 인해 신자 수가 확 줄었다가,
안동농민회 사건의 오해가 풀어지면서 몇년 전부터
다시 신자가 늘어나서 현재는 30여명이 된다고 한다.
위의 내용을 말씀해주신 분이 청기공소 제4대 공소회장을 역임했고,
농민회 사건의 주인공인 오원춘 알퐁소였다.
경북 영양군 청기면 청기2길 8-13 (청기리 797-1번지)
5. 신애공소
(공동체내의 공소)
관할본당: 영덕성당
이 마을은 오천(午泉)리 산 219번지 산 중턱에 위치한 음성 나환자(癩患者) 마을로
1965년 3월 정부 주선으로 신애원(信愛院) 또는 신애농장(信愛農場)으로 오천 1리에 속해 있다가
1989년 1월 1일 오천리 일부를 분리하여 신애리로 독립한 마을이다.
복숭아 등 과수재배, 양계(養鷄), 양돈(養豚)으로 생활하며
천주교 안동교구(安東敎區)에서 지원받기도 한다.
(영덕군 홈페이지에서 발췌)
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공소 설립 시기는 1960년 중후반 정도로 추측된다.
경북 영덕군 지품면 신애길 76 (신애리 10번지)
6. 탑리공소
관할본당: 의성성당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길 109
7. 쌍 호 공 소
관할본당: 안계성당
2003년에 복음 전래 2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801년 전후로 복음이 전래된 것으로 보아
2023년 지금으로는 복음 전래 된 지 대략 220년이 된다
의성군 안사면 청호리의 청호(쌍호) 공소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예천. 안동과 접하고 있다.
쌍호 공소가 있는 마을을 과거에는 '점마'라고 부르며,
교회 공식기록으로는 '청우리' 라고 하였다.
옛적부터 용기를 굽던 마을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된 시기는 대략 1801년 신유박해 전후로서
박해를 피해 낙동강가의 외진 마을인 이곳에 이주한 박씨 집안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처음 이곳에 주거한 신자는 박근하 회장의 7대조인 박수광(1770년∼1837년)으로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중
박해를 받아 형제가 피난길에 올랐는데, 다른 형제는 전라도 무주로 가고
본인은 이곳으로 와서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박해를 피해 숨어 든 신자들이 이곳에 모여 들어
웅기를 구워 팔면서 매주일 첨례를 드렸다.(한국의 성지와 사적지에서 발췌)
경북 의성군 안사면 안사풍천길 1078-1
2022년 지금도 마을 전체에서 딱 한사람만 빼고 전부 신자이다.
공소 옆 청기와 한옥 건물이 옛 사제관으로 신심실(信心室)이라고 불리며,
코로나 유행 전에는 레지오회합실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8. 곤대공소
(양서공소)
1909년 설립
이 곤대공소는 1905년 경 파리외방전교회 가실본당 옥 신부 및
지보면 도장공소 전교사 김지희가 전교하여
도장공소에서 이 곳 출신들이 영세를 받아 시작되었다.
1909년에 공소로 설정되었다.(예천성당 카페)
관할본당: 다인성당
경북 의성군 다인면 서부로 3499 (양서리 674-3번지)
9. 상광공소
1922년 설립
관할본당: 다인성당
경북 의성군 다인면 덕미1길 23 (덕미리 783-1번지)
10. 신락공소
관할본당: 다인성당
1964년에 신락마을에 신락원으로 개원한 한센인 정착촌(공동체)
경북 의성군 다인면 신락3길 74 (신락리 29-24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