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의 행정구역 변화
인천광역시는 조선 시대 인천도호부(仁川都護府) 지역이다. 인천광역시 일대는 삼국 시대에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 등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통일 신라 때에는 '소성현(邵城縣)'으로 불리었으며 1105년(고려 숙종 10) '경원군(慶源郡)'으로 되었다. 그러나 고려 인종 때에 경원군은 다시 인주(仁州)로 개칭되었다. 현재 인천 읍호는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야 지니게 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세조의 모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외향이므로 도호부로 지명이 바뀌었다. 1883년(고종 20)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인천 일대는 급격한 변화를 겪기 시작하였다. 조계지역이 설정되고, 영사관이 설치되면서 제물포 어촌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인천항은 외국문물의 유입과 외국 경제침략의 기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인천부 인천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1896년(건양 1)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기도 인천부로 되었다. 일제 강점 이후 1914년 과거의 조계가 있던 개항장 일대가 인천부로 되었다. 이때 여기에 속하지 않았던 부평군 등의 인천부 지역은 인근의 부천군으로 통합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49년 인천부가 인천시로 되었으며 1963년에는 인근의 부천군 작약도가 편입되기도 하였다. 1968년부터 구제가 실시되면서 중구, 동구, 남구, 북구 등의 4개 구 지명이 만들어졌다. 1981년에 인천시는 인천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기도에서 분리되었으며, 1988년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서구와 남동구가 신설되었다. 1995년 인천직할시는 인천광역시로 개칭되면서 강화군 · 옹진군 전부와 김포군 검단면을 통합하였다. 같은해 북구가 부평구로 지명을 바꾸었으며, 계양구와 연수구가 신설되었다. 강화군과 옹진군은 인천광역시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독립된 행정단위였다. 원래 강화군은 조선 시대의 강화부(江華府)와 교동부(喬桐府)가 통합되어 형성된 지역이다. 1895년(고종 32)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인천부 강화군이 되었다가, 1896년(건양 1)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기도 강화부가 되었다. 1906년에 다시 강화군이 되었고, 1910년에 교동군에서 삼산면이 편입되었다. 교동부 지역은 1895년(고종 32) 인천부 교동군이 되었다가 1896년(건양 1) 경기도 교동군이 되었다. 1914년에 강화군과 교동군을 통합하여 강화군이 되었다.
옹진군은 한국전쟁 전에 황해도 남서부 및 경기도와 인천 앞바다에 산재하는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었다. 옹진이란 읍호는 1018년(고려 현종 9)에 고을에 현이 설치되면서 갖게 되었다. 1896년(광무 1) 황해도 옹진군이 되었고, 1945년 분단 이후 일부 지역이 경기도 옹진군이 되었다. 휴전 이후 송림면, 백령면 등 2개 면이 수복되면서 이곳에 출장소가 설치되고, 이후 면으로 승격되면서 면지명이 형성되었다. 1995년에 인천광역시로 통합되면서 7면 2출장소가 되었다. 1999년에는 송림면을 연평면으로 지명을 개칭하였다.
출처:(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024-09-07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