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0일
대구 '2019 이월드 별빛축제'를 보러갔다.
매년 가는 곳인데 올해는 재수좋게 12월초에 입장권을 엄청 싸게 구입했다.
헌데 12월 15일 까지 유효기간인것을 지나쳐버려서 못쓰게 되었다.
그래서 연말에 별로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별로 없어서 '티몬'에서 다시 이월드 입장권을 구입했다.
야간 자유이용권 가격이 28,000원인데 19,900원을 주고 샀다.
그리고 구경하고 밤늦게 기차타고 오는것이 힘들어 대구에서 자고 '앞산'도 구경할겸 호텔을 예약했다.
호텔은 동선을 고려해서 반월당역에서 5분거리에 있는 '토요코인 동성로점'호텔로 예약했다.
이 호텔은 찾기 쉬운 동성로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1-6층 까지는 상가로 이용 되고 7~9 층 까지만 호텔로 이용되고 있었다. 호텔카운터는 7층에 있고 예약하고 체크인 할때 숙박요금을 지불하는 시스템이었다.
체크인은 4시부터 이고 체크아웃은 조금 이른 시간인 10시인데
1박요금은 2인 80,000원.
그리고 좋았던 것은 무료였던 조식. 먹을 게 별로 없었지만 아침에 간단히 요기하는데는 괜찮았다.
호텔방은 작고 깔끔했지만 스팀이 아니고 에어컨으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답답했다.
두번 이용은 안할 것 같다.
구포역에서 14시 19분 무궁화호을 타고 3시 30분 동대구역에 도착. 16시에 호텔 체크인하고 16시 30분에 호텔을 출발 17시에 이월드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관람객은 많지 않았고 거의 젊은 연인들 이었다.
놀이기구를 탈 것도 아니고 화려한 장식들을 구경하면서 사진찍고 식사를 하고 9시쯤 호텔로 갔다.
원래 계획은 31일에 앞산으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앞산전망대에 올라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지는 바람에 포기하고 10시 38분 itx새마을열차를 타고 내려왔다
구운몽
3부
하루는 승상이 대부인을 모시고자 하여 상소를 할 때 , 말씀이 지극하고 간절하여 상이 보고 ,
"양소유는 극진한 효자이다 ."
하고 , 황금 일천 근과 , 비단 팔백 필과 , 백옥으로 꾸민 가마를 주며 말하였다 .
"즉시 가 대부인을 위하여 잔치하고 모셔 오라 ."
승상이 황태후께 하직할 때 , 태후가 비단으로 장식된 신을 주었다 . 승상이 물러 나와 두 공주와 진씨 , 춘랑을 이별하고 발행하여 낙양에 다다르니 , 계섬월과 적경홍이 벌써 객관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
승상이 웃으며 말하였다 .
"내 이 길은 황명이 아니요 , 사사로운 용무로 가는데 두 낭자는 어찌 알고 왔는가 ?"
대답하여 말하였다 .
"대승상 위국공이자 부마도위 (駙馬都尉 )의 행차를 깊은 산골이라도 다 아는데 , 첩들이 아무리 산림에 숨었은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 또한 승상의 부귀는 천하의 으뜸이라 첩들도 즐겁거니와 소문에 두 공주를 부인 삼으셨다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 첩들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승상이 말하였다 .
"한 분은 황상 폐하의 누이요 , 또 한 분은 정사도의 소저이다 . 황태후가 양녀를 삼아 영양공주를 봉하였으니 계랑이 정한 바이다 . 무슨 투기 (妬忌 )가 있겠는가 . 두 공주가 다 유한 (幽閑 )한 덕이 있으니 두 낭자의 복이다 ."
섬월과 경홍이 크게 기뻐하였다 .
승상이 발행하여 고향에 갔다 .
각설이라 .
승상이 십육세에 모친께 이별하고 과거에 갔다가 다시 사 년 사이에 대승상 위국공이 된 위의를 갖추고 대부인께 돌아가 뵈니 , 부인 유씨가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
"네가 진실로 내 아들 양소유냐 ? 근근히 너를 기를 때 이리 될 줄 어찌 알았겠느냐 ?"
하고 , 반가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손을 잡고서 눈물을 흘렸다 .
승상이 조상의 무덤을 깨끗이 한 후 제사지내고 임금께 받은 금과 비단으로 대부인을 위하여 친구와 일가 친척을 다 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대부인을 모셔 경성으로 올라 갈 때 , 각도 (各道 )의 수령이며 여러 고을의 태수 (太守 )들이 뉘 아니 모셔 따라오지 않았겠는가 ?
황성에 이르러 대부인을 모셔 승상부에 모시고 들어가 황제와 태후께 입조하니 황제가 불러 만나보고 금과 비단을 많이 상사 (賞賜 )하거늘 , 택일하여 임금께서 내려준 새 집에 모시고 두 공주와 진숙인 , 가유인을 다 예로써 알현 (謁見 )하고 만조 백관을 청하여 삼 일을 잔치할 때 , 궁실 거처의 휘황함과 풍악 음식의 찬란함은 세상에 비할 데 없었다 .
한참 후에 문지기가 고하였다 .
"문 밖에서 두 여자가 승상과 대부인 뵙기를 청합니다 ."
승상이 말하였다 .
"분명 계섬월과 적경홍이다 ."
하고 , 대부인께 고하고 부르자 , 섬월과 경홍이 머리를 숙여 계단 아래에 서 뵈니 진실로 절대 가인이어서 모든 손님들이 다 칭찬해 마지 않았다 . 진숙인이 섬월과 옛정이 있기에 서로 만나 슬픔과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
영양공주가 섬월을 불러 술 한 잔을 주어 말하였다 .
"이것으로 나를 천거한 공을 사례한다 ."
대부인이 말했다 .
"너희는 섬월에게만 사례하고 두련사의 공은 생각지 아니하느냐 ?"
승상이 말하였다 .
"오늘날 이렇게 즐기는 것은 다 두련사의 덕이다 ."
하고 , 즉시 사람을 자청관 (紫淸觀 )에 보내어 청하니 두련사는 촉나라에 들어가고 없었다 .
이로부터 승상부 창기 (娼妓 ) 팔백인을 동부와 서부를 만들어 , 동부 사백은 섬월이 가르치고 서부 사백 인은 경홍이 가르치니 가무가 날로 새로워 , 비록 이원 (梨園 )의 배우들이라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
하루는 공주와 여러 낭자가 대부인을 모셔 앉았는데 , 승상이 한 편지를 들고 들어와 난양을 주어 말하였다 .
"이는 월왕의 편지니 보십시오 ."
난양이 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
"지난번 국가에 일이 많아 낙유원 (樂遊原 )에 말을 머물게 하는 좋은 기회와 곤명지 (昆明池 )에서 배 타고 노는 즐거운 일을 이제껏 못하였는데 , 지금 황상의 넓으신 덕과 승상의 공명을 힘입어 천하태평하였으니 , 원컨대 승상과 함께 봄빛을 구경코자 합니다 ."
난양이 승상께 말하였다 .
"월왕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
승상이 말하였다 .
"봄빛을 희롱코자 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
난양이 말하였다 .
"월왕의 뜻이 본디 풍류를 좋아하여 무창 (武昌 )의 명기 (名妓 ) 만옥연을 얻어두고 , 승상 궁중에서 보았던 미인들과 한번 다투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
승상이 웃으며 말하였다 .
"과연 그렇소이다 ."
영양공주가 말하였다 .
"그렇다면 아무리 노는 일이라도 어찌 남에게 질 수야 있겠습니까 ."
하고 , 계섬월과 적경홍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
"군병을 십 년 가르치기는 한번 싸움의 승패를 위한 것이니 , 이날 승부는 다 두 낭자에게 있다 . 부디 힘써 하라 ."
섬월이 말하였다 .
"월궁의 풍류는 일국의 으뜸이요 , 만옥연은 천하의 절색입니다 . 첩의 얼굴과 음율이 다 부족하니 누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
경홍이 이 말을 듣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
"섬랑 , 우리 두 사람이 관동 칠십 여 주를 돌아다녔지만 당할 사람이 없었는데 만옥연 한 사람을 두려워 하는가 ?"
섬월이 말하였다 .
"홍랑은 어찌 이처럼 자신하는가 ?"
하고 , 승상께 고하였다 .
"'교만한 사람과 하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 .'고하는데 , 홍랑의 말이 과하니 패배할 것 같습니다 . 또 홍랑의 얼굴이 아리따우면 승상이 어찌 남자로 속으셨겠습니까 ?"
영양이 말하였다 .
"홍랑의 얼굴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승상의 눈이 밝지 못한 것이지요 ."
승상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부인도 눈이 있으면 어이 남자인 줄을 모르셨습니까 ?"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
이럭저럭 월왕과 모이는 날이 되자 , 승상이 의복과 안장 얹은 말을 각별히 가다듬어 모양을 내고 계섬월과 적경홍 등 팔백 창기를 거느려 좌우에 모시게 하니 진실로 춘삼월 복숭아 꽃 속이었다 . 월왕이 또한 풍류를 성대히 갖추고 승상을 맞아 서로 자리를 정한 후에 , 승상과 월왕이 말도 자랑하고 활 쏘는 법도 시험하여 서로 칭찬하는데 문득 심부름하는 사람이 고하였다 .
"어린 내시가 어명을 모셔 왔습니다 ."
월왕과 승상이 놀라 일어나 맞이하니 , 어린 내시가 임금이 내려준 황봉주 (黃封酒 )를 부어 권하며 말하였다 .
"글제를 받들어 글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
월왕과 승상이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 각각 사운 (四韻 ) 시를 지어 보냈다 .
이때 여러 빈객은 차례대로 쭉 벌여 앉았고 좋은 술과 맛난 안주를 한꺼번에 올리니 , 위의가 찬란하고 음식이 난만하였다 . 각각 풍류와 온갖 노래는 서왕모 (西王母 )의 요지연 (瑤池宴 )과 한무제 (漢武帝 )의 백량대 (柏粱臺 )라도 미치지 못하였다 .
월왕이 승상에게 말하였다 .
"승상께 조그마한 정성을 아뢰고자 하니 소첩 등을 불러 가무 (歌舞 )하여 승상을 즐겁게 하고자 합니다 ."
승상이 말하였다 .
"제가 감히 대왕의 궁인과 상대하겠습니까 ? 저 또한 시첩 (侍妾 )을 시켜 재주를 아뢰어 대왕의 흥을 돕고자 합니다 ."
이에 계섬월과 적경홍과 월궁의 네 미인이 나와 뵈니 승상이 말하였다 .
"옛날 현종 (玄宗 ) 황제 시절에 궁중에 한 미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부운이요 , 얼굴은 일색이었습니다 . 이태백이 그 미인을 보고자 황제께 청하였지만 겨우 말소리만 듣고 얼굴을 보지 못하였는데 , 저는 대왕의 네 선녀를 보니 천상 선인 (仙人 )인가 하거니와 저 미인의 이름은 무엇이라 합니까 ?"
월왕이 말하였다 .
"저 미인은 금릉 (金陵 )의 두운선 (杜雲仙 )이요 , 진류 (陣留 )의 소채아 (少蔡兒 )요 , 무창 (武昌 )의 만옥연 (萬玉燕 )이요 , 장안 (長安 )의 호영영 (胡英英 )입니다 ."
승상이 말하였다 .
"만옥연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는데 , 그 얼굴을 보니 과연 소문과 같습니다 ."
월왕이 또 섬월의 성명을 들은 바 있어 물어 말하였다 .
"이 양랑자를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
승상이 말하였다 .
"제가 과거 보러 오는 날에 마침 낙양 땅에서 섬월은 제 스스로 좇아왔고 , 경홍은 연나라를 치러갈 때 한단 (邯鄲 ) 땅에서 스스로 좇아왔습니다 ."
월왕이 손벽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승상이 한림을 띠고 황금인을 차고 도적을 쳐 승전하고 돌아오니 적낭자가 알아보기는 쉬웠겠지만 , 계낭자는 승상이 곤궁할 때 부귀할 줄을 알았으니 기특하구나 ."
하고 , 술을 가득 부어 섬월에게 상으로 주었다 .
승상과 월왕이 장막 밖의 무사들이 활 쏘고 말 달리는 것을 보고 있다가 월왕이 말하였다 .
"미인이 말타는 재주를 봄직 하기에 궁녀 수십 인을 가르쳤는데 승상 부중 (府中 )에도 또한 있습니까 ? 원컨대 함께 활 쏴 사냥하며 한 즐거움을 ??[원문에 없음 ]지이다 ."
승상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수십 인을 뽑아 월궁녀와 승부를 다툴 때 , 경홍이 고하여 말하였다 .
"비록 활을 잡아보지는 아니하였으나 남이 활 쏘는 것을 익히 보았으니 잠깐 시험코자 합니다 ."
승상이 기뻐해 즉시 찬 활을 끌러 주었다 .
경홍이 여러 미인에게 말하였다 .
"비록 마치지 못하여도 웃지 말라 ."
하고 , 말에 올라 채찍질을 하는데 마침 꿩이 날자 쏴 말 아래 떨어뜨리니 , 승상과 월왕이 다 놀라고 월궁 미인이 모두 탄복하며 말하였다 .
"우리는 십 년 헛공부를 하였다 ."
계섬월과 적경홍이 , '우리 두 사람이 월왕의 미인들에게 첫 자리를 사양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워 안타깝구나 .'라고 생각하며 , 문득 바라보니 두 미인이 수레를 타고 장막 밖에 와 고하였다 .
"양승상의 소실 (小室 )입니다 ."
하고 , 수레에서 내리거늘 보니 하나는 심요연이요 , 또 하나는 완연히 꿈 속에서 보던 동정 용녀였다 . 승상께 절하며 알현하니 승상이 월왕을 가리켜 말하였다 .
"이 분은 월왕 전하시다 ."
두 사람이 예로써 알현하였다 .
두 사람이 계섬월 , 적경홍과 함께 앉아 있는데 승상이 월왕에게 말하였다 .
"저 두 사람은 내가 토번을 정발할 때 얻었지만 미처 데려오지 못하였는데 , 오늘 이 성대한 모임을 듣고 온 듯합니다 ."
왕이 그 두 사람을 보니 자색이 섬월과 같았지만 고고한 태도와 뛰어난 기운은 더하였다 . 왕이 기이히 여기고 월궁의 미인들도 다 안색이 바뀌었다 .
왕이 물어 말하였다 .
"두 낭자는 어디 사람이며 성명은 누구냐 ?"
하나가 말하였다 .
"첩은 심요연입니다 ."
하고 , 또 하나는 말하였다 .
"백능파입니다 ."
왕이 말하였다 .
"두 낭자에게 무슨 재주가 있느냐 ?"
요연이 말하였다 .
"변방 밖 사람이라 사죽 (絲竹 ) 소리를 듣지 못하였으니 대왕께서 즐기실 바는 없지만 다만 허랑한 검술을 배워 용진 (龍陳 )은 압니다 ."
월왕이 크게 기뻐하여 승상에게 말하였다 .
"현종조에 공손대랑 (公孫大娘 )이 검무로 유명하였지만 후세에 전해지지 않아 항상 두보의 글만을 읊고 쾌히 보지 못함을 한탄하였는데 , 낭자가 능히 하면 쾌할 일이다 ."
하고 , 승상과 각각 찬 칼을 끌러 주었다 . 요연이 한 곡조를 추니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신통 기이한 법이 많아 왕이 놀라 정신을 잃었다가 한참 후에 말하였다 .
"세상 사람이야 어찌 저럴 수 있겠는가 , 낭자는 진실로 신선이구나 ."
하고 또 능파에게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였다 .
"첩은 상강 (湘江 ) 가에 살기에 항상 비파 타는 노래를 때때로 익혔으나 귀한 분께서 들음직은 할 듯합니다 ."
왕이 말하였다 .
"상비 (湘妃 )의 비파 소리를 옛사람의 시구 (詩句 )를 통해서나 알 수 있었을 뿐이다 . 낭자가 능히 하면 쾌할 일이다 . 어서 타라 ."
능파가 한 곡조를 타니 맑은 노래와 신통한 술법 (術法 )이 사람을 슬프게 하고 조화를 아는 듯하였다 .
왕이 기이히 여겨 말하였다 .
"진실로 인간의 곡조 아니다 . 정말로 선녀구나 ."
날이 저물어 잔치를 파하니 가무에 상으로 내린 금과 비단이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 승상과 월왕이 각각 풍류를 여러 가지로 갖추어 성문에 들어오니 장안 사람이 뉘 아니 구경하며 백 세 노인도 혹 감탄하며 말하였다 .
"현종 황제가 화청궁 (華淸宮 )에 거동하실 때 위엄이 이와 같았는데 오늘 또 다시 보는구나 ."
이때 두 공주가 진가 (秦家 )의 두 낭자를 데리고 대부인을 모셔 승상이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렸다 .
각설 .
이때 승상이 당에 오르자 좌우가 다 놀랐다 . 심요연과 백능파 두 사람을 대부인과 두 공주께 뵈니 부인이 말하였다 .
"전일 승상이 두 낭자의 공로를 칭찬하여 일찍 보고자 하였는데 어찌 이리 늦었느냐 ?"
연파가 말하였다 .
"첩 등은 먼 지방의 천인입니다 . 비록 승상의 한번 돌아보신 은혜를 입었으나 두 부인께서 한 자리 땅을 허락하지 않으실까 두려워 감히 오지 못하였습니다 . 서울에 들어와 두 공주께서 관저 (關雎 )와 규목 (木 )의 덕이 있으심을 듣고 이제야 나아와 뵙고자 했는데 , 마침 승상께서 성대히 노신다는 것을 듣고 외람되게 참예하고 돌아오니 첩 등의 영광스러운 행운인가 합니다 ."
공주가 웃으며 말하였다 .
"우리 궁중에 춘색 (春色 )이 난만한 것은 다 우리 형제의 공이니 승상은 아십니까 ?"
승상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저 두 사람이 새로 와 공주의 위풍이 두려워 아첨하는 말을 공주는 공을 삼고자 합니까 ?"
모두가 크게 웃었다 .
진가의 두 낭자가 섬월에게 물어 말하였다 .
"오늘 승부는 어떠했는가 ?"
경홍이 말하였다 .
"섬랑이 내 큰소리를 비웃었는데 내 한마디로 월궁 미인들의 기운을 꺾었으니 섬랑에게 물으시면 아실 것입니다 ."
섬랑이 말하였다 .
"홍랑의 말 타고 활 쏘는 재주는 절묘하다 할 것이지만 , 저 월궁 미인의 기운을 꺽은 것은 다 새로 온 두 낭자의 자색과 재주 때문입니다 ."
그 이튿날 승상이 황상께 입조할 때 , 태후가 승상과 월왕을 보니 두 공주는 벌써 들어가 모시고 있었다 .
태후가 월왕에게 말하였다 .
"어제 승상과 춘색을 다투었다 하더니 승부는 어떠했는가 ?"
월왕이 말하였다 .
"승상의 복은 보통 사람과 같을 바가 아닙니다 . 다만 공주에게도 복이 되겠습니까 ? 원컨대 낭랑은 이 말씀으로 승상을 심문하십시오 ."
승상이 말하였다 .
"월왕이 신에게 졌단 말은 이태백이 최호 (崔顥 )의 시를 겁내는 것과 같습니다 . 공주에게 복이 되고 아니됨은 공주에게 물으십시오 ."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
"부부는 한 몸이니 영욕고락 (榮辱苦樂 )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
월왕이 말하였다 .
"누이의 말이 비록 좋으나 자고로 부마 중에 누가 승상같이 방탕하였겠습니까 ? 청컨대 승상을 벌하십시오 ."
태후가 크게 웃고 술 한 잔으로 벌하였다 . 승상이 크게 취하여 돌아올 때 , 두 공주도 함께 왔다 .
대부인이 물어 말하였다 .
"전에도 선온 (宣 )의 명이 있었지만 이처럼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 어찌 오늘은 과히 취하였는가 ?"
승상이 말하였다 .
"공주의 오라비인 월왕이 태후께 고자질하여 소자의 죄를 지어내었는데 마침 말씀을 잘 드려 한 말 술로 벌을 받았습니다 . 소자가 만일 주량이 약했으면 거의 죽을 뻔하였으니 , 대개 월왕이야 낙원 (樂原 )에서 진 일을 설욕하려 한 일이겠지만 난양도 내가 희첩 (姬妾 )이 많음을 시기하여 그 오라비와 함께 나를 모해하였으니 , 모친은 한 잔 술로 난양을 벌하여 소자를 설욕하여 주십시오 ."
유부인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공주가 비록 술을 먹지 못하나 취객을 위하여 마다하지는 못할 것이다 ."
하고 , 승상을 속여 설탕물 한 잔으로 벌하였다 .
이때 두 부인이 육낭자와 서로 즐기는 뜻이 고기가 물에서 놀고 새가 구름에서 나는 것 같아서 서로 은정을 잊지 못하니 , 비록 두 부인 현덕 (賢德 )에 감화 받아서였지만 대개 남악산에서 발원 (發願 )한 때문이었다 .
하루는 두 공주가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
"옛 사람이 자매형제가 혹 남의 아내도 되고 혹 남의 첩도 되었는데 , 우리 이처육첩 (二妻六妾 )은 의가 골육 같고 정이 형제 같으니 어찌 천명 (天命 )이 아니겠는가 . 타고난 성이 한 가지가 아니고 지위의 높고 낮음이 같지 않음은 족히 거리낄 일이 아니다 . 마땅히 결의형제 (結義兄弟 )하여 일생을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 ?"
육 낭자가 다 겸손히 사양하고 춘운과 섬월이 더욱 응치 아니하자 정부인이 말하였다 .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군신 사이였지만 형제의 의가 있었고 , 세존의 처와 등가여자 (登伽女子 )는 높고 낮음이 현격히 차이가 났지만 함께 제자가 되었으니 , 당초 미천함이 앞날을 성취하는데 무엇이 관계하겠는가 ?"
두 공주가 이에 육 낭자를 데리고 관음화상 앞에 나아가 분향 재배한 후 , 형제 맺은 맹세를 하고 글을 지어 , '각각 자매로 스스로 처신하라 .' 하였지만 , 육 낭자가 오히려 명분을 지키어 말이 공순하나 정의 (情誼 )는 더 각별하였다 .
팔 선녀가 각각 자녀를 두었다 . 양부인 , 춘운 , 섬월 , 요연 , 경홍은 아들을 낳았고 , 채봉 , 능파는 딸을 낳았는데 , 낳고 기르는데 괴로움이 없었다 .
이때 천하가 아주 태평하여 승상이 나면 현명한 임금을 모셔 후원에서 사냥하고 , 들면 대부인을 모셔 북당 (北堂 )에서 잔치하니 이럭저럭 세월이 물 흐르는 듯 하였다 . 승상이 장상 (將相 )이 되어 권세를 잡은 지 이미 수십 년이었다 . 유부인이 천수 (天壽 )를 다하고 별세하자 승상이 슬퍼 야윔이 과도하였다 . 임금과 왕비가 중사 (中使 )를 보내 위로하고 왕후예 (王后禮 )로 장사 지내게 하였으며 , 정사도 부처가 또 상수 (上壽 )하니 승상이 서러워 하기를 정부인과 같이 하였다 .
승상에게 육남 이녀가 있었다 . 맏아들은 대경 (大卿 )이니 정부인의 소생으로 이부상서 (吏部尙書 )를 하고 , 둘째는 차경 (次卿 )이니 적씨의 소생으로 경조윤 (京兆尹 )을 하고 , 셋째는 순경 (舜卿 )이니 가씨의 소생으로 어사중승 (御史中丞 )을 하고 , 넷째는 계경 (季卿 )이니 난양의 소생으로 병부시랑 (兵府侍郞 )을 하고 , 다섯째는 오경 (五卿 )이니 계씨의 소생으로 한림학사 (翰林學士 )를 하고 , 여섯째는 치경 (致卿 )이니 심씨의 소생으로 나이 열 다섯에 용력이 절륜하여 금오상장군 (金吾上將軍 )이 되었다 . 맏딸의 이름은 전단 (傳丹 )이니 진씨의 소생으로 월왕의 며느리가 되었고 , 차녀의 이름은 영락 (永樂 )이니 백씨의 소생으로 황태자의 첩여가 되었다 .
승상이 일개 서생으로 환란을 평정하고 태평을 이루어 공명 부귀가 곽분양 (郭汾陽 )과 명성을 나란히 하였지만 , 곽분양은 육십에 상장 (上將 )이 되였는데 상은 이십에 장상 (將相 )이 되어 위로 임금의 마음을 얻고 아래로는 인망이 있어 부디 복을 누리기는 천고에 없는 일이었다 .
승상이 나라의 큰 명령 아래에 있기 어렵기에 상소하여 '물러가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지만 ,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고집스럽게 만류하였다 . 그후 또 상소하여 뜻을 간절히 하자 ,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말하였다 .
"경의 높은 절개를 이루어 주고자 하지만 , 황태후께서 승하하신 후에 어찌 차마 두 공주를 멀리 떠나보낼 수 있겠는가 ? 성남 사십 리에 별궁이 있으니 이름은 취미궁 (翠微宮 )이다 . 이 궁이 한적하니 경이 은거함이 마땅하다 ."
하고 , 승상을 위국공 (魏國公 )을 더 봉하고 오천 호를 더 상사하며 아주 승상의 인수 (印綬 )를 거두었다 . 승상이 큰 은혜에 더욱 감격하여 즉시 취미궁으로 가니 , 이 궁은 종남산 (終南山 ) 가운데 있어 누대 (樓臺 )가 장려하며 경치가 아주 빼어나 진실로 봉래 (蓬萊 ) 선경 (仙景 )이었다 .
승상이 그 정전 (正殿 )을 비워 나라의 조지 (詔旨 )와 임금이 지은 시문 (詩文 )을 받들어 모시고 그 남은 누각과 정자는 두 공주와 여러 양자가 나누어 거처케 하였다 .
승상이 두 부인과 육 낭자를 데리고 물에 다달아 달을 희롱하고 산에 들어가 매화를 찾아 , 혹 시도 화답하며 거문고도 타니 만년의 조용한 복을 뉘 아니 칭찬하겠는가 ? 팔월 보름날은 승상의 생일이어서 모든 자녀들이 다 헌수 (獻壽 )하여 잔치하니 , 그 번화한 모습은 비할 데 없었다 .
이럭저럭 구월이 당하니 국화가 만발하여 구경하기 좋은 때였다 . 취미궁 서편에 한 높은 누각이 있으니 올라보면 팔백 리 진천 (秦川 )이 손바닥 펼 친 모양으로 훤히 보였다 . 승상이 부인과 낭자를 데리고 올라가 가을 경치를 희롱하는데 , 어느덧 석양은 기울어지고 구름은 나즉히 깔려 가을 빛이 찬란하니 마치 그림 속 같았다 .
승상이 옥퉁소를 내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처량하여 형경 (荊卿 )이 역수 (易水 )를 건널 때 고점리 (高漸離 )가 비파를 켜고 , 초패왕 (楚覇王 )이 해하 (垓下 )에서 삼경에 우미인 (虞美人 )을 이별하는 노래 같았다 . 모든 미인이 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두 부인이 물어 말하였다 .
"승상이 일찍이 공명을 이루고 오래 부귀를 누려 오늘날 좋은 풍경을 당하였는데 , 퉁소 소리가 처량하여 전일과 다르니 어찌된 일입니까 ?"
승상이 옥퉁소를 던지고 난간에 기대어 밝은 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
"동쪽을 바라보니 진시황 (秦始皇 )의 아방궁 (阿房宮 )이 풀 속에 외롭게 서 있고 , 서쪽을 바라보니 한무제 (漢武帝 )의 무릉 (茂陵 )이 가을 풀 속에 쓸쓸하며 , 북쪽을 바라보니 당명황 (唐明皇 )의 화청궁 (華淸宮 )에 빈 달빛뿐이라오 . 이 세 임금은 천고의 영웅이어서 사해 (四海 )로 집을 삼고 억조창생 (億兆蒼生 )으로 신첩 (臣妾 )을 삼아 해와 달과 별을 돌이켜 천세를 지내고자 하였지만 이제 어디 있는가 ? 소유는 하동 (河東 )의 한 베옷 입은 선비로 다행히 현명하신 임금을 만나 벼슬이 장상 (將相 )에 이르고 또 여러 낭자와 함께 서로 만나 정이 두텁고 심정이 늙도록 더 긴밀하니 , 전생 연분이 아니 면 어찌 그러하겠소 ? 연분이 있어 모이고 연분이 다하면 흩어지기는 천리 (天理 )의 떳떳한 일이오 . 우리 한번 돌아가면 높은 누각과 굽은 연못과 노래하던 궁전과 춤추던 정자들이 거친 풀과 쓸쓸한 연기로 적막한 가운데 나무하는 아이와 풀 뜯어 마소 치는 아이들이 손가락질하여 이르되 , '양승 상이 낭자와 함께 놀던 곳이다 .' 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소 .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 (儒道 )·선도 (仙道 )·불도 (彿道 )라오 . 유도는 윤리와 기강을 밝히고 사업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죽은 후에 전할 따름이요 , 선도는 허망하니 족히 구할 것 아닌데 , 오직 불도는 내 근래에 꿈을 꾸면 항상 부들 방석 위에서 참선하는 것이 불가에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 같소 . 내 장차 장자방 (張子房 )이 적송자 (赤松子 )를 좇은 것같이 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 (觀音 )께 뵈고 , 의대 (義臺 )에 올라 문수보살 (文殊菩薩 )에 예불하여 , 불생 불멸의 도를 얻고자 하나 , 다만 그대들과 함께 반평생을 서로 따르다가 장차 멀리 이별하려 하니 자연 비창한 마음이 퉁소 소리에 나타났던 것이오 ."
여러 낭자도 다 남악 선녀로서 세속의 인연이 장차 다한 가운데 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겠는가 ?
다 말하였다 .
"상공이 번화한 중에 이 마음이 있으니 분명 하늘의 뜻입니다 . 첩 등 여덟 사람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 상공을 기다릴 것이니 , 상공은 밝은 스승을 얻어 큰 도를 깨달은 후에 첩 등을 가르치십시오 ."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맞으니 무슨 근심이 있겠소 ."
여러 낭자가 술을 내어와 작별하려 할 때 , 문득 지팡막대 끄는 소리가 난간 밖에서 나 여러 사람이 다 의심하였다 . 한참 후에 한 노승이 나타났는데 눈썹은 한 자나 길고 눈은 물결 같아 얼굴과 동정 (動靜 )이 보통의 중은 아니었다 .
대 (臺 ) 위에 올라 승상과 자리를 맞대고 앉아 말하였다 .
"산야 (山野 )의 사람이 대승상께 뵙니다 ."
승상이 일어나 답례하여 말하였다 .
"사부 (師父 )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
"승상은 평생 사귀던 오랜 벗을 모르십니까 ?"
승상이 한참 보다가 깨닫고 여러 낭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
"내 토번을 치러갔을 때 꿈에 동정호에 갔다가 남악산에 올라 늙은 화상이 제자를 데리고 강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부가 바로 그분이십니까 ?"
노승이 박장대소하며 말하였다 .
"옳소 ! 옳소 ! 그러나 승상은 꿈 속에서 한번 본 것만 기억하고 , 십 년을 같이 산 일은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
승상이 멍한 채로 말하였다 .
"십육 세 이전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 십육 세 후는 벼슬하여 임금을 섬겨 분주하여 겨를이 없었는데 , 어느 때 사부를 좇아 십 년을 놀았겠습니까 ?"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
"승상이 오히려 꿈을 깨닫지 못하였소 ."
승상이 말하였다 .
"사부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겠습니까 ?"
노승이 말하였다 .
"이 어렵지 않다 ."
하고 , 막대기를 들어 난간을 치니 , 문득 흰 구름이 일어나 사면에 두루 껴 지척을 분간치 못하였다 .
승상이 크게 불러 말하였다 .
"사부는 바른 도리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어찌 환술 (幻術 )로 희롱하십니까 ?"
말을 마치지 못하여 구름이 걷히며 노승과 두 부인 육 낭자는 간 데 없었다 . 승상이 크게 놀라 자세히 보니 누대 궁궐은 간 데 없고 , 몸은 홀로 작은 암자 가운데 앉아 있었다 . 손으로 머리를 만지니 새로 깎은 흔적이 송송하고 백팔염주가 목에 걸려 있으니 다시는 대승상 위의는 없고 불과 연화 도장의 성진 소화상 (小和尙 )이었다 .
다시 생각하되 ,
'당초 일념 그르침을 사부 (師傅 )가 경계하려 하여 인간 세상에 나가 부귀 영화와 남녀 정욕을 한번 알게 하신 게구나 .'
하고 , 즉시 새암에 가 세수한 후 , 장삼 (長衫 )을 바로 입고 고깔을 뚜렷이 쓰고 방장 (房丈 )에 들어가니 모든 제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
대사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
"성진아 , 인간 세상의 재미가 어떠하더냐 ?"
성진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눈물을 흘려 말하였다 .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 성진이 함부로 굴어 도심 (道心 )이 바르지 못하니 마땅히 괴로운 세계에 있어 길이 앙화 (殃禍 )를 받을 것을 사부께서 한 꿈을 불러 일으켜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 사부의 은덕은 천만 년이라도 갚지 못하겠습니다 ."
대사가 말하였다 .
"네 흥을 띠어 갔다가 흥이 다하여 왔으니 내가 무슨 간섭하겠느냐 ? 또 네가 세상과 꿈을 다르게 아니 , 네 꿈을 오히려 깨지 못하였구나 ."
성진이 두 번 절해 사죄하고 , 설법 (說法 )하여 꿈 깸을 청하였다 .
이때 팔 선녀가 들어와 사례하며 말하였다 .
"제자 등이 위부인을 모셔 배운 것이 없기에 정욕을 금치 못해 중한 책망을 입었는데 , 사부께서 구제하심을 입어 한 꿈을 깨었으니 , 원컨대 제자되어 길이 같기를 바랍니다 ."
대사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
"너희들이 진실로 꿈을 알았으니 다시는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라 "
하고 , 즉시 대경법 (大經法 )을 베풀어 성진과 팔 선녀를 가르치니 인간 세 상의 모든 변화는 다 꿈 밖의 꿈이요 , 한 마음으로 불법에 나아가니 극락 세계의 만만세 무궁한 즐거움이었다 .
정미 (丁未 )년 완남 (完南 ) 개간 (開刊 )
구운몽 종 (終 )
* 七言絶句 杜牧
泊秦淮
煙籠寒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家
연롱한수월농사하니 약박진회근주가를 商女不知亡國恨 隔江猶唱後庭花
상녀부지망국한하니 격강유창후정화를
연기는 차가운 물을 덮고 달빛은 모래를 덮었으니 밤에 진회에 숙박코자 가까운 술집에 들어갔네 .술 파는 여인은 망국한 (나라 망한 한 )도 모르고 ,강을 격해 오히려 후정화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
註解
"상녀는 부지 망국한하고 격강유창후정화를 "사람들이 즐겨 읊었던 구절 중의 하나이었다 .그러면 後庭花 (후정화 )란 무엇인가 ?남북조 시대에 陳 (진 )나라의 마지막 왕 진 후주는 사치하고 놀기를 좋와 하여 항상 연회를 하고 궁녀들과 함께 옥수후정화 , 임춘락등 하던 노래를 불렀다 .그후 송나라 태조에게 멸망당했다 . 후정화를 소개하겠다 .
玉樹後庭花
麗宇芳林對高閣 新粧艶質本傾城
여우방림대고각이요 신장염질본경성을 映戶凝嬌乍不進 出 유 含態送相迎
영호응교사부진하니 출유함태송상영을 妖姬瞼似花含露 玉樹流光照後庭
요희검사화함로하니 옥수유관조후정을
옥수후정화
화려한 집 꽃 숲은 높은 누각을 대하고 새로 단장한 아름다운 몸매는 성을 기 우릴 지경이로다 .문을 비친 엉긴 교태에 짐짓 움직이지 않으니 휘장을 나와 먹음은 교태는 보내며 서로 맞이하네 .아름다운 여인의 뺨은 꽃이 이슬을 머금음과 같고 아름다운 나무는 빛을 흘리어 뒤 정원을 비추네 .
註解
여러 군데에서 傾城 , 傾國 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
이는 미인을 일 컷 던 표현으로 성 혹은 나라를 기울 정도의 미인이란 뜻이다 .
그 어원을 하기에 설명하겠다 .
출처 : http://myhome.netsgo.com/rochpine/Section113.htm
후전 (後殿 )·후정화 (後庭花 )라고도 한다 . 원래는 중국의 곡명으로 , 《옥수후정화 (玉樹後庭花 )》라 하여 진나라 후주 (後主 )가 빈객을 청하여 양귀비와 더불어 불렀다 한다 . 한국에서는 고려 충혜왕 (忠惠王 )이 뒤뜰에서 여자들과 어울려 부르던 음란한 노래였는데 조선 세종 때 폐지되었다 . 이어 성종 때 성현 (成俔 )이 왕명에 의하여 악가 (樂歌 )를 개산 (改刪 )할 때 , 조선창업을 송축한 가사로 개작하였다 . 《악학궤범 》에 실려 있는 1 절은 다음과 같다 . "山河千里北 에 宮殿 에 五雲高 ㅣ로다니 /瑞日 굽 輝輝明璃陛 어 ゅ 騎騎香煙 굽 繞袞袍 ㅣ로다나 ゃ ." 《경국대전 (經國大典 )》에는 향악공 (鄕樂工 )을 뽑을 때 시험곡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
참고 자료 : 이 글은 정규복 , 진경환이 역주하고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에서 1993 년 8 월 30 일날에 내어놓은 [한국고전문학전집 27:구운몽 ] 중 [구운몽 (완판 105 장본 )]의 모든 내용으로 직지프로젝트의 공식문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