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0월호
뉴욕 선산사 Zen Mountain Monastery 소개
글/김흥식(본지 취재부장)
선사사는 (Zen Mountain Monastery)는 뉴욕시 에서 북쪽으로 100마일 거리에 있다. 절 언덕 아래쪽으로는 멀리 강이 흐르고 앞으로는 캣츠킬 마운틴 (Catskill Mountain)이 펼쳐져 그야말로 도량( 道場)이다. . 이다옥박사, 이한준거사 부부, 김형근씨와 필자가 도착한 때가 때마침 점심공양 시간이어서 벽안의 불 자들과 공양을 마치고 절의 원주격인 거사의 안내를 받아 사찰을 둘러보았다. 이 건물은 원래 삼십년대에 지어진 카톨릭 성당인데 건축당시 일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단 일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성당은 얼마 후 루터란교회로 바뀌어졌으며 현재의 주지스님이 이 교회를 인수하여 절로 만든 것은 1980년이다. 그래서 이 도량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본관건물 맨위의 십자가와 그 십 자가속의 예수상이다. 본관의 아랫층은 5000 스퀘어피트 규모로써 현관 올 들어서면 중앙에 식당이 있으며 입구 오른쪽엔 염주와 불상과 서책을 파는 조그만 규모의 기념품점이 있으며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식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편에는 각각 사무실과 취사장이 있었다. 가파른 돌층계를 끼고 돌아 오르니 불향 내음 나는 선방이 눈에 띈다.
중앙 상단에 목본의 아미타가 좌정 (坐定 ) 해 계시고 선방에 둥근 방석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좁은 복도 를 경계로 한 부처님방(Buddha Hall)에도 역시 참선 할수 있도록 방석이 여럿 놓여있으며 도서관과 주지실이 작은 규모로 꾸며져 있다. 계단을 내려와 아랫층 현관을 나서 왼편으로 난 오솔길을 끼고 돌아 몇마당 걸어가니 사무실이 있는데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서 책과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하며 절의 살림살이를 맡아본다고 한다. 여기에서 제작하는 <Introduction of Zen Meditation 》테이프는 한개 에 삼십달러라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여러종류의 오디오, 비디오테이프를 제작에서 주로 우편으로 주문 받아 발송을 한다. 또 ‘Maintain Record’라는 계간잡지를 발행한다. 바로 옆에 붙은 곳은 비구니가 되기 위해 행자생활을 하는 젊은 여인들의 숙소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어렸을 적 미국가정에 입양되었다가 이곳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된 비구니 한분을 만났다.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스님온 법명은 지만이고 우리말을 하지 못했다. 한국 속명올 물어보니 춘화자라고 했다.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우리나라 성씨중 춘이라는 성은 없고 아마도 춘이 아닌 전화자 일 것이다고 그 행자에게 알려줬다. 이 행자가 필자 일행이 도착했을때 나와서 식당으로 안내를 했는데 그 행자의 짜여진 시간 때문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할 수 없었다.
숙소의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나 현관에 걸려 있는 종자용 옥수수 한쌍이 눈길을 끈다. 사무실 바로 앞쪽으로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어 토마토와 쑥갓 들을 심어놨는데 시내에 살고있는 필자의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넉넉하다. 그리고 푸른잔디의 언덕을 약 간 오르면 통나무로 만든 요사채가 있다고 덧붙인다. 친절히 도량을 안내한 젊은 원주는 이어 이곳의 주지 로 계시는 존 다이도 누리John Daido Loori스님을 모시고 와 일행과 대차(對茶) 해 앉았다.
이 스님에게서 공기는 분위기는 한국절 산간의 인자한 선승을 보는듯 하다. 한 사람의 풍모는 역시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짐을 새삼 깨닫는다. 유년시절은 캐토리(Catholic) 가정의 분위기 속에 성장했다며 말문을 연다. 점차 성장하여 청소년기를 거치며 알수없는 생의 문제에 골몰했으나 그가 속한 종교에서나 학문에서 해결을 찾지못하며 방황하다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서 공부했다. 사진작가로 활동하였는데 사진 선생이 참선에 대해 알려줬다. 선을 만나 가뭄에 비 맞은 물고기처럼 반가왔다고 말한다. 그후 1969년에 그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선방을 찾아가 또래의 스님을 만났으니 그를 오늘의 스님으로 있게 한 「마에즈미」스님이다..
다이도 루리 스님은 오늘의 절터에 관심을 갖던중 1980년 수중에 가진 전재산 200달러로 건물을 임대하기에 이른다. 월 임대료 4000볼, 삭발도 하지않은 상태의 수행자 밑에 특히 불교에 익숙치 않은 미국인이었기에 3-4 명의 신도로도 John Daido Loori은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꾸려 임대료를 지불하지만 1930년대에 건립된 교회당 건물은 피폐하기 말할 수 없어 추운 겨울에 난방시설도 되지않은 법당에서 오버코트에 오들 오들 떨며 겨울을 지내고 나니 초봄에 두사람이 오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여, 그 위기를 넘 길 수 있었다. 현재는 신도가 천여명이며 약 몇천명 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
왜 이곳에 터를 잡아는냐고 물었더니. 이곳은 뒷에 산이 있고 절 양옆으로 흐르는 시냇가가 산수지관상 나무랄 데 없이 좋은 곳이며 또 법력(法力)이 솟아나는 곳 이라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이곳 지형을 설명한다. 그후 그는 더욱 신심올 더하며 포교하던중 그는 마애즈미 스님으로 부터 1983년에 일본에서 계를 받았고 1986년에는 다시 전법 제자의 계를 받았다. 일본 승가는 삭발수계하기전 대처승과 비구승의 구분올 확실히 하기에 스승이 비구와 대처를 거른할 때 비구쪽을 선택하셨다고 스님은 전한다. 스승이 수계를 줄때 미국에서 삭발수계를 원하는 수행자가 있을 시 필히 일본으로 와서 수계시키라고 말했지만 루리 스님은 그럴 필요성이 없음을 설파하시며 제자가 수계를 원할시 자신이 이곳에서 직접 준다고 한다.
종파를 묻자 암종파(A.M宗派 ) 라고 파안대소하며 엠에이란 ‘Meditator American’의 뜻이라 첨부한다.중국선종의 소승적 권속관념 (#품)이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져 내려오며 종파간의 알려과 분쟁을 초래했음을 생각하며 공감을 표시한다.
한편 수계식을 받고 일본에서 돌아온 John Daido Loori는 중창불사를 시작 신도들의 소액의 시주금을 근거로 문서포교를 시작 거기서 나오는 수입금으로 렌트에서 건물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찰이나 교회의 종교단체들이 기부금 명목의 거액으로 성전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할 때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선산사는 LA에 같은 계열인 ‘LA선원’이 있으며 일본에는 친정격인 광진사가 있어 상호협력 체제가 있다고 한다. 선산사에는 현재 상주하는 승려가 십명이라고 한 다. 현재 5~6명의 행자과정을 밟고있는 사람이 있으며 행자기간은 5년을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5년간 5단계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 훈련과정에는 카톡릭의 훈련방법도 불교훈련방법과 병행하여 하고 있다고 했다. 5년간 5단계의 과정을 거쳐 최종스님으로 인가를 받으려면 또한 5단계의 과정을 거쳐야한다. 첫째 단계는 입문이며 두번째 단계는 원서를 낸다. 세번째 단계는 하루종일 좌선을 하며 네번째 단계는 스승과 제자사이에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며 마지막단계에 서는 아홉번 절을 하면서 선문답을 한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공안집이 있는데 이책의 이름은 정법안장현성공안(正法 眼藏顯成公案) 이다. 이 외에 이들은 산수경, 금강경 등을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이들의 생활을 보면 매월 한주일씩 참선을 하는데 세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이다. 매시간당 35분간 좌선을 하며 10분간은 걸어다닌다. 점심은 법당에서 법 을 지키면서 한다. 또 하루에 한시간씩 노동을 하며 한시간은 휴식을 취한다. 주지스님인 John Daido Loori는 현재 쿠오모 뉴 욕주지사의 재소자 프로그램(Prison Program)의 자문위원중 한사람이 다. 이 사찰에는 죄수들이 형기중 가석방되었을때 수용하는 Program을 가지고 있다. 현재도 2명의 죄인이 이 사찰에서 활동하고 있다.
선산사는 또 환경보존을 불교적인 입장에서 하기 위하여 환경보호를 위한 Program과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임시로 수용하는 program을 가지고 있다.
주지 스님은 카나다 삼우스님과 숭산스님을 잘 알 고 있다고 말하며 삼우스님온 선산사를 몇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입적하신 구산스님을 만난적이 있는데 일본에도 그런 훈륭한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고 구산스님을 높이 평가했다. John Daido Loori주지스님은 장차 이 도량에 나이 든 스님들이 거처할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 연로한 스님들의 복지관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회귀한 미국인 주지 John Daido Loori스님과 많온 얘기를 나누다보니 신심과 불심이 생겨나와 그동 안 나태하게 생활해온 자신이 부끄러워짐을 느끼며 대중법문 시간이 훨씬 지났옴에도 대담에 임해준 스님께 합장배려하고 같은 문화와 같은 피부 같은언어를 사용하는 장점을 살려 미전역에 많은 푸른눈의 남자가 가 해지길 발원하며 산문을 내려선다.
ZEN MOUNTAIN MONASTERY
871 South Plank Road Mt. Tremper, NY 12457 (845) 688-2228
미주현대불교 제 30 호 199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