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서 턱까지 절단한 토르소
신영배
6물과 7물의 집
가슴까지 물이 차오른 집과
턱까지 물이 차오른 집
가슴-사리와 턱-사리
두 겹의 물
입고 나갈 옷의 색깔 같은 것
밀물을 끌고 사람을 만나러 갔다
카페 창가에 앉았다
밀물은 창문 유리 속에 머물렀다
우리는 마주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색해지고 나는 검은 물이 되어 갔다
가까워지고 나는 푸른 물이 되어 갔다
어려워지고 나는 검은 물이 되어 갔다
그리워지고 나는 푸른 물이 되어 갔다
내 몸은 온통 검푸른 물이 되었다
쓱쓱
나는 가슴에서 턱까지 물을 잘랐다
물 자르는 소리
괴로움과 외로움이 뭉쳐져서
말은 어두운 소리였다
테이블 위에 토르소가 놓였다
가슴에서 턱까지 절단한
검푸른
텅 빈 곳에서
찻잔이 움직였다
접시와 포크가 움직였다
케이크가 사라졌다
창문 밖에서
나무 하나가 사라졌다
집 하나가 사라졌다
버스 하나가 사라졌다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
아주 얇은 말 하나가 쓰러졌다
창문 유리 속에 썰물이 머물렀다
돌아설 때의 냄새 같은 것
썰물을 끌고 사람과 헤어졌다
집으로 들어와 외투를 벗었다
가슴에서 턱까지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곳으로
내려앉은 천장이 밀려들었다
창문과 벽지가 밀려들었다
서랍장이 달그락거리며 밀려들었다
밖에서 뱉은 말들은 안에서 집이 되었다
6물과 7물을 흔들어 집을 밝혔다
밝힐수록 집이 상한 냄새를 풍겼다
밝힐수록 집이 먼지를 날렸다
밝힐수록 집이 쓰레기를 만들었다
밝힐수록 집의 말이 드러났다
폐허
책상 위에 물 토르소가 놓였다
계간 『상징학연구소」 2024년 가을호 발표
출처: 시작은모임(young570519) 원문보기 글쓴이: 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