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현대 불교학계에서는 소승 불교 대신 주로 부파불교(部派佛敎, Nikaya Buddhism)나 주류 불교(Mainstream Buddhism)[14] 등의 명칭으로 인도 18부(部) 또는 20부 불교[15]를 지칭한다. 그러나 불교학자들이 고안한 명칭들 또한 당대 불교도들의 자기 인식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복잡하고 풍부한 사상적 스펙트럼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거나, 특정 학설만을 반영하여 편향되고 협소한 성격을 가지는 등 일정 부분 한계를 지닌다. 그 때문에 학계에서 특별히 공인된 명칭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쓰이는 명칭들은 향후 추가적인 연구와 논의를 거쳐 다른 명칭으로 대체될 가능성을 수반하고 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소승·대승을 '빠알리 전통(Pali tradition)'과 '산스끄리뜨 전통(Sanskrit tradition)'이란 명칭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했다. 빠알리 전통은 쁘라끄리뜨(prakrit)·고대 싱할라어·빠알리어로 기록된 경전과 주석서에 기반한 불교 전승을 의미하며 산스끄리뜨 전통은 쁘라끄리뜨·산스끄리뜨·중앙아시아어로 기록된 경전과 주석서에 기반한 불교 전승을 의미한다. 달라이 라마의 제안은 소승·대승 명칭 사용으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갈등과 대립을 방지하고 각 전승들을 동등하게 존중할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명칭 제안은 주로 티베트 불교계와 테라와다 불교계 간 교류에 사용될 뿐, 티베트 불교계 내부에서는 보편화되지 않았다. 또한 이와 같은 언어적 분류를 따를 경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사상적 견해는 다른 학파나 종파들을 분류하는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이처럼 '소승'이란 명칭에 내포된 역사적·사상적 함의를 온전히 표현할 대체어를 찾기 어려우므로 본 문서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교학 전통에 의거하여 '소승'과 '소승 학파'란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단, 티베트 불교 교학에서 '소승 학파'로 분류되는 설일체유부, 경량부 등의 학파와 역사적 연관성이 적으며, 또한 현존하는 불교 종파 중 하나인 남방 상좌부 불교의 경우에는 '테라와다 불교', '남방 상좌부 불교' 등의 명칭을 적용하였다.
4.1.1.2. 문(聞)·사(思)·수(修)[편집]
온갖 유정(有情)으로서 발심(發心)하여 장차 진리를 관찰하는 도(道)로 나아가려는 자는 마땅히 먼저 청정한 시라(尸羅, 즉 계율)에 안주하고, 그런 연후에 문소성혜(聞所成慧) 등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이를테면 먼저 진리의 관찰에 수순하는 청문(聽聞)을 섭수하고, 듣고 나서는 들은 법의 뜻[法義]을 부지런히 추구하며, 법의 뜻을 듣고 나서 전도됨이 없이 사유해야 하니, 사유하고 나서야 비로소 능히 선정에 의지하여 수습(修習)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행자는 이와 같이 계(戒)에 머물면서 부지런히 닦아 문소성혜(聞所成慧)에 의해 사소성혜(思所成慧)를 일으키고, 사소성혜에 의해 수소성혜(修所成慧)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
권오민 역주. 『아비달마구사론 3』. 동국역경원, 2002.
서양의 철학(philiosophy)은 주로 논리적, 사변적, 분석적 방법을 통해 지혜(sophia)를 얻지만 인도의 철학(darśana)은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지혜(jñāna, prajñā)를 얻는다.
1. 듣고 배워서 얻어진 지혜(śruta-prajñā): 오랜 시간의 테스트를 거쳐 검증되고 실험되어 온 옛 성현(ṛṣi)들의 경험과 탐구 결과를 듣고 배우는 방법(聞, śruta, śramaṇa) 이다. 이것은 다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만이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동적 노력이 포함되는 활동이다. 이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지혜를 문혜(聞慧, śruta-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경전이나 논서들의 텍스트를 이해, 해석하고 현대언어로 번역하고 설명해주는 해석학적 방법인 정언량(正言量, śabda-pramāṇa)이 있다. 단, 디그나가(Dignaga)는 정언량 혹은 성언량(聖言量) 또한 비량(比量)의 한 종류인 신허비량(信許比量, āpta-anumāna)으로 보고, 인식의 근원은 비량과 현량(現量) 뿐이라는 이량설(二量說)을 주장하였으며 티베트 불교에서도 이를 따른다.
2.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anumāna-prajñā): 바깥으로부터 배우고 받아들인 것과 스스로의 경험을 자료로 하여 그것을 논리적, 합리적 기준(yukti, anumāna)에 맞추어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견해와 주장과 견주어 토론하고 논쟁하며, 더 나아가 그런 자료들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지적 공유물이 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체계화시키는 활동이다. 이러한 논리적 사고를 통해 얻어진 지혜를 사혜(思慧, anumāna-prajñā, cintā-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수혜 그리고 스스로의 지적 경험을 자료로 하여 의심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논증하고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논리적 방법인 비량(比量, anumāna-pramāṇa)이다.
3.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bhāvana-prajñā, samādhi-prajñā): 마지막으로 문혜와 사혜로부터 얻어진 언어적, 개념적 관념적 지혜를 체험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 지혜로 변환시키는 요가적 방법에서 얻어진 지혜를 수혜(修慧, bhāvana-prajñā) 또는 삼매의 지혜(三昧慧, samādhi-prajñā)라고 한다. 이 지혜를 얻는 방법은 문혜와 사혜에 기초하여 요가행법을 실천하는 것(瑜伽行, yogī-praktiasa, sākṣātkāra)이 있다. 이러한 인식방법은 직접적 지각(知覺)인 현량(現量) 중에서도 유가사의 선정(禪定)상태에서 대상을 지각하는 유가현량(瑜伽現量)에 해당한다.
문을식.『요가 상캬 철학의 이해』. 여래, 2013.
경전의 가르침을 배우고(ཐོས་པ, śruta, 聞) 사유(བསམ་པ, cintā, 思)하는 교학과 수행(བསྒོམ་པ, bhāvanā, 修)의 불가분성에 관하여 티베트 불교의 대학장(大學匠) 쫑카빠(ཙོང་ཁ་པ, 1357-1419)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쫑카빠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보리도차제광론』에서는 직접적 가르침과 경전적 가르침을 상호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보다 우선적인 과정은 경전의 가르침을 듣는 데 있다고 말한다. 불교에 있어서 경전의 가르침은 문혜와 사혜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문혜(ཐོས་པའི་ཤེས་རབ, śrutamayī prajñā, 聞慧)와 사혜(བསམས་པ་ལས་བྱུང་བའི་ཤེས་རབ, cintāmayī prajñā, 思慧)에 의해 증득된 바로 그것이 수혜(བསྒོམས་པའི་ཤེས་རབ, bhāvanāmayī prajñā, 修慧)에 의해 수습되어져야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쫑카빠는 경마의 비유를 들어 청문(聽聞)과 이에 대한 깊은 사유를 수반하는 직접적 수행은 "경주할 장소를 먼저 보여준 후에 경주하는 것과 같다." 라고 설명한다. 만일 경주할 장소가 어디인지도 알지 못하고 경주한다면 실제 노력에 비해 소득도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된 길로 빠질 위험이 크다.
또한 쫑카빠는 "위대한 경전의 가르침을 수행의 요체를 결여한 단순한 설명으로만 간주하고, 수행의 요체는 오직 핵심적 의미를 설하는 스승과 제자 간의 은밀한 직접적 가르침에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가르침의 단절이라는 업장을 쌓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해탈을 구하는 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교설은 위대한 경전일 뿐이라고 쫑카빠는 강조한다.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편.『불교의 이해』. 무우수, 2006.
수행할 내용을 먼저 타인으로부터 듣고 배워[聞], 즉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들어 배운 바를 스스로 경(經)의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여법(如法)하게 사유[思]하여 자신의 힘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배움과 사유[聞思]를 통해 알아가고 점차 의심이 끊어지고 그것에 반복적으로 습(習)을 들이는 것을 '닦음[修]'이라 한다.
『보리도차제광론』(박은정 역)
나란다 대학을 위시한 인도 불교의 수행 전통은 문·사·수의 세 가지 큰 골조를 가진다. 인도 불교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도 같은 방식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문·사·수의 세 가지 단계가 가지는 의미는 상술한 쫑카빠의 『광론』 설명과 같다. 즉 첫 번째 단계인 문(聞)은 청문(聽聞)을 통한 배움을 의미하며 폭넓은 지식을 함양하여 수행자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방법을 깊이 있게 알아가는 단계이다. 다음 단계인 사(思)는 배움과 앎을 기반으로 사유를 통해 지성을 훈련하며 자신의 앎을 체화하는 과정이다. 고도의 지성을 통한 치밀한 분석과 통찰은 모든 의심을 끊고 확신을 가지게 한다. 마지막 단계 수(修)는 닦음의 과정으로 앞서 모든 의심과 의문을 해소하여 확신에 이르게 된 바를 반복적으로 닦아 완전히 습(習)을 들이는 과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쳤을 때 마지막으로 깨달음이라는 결과가 주어지게 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첫번째 문(聞)은 모든 수행의 기본 바탕이 된다. 따라서 배움의 과정 없이 그 다음 단계의 사(思)와 수(修)로 나아가는 것은 이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처럼 티베트 불교가 교학을 통한 배움과 수행을 무관한 것으로 보지 않는 핵심적인 이유는 본질적으로 배움의 연장선상에서 사유와 반복적 수습(修習)이 이루어져야 하는 구조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는 전통적으로 문·사·수 가운데 첫 번째 문(聞)의 단계로서 문에 속하는 교학을 중시할 수밖에 없으며, 그 전통적 명맥이 티베트 교학 교육에 그대로 반영되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구조와 단계를 이해하더라도 티베트 불교에서처럼 오랫동안 교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 『광론』에서 다음과 같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들음[聞]이 많아지면 들음에서 생기는 지혜[聞慧]가 많아지고, 문혜가 많을수록 사유[思]가 많아지며, 사유가 많을수록 사유에서 생긴 지혜[聞慧]가 많아진다. 이 사혜가 많을수록 닦음[修]이 많아지고, 닦음이 많으면 허물을 차단하고 공덕을 이루는 방편이 많아지는 까닭에 수행에서 문사의 중요함을 경론에서 거듭 말씀하신 것이다.
『보리도차제광론』(박은정 역)
들어서 배우는 것이 많아지면 그것에서 생기는 지혜인 문혜가 많아지며, 문혜가 많으면 깊고 다양한 사유를 하게 된다. 그처럼 다문(多聞)과 풍부한 사유는 그에 상응하는 문혜와 사혜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사혜는 다양한 닦음[修]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로 인해 많은 허물을 정화하고 공덕을 이루게 되어 수행의 결과를 얻게 만든다. 이처럼 문·사·수는 인과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풍부한 교학의 배움은 풍부하고 다양한 수행력을 갖추게 하므로 오랜 기간 깊이 있는 교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은정. "티벳의 승가교육제도."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 2023.
일부의 원인으로 일부의 결과만을 이루고
일체의 원인으로 일체의 결과를 모두 성취한다.[16]
『대비백련화경(大悲白連華經)』
티베트 불교 승가대학/강원에서 배우는 반야, 중관, 구사, 인명, 계율 등 오부대론은 인도 나란다 대학의 교육과정에서 유래한 구성으로, 팔만사천법문 중에서 수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주제를 선정하여 구성한 교과 체계이다. 겔룩에서는 20여 년, 겔룩 외 종파에서는 10여 년 간의 강원 기간 동안 자신의 해탈 뿐 아니라 일체 중생을 위한 성불을 목표로 삼승(三乘)[17]과 사부(四部) 딴뜨라[18]를 모두 아울러 배운다.[19] 이와 관련된 더욱 자세한 설명은 5부대론(五部大論) 항목과 티베트 불교/승가 교육 제도 문서를 참고할 것.
특히 티베트 불교는 경전을 학습함에 있어 논서를 중시하는 논장(論藏) 위주 불교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가 특정 경전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종파불교인 데 비해, 티베트 불교는 여러 경전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주석을 단 논장을 주로 학습한다. 경전이 형성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대부분 함축적으로 서술되어 본래 뜻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보살 선지식들이 경장을 해설한 논장에 의지하여야 경장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논장을 주로 학습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경전의 해석에 있어 인도와 티베트 논사들의 검증된 논서들을 주된 전거로 삼으며, 검증되지 않은 사적(私的) 가르침에만 의존하는 것을 매우 경계한다. 또한 '쌉쩨(ས་བཅད, 科目)'라고 하는 목차를 세세하게 달아 경론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승려 같은 전문 수행자가 아닌,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재가 불자들을 위해 『람림』, 『로종』 위주로 축약된 교학과정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람림』은 삼장(三藏) 십이부경(十二部經), 즉 불교 전반의 핵심을 빠짐없이 일관되게 정리한 단계별 수행 체계이다. 그리고 『로종』은 자비와 보리심 계발에 특화된 전승으로 자애, 연민, 공감에 관한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훈련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전승은 방대한 불교 가르침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하고[20] 마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수단들로서 실천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에서 일반인에게 우선적으로 선호되는 가르침들이다.
『람림』과 『로종』(특히 『로종』)을 심리학, 신경과학 등 현대 학문과 연계하여 재해석한 현대 서양의 세속적/비종교적 자애 명상으로 에모리대에서 개발한 Cognitively-Based Compassion Training(CBCT)와 스탠퍼드대에서 개발한Compassion Cultivation Training(CCT) 등이 있다. 한국의 경우 CBCT는 씨러닝코리아에서, CCT는 공감과자비연구소에서 주관한다. 관련된 국내 서적으로는 CCT의 개발자인 툽텐 진파가 지은 『두려움 없는 마음』이 있다.
4.1.1.3. 분석적·논리적 탐구[편집]
비구들과 지혜로운 이들이여, 연금술사가 금을 태우고 자르고 문지르듯이 나의 말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존경한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석가모니불[21]
티베트 불교는 비판적 분석과 판단을 중시한다. 불교의 믿음(信, śradha, 또는 勝解, adhimukti)은 확신이며, 이는 우선적으로 비판적 분석/판단에 의한 것이다. 문사수 중 사유의 과정에 해당하는 비판적 분석 혹은 탐구 고찰을 사택(tarka, 혹은 覺觀), 간택(pravicaya, 혹은 思惟觀察)이라고 한다. 부처의 말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금(金)을 감정하듯이 분석적으로 의심을 갖고 경전을 배우고 사유하고 수행하면서 불법의 진리를 수행자 본인이 직접 확인해가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비판적 분석을 강조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맹신이 아닌 비판적 분석이기에 단순히 경전을 외우기보다 이치를 따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때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상술한 '연금술사와 금의 비유'를 든 경전의 어구를 즐겨 인용하며 경전을 분석하고 깊게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꼰촉 직메 왕뽀. 『티베트에서의 불교 철학 입문』. 권오민, 유리, 김대수 역. 씨아이알, 2020.
스승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스승에 대한 존경을 저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해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날란다 대학 같은 고대 인도의 승원(僧院) 대학에서는 학승(學僧)이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전통을 발전시켰다. 스승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스승을 존경하거나 공경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바수반두(དབྱིག་གཉེན, Vasubandhu, 世親, 4세기 경)의 제자 아리야 비묵띠세나(འཕགས་པ་རྣམ་གྲོལ་སྡེ, Arya Vimuktisena, 聖解脫軍, 6세기 경)[22] 는 스승의 유식론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중관학파의 견해로 경전을 이해하였다. 티베트에서는 19세기 닝마의 학자인 주 미팜(འཇུ་མི་ཕམ, 1846-1912)의 제자 알락 담최 창(Alak Damchö Tsang)[23]이 스승이 쓴 논전의 일부 내용에 반론을 제기한 사례가 있다. 알락 담최 창은 "스승이 훌륭하다고 해도 가르치는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티베트 속담 중에 "사람은 공경하고 존경하되 그가 쓴 논서는 철저하게 분석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스승에 대한 건전한 마음가짐과 수행할 때 의지해야 할 사의법(四依法)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 반야심경』. 주민황 역. 하루헌, 2017.
2021년 8월 한국인을 위한 비대면 법회에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스승과 다른 관점을 갖는 것이 스승에게 실례가 되거나 스승을 거스르는 악업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는 "경전에서 언급하였듯이 아무 이유도 없이 스승의 의견을 부정하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을 말했다. 상술한 석가모니의 연금술사 비유나 아상가(ཐོགས་མེད, Asaṅga, 無着, 4세기 경), 바수반두, 디그나가(ཕྱོགས་ཀྱི་གླང་པོ, Dignāga, 陳那, 6세기 경)와 이들의 후학(後學) 격인 짠드라끼르띠(ཟླ་བ་གྲགས་པ, Candrakīrti, 月稱, 7세기 경)의 사례[24]에서 알 수 있듯, 스승의 가르침을 아무 이유 없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숙고하고 실천하고 수행한 뒤 그 가르침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달라이 라마는 설명했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맹악빠(མན་ངག་པ), 방대한 문헌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슝빠와(གཞུང་པ་བ), 요약된 람림 문헌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람림빠(ལམ་རིམ་པ) 등 까담빠(བཀའ་གདམས་པ)의 분화(分化)에서 알 수 있듯이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스승의 말씀조차도 관찰하고 분석해야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스승이 어떤 가르침을 제공하든 제자는 그 가르침을 항상 탐구하고 관찰하고 분석해야 하며, 만약 가르침에 오류가 있다면 제자는 스승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오히려 그 가르침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겔룩의 창시자 쫑카빠의 해석도 소개했다. #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진의(眞意)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意識)에 의지하지 말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미료의경(未了義經)에 의지하지 말라.
『대승열반경』 제6권 사의법(四依法)
사물의 실상을 분석할 때 분석하는 사람이 갖춰야 하는 최소의 조건은 사의(རྟོན་པ་བཞི, catuḥpratiśaraṇa, 四依)이다. 의지한다[依]는 것은 믿는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며, 의지해야 하는 네 가지는 진의(དོན, artha, 眞意), 지혜(ཡེ་ཤེས, jñāna), 법(ཆོས. dharma), 요의(경)(ངེས་དོན, nītārthasūtra, 了義(經))이며, 의지하지 말아야 하는 네 가지는 문자(ཚིག, vyañjana), 의식(རྣམ་ཤེས, vijñāna, 意識), 사람(གང་ཟག, pudgala), 미료의(경)(དྲང་དོན, neyārthasūtra, 未了義(經))이다. 의지하고 의지하지 않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사람의 명성이 높고 낮음 등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설하는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즉, 사람과 그의 가르침 둘 중에서 가르침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단, 이 구절은 법을 전하는 스승이나 승가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구절을 잘못 해석하면 사람을 멀리하고 홀로 경전에만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티베트 불교 스승들은 "정법(正法)인지 아닌지 여부로 법을 판단해야 하며, 법을 전하는 사람의 외모, 화술, 학력, 명성, 지위 등 부차적인 요소를 법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가르치고 있다.
'진의에 의지하고, 문자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러한 가르침도 문장의 운율이 아름다운지 등을 보지 말고, 진의를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진의를 명확하게 설한 것은 받아들이고, 오류가 있는 것은 설령 문장이 매우 훌륭하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즉, 문자와 진의 둘 중에서 문자를 믿지 말고 진의를 믿어야 한다.
'요의경에 의지하고, 미료의경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특정 목적에 의해 단지 방편으로써 설하신 언설[미료의]만을 보지 말고, 그것의 진실된 실상[요의]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부처님의 진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의해 [어떤 사물이] '진실로 존재한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면 논리적 오류가 있으므로 다른 의도로 해석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궁극적 의도대로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한 경은, 언설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논리적 오류가 없으므로 요의로 마땅히 믿어야 한다.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그 요의도 안식(眼識) 등의 근식(根識)이나 분별식(分別識)에 나타난 것만을 믿지 말고, 대상의 실상을 현량(現量)으로 보는 지혜를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 게쎼 텐진 남카 역. 불광출판사, 2022.
■ 삼소량분(三所量分)
① 현전(現前) = 현전분(現前分)
② 비현전(非現前) = 불현전분(不現前分) = 은폐분(隱蔽分)
③ 극비현전(極非現前) = 최극은폐분(最極隱蔽分)
앎의 대상에는 크게 현전(མངོན་གྱུར, pratyakṣa/abhimukha, 現前), 비현전(ལྐོག་གྱུར, parokṣa, 非現前), 극비현전(ཤིན་ཏུ་ལྐོག་གྱུར, atyantaparokṣa, 極非現前) 세 가지가 있다. 현전은 지각 가능한 명백한 현상으로 논리를 통해 증명할 필요가 없다. 그 현상들은 직접적인 감각적 지각인 현량(現量)을 통해 직접 경험하며 터득할 수 있고,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삶과 죽음, 계절의 변화 같은 거친 무상(無常)은 현전에 해당한다.
비현전은 일부분만 지각할 수 있는 현상이다. 비현전은 요가수행자[25]가 아닌 일반인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없으므로 논리적 추론인 비량(比量)을 적용하여 확립해야 한다. 이때의 분석 대상은 경험에 근거한 추론적 인식에 의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찰나생멸하는 미세한 무상이나 무아, 공성 등이 비현전에 해당한다.
극비현전은 전혀 지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극비현전은 일반인의 현량으로도 인식할 수 없고, 이해의 초기 단계에 있는 사람은 비량을 이용해 검증하는 것도 힘들다. 이러한 경우에는 타당한 경전적 권위, 즉 성교량(聖敎量) 내지 교증(敎証)에 의존해야한다. 교증에 의존하더라도 경전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가령 티베트 불교는 인도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텍스트 비평을 통해 번역된 경전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경전을 가르치는 스승의 타당성, 신뢰 가능성도 검증해야 한다.
교증을 거친 후에는 경전 내용 자체가 삼지작법(三支作法: 불교논리학에서의 삼단논법) 등의 논리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검증하는 이증(理証)을 거친다. 예를 들면 '보시를 행하면 재물을 얻는다. 경에서 이와 같이 설하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 경설 자체를 논증인(論證因)으로 세워서 해당 내용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론의 언설이 현량(現量)과 논리로써 오류가 없고, 경설의 구절에 직간접적인 모순이나 전후의 모순이 없으며, 설법자에게 다른 특별한 의도가 없는 등의 많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부모의 말에 의지해서 자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고, 역사적 기록에 의지해서 과거에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들을 알 수 있는 것 등이 극비현전에 해당한다. 또한 경전에서는 극비현전의 예로 중생의 업력(業力), 부처의 사업(事業), 진언(眞言)·약(藥)·물질의 힘, 유가사(瑜伽師)의 유가의 경계 등 네 가지 불가사의한 대상을 언급한다. 여기서 업력, 다시 말해 업의 인과(因果) 작용은 오직 일체지(一切智)를 얻은 부처만이 완벽히 알 수 있으며, 아라한도 인과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다만 개별적인 사태들에 적용되는 구체적인 업의 경과가 아닌, 업이 작용하는 일반적인 원리인 업설(業說)에 대해서는 『구사론』 등 여러 논서에서 상세히 밝혀놓았다.
날란다 학자들의 전통에서는 제법의 체계를 확립할 때, 경설이나 타당한 말에 의지하는 신허비량(信許比量)보다 사세비량(事勢比量)을 중시하고, 논리에 의지하는 사세비량보다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현량을 더 중시하는 우선순위를 따랐다.
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 게쎼 텐진 남카 역. 불광출판사, 2022.
달라이 라마 저. 게쉐 롭상 졸땐, 로쌍 최펠 간첸빠, 제러미 러셀 영역. 『달라이라마, 수행을 말하다』. 이종복 역. 담앤북스, 2021.
■ 사종도리(四種道理)
① 법이도리(法爾道理)
② 작용도리(作用道理)
③ 관대도리(觀待道理)
④ 증성도리(證成道理)
분석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해심밀경』, 『대승아비달마집론』, 『유가사지론』 등의 보살경론에서는 사종도리(རིགས་པ་བཞི, yukti catuṣṭayam, 四種道理)를 설하고 있다.
법이도리(ཆོས་ཉིད་ཀྱི་རིགས་པ, dharmatāyukti, 法爾道理)는 사물의 실상 그대로를 토대로 한, 각각의 법의 특성이나 자성 또는 법성을 의미한다. 작용도리(བྱ་བྱེད་ཀྱི་རིགས་པ, kāryakāraṇayukti, 作用道理)는 그러한 법이도리를 토대로 하는, 각각의 법성의 본질과 부합하는 여러 가지 작용을 의미한다. 관대도리(ལྟོས་པའི་རིགས་པ, apekṣāyukti, 觀待道理)는 작용도리를 토대로 하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 즉 인과관계, 부분과 유분(有分)의 관계,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 대상 셋의 관계 등 의존하는 실상을 의미한다. 증성도리(འཐད་སྒྲུབ་ཀྱི་རིགས་པ, upapattisādhanayukti, 證成道理)는 앞의 세 가지 도리를 토대로 분석할 때,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도 없어야 한다'와 같은 논리를 세워서 소립(所立)을 논증할 수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증성도리라고 한다.
사종도리 중 작용도리와 관대도리 이 둘의 핵심 내용인 인과와 연기의 법칙은 불교 전통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치이다. 크게는 기세간(器世間)과 유정세간(有情世間)의 생성에서부터 작게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개별적 상황의 발생에 이르기까지 오직 인과연기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불교의 교의체계에서는 중생이 업과 번뇌의 힘에 의해 윤회를 떠도는 방식에서부터 윤회의 원인과 조건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해탈에 이르는 것까지 오직 인과의 법칙으로 성립된다. 역사적 기록이나 현실적 상황 그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과의 법칙은 불교 철학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 게쎼 텐진 남카 역. 불광출판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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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과학 철학 총서-1.물질세계』한국어판 봉정 법회 관련 VOA Tibetan 영상 "His Holiness the Dalai Lama launched the Korean Translation of Buddhist science and philosophy." |
세계 최고(最古)의 대학인 날란다 대학에서는 불교학뿐 아니라 철학, 문학은 물론이고 천문학이나 의학, 약학 등 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와 수업이 강조되었다. 불교의 근본적 동기와 주된 목적은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구경(究竟)의 안락(安樂)이며, 이를 위해 세상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가 필요했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세상의 본질,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아야 했고 따라서 부파불교 시대 아비달마가 융성하기 시작하면서 불교 논서들에도 자연과학적 지식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날란다 대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역시 과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달라이 라마는 불교 경론의 가르침을 크게 ‘제법(諸法)의 실상(實相) 혹은 과학’, ‘그와 관련된 철학’, ‘수행의 차례’로 분류하였다. 이 중 과학과 철학 두 분야는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지식의 영역이며 시대적 요구와도 잘 맞는 학문이라고 여긴 달라이 라마는 2011년 『불교 과학 철학 총서』의 편찬을 기획한다. 이에 티베트 최고의 학승인 게셰 7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가 만들어진다. 편집위원들은 날란다 17 논사들의 저작, 그리고 여타 아비달마 논사들의 저작을 모두 검토하고 그 중에 과학, 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발췌, 선별, 분류한 후 주석과 해설을 달았다.
총4권으로 구성된 총서 중 제1권에서 다루고 있는 물질세계는 극미(極微)의 세계에서 천체(天體)까지, 즉 마음을 제외한 외부 세계 전부를 가리킨다. 특히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질, 시간과 공간, 뇌를 비롯한 인간의 신체가 주 대상이다. 또한 서문에서는 불교와 과학의 관계를 다룬다. 영어, 중국어(번체)에 이어 전세계에서 3번째로 『불교 과학 철학 총서』 1권 '물질세계'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근간으로 2권 '수행(가제)', 3권 '철학(가제)'이 있다. 불교 과학 철학 총서 편집위원회. 『물질세계(불교 과학 철학 총서 1)』. 게쎼 텐진 남카 역. 불광출판사, 2022. # 영어로는 1권 'The Physical World', 2권 'The Mind', 3권 'Philosophical Schools', 4권 'Philosophical Topics'라는 부제로 4권 전부 번역 및 출간되었다. Science and Philosophy in the Indian Buddhist Classics.
티베트 불교의 분석적이고 지성적인 성향은 과학자들과의 적극적 교류에서도 드러난다.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제커(Carl Friedrich von Weizsäcker)#, 데이비드 봄(David Bohm)#, 리차드 데이비슨(Richard J. Davidson)#,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등 세계적인 뇌과학자, 신경생물학자, 인지과학자,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들이 티베트 불교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마음과 생명 연구재단(Mind & Life institute)의 강연, 대담, 저서 그리고 달라이라마와 과학자들의 교류를 담은 다큐 영화 『The Dalai Lama: Scientist』 등에서도 티베트 불교와 과학자들 간의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에 관한 국내 서적으로는 『한 원자 속의 우주』, 『달라이 라마 과학과 만나다』, 『불교와 과학』, 『나를 넘다』 등이 있다.
달라이 라마는 법문에서 양자역학, 심리학, 신경생물학 등을 예시로 자주 언급한다. 예를 들어 달라이 라마는 양자역학과 불교의 중관 사상 모두 '사물이 실제로는 관찰자에게 인식되는 것처럼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과학적 사실에 기초하여 불교 경전에서 언급된 수미산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기도 하였다. #
달라이 라마는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우리 불자들이 21세기의 불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것은 (21세기 불자들이) 현대 과학을 포함하여 현대와 현대 세계에 대한 더 폭넓고 깊은 이해의 기반을 갖춰야 하고 그에 덧보태어 부처님의 메시지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더 온전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자들에게 현대 과학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또한 달라이 라마는 분석과 탐구를 강조하는 티베트 불교의 특성과 불교 논리학에 기반하여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가 가능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불교와 과학 간의 교류와 협력을 도모하는 달라이 라마의 노력에 대해 불교계나 과학계 양측 모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달라이 라마가 2005년 신경과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회인 신경과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 SfN)의 연례 학술회의에 초대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의 참석에 관한 논란이 벌어져 (달라이 라마의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는 중국 출신이 다수 포함된) 5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초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대 측은 "달라이 라마의 명상에 대한 견해는 주관적이며, 명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 시점에 신경과학이 무모하게 정신적 문제에 접근할 경우 학문의 신뢰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반대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후 '명상을 통한 의식의 연구'를 주제로 한 달라이 라마의 연설을 듣고 신경과학자들은 그의 참석이 매우 적절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학회의 여론은 그의 방문을 전적으로 환영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 # #
2005년 당시 반대 측 과학자들이 내세운 '과학적 근거 부족'이란 명분은 이후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활성화로 인해 그 정당성을 상실하였다. 가령 불교 명상에서 파생된 마음챙김(mindfulness)의 경우 Web of Science에서 1966년부터 2021년까지 마음챙김에 관한 16,581건의 출판 논문이 확인되었다. 특히 2006년 이후 출판물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이 있었다. 출판물의 거의 절반(47%)이 심리학, 약 5분의 1(20.8%)이 정신 의학 출판물이었다. 대부분의 출판물은 서양에서 비롯되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대표성도 증가하고 있다.
Trends and Developments in Mindfulness Research over 55 Years: A Bibliometric Analysis of Publications Indexed in Web of Science, Mindfulness, Anuradha Baminiwatta, and Indrajith Solangaarachchi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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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 강원의 과학 교육에 대한 다큐 『100 Year Project: A Film』 |
Science for Monks & Nuns Initiative는 티베트 불교 승려들에게 과학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사업이다. 스미스소니언 재단 등에서 파견된 교육자와 과학자들의 지도 하에 다수의 티베트 불교 승려들이 3년 과정의 과학 리더십 프로그램을 수료하였다.# 또한 에모리대와 협력하여 Emory-Tibet Science Initiative(ETSI)를 설립하고, 승려들에게 지속적으로 과학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사업들을 통해 물리학, 신경과학, 천문학 등의 과학 과목이 티베트 불교 강원(주로 겔룩 소속)의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되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티베트 불교계 측에서는 티베트 문헌 및 기록 도서관(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ves, LTWA)이 승려들의 과학 교육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세이거 패밀리 재단(Sager Family Foundation)과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은 이니셔티브를 재정적으로 후원하였다.Science for Monks & Nuns Initiative 25주년(실버 주빌리) 기념 컨퍼런스 개회식 영상
4.1.1.4. 근(根)·도(道)·과(果)[편집]
티베트 불교에서는 모든 불교의 가르침을 크게 근/기(གཞི, 根/基), 도(ལམ, mārga, 道), 과(འབྲས་བུ, 果) 세 부분으로 분류한다. 근/기는 존재론, 도는 수행론, 과는 결과론에 해당한다. 존재론에 기반하여 수행론이 성립하며, 존재론과 수행론을 기반으로 결과론이 성립한다.
수행론인 도(道)는 다시 견해, 명상(수습), 행위(ལྟ་སྒོམ་སྤྱོད་གསུམ)로 구분한다. 여기에 결과론인 과(果)를 합하여 견수행과(ལྟ་སྒོམ་སྤྱོད་འབྲས, 見修行果)라고 지칭할 때도 있다. 견해, 명상(수습), 행위에 대한 설명은 다음 항목에서 후술하였다.
불교 전반의 근·도·과에 대하여 티베트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첫댓글 오늘도 福 지으시고 액운(厄運) 타파(打破)하시어 무탈(無頉)하시며 智慧 ㆍ知慧롭게 살아 가시길 祈願합니다. 마음이 따뜻 한 멋진 하루되세요. 잘 보고갑니다.
感謝합니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