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올라온다기에 상사화가 있는 모악. 불갑 두 산의 탐방을 서둘렀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도로 양변으로는 상사화가 만발하여 찾아가는 내내 기분이 좋아진다, 축제시작 하루전인 용천사 지역은 이른 아침인데도 차가 많다, 꽃무릇이 산비탈에 널부러진 길을 따라 노은재로 가파른 길을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곷무릇 사이로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도 한몫을 하며 두눈을 가득 채워주고
시골길 동네 어귀가 대부분 그렇듯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다. 하지만 불갑사나 용천사 드나드는 길 입구엔 코스모스 대신 꽃무릇이 뜨거운 열정의 빛으로 맞아주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꽃무릇으로 전국의 도로변을 단장하면 어떨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깐 가져본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보고 싶은 절실함 마음을 상징하는 상사화(꽃무릇)가 함평 용천사와 모악산 자락을 수놓으면서 전국에서 등산객과 탐방객, 그리고 사진작가들이 가득 메워준다.
한국의 백경중 일경에 속하는 40여만평의 용천사의 꽃무릇 공원을 배경으로 2000년부터 매년 9월의 같은 시기에 두 사찰이 있는 곳에서는 꽃무릇 큰 잔치가 열린다. 두 절은 모악산 줄기를 사에두고 동향으로 니란히 자리잡고있다, 용천사 뒷편의 왕대밭과 차밭 사잇길로 난 구불구불한 산책로, 대형 용분수대, 탐스럽게 매달린 조롱박과 단호박 터널, 정성스레 얹어진 항아리 탑,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며 쌓아 올린 돌탑, 노천공연장, 천번을 생각하는 천사사를 지나는 명상의 숲, 전통야생화단지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상사화(相思花)는 수선화과(水仙花科)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땅속 비늘줄기는 크고 둥글며 잎이 비늘줄기에 모여나지만 여름에 꽃이 나오기 전에 말라 죽는 특성으로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음을 비유에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이 붙여지게 됐다.
또한, 4Km에 이르는 모악산 등산로와 용천사 진입 도로 양켠에 꽃무릇 꽃길 조성이 이루어져 찾는 관광객으로 하여금 탄성이 나오는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꽃무릇은 가을에 핀 꽃이 진 후 돋아난 잎은 겨울과 봄동안 온 산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며 또하나의 볼거리로 절경을 만들어 준다.
모악산은 영광 불갑사가 자리 잡은 불갑산과 맞닿아 있어 등산객들이 용천사를 출발 불갑산 정상 연실봉에 올라 하산할 때는 영광 불갑사 쪽으로 내려가거나 불갑사 0.9km 전방 동백골에서 다시 용천사로 내려오는 등산코스가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하지만 지금은 초라하게 보인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우물이 서해로 통했다는 용이 서해와 용천사를 오갔다는 대웅전 앞 마당 한켠의 용천이다, 이 용천으로 인하여 용천사런 이름을 얻었다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용천사의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함평 용천사가 백제 침류왕 1년 서기 384년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한 1000년의 고찰이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사찰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고 현재 복원되고 있으며 용천사가 자리 잡은 모악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상사화 군락지다
우리 인간은 일정한 경계의 담장을 만들어 놨지만 이승과 저승, 또 善 과 惡, 男, 女, 老, 少의 경계의 구분을 가리지않고 피워있는 꽃무릇 군락지
모악산에서 수정암을 거쳐 불갑사 영역으로 들어선다
5일간의 산사화 축제가 영리고있는 불갑사 지역 꽃밭에는 10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탐방객이 몰리기 시작하는듯
곳곳에서는 축제잔치 준비에 부산하다
불갑사(佛甲寺)는 영광군의 불갑산(516m) 기슭에 자리 잡은 사찰로 상사화로 유명한 곳이다. 백제 침류왕(384년) 때 마라난타 존자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 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절 이름을 륙십갑자의 첫 글인 甲자를 붙혀 佛甲寺라 하였다. 천왕문 안에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목각하고 고종 1년에 설두선사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전북 무장 연기사에서 옮겨왔다고 전해지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보물 제830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매우 화사하다. 불갑사 안에는 만세루·명부전·일광당 그리고 요사채가 있고, 절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있다. 백양사의 말사로. 창건설화도 정확성도 없을 뿐 아니라 복잡하다,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 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국사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는 수백 명의 승려가 용맹정진 했으며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1741년(영조 17)이만석(李萬錫)이 쓴 사적비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미상으로 되어 있다.
일설에 따르면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한 뒤 최초로 세운 절이 되는데, 마라난타가 법성포(法聖浦)를 통하여 들어 왔다고 하고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문주왕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 절이 크게 번창한 것은 고려의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머무르면서부터이다.
많은 중수를 거쳐 오다가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법릉(法稜)이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 대웅전의 본존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34년해릉(海稜)이 중창하였다, 또한 대웅전 용마루 귀면(鬼面) 위에는 작은 석탑과 보리수를 새긴 삼존불대(三尊佛臺)가 있는데,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상이다. 또한 진각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의 앞면 공포 귀퉁이는 용이 튀어 나오는 형상이지만 뒷면에는 잉어가 대웅전을 뚫고 들어가는 형상이여서 잉어가 대웅전에서 불법의 염력으로 용으로 화하여 밖으로 나오는 형상이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목조 석가여래 삼존불 좌상이다
상사화라고 부르는 전설로는 옛날 금슬 좋은 부부에게 늦게 얻은 딸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환으로 돌아가시자 백일동안 극락왕생을 빌며 탑돌이를 시작하였다. 이 절의 큰스님 수발승이 여인을 연모하였으나 스님 신분이라 이를 표현하지 못하고, 여인이 불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그리움에 사무쳐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 그 후 스님의 무덤에 잎이 지고 난 후 피어난 꽃이 스님을 닮았다하여 상사화라 하였다고 전해지며, 꽃무릇으로도 불린다. 불갑사 주차장에서 함평 용천사까지 차로 가면 대략 16km인데, 직선거리는 불과 2.5km에 지나지 않는다. 불갑산의 정상인 연실봉에서 구수재까지 내려오면 바로가면 용천사요 계곡을 따라 바로 불갑사로 가는 길이다.
불갑사 연못에 있는 잉어
일명 호랑이 폭포다, 처음오는 탐방객은 호랑이폭포라는 이정표를 따라 올라와서 실망이 거듭된다, 호랑이 상 하나를 앉혀놓고 직경 7m정도의 얕은 웅덩이를 일컬은인데 나는 호랑이 목욕탕이라 부르며 알리고있다
연실봉에서 내려오면 불갑사와 용천서와의 갈림길이되는 안부 구수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