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진국인 것도 많다.일본이 아직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다? 아니다
일본은 우리와 스포츠 경기중계를 하면 우리를 숙적이라 부른다,
우리는 일본과 무엇이든 하면 가위 바위 보도 지지 않으려 한다.
내가 일본 최초 방문은 1992년 41살 때 1881년 조선 신사유람단처럼 일본의 선진 건설문화를 견학키 위해 당시 근무 하던 대우건설소장단 1진의 일원으로 방문하여 선진건설문화를 보고 많이 반성하고 느끼고 품질과 안전의 강화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은 충격이었다. 그 후 7년 뒤 둬 번 개인적인 일, 즉 골프를 하러 후쿠오카에 간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이 4번째 여행을 처와 같이 가 6박7일 후쿠오카에 묵고 왔다.
23년이 지난 지금의 나의 느낌은 일본의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활기나 국민들의 표정이 진취적이거나 길에서 만난 사람얼굴에서 생기를 느끼지 못하고 왔다. 반면 중국은 10여회 매번 갈 때마다 급진적 변화와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이제 일본 아베가 반성을 하고 정책을 수정하는 모양이나 아직도 우리는 그가 미국만 바라보던 정책에서 한국 중국 싱가포르 그리고 동남아에 관심을 조금 갖는다는 정도라고 현지인들이 말한다.
일본은 주변의 나라에 많은 악연을 쌓고도 그것을 속죄할 주 모르는 철면피 같다. 오로지 인연은 나의 정반합의 연속인데 그들은 미국에 인류 최초의 끝내기처방 두 방의 원자폭탄 피폭만을 원망한다. 그들이 우리국민을 초개처럼 대하고 학대와 수탈과 파리 목숨으로 죽인역사는 갑신정변부터 따지면61년이다. 1937년 만주사변부터 중국인의 목숨을 일본도 날이 잘 베어지는지 시험 삼아 사람의 목을 무지르듯 자르는 죽이기 연습을 한 남경대학살까지 만행과, 어린이를 하늘에 던지고 착검한 칼로 받아 배를 터 추어 죽 이고 아무 죄의식 없이 히득거리던 악마였음을 반성치 못한다.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의 폐허 속에 살아남으려 한 10세 정도의 소년이 죽은지도 모르고 여동생을 업고 물을 구하러 다니다, 정오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인지 차렛자세로 서있는 이 한 장장의 사진을 놓고 제국민만 피해를 강조하면서 국민이여 잊지 말라 그리고 분발하여 세계를 제패하고 원수들 갚자! 강조하였을 황패한 벌판의 죽은 동생을 업은 맨발의 소년사진이다.
이 사진은 일본국민은 모두 잘 아는 사진이란다. 대분현 문화관에 용변을 보려 갔다 발견한 사진이다.
일본의 우리보다 못한 예로 도로의 차량은 시속 60킬로를 넘지 않고 고속도로라도 별반 그 속도이다.당시 신간선 철도는 경이의 대상이었으나 우리 KTX가 개통된 뒤는 교통의 속도전에어 우리나 중국이 뒤진 것도 별로 없다. 도로망 특히 고속도로나 고속화도로는 전혀 그런 감을 느끼지 못했다. 신간선과 연결된 지방철도는 우리의 지하철에 뒤지고 방풍벽설치는 보지 못했다.
다른 우리보다 못한 예는 모든 시설은 아직 아날로그 시설을 넘지 못하여 티켓을 자동판매기에서 갈 곳의 요금을 찍은 뒤 통행인원을 그림으로 그린 버턴을 누리고 동전을 투입하여 티켓을 받아서 지하철을 타야한다. 우리 지하철과 버스의 연계성과 승계하여 금액을 절감할 생각은 아예 없는 나라다.신간선 이라는 고속철은 우리처럼 티켓을 전화기로 사거나 티켓을 사서 차량에 타고 내리고 역무원의 검사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처럼 티켓을 내고 내려야 하는 아날로그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예를 더 들면 거리는 한산하고 인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은 등교나 출근시간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고 도로의 차량은 한산하나 러시아우어는 밀리는 것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도로를 확장하는 공사를 한 흔적도 없다.
택시요금과 기차 신간선의 요금은 우리보다 두 배는 비싼 느낌이다. 주차요금도 거의가 자동인식기능이 설치되지 않아서 들어가면서 티켓을 받아서 나오면서 자동으로 동전이나 지폐를 넣은 방식이었다. 모든 것이 아날로그 방식 사고를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럼 점 등이 우리가 일본보다 선진국인 것들의 예다.
일본국민의 노령화는 심각하여 어느 건물 앞을 지나다 보니 노인들이 무슨 학습을 하는지 질서정연하게 않아있다. 동사무소에서 하는 학습시간이냐? 동생에 물으니 노인의 집단숙소인데 지금은 식사시간이라 앉아 식사를 하시는 중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노인들이 식사를 각각 앉자 맥없이 식사를 하고. 바로 앞은 병원이라 노인은 치료 받기가 용이한 점은 우리보다 앞선 모습이다. 노인들이 부를 가지고 있으니 이들의 소비를 유도하여 고용을 창출하려는 술수이다. 부를 축척한 노인들은 화장을 예쁘게 하고 애완용 동물을 끌고 산책하면도 브랜드가 있는 의상을 입고 다닌다.
어떤 이는 젊은 시절에 축적한 부를 건물을 지어 여러 채를 가지고 임대업을 하고 있었다. 빈부의 차는 이곳도 심하다.노인 혼자 살다가 죽은 여러 날 지난 뒤 발견된 사람도 쉽게 발견되고 죽은 사람의 집은 비어 있는데 이것을 철거치 않는 것은 유휴지가 되면 세금이 많아지니 상속자가 철거를 않는 모양인데 이런 집에 불량청소년이 모이면 흡연이나 나쁜 짓거리를 하거나 화재를 내면 주인이 벌금을 내는 모양이다 .이래서 나온 정책이 주차장을 만들어 주민에 제공하면 공용이 되고 세금이 면제되는 제도를 택하고 있단다.
일본사람의 영어 발음은 정말로 엉터리다. 일본의 모음은 아이오에우 이 다섯이라 예로 버스는 빠스로 네비게에션은 나비로 축소 발음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영어는 좀 되겠지? 하고 물으면 전혀 안 된다. 우리영어 교육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젊은 직장인 중년 신사는 그래도 길을 묻고 안내는 받을 만하다, 그래서 대학생이하는 영 아니다. 이점은 아직 일본이 우리에 뒤진 모습이라 본다.
그들을 높이 살 점은 그들의 전통문화나 유적(소창성 조선통산사 모형. 전통 다도) 등은 우리가 약 오르게 잘 보전하고 있다.
하관 즉 시모노세키의 역사는 대정3년 1914년에 지은 변소를 아직 잘 쓰고 있다. 그리고 당시 붉은 벽돌집이나 호텔이 잘 보관되어 있다.
아직도 곳곳의 길거리에는 태국에서나 본 듯한, 불상을 모신 작은 신당이 시내 곳곳에 있고 신사와 長府의 일본국보 功山寺 절과 무사의 집들과 곳곳 사찰의 묘소관리는 우리보다 상당한 노하우가 있다.
다른 본받을 점은 학교수업에 교사 부모 학생을 위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열정을 가진다. 소창성 구경을 가니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오래달리기 측정을 열성으로 하고 있었다. 응원하는 학생들 힘내라 격려하는 부모님 그리고 도로를 통제하고 안내하는 자원봉사대 사력을 다해 달리는 어린이들 그리고 교장이 나와서 학생에 상장과 챔피언 패를 내려주고 자랑스러워하는 수상자 모습이 나의 초등학교 시절과 겹치면서 그들은 잘 지키고 있음에 부럽다. 우리는 운동장이 협소하니 아이들이 싫어하니 등등 이유로 운동과 놀이와 공부가 병행되지 못하고, 선생은 참교육이니 전교조니 거꾸로 학습이니 갑론을박 중이 아닌가?
또 본받을 점은 직업의 세습은 유별나다, 유하인에서 부산에서 온 세모 여와 손녀가 네비게인션 켜고 일본 유명한 우동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찾아서 안내해 같이 가보니 자리가 없으니 밖에서 기다리고 주문 후 20-30분이 걸림을 아시고 기다리시라는 안내 글을 칠판에 일본 글씨로 쓰여 있다. 이 세 여자는 들어갔다 종업원에 밖으로 안내를 하는 것인지 쫓는 것인지 모르고 나온다. 우리 동생이 설명을 한다.
나는 일본식당 어느 할머니가 하는 우동집인데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동이 우동 맛이지 별것이나 싶어 허름하고 사람이 없는 집을 들어갔다. 80살은 족이 먹고 귀를 먹은 노파가 우도그릇을 간신이 덜덜 떨며 드는 근력이다. 그곳에서 일부러 시켜 먹는다.그래도 노파는 내숭이 있어 잘하는 음식이 뭐냐?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메뉴를 묻자 그 노파는 다 잘한단다. 동생이 이해를 못한다.
할머니가 우리가 아니면 하루 종일 공 칠 일인데 우동 세 그릇 팔아준 것이 뭐 대수일까? 그제야 동생이 이해를 한다.
그들이 우리에 갖은 열등의식은 대부분의 일본인들 감히 족보는 없다, 그냥 그들의 아버지 할아버지 많아야 증조까지의 일본제국의 호적이 있는 분의 가승이 있을 뿐 족보는 귀족이나 갖는 것으로 한국인이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기죽고 있다.
우리 가승만 봐도 시조1세부터 분파되고 익호를 받아 중시조로 변화하는 과정은 일본인들이 보면 최소 성의 영주 급이니 그들이 기죽을 수밖에 없다.
지정학적 열등 점은 화산의 열기로 물은 온천이라 계란을 삶고 있고 흙탕물을 끌어서 방물이 올라온다. 벳푸의 시내가 보이는 학견산을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대인 왕복 1500엔 우리 돈 15000원 비싸다 그러나 선택을 없다. 길도 가파르고 해발1300미터 고도를 올라야한다.
우리는 호텔에서 케이블카까지 택시로 입장료포함 12000엔이라 호객을 한다. 무슨 택시비로 75000원을 주냐. 걷어가자 한 시간 운동 삼아 걸어 오르니 걷기를 잘했다, 풍광과 수목이 울창하여 사진을 많이 찍었다.
일본 국보 공산사 목조 건물 지붕이 기와가 아닌 갈대와 흙을 섞어 바르고 망치로 압축하여 주면 50년에 번와를 하는 기와란다.
내려오는 버스로 지옥코스의 족 욕이 있다. 관광객을 홀려서 족 욕이나 모래찜을 한다. 동내 아래가 모두 연기투정이라 내려가 동네에서 운영하는 공동탕이 있다 입욕료는 100엔 우리 돈 천원이다 탕의 물도 깨끗하고 뜨겁다, 우리는 남녀 탕에서 각각 푹 쉬다 나온다! 여탕의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 처와 동생의 목소리가 무슨 답을 하는 모양이다.
박에서 기다리니 한류 열풍에 이곳의 노인 할머니들이 내 청춘 돌려다오! 일본 남편들아! 타령인 모양이다. 모두 한국의 욘사마 펜이 되여 한국여자는 부럽고 좋겠다는 얘기란다.
동내 공동 관리 목욕당 이런 노인들이 사용하는 욕탕이나 수질이나 온도도 좋고 관리가 잘된다.
2015-12-03에서07 福岡,由布院.別府.小倉.下關.功山寺,長府 기행문
첫댓글 일본은..이웃인가?
이웃이다~ 아니다~
그러면 이웃이고 싶다~ 아니다~
우리는 변화하는데 일본은 변화뿐이 살 길임을 모르는 것은 역경을 모르고 천하무상을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