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호鬼狐
도깨비나 여우에게 홀린 사람은, 다만 그것의 애교와 고운 얼굴만 보기 때문에, 사랑하고 연모하고 친근하게 하여 그것의 놀림을 받고 있는것임을 알지못한다. 정신을 빼앗기고 기운을 소모하여 죽게 되어도 또한 달게 여긴다. 뒤에 어쩌다가 그것이 여우 아니면 도깨비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사람은 머리끝이 쭈삣하고 일어서며 마음은 한기가 들어서 비록 애써 참으려 하나 참을 수가 없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여인의 자태와 얼굴 모습에 미혹하여 어리석게 연모戀慕하느라 제 몸이 어떻게 되는가를 잊어버린다. 기운을 손상하고 재물을 소모함이 도깨비나 여우에게 홀린 것보다도 더 심하다. 죽어도 뉘우칠 줄을 모른다. 도깨비나 여우에게 죽는 것과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 여인이 눈썹 그리고 뺨에 분 바르고 연지 칠한 꼴이 귀신이나 도깨비와 다름이 무엇이며, 간교한 말과 상냥하게 꾸민 얼굴빛이 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남의 집 재산을 없애고 남의 골육 사이를 이간해 놓고는, 마음을 변하기가 손바닥 뒤집듯 하여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며, 단장丹粧을 고쳐 가지고는 따로 다른 남자를 껴안는 그 심정과 생태는 도리어 도깨비나 여우보다도 심하다 하겠다. 그렇건만 사람의 마음이 바야흐로 미혹하여 있고, 몸은 꿈속에 빠져 있어서 죽음도 돌보지 않는다. 다시 무엇을 깊이 생각하겠는가. 대체로 여색女色이 능히 나로 하여금 미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며, 환경이 능히 나로 하여금 얽매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얽매인 것이다. 늘 환경이 다르고 정이 치우치는 곳에서는 마음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하여 생각하고 헤아려 보라. 그리하여 마음이 항상 자재自在하여 꿈의 경지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저것이 어찌 나를 홀리게 하고 미혹하게 할 수 있겠는가.
爲鬼狐所迷者 只見其嬌艶 故愛戀親? 不覺爲彼所弄 奪精耗氣 死且甘心 後或省悟非狐則鬼 其人毛竪心寒雖欲勉留而 不可得矣 今夫世人迷或姿色 痴戀忘身 損氣耗財 甚於鬼狐 死而無悔 與其死於鬼狐 有何差別乎 況?眉塗? 無異鬼幻巧言令色 何殊狐迷 且耗人家財 間人骨肉 ?程割愛 改粧別抱 想其情態 反甚於鬼狐 然心方迷或 身陷夢城 死且不顧 更何商量 夫色不能使我迷 境不能使我縛 我自縛 每於境異情偏處 平心思量 心常自在 不入夢境 彼焉得爲幻位迷
이 장은 여색女色에 미혹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여색에 홀리는 것은 도깨비나 여우에게 홀린 것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타이르고, 이러한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항상 어느 경우가, 평상시와 다르거나 어느 곳에 정이 치우치게 기울어지는 때에는 한 발 물러나서 우선, 마음을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로 가진 뒤에 깊이 생각하고 헤아려서 빈틈이 생기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어떤 변화가 왔을 때에 그것이 좋은 일이건 궂은 일이건 간에 우선 한 걸음 물러서서 차분히 생각해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옛날부터 아름다운 여색 때문에 몸을 망치고 집을 망치고 나라를 멸망하게 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그러므로 어느 훈계, 어느 설교, 어느 책에도 여색을 경계하라는 말이 없는 것이 없건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공자도,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기를 여색을 좋아하듯 하라(賢賢易色)." 고 하였다. 여기 여색 때문에 멸망을 가져온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한두 가지 적어 보기로 하자. 중국의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포악무도한 임금으로는 걸桀과 주紂를 말한다. 그 걸과 주 둘 다 여색에 정신을 빼앗겨 나라를 멸망시켰다. 걸왕桀王은 매희妹喜라는 미인에게, 주왕紂王은 달기?己라는 미인에게 매혹하여 이성理性을 잃었던 것이다. 하夏나라의 임금이었던 걸桀은 매희妹喜의 환심을 사기위하여 보석과 상아象牙로 호화궁전을 짓고 옥으로 침대를 만들었으며, 나라 안의 미소녀 3천 명을 모아다가 오색찬란한 비단옷을 입혀, 춤추고 노래 부르게 하여 여인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또 큰 못을 파고 향기 좋은 술을 그 못에 가득 채우고, 거기에 배를 띄워 뱃놀이를 하였다. 한 번 북을 둥둥 치면 많은 배에 탔던 미녀美女들이 뱃머리에 엎드려 못의 술을 소가 마시듯 마시니 그 사람의 수가 3천 명이었다고 한다. 못의 주위에는 고기[肉]를 숲처럼 쌓아 두었다. 이것을 사가史家들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사치와 낭비와 광란狂亂과 가렴주구苛斂誅求가 드디어 하나라를 멸망하게 하고야 말았다.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혁명을 일으켜 걸왕을 죽이고 나라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주왕紂王은 은나라의 임금이었다. 그는 달기?己라는 미희美姬의 마음을 사기 위하여, 백성들에게서 가혹하게 세금과 공물을 거둬들여 웅장한 궁전과 원지園池를 만들었다. 큰 못에 술을 채우니 술찌기가 10리에 뻗쳐 산을 이루었다. 그 술의 못에 배를 띄우고 달기와 함께 뱃놀이를 즐겼으며, 못가에는 고기의 숲을 만들고 북리北里의 춤이니, 미미악靡靡樂이니 하는 음란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게 하여 전라全裸의 수많은 남녀로 하여금 그 음악에 맞추어 그야말로 일대의 스트립쇼를 벌이게 하였다. 이러한 광란의 놀이를 120일 동안 밤낮으로 계속하였다. 이것을 '장야음長夜飮'이라고 한다. 그리고 '포락형?烙刑'이라는 잔인한 형벌을 창안하였다. 숯불을 이글이글 피워 놓고 구리쇠의 기둥을 걸치고 기름을 칠한 뒤에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한다. 당연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주왕은 사람이 불에 떨어져 산 채로 타 죽는 것을 보고 달기와 함께 손뼉을 치며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토멸討滅되었다. 주유왕周幽王의 이야기 하나만 더 적어 보기로 한다. 유왕幽王은 주周나라의 제12대 왕이다. 포사褒?라는 여자에게 미혹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고 유연遊宴에만 빠져 있었다. 포사는 잘 웃지 않는다. 유왕은 그를 웃게 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하였다. 포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한다고 하여 날마다 사람을 시켜 궁중에서 비단을 찢게 하여도, 온갖 사치와 낭비와 음란과 광태狂態에도 만족하게 웃는 일이 없으니, 그는 최후에는 봉화烽火를 들게 하였다. 봉화는 나라에 반란이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 드는 것이다. 그리하면 천하의 제후들이 구원의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유왕은 아무 일도 없는데 봉화를 들게 하였다. 천하의 제후들이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왔다. 그러나 와 보니 희롱이었다. 제후들이 멍하고 있는 꼴을 보고 포사는 크게 웃었다고 한다. 유왕도 매우 만족해 하였다. 그러나 뒷날 견융犬戎이라는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이번에는 정말 급하게 봉화를 들었으나 제후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유왕은 죽임을 당하고 포사褒?는 포로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옛 글귀가 있다.
한 번 돌아보면 남의 도성都城을 기울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남의 나라를 기울게 만든다.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
첫댓글 대체로 여색女色이 능히 나로 하여금 미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며, 환경이 능히 나로 하여금 얽매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얽매인 것이다. 일향전념 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