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장터에서 들려오는 상인의 소리
중세기때 꼭 속해야만 했던 클럽, 『길드 (Guild)』
중세기때
꼭 속해야만 했던 클럽, 『길드 (Guild)』
‘아저씨, 좀 깎아주세요. 다음에 또 올께요.’
흥정하는 상인들과 손님들, 우연히 마주치신 아주머니들의 수다,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파시는 할머니, 손수 만드신 가죽물품을 진열하고 계신 아저씨, 무서운 칼을 드신 정육점 아주머니… 한국 시골의 재래 시장에서 사람들을 파란 눈과 금발로 바꾸고, 튀김과 오뎅국 대신에 파이와 맥주를 상상해보면 중세기 런던 장터와 그리 멀지 않은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구역과 파는 물건의 종류가 다른 시장들에서,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았던 중세기 장인과 상인들이 길드 (guild) 라는 것을 형성했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와 상업세계에서 세력을 떨쳤던 ‘길드’는 무엇이였을까요?
‘겔드 (Geld, 왕실에 바치는 상납금)’ 에 어원을 두고 있는 ‘길드’는 직업, 관심, 목적이 같은 중세기 기능인들의 조합을 말합니다. 노동조합 (trade union), 기업 연합 (cartel) 과 비밀 단체 (secret society) 의 면모들을 조금씩 포함하고 있었던 길드는 12세기 초부터 왕에게 부여받은 칙허에 의해 설립되기 시작했고, 1400년대가 되서는 100여개가 넘는 길드들이, 런던 각 분야 산업의 독점권을 행사하며, 도시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실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길드는 런던뿐 아니라, 셰필드 (Sheffield) 의 칼 만드는 장인, 브리스톨 (Bristol) 의 무역상인, 요크 (York) 의 모피상인 길드 등과 같이 중세기 영국의 다른 지역들과 유럽에서도 활발했습니다. 비록 16세기 이후 산업이 근대화되면서 영향력이 감소되기 시작했지만, 런던에는 오늘날까지 리버리 회사 (livery company) 로 남아 그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길드는 아버지가 회원이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수 있었고, 회비를 내고 가입할 수도 있었지만, 7년 간의 견습 기간 (apprenticeship) 을 거쳐 회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였습니다.
무엇인가 이루어보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런던으로 이주한 10, 20대의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우며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교제하며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견습기간 동안 견습생은 결혼을 하거나, 술집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을만큼 견습에 진지하게 임해야 했습니다. 견습기간이 끝나면, 직공이 되어 마스터를 섬기거나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길드들이 각 분야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길드의 멤버가 아니면 그 분야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런던 시민권은 길드의 멤버쉽을 전제로 하였기에, 당시 길드에 속하지 않은 장인이나 상인이 없었습니다.
회비를 내면, 꼭 그 분야의 산업에 종사하지 않아도 사회적, 법적 이득을 위해 특정한 길드에 속할 수 있었는데, 비단및 고급복지 포목상 (mercers), 식료품상 (grocers), 생선장수 (fishmongers), 금 세공업자 (goldsmith) 같이 명성이 높았던 길드일수록 그 길드가 대표하는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 회원들의 수가 많았고, 이런 길드들은 회비가 비싸서 젠틀맨스 클럽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마스터 (master), 관리인 (warden) 과 보조 (assistant) 로 구성된 서열을 갖추고, 법과 규칙을 정하며 조직적으로 운영되었던 길드는 구역교회들과 연결되어 종교적이고 자선적인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길드의 존재 이유는 특정산업의 독점체제를 수립하고, 그 직종의 종사자들을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기술을 연마한 사람들로 제한하며, 기술의 발전과 무역과 교류를 장려하고, 임금과 노동조건 등 조합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상업적인 차원에 있었습니다. 질 낮은 상품을 팔거나, 손님들을 속이다가 걸리면, 길드에 의해 벌금을 물거나 처벌을 받았고, 심각한 경우에는 길드에서 쫓겨나 다시는 그 산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길드들이 생겨났고, 가죽 파는 사람들이 장갑 만드는 사람들을 흡수하고, 신사용 소품상인들과 모자 만드는 사람들이 합치는 등, 기존의 길드들이 합병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M&A 의 전통이 이때 시작된 것일까요? 그때도 지금같이 밤을 세며, 서로의 길드에 대해 알아보려고 실사를 했을까요?
사람들은 ‘그룹’을 형성하기를 좋아하고, 그룹 안에서 또 소그룹을 만들어 ‘엘리트’ 내지는 ‘중심’이 된 기분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우리는 그룹에 둘러싸여 있고, 또 항상 그룹안의 그룹이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길드들 안에서도 소규모의 클럽 안의 클럽 (club within club) 들이 생겼고, 이 배타적인 성격의 프라터니티 (fraternity, 사교클럽) 들은 마스터를 비롯한 길드 내의 임원들과 외부 고위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가죽 벗기는 피혁상 (skinner) 길드의 사교클럽, 코퍼스 크리스티 (Corpus Cristi) 는 에드워드 3세, 왕비 필리파, ‘블랙 프린스’, 리차드 2세와 퀸 앤의 후원을 받았고, 옷감 다루는 사람 (clothworkers) 의 길드는 ‘유토피아’ 의 저자, 토마스 모어가 지지했던 것만 봐도 당시 길드 사교클럽들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1515년, ‘great twelve’ 라 불렸던 top 12 길드들의 수퍼 리그가 탄생했습니다.
규모, 경제력과 영향력 면에서 다른 길드들과 명백하고 현저한 차이가 있었던 몇 개의 길드를 제외하고는, 길드들의 서열을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6위를 두고 도매 재단사 (merchant taylor) 와 피혁상 (skinner) 들의 치열한 논쟁이 끊이지 않아, 결국에는 이들이 6위와 7위를 매년 번갈아가며 차지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영어 표현중 ‘완전한 혼란과 무질서’ 또는 ‘두 사람이나 단체의 불일치의 상태’를 뜻하는 ‘at sixes and sevens’ 라는 관용구가 이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1위: 비단및 고급 복지 포목상 (mercers)
2위: 식료품상 (grocers)
3위: 양모등의 옷감 소매 직물상 (drapers)
4위: 생선장수 (fishmonger)
5위: 금 세공업자 (goldsmith)
6위: 도매 재단사 (merchant taylors)
7위: 피혁상 (skinners)
8위: 신사용 소품 상인 (haberdashers)
9위: 제염업자 (salters)
10위: 철물상인 (ironmongers)
11위: 와인 업자 (vinters)
12위: 옷감 다루는 사람 (clothworkers) 입니다.
수퍼리그의 형성은 길드들간의 경쟁심을 유발했고, 길드들 사이에 점점 정치적 파워의 차이가 커졌습니다. 자연스럽게 ‘top 3’ 들로부터 시장, 주장관과 구의원 등의 중요한 직책들이 선출되었고, 1397년과 1420년 사이에 네 번이나 시장직을 맡았던 리차드 위팅튼 (Richard Whittington) 도 양모 수출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포목상 길드 출신의 사람이였습니다. 이렇듯, 길드는 상업뿐 아니고 정치와도 깊은 관여를 가졌고, 서로서로 결혼했던 영향력 있는 몇 개의 길드에 속한 사람들이 런던을 운영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소수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된 상인들은 무역을 그만두고 땅을 사서 영주가 되기를 바랬으므로, 항상 새로운 사람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Top 12’ 외에도 염색공, 맥주업자, 이발사, 칼장수, 빵굽는 사람, 마구상, 푸주한, 석공, 대장장이, 약사, 조선공 등 수많은 길드들이 있었으며, 중세 길드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그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당시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산업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길드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생겨난 길드들에는 회계사, 건축가, 계리사, 공학가, 중재인, 보험업자, 은행업자, 정보기술자들의 길드가 있습니다. 중세기의 직업들에서 더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은 왜일까요? 저는 회계사이기보다 빵굽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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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들이 모였던 길의 이름들 |
중세기에 ‘마켓’을 뜻했던 단어 ‘cheap’ 에서 비롯된 칩사이드 (Cheapside) 에서 빵굽는 사람들의 브레드 스트릿 (Bread St), 우유배달 소년들의 밀크 스트릿 (Milk St), 목수들의 우드 스트릿 (Wood St) 과 철물상인들의 아이언몽어 레인 (Ironmonger Lane) 이 뻗었고, 조류상인들이 모였던 포울트리 (Poultry) 를 지나면, 창문가에 앉아 열심히 바느질했던 재단사들의 쓰레드니들 스트릿 (Threadneedle St) 과 옥수수 시장이 섰던 콘힐 (Cornhill) 이 나옵니다. 이밖에도, 옷감을 팔았던 클로쓰 페어 (Cloth Fair), 석공들이 자리잡았던 메이슨스 애베뉴 (Mason’s Avenue), 대포만드는 사람들의 캐논 스트릿 (Cannon St) 과 갓 잡아온 생선이라고 소리쳤던 생선장수들의 피시 스트릿 힐 (Fish Street Hill) 이 도시 곳곳에서 예전의 길드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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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들이 모였던 길의 이름들 |
명소: 길드의 ‘홀’, 『길드홀 (Guild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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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들의 본부소, ‘길드홀’ 과 그 옆의 ‘길드홀 미술관’ 전경 |
‘스퀘어 마일’ 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길드홀 (Guildhall) 은 12세기 런던 시장의 위신과 권한이 왕과 맞먹었을 때부터 ‘길드’들의 본부소 겸 ‘더 씨티’의 행정과 정치의 본거지로서, 시장과 길드의 대표자들이 모여 법을 만들고 재판을 하며 도시를 다스려왔던 곳입니다. ‘길드홀’ 은 중세기 런던에서 왕실의 웨스트민스터 홀 (Westminster Hall) 다음으로 가장 큰 건물이였습니다.
800년이 지난 오늘날 ‘길드홀’ 은 세계 금융과 비즈니스 센터의 중심에 자리한 만큼, 국제적인 회사들의 컨퍼런스, 미팅, 연회, 시상식과 프레젠테이션이 행해지고, 외국의 고위인사들을 맞이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때 ‘더 씨티’를 지배했던 ‘top 12’ 길드의 깃발들이 걸려있는 그레이트 홀 (Great Hall) 은 길드홀 안의 가장 큰 연회실로, 이곳에서 시장과 주장관이 임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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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홀 안의 ‘그레이트 홀’ |
16/17세기부터 무역과 상공업이 근대화되고, 길드들이 통제했던 상품과 서비스의 독점권과 비슷한 개념의 특허 (patent), 저작권 (copyright), 상표 (trademark) 등이 생기면서, 길드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길드는 자유무역을 방해하고, 기술의 혁신을 더디게 하며, 길드간의 정치적인 파워 싸움이 오히려 생산성과 효율성을 떨어트린다" 며 길드를 비판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칼 마르크스 (Karl Marx) 는 길드 안의 융통성 없는 등급과 소수 엘리트 그룹의 권력의 남용을 비난했습니다.
시장이 국제화되고, 큰 자본을 가진 기업가들이 출현하고 공장이 생기면서, 작은 자영업자들의 조합 대신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구조가 도입되어 수공업 길드들의 활동범위와 영향력은 점점 감소했고, 연달은 기술의 발전으로 그들은 더이상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드의 영향력을 경시하거나, 길드가 단지 한때 유행했던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특허와 저작권, 트레이드 마크 같은 개념들은 길드들이 설립했던 독점권에서 발상된 것으로 볼 수 있고, 길드는 자영업자들의 모임으로서 멤버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복지를 보장했던 면에서 ‘카르텔’ 과 ‘노동조합’의 선구자입니다.
길드를 탄생하게 했던 사회적, 경제적인 환경은 바뀌었지만, 중세기 길드의 전통은 아직 남아, 현재 영국에는 보통 ‘Worshipful Company of 무엇’ (예: Worshipful Company of Mercers) 이라 불리는 108개의 리버리 회사가 존재합니다. ‘리버리’는 길드 회원들이 특별 행사 때 입던 우아한 예복을 말하고, ‘worshipful’ 은 숭배하고 존경할만 하다는 뜻으로, 영국에서 고귀한 계층의 사람이나 단체 앞에 붙는 호칭입니다.
지금도 108개의 리버리 회사들의 서열이 종종 검토되며, 리버리 회사들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친목을 다지고, 각 분야의 연구와 발전에 힘쓰며 그 분야의 학위를 따는 사람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하는 등 사회적, 상업적, 교육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878 년 런던의 리버리 회사들이 힘을 합쳐 설립한 ‘City & Guilds Institute’ 는 실용기술 전문대 같은 곳으로, 기초부터 박사학위까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면화 제조업, 철강업, 가스업, 염색업 등 소수의 학과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이 곳에서 유아교육, 미용, 정보시스템, 관광까지 28개의 다양한 산업분야의 500개가 넘는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마차꾼의 길드는 택시운전사의 길드로 바뀌었고, 더이상 쓰이지 않는 석궁 만드는 장인들의 길드는 자선단체로 바뀌었으며, 말씀드렸듯이 지금도 꾸준히 새로운 길드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생긴 것이 1995 년에 설립된 세금전문가들의 길드입니다.
제가 속해있는 공인회계사 협회도 길드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단체에 속해 있는 공인회계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들이 있고, 공인회계사가 아니면 회계사로서 좋은 직업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정규대학 과정을 마친 후 3년의 실무경험과 다양한 워크숍과 시험을 통해서만 회원이 될 수 있으며, 매년 회비를 내야하고, 협회의 법이나 윤리 규범에 어긋난 일을 하면 처벌받거나 협회에서 추방당할 수 있으니, 길드 맞는 것 같습니다.
중세기 런던의 길드는 지금도 생활 곳곳에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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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벨로 로드 마켓’ 의 골동품들에도 중세기 장인들의 영이 깃들어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영화 ‘노팅 힐’ 로 더 유명해진 포토벨로 로드 마켓으로 함께 가보시겠어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