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한들한들
진 연 숙
코스모스의 계절이 왔다. 사찰 구경을 하러 가는 중에 한적한 시골길을 휙휙 지나간다. 순간 이름 모를 들풀들 속에서 한두 송이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았다. “여보, 코스모스꽃이네. 잠깐 차 좀 세워줘요.” 아무 말 없이 한적한 흙길에 세워준다. 총총거리며 코스모스로 다가간다. 연분홍색과 흰색 두 송이가 사이좋게 의지하고 서 있다. 예전에는 시골길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꽃이었는데, 요즘은 흔치 않으니 더 반갑고 기쁘다.
“어쩜, 이렇게 이쁘니?” 여린 꽃잎이 떨어질까 봐 손도 못 대고 말을 건다. 휴대전화기를 급히 꺼내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 댄다. 유난히 코스모스만 보면 “꺄약!”하며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남편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단 두 송이 꽃을 만났지만, 행복한 여행길에 추억이 하나 더 보태진다.
유별스럽게 코스모스에는 정신 못 차리고 좋아하는 나를 위해 연례 행사처럼 10월 1일에 꽃구경을 함께 해준다. 장동의 코스모스 마을로 원 없이 향기를 맡고 추억도 만지러 간다. 드넓은 논이 코스모스꽃들로 채워져 있다. 연분홍, 진분홍, 흰색, 얼룩 분홍색이 섞인 그들의 세계는 환상적이다. 들판 한가운데 흔들의자에 함께 앉아 흔들흔들 두 발로 버둥거려본다. 휴대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김상희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 길~~~’을 흥얼거린다. 마침, 불어오는 한들 바람에 코스모스 군단이 일제히 움직인다. 꽉 짜인 군무처럼 머리를 흔들어대니 온 동네가 춤을 추는 것 같다.
코스모스는 여덟 개의 꽃잎과 안쪽에 노란 수술들이 별 모양이다. 순우리말로 살살이 꽃이라고도 불린다.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이름을 붙였다 한다. 여린 줄기로 살아나가는 강인한 생명력은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형형색색의 꽃이 한줄기에 한 송이만 피어 오롯하게 집중해 피워낸다.
그런저런 것을 떠나서 어느 때부터인지 코스모스가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좋다. 왜 그렇게 애틋하며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까. 마냥 기쁘고 환희롭고 반가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투명한 꽃 한 송이를 고개 숙이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 속에서 문득 어린 시절 고향의 코스모스길이 떠오른다. 추석 명절이면 천안 큰집으로 아버지와 온 식구들이 함께 다녔다. 흰색 바탕에 둥그렇게 꽃 자수 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여동생과 입고 아버지 뒤를 따라 걷던 가을이었다. 동네 버스에서 내려 저만치 성큼 앞서 걷는 큰 발걸음을 총총이며 따라 걸었다. 깜깜한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두려움 없이 아버지 뒤를 따라가기만 했던 그때가 좋았다. 젊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때는 참으로 커 보였다. 명절 아침 마당 한쪽에 모여 폐까지 들어가는 알싸한 바람의 상쾌함을 함께 하였다. 그날의 서늘한 기온과 몸을 타고 올라오는 체온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좁은 길가에 내 키만한 오색 무지개 같은 코스모스가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고 나의 추석이 익었다. 아버지와 함께하던 풍성하고 편안했던 가을이었다.
가슴이 짠해진다. 한 줌의 바람결이 휙 하니 파도처럼 출렁이며 몸속을 지나간다. 그때 그 추억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을 짧게 주고 가신 아버지이다. 50도 안된 나이로 한달만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이별 인사도 떠나보낼 준비도 제대로 못 한 어리고 미성숙한 딸이었다. 늘 말없이 근엄한 모습이라 살갑게 가까이하기 어려워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좀 더 내가 일찍 성숙하였더라면, 조금만 더 아버지가 오래 사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담고 자식들이 잠든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셨다던 아버지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가슴속에 커다란 사랑이 가득했다는 걸 알겠다. 참으로 어떤 급한 사정이 있어서 왔던 그 세상으로 이렇게 짧게 살다 가셨는지 안타깝다. 몇 해 동안은 아버지의 그리움과 부족했던 사랑의 아쉬움에 눈물지으며 살아왔었다. 현재 살아계신다면 여든하고도 중반쯤 되셨을 것이다. 이 좋은 가을날 함께 팔짱 끼고, 그 시절을 웃으며 얘기하고 코스모스를 한 아름 안겨 드리고 싶다.
코스모스 들판에서 아버지를 느낀다. 그곳에서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있다. 그리움도 원망도 투정도 부려 본다. 그래도 그곳은 늘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준다. 코스모스의 축제를 즐기다 보면 다시 충만해지는 무언가로 미소가 지어진다. 다시 돌아가 살 수있는 힘과 추억을 얻는다.
꽃을 구경하던 남편이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는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 코스모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를 생각해서 씨앗을 받고 있단다. 선산에 잔뜩 뿌려 놓을 것이라 한다. 그곳에 들릴 때마다 만개한 꽃을 보며 좋아라 손뼉 칠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더 먼 훗날에는 내가 잠든 이곳의 코스모스를 보며 행복해할 그쪽 세상의 나와, 그런 엄마를 그리워해 줄 내 아들들을 위해서라 한다. 사랑의 러브레터를 받은 것 같다. 남편의 뒷모습에서 그리운 그 시절의 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나의 가을 속에는 코스모스와 보고 싶은 아버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