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03: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 - 이것을 직역하면 '그의 말씀의 소리에 순종하여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힘의 용사들'이다. 이것은 하늘 보좌를 둘러싸고 서서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다가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그 명령을 수행하는 다양한 계급의 천사들을 가리킨다.
'힘의 용사들'로 번역이 된 '말라카 깁보레'는 구약 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용어이므로 그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기가 쉽지 않으나, 사해 사본 등에 나오는 유사 용어 연구를 통해 볼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강력히 수행하는 '천사들'로 봄이 합당하다. 기자는 모든 축복과 영예와 능력이 하늘 보좌에 앉은 그분에게서 나왔음을 찬양하는 대열에 먼저 그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을 부르고 있다.
[눅 1: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처음부터 - '처음부터'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프 아르케스' 중 '아르케'란 말은 '모든 일의 시작'에 대해 또는 '말해진 일들의 시작'에 대해서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것은 '예수의 탄생에서부터'라는 의미보다는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에서부터'라는 의미, 또는 '세례 요한의 활동의 시초에서부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공생애 시작부터 예수에 관한 모든 일의 목격자들이다. 말씀의 - 여기서 이 단어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말씀'은 다양하고 빈번하게 사용 된다. 특히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통해 '말씀'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제공하고 있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분명 말씀이 성육신보다 선재했음을 암시한다..
그 말씀을 통하여 천지가 창조되었으며, 그 말씀은 생명이있고 또 사람들의 빛이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게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증언한다. 이에 비해 본문의 '말씀'은 '복음'을 의미한다. 즉 예수의 '말씀'과 '행동'을 통해 계시된 복음이다. 사실 고대 헬라의 작가들은 어떤 사람의 말과 그에 걸맞는 행동을 연관시켜 그 중요성 강조했었다.
예수의 사역을 기술할 때 '행하시며'와 '가르치시기를'이라는 말들을 서로 결합시키고 있다. 말씀과 행동을 통해 계시된 그 복음의 말씀은 1절의 '이루어진 사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 - 마태나 요한과는 달리 누가는 예수의 공생애 내내 곁에서 목격자되고 일꾼되었던 제자는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복음서 기록을 위해 그 같은 사도적 증거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본절은 바로 그 같은 사실이 고백되고 있다. 여기서 '목격자'에 해당하는 '아우토프타이'는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아우토스'와 '보다'의 뜻을 가진 '호라오'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스스로 본 자', '직접 자기 자신이 본 자라는 뜻이 된다..
누가의 복음서 기록을 가능케 했던 각종 정보를 제공해준 자들로서 그들은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직접 그분의 활동상을 목도한 산 증인이다. KJV는 이 부분을 '말씀의 일꾼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실로 예수 공생애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된 자들은 예수의 열 두 제자 외에 70인 전도대 및 예수를 수종들던 여인들,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자신의 복음의 권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복음서 기술을 가능케 한 자들이 '목격자' 또는 '말씀의 일꾼'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양자 모두가 포함되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그 복음의 권의와 내용상의 완벽을 넌지시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복음의 산 증인들이다. 전하여 준 그대로 - 본문에서 누가는 복음서 기록을 위해 준비한 모든 자료들이 임의대로 더하거나 뺀것이 없는 원형 그대로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즉, 누가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해서 자신에게 전해진 구전과 기록이 신빙성 있고 정확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의 '전하여 준'은 제2 부정과거 복수 능동태 직설법 동사로서 어김없이, 확실히 건네주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여기서 '구전'을 가리킬 수 있으나 반드시 구전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즉 이것은 구전과 기록 문서를 포함한 일종의 '전승'(파라도시스)으로 봄이 좋을 것이다. 실로 누가는 최초 목격자와 일꾼들이 전해준 전승을 통하여 자신의 복음서를 편집 구성하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실 누가는 예수의 제자도 아니었고, 사도도 아니었기에 복음에 있어서만은 직접적 증인이 아니었다.
복음서를 기록함에 있어 최초 증인의 확실한 보증 등의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력을 저술하려고 - '저술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나태사스다이'는 '차례로', '잇달아'라는 뜻을 가진 '아나'와 '고정된 곳에 놓다', '어떤 순서대로 배열하다'라는 뜻을 가진 '타쏘'의 합성어인 '아나타쏘마이'가 원형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임의대로 복음을 기록함이 아니라 일관성 있게, 차례대로 순서에 따라 편찬함을 의미한다.
계속해서 '내력을'에 해당하는 '디에게신'은 '디에게오마이('완전히 인도하다', '자세히 말하다')라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서 이는 곧 내용을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기록함을 말한다. 붓을 든- 이 단어는 '손을 대다', '착수하다', '시도하다' 등의 뜻을 가진 '에피케이레오'로서 흔히 히포크라테스 등의 의학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그 의미하는 바는 '실패나 비난에 유념치 않고 무엇을 시도하다'로 이해되곤 했다. 이로 보건대 이 일을 착수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이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런데 뒤늦게 누가가 이 작업에 착수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앞서 기록된 자료들이 부실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물론 누가는 자기 앞의 다른 기자들의 불완전함을 지적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고 더 나은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경쟁자적 입장에서 붓을 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누가는 예수에 관한 증인 의식을 가지고 좀 더 방대한 정보와 심도깊은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은 상세하고 정확한 복음서를 기록하려고 의도했다.